소설리스트

11장 (3) (24/187)

11장. 다섯 번째 왕(3)

[ (!) 공간의 지배법칙이 바뀝니다. ]

팝업창이 떴다.

[ ‘검수지옥’에 입장하셨습니다! ]

- (!) 해당 던전의 등급은 ‘신화’입니다.

- (!) 해당 던전의 신화는 변이되었습니다. (변이도 : 42.595%)

- 클리어 조건 : 검수지옥의 망자 지배

검수지옥.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린 자를 벌하는 칼날나무의 숲.

이곳을 지나는 죄인은 날카로운 칼날나무에 살점이 찢겨 나간다.

“음, 일단 야구장이 맞기는 한데…….”

주변을 둘러보며 호구별성이 중얼거렸다.

검수지옥의 신화와 야구 경기장이 합쳐진 공간이었다.

기본적인 형태는 야구장과 다름없으나 관중석과 중계석, 경기장 곳곳에 시퍼런 칼날나무가 솟아있었다.

“저게 뭐야?”

문득 무언가를 발견한 호구별성이 눈을 찌푸렸다.

“벌써 다 무너졌는데?”

그녀의 손가락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폭격이라도 맞은 듯 관중석 일부와 덕아웃이 엉망으로 무너져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그곳을 인식하자마자.

뻐어엉!

굉음이 울리더니, 안 그래도 엉망이었던 자리에 새까만 구멍이 뚫렸다.

흡사 포크레인으로 파내기라도 한 것처럼, 공간이 아예 없어져 버린 것이다.

“이게 무슨!”

심상치 않은 일에 모두가 그쪽을 주시했다.

“……아무래도 이곳 자체가 얼마 못 갈 것 같다.”

사라가 나지막이 말했다.

“오빠,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는 게 좋겠어요.”

바리도 내 팔뚝을 잡으며 덧붙였다.

“그래, 그렇게 하자.”

동의하며 검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영향력을 떨어뜨려야 하지?”

허공에는 아직 ‘100%’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이 검수지옥 던전을 지배하는 법칙이 100%라는 뜻이었다.

던전을 클리어하려면 주어진 조건에 따라 영향력을 50%까지 떨어뜨린 뒤, 법칙의 핵을 가진 보스를 상대해야 한다.

한데 던전의 클리어 조건은 ‘검수지옥의 망자 지배’.

왕의 권능이 없으니 망자를 부릴 수 없는데, 어떻게 영향력을 떨어뜨려야 할지 난감했다.

“어?”

그때였다.

스스스!

뭔가 바스락대더니 주변의 칼날나무가 살아 움직이며 우리를 포위했다.

“이런! 이게 다 뭐야?”

움직이는 칼날나무에 놀란 호구별성이 독기를 뿜었다.

“얘네 다 좀비였어?”

당연히 검수지옥의 칼날나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자세히 보니 온몸에 칼이 돋아난 좀비들이었다.

“그어어어!”

몸에 돋은 칼날 때문에 기괴하게 뒤틀린 좀비들이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채애애앵!

지체없이 검을 휘둘렀다.

팔다리가 잘려 나간 좀비들이 서넛씩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던전의 영향력은 그새 90% 밑으로 떨어져 있었다.

“……좀 더 복잡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단순할지도 모르겠어요.”

나머지 좀비를 베어내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 던전의 클리어 조건은 검수지옥의 망자를 지배하는 것.

반대로 이 던전을 움직이는 법칙도 ‘던전이 좀비를 지배한다’일 터였다.

그러니 던전의 법칙이 지배하는 좀비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첫 번째.

그 뒤에 법칙의 핵을 없애 공간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게 이 던전의 공략법인 것 같다.

스스스!

스스스스!

앞서 공격해 왔던 칼날좀비들이 모두 무력화된 순간 다른 칼날좀비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90% 밑으로 떨어졌던 영향력이 도로 차오르고, 나는 추측이 맞아떨어졌음을 확신했다.

“누나!”

새로 깨어난 좀비들을 다시금 베어 넘기며 호구별성에게 말했다.

