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장 (1) (16/187)

9장. 세 가지 길(1)

바아앙.

날씬하게 잘빠진 검은 차가 도로 위를 달렸다.

재료아이템을 처분한 돈으로 새로 뽑은 고급 세단이었다.

외진 곳이라 길이 험한데도 미끄러지듯 막힘이 없다.

“거의 다 왔네요, 저승 던전.”

운전대를 잡은 건 나였다.

바리는 일단 미성년자고 사라는 육체도 없던 신인지라, 당연히 둘 다 운전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구별성은.

-네?! 누나 운전도 해요?!

-흥, 까짓것 21세기에는 기본이지.

놀랍게도 벌써 운전을 배웠다며 당당히 말했었다.

-스읍, 보스가 운전대를 잡는 게 말이 되냐? 전하, 나한테 맡겨라!

나도 물론 수능 끝나고 면허를 따긴 했다만.

50년 장롱면허였던 나보다야 낫겠다 싶어서, 나는 흔쾌히 운전대를 맡겼다.

그런데.

“…….”

문득 스치는 기억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살면서 그렇게 신호를 독창적으로 해석하는 운전자는 처음 봤다.

난폭 운전으로 줄줄이 끌려왔던 진상 혼놈들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역신은 도로에서도 죽음을 몰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하마터면 다른 저승에 갈 뻔했던지라, 앞으로도 운전은 그냥 내가 하기로 했다.

“어쨌든, 20년 전까지만 해도 신화급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헌터는 없었거든요.”

네비게이션을 훑으며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지난 열흘간 알아본 이승의 근황 얘기다.

“그런데 그새 세 명쯤 생겼더라고요. 천부인 길드의 ‘단군’이랑 고구려 길드의 ‘주몽’, 가야 길드의 ‘수로왕’.”

“염병, 이름들이 다 왜 그래?”

조수석의 호구별성이 한 소리했다.

“그러게요. 신들이 부재한 사이에 온갖 컨셉충들이 득세했나 보더라고요.”

농담으로 웃어넘기며 마저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천부인의 ‘단군’이 현재 한반도에서 가장 강한 헌터예요. 천부인의 신도 수가 2천만 명이던가.”

영웅담급 이상의 필드는 신도들의 신앙으로 힘을 증폭할 수 있다.

그러니 단군이 작정하고 전설급 필드를 전개하면 한반도에서 그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2위인 고구려의 신도 수가 4백만 명 정도인 걸 생각하면 압도적이죠.”

“이야, 쨉도 안 되네. 단군 이름값 한다.”

조금 놀랐다는 듯 호구별성이 말했다.

그때 마침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가 떠서 나는 슬슬 속도를 줄였다.

“도착했네요. 저기가 입구.”

어째 길이 험하다 했더니 폐허나 다름없는 공터에 건물 하나만 우뚝 서 있다.

신화급 던전이라는 거창한 이름과 달리 던전의 입구는 4층짜리 낡은 건물이었다.

꽤 오래된 듯 외벽에 실금도 여럿 가 있었지만, 어차피 이공간과 연결돼 있을 테니 겉모습은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포장도 안 된 땅에는 쓸데없이 비싼 차들만 가득했다.

돈 잘 버는 헌터들이 여럿 찾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이곳이 정말 고급 던전임을 방증하고 있었다.

건물 앞.

던전의 입구를 알리는 안내판과 함께 까만 양복을 차려입은 거한이 보였다.

“우주질서보존회인가?”

하긴, 중요한 던전은 우주질서보존회에서 직접 관리한댔으니까.

차에서 내린 나는 별 의문 없이 안내판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대로 경악했다.

[ ☆★ 저승 던전 입장료 : 10만 우주화(1인 기준) ☆★]

- ※ 9,999인 이상 단체 입장 시 0.005% 할인(!)

버그 던전에 입장료 천만 원이라니 양심 있냐!

할인율은 또 저게 뭐야!

그냥 깎아주기 싫다고 해!

“미친, 이 우주 세금버러지들!”

***

결국 거금을 뜯기고 던전에 입장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이공간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온 사방이 하얗기만 할 뿐이다.

우주강도단…… 아니, 우주질서보존회는 이곳이 던전의 임시 대기실이라고 했다.

