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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2) (12/187)

6장. 서쪽 하늘의 신화(2)

이게 무슨 소리인가.

겨우 되살린 조부모를 다시 죽여야 한다니.

“어쩔 수 없다. 우주의 법칙을 어겨서라도 백은 지켰으되 가장 중요한 혼살이꽃이 없으니.”

사라가 설명했다.

“본디 혼은 순환하고 백은 흩어지는 법이다. 두 꽃이 일부나마 백은 되돌릴 수 있으나, 돌아온 백이 선할지 악할지는 알 수 없다.”

어째서인지 차갑게까지 느껴지는 얼굴로.

“저들이 생전에 착한 사람이었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몹시 신다운 얼굴이기도 했다.

“그냥 봐도 안다. 저들은 분명 도사일 테지. 그것도 꽤 대단한.”

신의 얼굴을 되찾은 그가 인간에게 감춘 속내를 말한다.

“도사는, 본디 역천의 존재야.”

……나는 몰랐던 세계의 이야기였다.

“너도 저 아이를 봐서 알 테지.”

그가 바리를 가리켰다.

“그들은 보통 인간과 다르다.”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바리의 모습을 곱씹었다.

미래를 보는 것에 의심이 없으며, 열댓 명의 목을 베어도 그저 그들의 죽음이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다 말하던.

그럼에도 가족의 죽음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어서 흙으로 돌아가야 할 육신을 억지로 묶어 놓았던 소녀를.

“그들은 우주의 이치를 따르면서도 부정해.”

내가 봤던 것을 보지 않아도 안다는 듯 사라가 말했다.

“도를 따라서 도사라지만, 결국 그 본질은 도에 대한 부정이야. 결국 평범한 인간을 넘어 신의 권능을 추구하지 않느냔 말이다.”

바리에게 느꼈던 정체불명의 위화감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수십 년을 도사로 살아왔다면 그 백이 보통 사람과 다를 가능성이 크다.”

알아들었다.

혼은 환생을 거듭하여 단련된 인격이지만, 백은 한 번의 생에서 형성된 인격이다.

혼을 잃은 바리의 조부모가 어떤 모습일지는 알 수 없다.

“넌 저승의 신이야.”

생명을 관장하던 오래된 신이 내게 충고했다.

“안타까운 사정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모든 이를 가야 할 곳으로 이끄는 것이 너의 사명이다.”

“……예.”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몹시 신다운 말일지라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라수대왕님.”

그에게 대답했다.

바리와 바리의 조부모를 돌아보면서.

“만약 저들이 삿된 존재로 깨어난다면, 제가 직접 없애겠습니다.”

나는 그들을 주시하며 허리에 찬 검을 쥐었다.

여차하면 곧바로 검을 뽑을 수 있도록.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었으니.

“영감탱이, 폼 잡긴.”

가만있던 호구별성이 혀를 찼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그냥 잘 풀렸으면 좋겠는데.”

변덕스러운 역신이 이번에는 인간을 동정했다.

솔직히, 나도 그랬다.

사실은 베고 싶지 않았다.

설령 정해진 미래대로 움직였다 한들, 바리는 이미 내 은인이었으니까.

그러니 아이의 가족을…… 그냥 다시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그 마음을 모를 리 없지 않은가.

홀로 남아 어떻게든 뭐라도 하려는 그 마음을, 다름 아닌 내가.

“…….”

우리는 말없이 바리와 조부모를 지켜보았다.

꽃이 발하던 빛이 조금씩 사그라지면서 휘몰아치던 신성도 잦아들었다.

마침내, 부활한 두 노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뼈살이꽃과 숨살이꽃만으로 이루어진 불완전한 부활.

두 사람은 뼈만 남은 몸에 의복을 걸친 채였다.

살가죽 없이 움직이는 뼈.

평범한 사람이 본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광경.

그러나 만약 그들이 겉모습처럼 사특함만 남았다면 죽여야 한다.

죽여야 한다.

잘못되면 죽여 없애야 한다.

죽이고 싶지 않더라도…… 죽여야 한다.

“……아.”

호구별성이 작게 탄식했다.

“허어.”

무심하게 지켜보던 사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바리가 탄성을 내질렀다.