“도령과 바리를 보호하는 데 주력해주세요.”

초강과 싸울 때 나는 좀비화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그들은 또 모르니까.

파아아앙!

그때 삼색의 신성이 번쩍였다.

[ 뼈살이꽃의 권능으로 힘 수치가 일시적으로 200% 상승합니다! ]

[ 살살이꽃의 권능으로 방어력 수치가 일시적으로 200% 상승합니다! ]

[ 피살이꽃의 권능으로 체력 수치가 일시적으로 200% 상승합니다! ]

서천꽃밭의 신성이었다.

검은색, 노란색, 빨간색의 신성이 하나로 얽히더니 새하얗게 빛나는 꽃을 피웠다.

“대왕, 우리를 최우선으로 보호하려는 건 좋지만 말이다.”

꽃을 피운 사라가 말했다.

“우리야말로 왕을 지키는 게 의무인 것을 잊었구나.”

부드럽게 웃어 보이며.

“너무 걱정 마라. 이곳에서는 잃어버린 권능이 점점 돌아오고 있으니.”

서천꽃감관의 권능은 ‘생명’이다.

생명은 곧 생장일지니, 그의 권능은 힐뿐만 아니라 버프까지 가능한 모양이었다.

“그러게!”

옆에서 호구별성이 거들었다.

“장기도 원래 사(士) 둘이서 왕을 지키는 법이지!”

파아아앙!

암녹색의 신성이 번쩍이며 칼날좀비들의 날을 부식시켰다.

역신의 힘답게 부패하는 속도가 빨랐다.

어느새 그녀는 또다시 새까맣게 일렁이는 역안이 되어 사방으로 독기를 흩뿌리고 있었다.

……하긴, 무려 서천꽃감관과 마마신이었다.

나는 새삼 두 신의 권능이 든든했다.

“좋습니다. 빨리 해치우죠!”

촤아아악!

촤아아아악!

거리낄 것 없이 좀비들을 베어 나갔다.

사라의 버프로 능력치가 상승해서인지 움직임이 한결 가벼워졌다.

칼날을 부식시키는 호구별성까지 가세하니 던전의 영향력이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영향력 50%.

이제 좀비를 쓰러트리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던전의 보스를 상대해야 할 때다.

그렇다면…… 보스는 어디에 있지?

“……어?”

경기장 내부를 찬찬히 훑어보다가 문득 팔다리를 잃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칼날좀비들에 시선이 닿았다.

처음에는 칼날에 뒤덮인 모습만 눈에 들어왔는데, 자세히 보니 그들이 걸친 옷이 자못 익숙했다.

마구잡이로 베이고 찢겨서 이제는 옷보다는 그저 너덜너덜한 천 조각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그들의 옷에 그려진 문양은 분명 눈에 익었다.

“흑탑?”

하나같이 새까만 옷에 모두가 똑같은 문양을 달고 있던 이들.

쓰러진 칼날좀비들 중 몇몇은 틀림없이 우리와 함께 던전에 입장했던 흑탑의 도사들이었다.

쇄애애액!

그리고.

흑탑 도사들의 존재를 눈치챈 그 순간.

쇄애애애액!

쇄애애애애애액!

바람을 가르며 무언가 훅 나를 덮쳤다.

그게 무엇인지 제대로 살필 새도 없이 나는 검을 들어 막았다.

채애애애앵!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커다란 경기장 안을 날카롭게 울렸다.

“……큿!”

예상보다 강한 힘에 작게 신음성이 샜다.

채앵!

채애앵!

그 이상 내색하지 않으려 부러 힘 주어 검을 섞다가 뒤늦게 상대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가늘게 쭉 찢어진 눈이 결코 낯설지 않았다.

“그때 그 도사인가?”

동료를 던져서 삼도천을 건넜던 흑탑 일행의 우두머리.

벌써 던전의 보스를 해치우고 왕의 권능을 손에 넣었는지 가슴팍에는 초강처럼 검붉은 핵이 박혀 있었다.

“당신이…… 검수지옥의 왕이라고?”