100여 명이 한 번에 입장해야 하는 만큼 포털을 넓혀야 한다나.

넓은 공간에는 우리 말고도 입장을 기다리는 헌터들이 한 무리씩 흩어져 있었다.

“편하게 대기해주시면 됩니다. 세팅이 끝나면 곧장 이동되실 테니까요.”

까만 양복을 입은 공무원이 설명했다.

그의 뒤로 똑같이 생긴 공무원 여럿이 정체불명의 빛을 뿜어내며 이것저것 만지는 중이었다.

“이봐, 자네들.”

얌전히 대기하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젊은이들이 참 운이 좋구만.”

평범한 인상의 중년인이었다.

현신하면 인간과 다를 바 없다 보니, 평균 연령 4,100세의 두 신과 칠순의 나를 그냥 청년으로 봤나 보다.

내가 첫사랑만 제대로 했어도 저 양반만 한 아들이 있었을 텐데.

“우린 벌써 한 달 넘게 기다렸는데 말이야. 그쪽은 오자마자 들어가는군.”

“한 달이요?”

“그래, 여긴 입장을 통제하잖나. 언제 열릴지 모르지.”

“아, 하긴 그렇죠.”

맞장구치며 사정을 파악했다.

10년 내내 무한 버그가 발생했다면 우주질서보존회도 던전을 상시 개방할 순 없었을 터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가 도전을 해서, 간만에 개방한 걸 텐데.

“저희가 운이 좋았네요.”

모르는 척 어깨를 으쓱였다.

“흠, 그런데 학생은 아직 던전은 이르지 않아? 요기 이 친구는 아주 중학생은 됐나 싶은데.”

나와 바리가 어려 보여서 오지랖이 발동했는지 중년인이 우리를 훑으며 말했다.

“단군 이후로 인간들이 너무 헛된 꿈을 가졌어. 미친 부모가 애들까지 던전에 던져 놓으니.”

단군 이후 급부상한 사회문제를 염려하는 듯했다.

15년 전 무명의 헌터였던 단군이 최초로 신화급 던전을 클리어하고 처음 이름을 알린 이후.

연달아 신화급 던전을 클리어한 주몽과 수로왕까지 부상하면서 신화급 던전은 일종의 로또 같은 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일부 몰염치한 부모는 어린 자식을 던전에 밀어 넣는다고 들었다.

신화급 던전은 능력치가 어떻든 다 똑같은 조건이라니까, 운 좋게 클리어하면 장땡이라고.

아마 이 사람은 나와 바리가 그런 이유로 던전에 온 게 아닐까 염려되는 모양이었다.

“흥, 눈이 썩었군.”

그때였다.

“딱 봐도 그 계집애가 그쪽보다 낫구만.”

나는 끼어든 남자를 주목했다.

바리를 알아봤다는 것만으로도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크크큭, 대체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건지.”

남자가 기분 나쁜 웃음을 터트렸다.

서른 전후의 파리한 낯짝에 새까만 도포.

가늘게 쭉 찢어진 눈은 그냥 봐도 인상이 썩 좋지 않다.

[ 도사구나. ]

사라가 전음으로 말했다.

같은 신화의 신끼리 일정 범위에서 사용 가능한 귓속말 기능이었다.

[ 흠, 그때 본 박수보다 세 보이는데? ]

호구별성도 덧붙였다.

[ 뒤에 선 애들도 다 도사야. 그래도 저놈이 제일 강하네. ]

남자의 뒤로는 똑같이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여럿 있다.

옷차림은 각양각색이었으나, 하나같이 까만 옷에 똑같은 문양을 새겼다.

검은 옷의 도사들은 우리를 한 번 훑어보더니 관심 없다는 듯 돌아섰다.

그런데 그들이 지나가는 길마다 대기자들이 그들을 피해 홍해처럼 갈라졌다.

그들이 누구인지 벌써 다 안다는 듯이.

그래서 다들 피한다는 듯이.

“……설마 흑탑까지 온 줄 몰랐는데.”

중년인이 중얼거렸다.

[ 흑탑? ]

놓치지 않고 호구별성이 물었다.

[ 신도 수 114만 한반도 8위 길드예요. ]

나는 아는 대로 대답했다.