“할머니! 할아버지!”

뼈가 되어 돌아온 조부모는, 몸을 일으킨 순간 있는 힘껏 손녀를 끌어안았다.

“……!……!!!”

“…!!…!……!”

뼈만 남아 비록 말은 못 하지만, 두 팔로 힘차게 껴안아 사랑을 표현했다.

“잘됐네.”

지켜보던 호구별성이 슬며시 웃었다.

“…….”

끌어안는 세 사람을 보며 나도 검을 집어넣었다.

죽음을 건너 다시 만난 가족은 역시 보기 좋았다.

부러워서, 한편으로는 내가 또 괴로워질 만큼.

“이거 괜한 걱정을 했나 보군.”

사라도 말을 더했다.

“……그야말로 뼛속까지, 다정한 가족들이란 게지.”

느릿하게 말한 그가 곰방대를 들었다.

“막내 차사, 잘 봐 두거라.”

그의 말끝이 다시 나를 향했다.

“도사는 역천을 추구한다. 그러나 인간을 벗어나도 하늘에 오를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하나같이 비뚤어지지. 그럴 때에.”

곰방대에서 하얗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자신을 잃지 않는 방법은, 결국 인간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래, 저들처럼. 그것이 도다. 타고난 대로 우주를 움직이는 법이야.”

말을 잇던 그가 작게 웃음 지었다.

“재밌지 않느냐. 보통의 도사라면 삿된 것이 됐을 터인데, 인간임을 받아들여 인간을 초월해 부활했으니.”

……도사라.

나는 내가 몰랐던 세계를 조금 알게 된 기분이 들었다.

신화의 세계와 게이트 이후의 세계, 그 중간을 잇는 존재를.

“역설. 그게 이 우주의 재미있는 점이지.”

마침내 사라가 상황을 정리했다.

“어쨌든 모두 끝났구나.”

여전히 무심했으나, 처음의 짜증은 사라지고 좀 더 부드러워진.

내가 기억하는 사라수대왕의 얼굴 그대로.

“볼일 다 봤으면 이제 가거라. 너희 때문에 꽃밭이 어수선해.”

그러고는 곧바로 축객령이었다.

“엥? 영감 너무 냉정한 거 아냐?”

호구별성이 인상을 썼다.

“손님이 왔으면 냉큼 차라도 내와야지!”

역신의 호통에 사라가 쯧쯧 혀를 찼다.

“그래, 여전히 낯짝이 두껍구나, 별성. 사람 여럿 죽여 놓고 꽃밭에 와서 살려내라 난동 피우던 그대로야.”

“아니, 언제 적 얘기야, 영감탱이가!”

음, 둘이 대충 어떤 사이였는지 알겠군.

“뭐…… 어쨌든 이리 되었으니, 별성 너도 저승의 존망을 부탁한다. 뭐든 조화가 중요하니 이제 사람은 그만 죽이고.”

그가 다시 곰방대를 물며 말했다.

“여기서도 빨리 물러나라.”

얼핏 보기엔 정말로 우리가 성가시다는 태도였다.

이상할 것은 없었다.

15년 만에 은퇴해서 5천 년 넘게 놀았던 사라다.

원래도 귀찮은 것을 싫어하고 하루에 반 이상을 잠으로 보내던 게으른 신.

하지만.

문득 스치는 생각에 나는 그를 바라봤다.

꽃을 두 송이밖에 피울 수 없다더니, 지금 이 순간 그의 신성은 무척이나 희미했다.

그래, 마치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듯이.

“……이런.”

상황을 파악한 나는 작게 몸을 떨었다.

사라가 왜 그리도 피곤한 얼굴이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그는 곧 소멸할 것이다.

간신히 붙들고 있던 신격을 바리의 조부모를 살리는 데 다 써버렸으니까.

“……내 힘이 미약하여 지금은 백을 붙들어 두는 게 고작이지만.”

사라가 말을 이었다.

“만약 저승이 돌아온다면, 사라졌던 혼도 되찾을 수 있을 테지.”

불완전하게 살아난 노인들에 대한 당부였다.

“네가 거둔 아이니 끝까지 책임을 다 해야 한다.”