나는 도사와 맞댄 검에 힘을 실었다.

검수지옥은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린 자를 심판하는 지옥이다.

그런 지옥의 왕이, 제 욕심을 위해 거리낌 없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자라니.

“케,흐,흐흐.”

왕이 된 도사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와, 왕이야, 내,가.”

얼굴은 웃는 채였지만 뭉개진 발음은 정상이 아니었다.

벌어진 입에 침까지 질질 흘리는 몰골은 꼭 뭔가에 홀린 것처럼 보였다.

칼날좀비처럼 시퍼런 칼날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는데, 초강처럼 인간의 형태를 벗어나 변이 중인 듯했다.

“내, 가……왕!”

그의 가슴에서 검붉은 보석이 빛났다.

이 공간을 지배하는 법칙이다.

저걸 없애면 왕의 권능을 가져올 수 있다.

채애애애앵!

부딪친 검이 불꽃을 튀겼다.

“……!”

느껴지는 힘의 차이에 인상을 썼다.

권능을 손에 넣은 왕의 권역이기 때문일까?

검을 맞댈수록 그의 힘이 생각 이상으로 강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왕의 권능이 그의 힘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 완력의 차이를 메꾸려면 다른 것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빠르게 떠올랐다.

나는 검을 쥔 손에 내 권능,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더했다.

“차라리 검 자체를 부순다.”

검수지옥의 오관대왕이 칼날의 잎을 108만 번 두드려서 만든 검.

검수엽이 내 권능에 공명하면서 옅은 검기를 뿌렸다.

죽음의 권능을 머금은 검은 더욱 강도를 더하며 이윽고 완전한 신의 검으로 화했다.

채애애앵!

다시 한번 검이 맞부딪쳤다.

신의 검과 인간의 검이 힘을 겨루었다.

채애앵!

채애애애앵!

채애애앵!

그리고 잠시 후.

쩌적.

쉴 새 없이 메아리치는 난폭한 금속음 사이로 미세하게 끼어든 소리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신의 검이 노리는 단 하나의 점.

그곳을 시작으로 인간의 검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기다리고 있던 틈을 향해 나는 다시 힘껏 검을 휘둘렀다.

몇 번을 휘둘러도 하나의 일격으로 귀결되는 검수지옥의 초식이 오로지 검에 일어난 균열만을 노리고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균열이 번지는 속도는 빨랐다.

이미 패색을 드러낸 검이 검수엽을 버텨낼 리 없었다.

파장창창!

이내 도사의 검이 깨져 나갔다.

나는 곧장 그의 핵에 손을 뻗었다.

도사의 몸을 뒤덮은 칼날이 내 팔을 할퀴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마침내 핵을 손에 쥐었고.

[ (!) 충돌한 지배법칙이 주도권을 겨룹니다. ]

[ (!) 사후세계(死後世界) ↔ 사후세계(死後世界) ]

도사의 권능과 내 권능이 주도권을 겨루기 시작했다.

똑같이 망자의 넋을 거두는 사후세계의 권능이었다.

“케,흐흑. 후흐흣. 흐핫.”

권능과 권능이 충돌하자 도사가 기분 나쁘게 웃었다.

“내, 내가, 왕이야.”

그러고는 덜덜 떨리는 두 팔로 내 어깨를 붙잡았다.

마치 나를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듯이.

“전부, 내 망자야!”

“……!”

은색의 신성이 번개처럼 번쩍였다.

동시에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칼날좀비들이 팔다리를 무분별하게 이어붙인 채 일제히 내게 달려들었다.

“대왕!”

“전하!”

경악한 두 신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렸다.

파아앙!

파아아아앙!

한발 늦게 사라와 호구별성의 신성이 번쩍였다.

사라의 하얀 신성은 내 몸을 보호하고, 호구별성의 암녹색 신성은 좀비들의 칼날을 부식시켰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윽!”

몸을 부딪쳐 오는 좀비들의 칼날에 결국 핏물이 튀었다.

몸 곳곳에 울긋불긋한 생채기가 났다.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몸을 비틀었지만 지금 내 힘으로는 어깨를 쥔 도사의 손조차 제대로 뿌리치기 어려웠다.