[ 원래도 한반도에 존재했던 작은 종교에서 이어진 집단이라는데, 사이비답게 비밀스럽고 기묘한 의식도 많다고 해요. ]

[ 아, 그래서 다들 까만 옷 입은 거야?]

[ 네. 그런데 흑탑이 도사 집단이었나 보네요. ]

……도사라.

저들을 보니 왜 도사가 역천의 존재라는지 알 것 같았다.

바리나 바리의 조부모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매일 새벽 치성을 드리며 맑은 기운을 받는 바리네 가족과 달리.

흑탑의 도사들은 표정이며 몸짓, 품은 기운까지 어딘가 뒤틀린 게 느껴졌다.

모르긴 해도 바리네 가족과는 전혀 다른 의식을 해 왔을 것이다.

“망했네.”

누군가 탄식했다.

“흑탑이라니, 이거 우리가 클리어해도 흑탑한테 찍히는 거 아니야?”

“그러게. 여기 보낼 정도면 흑탑에서도 인정받는 애들일 텐데.”

“혹시 탑주 후계자라든가?”

“헐, 설마?”

신화급 던전에 도전할 정도면 다들 나름 배짱이 있을 텐데.

그런데도 저런 반응이라니.

‘흑탑’의 악명이 꽤나 대단한가 보지?

“선생님들,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때 우주질서보존회 공무원이 소리쳤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던전 포털이 열립니다!”

팔을 벌려 안내하는 공무원의 뒤로 빛이 하얗게 산개했다.

[ (!) 공간의 지배법칙이 바뀝니다. ]

***

[ ‘저승’에 입장하셨습니다! ]

- (!) 해당 던전의 등급은 ‘신화’입니다.

- (!) 해당 던전의 신화는 변이되었습니다. (변이도 : 42.795%)

- 클리어 조건 : ???

팝업창이 떴다.

[ 1페이즈 ‘삼도천’이 시작됩니다! ]

- 내용 : 삼도천을 건너십시오.

- 보상 : 저승 신화 도전 자격

- 실패 시 : 망령화

펼쳐진 광경에 눈을 끔뻑였다.

“이야, 이게 다 뭐야?”

옆에 선 호구별성도 크게 뜬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전쟁이라도 났어?”

여기저기 무너진 건물의 잔해, 나뒹구는 먼지들, 길바닥의 쓰레기.

그리고 황폐화된 도시를 자욱하게 뒤덮은 잿빛 안개.

눈에 들어온 광경은 쉽게 말해 아포칼립스에 가까웠다.

“전하, 저게 설마 그건가?”

두리번거리던 호구별성이 멀찍이 물안개가 덮인 강을 가리켰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강이었다.

“삼도천?”

“……그런 것 같네요.”

던전의 삼도천은 차라리 한강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건너편에는 스모그 낀 도시가 희미하게 보이는 게, 서울이 망가진다면 이런 풍경이지 않을까.

아마 이 강은 삼도천의 신화와 현대의 도시가 뒤엉켜 만들어졌을 것이다.

던전이란 신화가 현실을 삼키고 새롭게 재구성된 공간이니까.

“히익, 저게 뭐야!”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나무?”

“엄청 커!”

“씨발, 저거 시체잖아!”

과연, 강가에는 빌딩만큼 커다란 나무가 하나 솟아 있었다.

죽은 나무처럼 잎이 하나도 없는 새까만 나무.

검게 늘어진 가지에는 잎사귀 대신 토막 난 시체들이 기괴하게 걸려 있다.

“비주얼 끝내주네.”

“미친, 우리도 저렇게 되는 거 아냐?”

헌터들이 경악했다.

“……전하, 저거.”

다만 나와 두 차사는 다른 의미로 당황했다.

“네. 의령수예요.”

저승의 삼도천에는 의령수라는 거목이 있다.

옷을 걸어놓는 나무라고 이름 붙여진 의령수(衣領樹).

이 나무는 망자의 옷을 통해 업을 잰다.

망자의 업이 클수록 옷이 걸린 나무도 크게 휜다.

현의옹과 탈의파, 이미 사라진 두 신의 권능이었다.

“옷이 아니라, 시체가 걸렸구나.”