끝내 얼굴까지 덮쳐오는 칼날에 무심코 눈을 질끈 감는데, 감아 버린 그때.

“제 말을 들어주세요!”

뜻밖에도 바리가 외쳤다.

“저는 신과 인간의 중개자, 무당입니다!”

그녀가 소리친 순간.

나를 덮치던 칼날좀비가 연극처럼 일시에 움직임을 멈추더니.

[ (!) 무당의 ‘천도(薦度)’가 시작됩니다. ]

팝업창이 떴다.

“망자들이여, 그대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십시오.”

또렷한 소녀의 목소리.

멈췄던 좀비들이 하얀빛에 휩싸였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나는 작게 몸을 떨었다.

“……이건, 대체?”

놀랍게도 그들은 하얀빛 속에서 온몸을 기괴하게 뒤덮었던 칼날을 벗고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평범한 인간의 몸이되 하나같이 고통스럽게 숨이 끊어진 시체의 모습으로.

[ 염라의 권능이 망자의 한을 읽습니다. ]

다시 팝업창이 떴다.

망자의 기억을 읽는 권능이 발동되면서 한때는 칼날좀비였던, 검수지옥에 갇혀버린 이들의 기억이 내게 흘러들었다.

-크크큭, 망자의 왕이라니.

-결국 좀비가 많을수록 강해진다는 거지?

-그럼 다 죽여버리면 되겠군!

무자비하게 헌터들을 도륙했던 흑탑의 도사의 탐욕 어린 음성이.

-아아아악!

-그, 그만, 살려…… 아아악!

-제발, 싫, 죽기 싫, 아악!

그리고 그에게 당했던 헌터들의 비명이.

단지 종으로 부릴 망자가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한 자들의 절규가.

“망자여, 누가 당신들의 왕입니까.”

그들의 기억이 흘러드는 가운데 바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체 누가, 당신들의 한을 풀어줄 진짜 왕입니까……!”

그녀의 그 말에 좀비가 되었던 자들 모두가 나를 돌아보았다.

억울하게 끝나버린 수많은 삶들이.

슬픈 자들의 왕으로서 내가 거두어야 할 이들이.

하나둘 천천히.

오로지 나를 향해 매달리듯 시선을 뻗었다.

[ (!) 공간의 카르마가 당신의 권능에 깃듭니다. ]

[ (!) 일시적으로 당신의 특정 권능이 증폭됩니다. ]

팝업창이 뜬 순간.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 (!) 충돌한 지배법칙이 주도권을 겨룹니다. ]

[ (!) 사후세계(死後世界) ↔ 사후세계(死後世界) ]

이 공간을 지배할 법칙에 또 다른 권능을 더하는 것.

[ (!) ‘염라’가 공간의 법칙에 권능을 더합니다. ]

징악(懲惡).

나를 바라보는.

이제는 나밖에 기댈 것이 없는.

저 가엾은 이들을 위한 권능을.

[ (!) 충돌한 지배법칙이 주도권을 겨룹니다. ]

[ (!) 사후세계(死後世界) ↔ 징악(懲惡), 사후세계(死後世界) ]

“검수지옥은.”

권능을 더하며 나는 도사에게 말했다.

“……바로 당신 같은 자들을 벌하는 지옥이야.”

핵에서 뻗어 나온 검붉은 빛이 나와 도사를 휘감았다.

“으,극,그극.”

징악의 권능을 감지한 도사가 파르르 몸을 떨었다.

“으윽, 크윽, 크에엑!”

권능과 권능의 충돌.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도사 쪽이었다.

“으,크,에엑,안,안,돼……!”

내 어깨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던 그가, 이제는 내게서 빠져나오기 위해 마구 몸을 비틀었다.

“소용없어.”

나는 도사에게 말했다.

“내가 이미 당신의 지옥이 되었으니.”

파지지직!

마침내 핵이 부서지고, 빛을 잃은 검붉은색 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 (!) 무당의 ‘천도(薦度)’가 완료되었습니다. ]

공간의 주도권이 내게로 넘어오기 시작하고.

새하얀 빛이 다시금 망자들을 뒤덮었다.

망자들은 천도의 빛 속에서 차례차례 모두 생전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피투성이가 되어 슬프고 끔찍하게 생을 다한 모습에서.

하나하나 평범하고 아름다운 삶을 누리던 찬란한 그때의 모습으로.

내가 기억해야 할 자들이다.

잊지 않고 기억해서 반드시 다음을 줘야 할 자들이다.

[ 공간의 주도권이 바뀝니다 : 사후세계(死後世界) → 징악(懲惡), 사후세계(死後世界) ]

마침내 던전은 완전한 내 공간이 되었다.

파아앙!

생전의 모습을 되찾은 망자들은 자연히 눈부신 보석으로 화했다.

사후세계의 왕이 거두어야 할 혼이었다.

[ (!) 검수지옥을 클리어했습니다! ]

[ (!) 당신의 카르마에 검수지옥의 신화가 새겨집니다. ]

[ (!) 신화가 지배하는 공간에 당신의 카르마가 섞여 듭니다. (카르마 : ???) ]

팝업창이 떴다.

[ (L)검수지옥(劍樹地獄)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

비활성 상태였던 검수지옥의 스킬이 활성화되었다.

[ (!) 카르마 포인트를 ‘100,000’ 획득합니다. ]

그런데 예상치 못한 엄청난 양의 카르마 포인트가 뒤따랐다.

[ 당신의 ‘무용담(L)’이 ‘영웅담(L)’으로 변화합니다! ]

삼도천을 건넜을 때 변화한 무용담이, 금세 영웅담이 될 만큼.

[ ‘새로운 왕이 탄생했으니.’ ]

- 분류 : 영웅담(L)

- 권능 : 권선(勸善), 징악(懲惡), 사후세계(死後世界)

- 내용 : 세상의 저편에서 새로운 왕이 망자를 이끌며 천명하기를, 선한 이에게는 영광이, 가엾은 이에게는 다음이, 악인에게는 징악이 있을 것이다.

- 효과 : (!) 해당 단계에서는 효과를 발휘할 수 없습니다.

그래, 어쩌면.

내 풍문은 처음부터 이곳에서 완성되어야 하는 풍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곳은 새로운 저승의 왕을 위한 던전이었으니까.

***

저승 던전 입구.

“엥?!”

우주질서보존회 행정공무원 3832호는 또다시 당황했다.

“뭐야, 변이도가 또 내려갔어?”

0.2% 내려갔던 저승 던전의 변이도가 또 내려가버렸다.

게다가 이번에는 하락 폭도 훨씬 커서, 42.595%던 변이도가 37.892%까지 떨어졌다.

무려 4.703%나 감소한 수치였다.

“어떡하냐, 이거.”

규정대로라면 그는 변이도가 내려간 것을 보고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변이도 하락 시 보고하라는 규정이 없는 것은, 애초에 변이도가 내려갈 일이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에이, 그냥 시키는 것만 하면 되지.”

한참의 고민 끝에, 행정공무원 3832호는 결국 이번에도 보고 없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버그는 그의 관할이 아니었다.

내 일도 아닌데 굳이 귀찮은 일을 맡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무조건 매뉴얼대로만 행동하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데.

그런데.

행정공무원 3832호가 조용히 보고를 접으려던 순간.

“이거 참, 재밌는 일이 벌어졌네요.”

뒤에서 나지막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쿠!”

3832호가 깜짝 놀라 뒤돌았다.

그가 알기로, 이런 목소리를 가진 인물은 딱 둘이었다.

한 명은 지구청장 조옥희, 또 한 명은…….

“팀장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3832호님.”

안보팀장 조금희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버그의 동태를 알고 싶은데 제가 한번 봐도 되겠습니까.”

새하얀 정장을 입은 안보팀원들이 그녀의 뒤에서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버그를 통째로 지워버리기 위해 찾아온 것처럼.

11장. 다섯 번째 왕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