왜곡된 신화에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사라가 쯧쯧 혀를 찼다.

“상류로 가야 해!”

그때 누군가 외쳤다.

“하류는 아귀 떼가 넘치고, 중류는 도저히 쓰러뜨릴 수 없는 괴물들이 지킨댔지!”

처음 말을 걸었던 그 중년인이었다.

“상류는 물이 얕아서 그냥 건널 수 있댔어! 그게 삼도천 공략법이야!”

공략법이라.

나는 그를 돌아봤다.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설명은 분명 삼도천의 신화와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상류, 중류, 하류.

세 가지 길로 나뉜 삼도천(三途川).

죄업이 깊은 악인은 아귀가 사는 하류를 헤엄쳐서 건너고.

중류를 건널 수 없는 범인은 얕은 상류를 제 발로 걸어서 건넌다.

중년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던전의 공략이 신화와 아주 동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꽤 유리하게 던전을 공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던전의 신화가 얼마나 왜곡되었는지가 걸리기는 해도, 이 한반도에 나만큼 저승 신화를 잘 아는 헌터는 없을 테니까.

다만.

[ 그런데 저놈은 그걸 어떻게 알았지? ]

위화감을 느꼈는지 호구별성이 전음으로 말했다.

[ 한 번 던전에 들어가면 나오기 힘들다지 않았어? ]

[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겠지. ]

사라가 대답했다.

[ 못 나온다는 게 거짓이든가. 아니면 저자가 헛소리를 하는 것이든가. ]

나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굳이 보태지 않고 말을 돌렸다.

[ 어느 쪽이든, 우선 상류에 가보는 게 좋겠어요. ]

신화대로라면 상류는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얕은 물이다.

의령수도 기괴하게 변한 마당에 상류라고 마냥 평범하지는 않겠지만.

***

삼도천의 상류.

강 너머의 도시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물안개가 우선 시야를 가득 채웠고.

그다음으로, 안개를 뒤로하고 선 누군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저승차사? ]

[ 전하, 쟤 뭔가 낯이 익은데? ]

새까만 두루마기에 갓을 쓴 남자.

익숙한 차림새로 강가에 서 있는 그를 본 순간.

나는 경악인지 의심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를 써야 했다.

절로 곱씹히는 과거의 어떤 장면 때문이었다.

-거봐라, 내가 고생 좀 한댔지. 개들은 주인을 먼저 데려간 차사를 용서하질 않더라고.

-……아파요, 형. 조금만 살살 발라주세요.

-삽살개가 유독 사납기는 한데, 정말 성한 데가 없네. 남은 연고 다 쓰면 딱 끝나겠다.

충심이 강한 개들은 먼저 간 주인을 뒤따르는 일이 왕왕 있다.

신입 차사 시절, 나는 삽살개를 키우던 할머니를 저승에 모시고 간 적이 있다.

그런데 할머니가 키우시던 개가 할머니를 따라가겠다며 새 주인도 마다한 채 할머니와 살던 집에서 굶어 죽고 말았고.

한참 고민한 끝에 나는 결국 녀석을 직접 데리러 갔었는데.

문제는 그 녀석이 할머니를 데려간 나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죽어서 영체가 된 녀석은 삽살(揷煞), 액운을 쫓는 개답게 무척이나 매서운 기세로 나를 물어뜯었다.

할머니를 데려간 것에 대한 앙갚음으로 말이다.

덕분에 온몸이 너덜너덜해졌던 나는 아직도 삽살개를 보면 종종 오한이 들지만, 그래도 줄곧 직접 데려오길 잘했다 생각하곤 했는데…….

-제가 서천꽃밭에 가서 새로 받아 올게요.

-너는 쉬어야 할 것 같지만, 그래, 네가 괜찮다면 나들이를 겸해서 함께 다녀오자. 한창 예쁠 때니까.

애써 침착하게 남자의 이목구비를 살폈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때 내가 걱정된다며 삽살개를 데리러 가는 이승길을 함께해줬던 형.

헌터들의 침공 이후 소멸한 발설지옥의 차사 중 하나.

-그래도 우리 막내 덕에 주인과 개가 함께 환생문을 넘겠구나.

그는 틀림없이 차사 구복룡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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