그러더니 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네가 처음 갓을 쓰던 게 엊그제 같거늘…… 그새 이 땅을 짊어졌다니.”

아마 우주질서보존회에게 전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하긴 애들은 원래 빨리 크지.”

딱히 길게 말할 생각은 없다는 듯, 그가 또 곰방대를 물었다.

“이제 가거라. 나는 정말 쉬고 싶다.”

그러나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사라수대왕님.”

다시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할락궁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품었던 의문을 입에 담았다.

본래 살아남은 신은 사라수대왕이 아니라 그의 아들 할락궁이였다.

사라가 먼저 부인 원강아미와 아들 할락궁이를 지키고 죽은 후, 끝내 원강아미도 소멸하면서 할락궁이만 홀로 남아 꽃밭을 지켰다.

그런데 지금 꽃밭에 남은 건 먼저 죽었다던 사라였다.

“그래, 너는 원래도 심성이 그랬지.”

그가 코웃음을 쳤다.

“눈치를 줘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구나.”

이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설마.”

호구별성도 알아채고 앓는 소리를 냈다.

“아니…… 영감, 설마.”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역시 할락궁이가 당신을 살리고 소멸했군요.”

나는 그녀가 하지 못한 말을 대신했다.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꽃밭이 왜 앙상하게 메말랐는지.

홀로 꽃을 피우던 할락궁이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소멸했던 아버지 사라수대왕을 살려낸 것이다.

-꽃밭을 살려낼 겁니다. 어머니의 유언대로.

앞서 소멸한 원강아미도 남편을 살리려 무리하게 꽃을 피웠을 터였다.

그러나 두 신이 힘을 짜냈어도 되살아난 사라의 신성은 희미했다.

꽃을 단 두 송이 피운 것만으로도 사라져버릴 만큼.

“……막내 차사, 됐으니까 다물거라.”

그가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아서, 나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당신께서도, 가족을 따라가실 셈입니까?”

내 말에 그는 한동안 대답이 없더니.

“……하.”

결국 포기한 듯 나를 돌아봤다.

“참으로 후레자식이지 않느냐, 그놈.”

처음과 달리 진한 감정이 묻어나는 눈으로.

“어떻게 나를, 처를 두 번이나 죽인 못난 놈으로 만들 수 있느냔 말이다.”

먼 옛날, 사라수대왕이 아직 젊은 사라도령이었던 시절.

그가 꽃감관이 되어 처음 저승에 오던 때.

그의 아내였던 원강아미는 남편을 저승으로 보낸 뒤 천년장자라는 자의 노예가 되었다.

그런데 음탕한 천년장자가 원강아미를 노렸고, 뜻대로 되지 않자 결국 원강아미를 죽이고 말았다.

소식을 들은 사라는 크게 슬퍼하면서 아들 할락궁이에게 꽃을 주어 그녀를 살리게 했다.

그렇게 수천 년이 흘러, 이번에는 원강아미가 죽었던 사라수대왕을 살려 낸 것이다.

제 목숨을 바쳐 피운 꽃으로.

“……그래도 고맙구나.”

그가 말했다.

억누른 그리움에 희미한 만족감이 섞인 목소리로.

“너희 덕에, 어쨌든 두 사람의 힘을 헛되이 쓰지 않았으니.”

하얀 상복이 덧없이 펄럭였다.

“살리는 것으로 시작하여 살리는 것으로 끝난다…… 서천의 신화다운 끝이야.”

그의 신성은 이제 정말 희미했다.

당장 소멸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수많은 저승의 신이 이렇게 사라졌다.

믿음이 사라진 때에 쌓았던 신성마저 모두 써버려서.

“사라수대왕님.”

하지만 나는 그를 소멸하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저승의 신이 되어주십시오.”

내게는 그의 소멸을 막을 방법이 있으니까.

“빙의체에 현신하면 사라지지 않습니다.”

영체인 신은 신성을 모두 소진한 순간 사라져버린다.

하나 가짜 몸에 빙의하면 신성으로 유지되던 혼이 육신에 묶여 버틸 수 있게 된다.

“제게 여분의 몸이 여럿 있습니다. 당신께서도 현신하시면 됩니다.”

그때 바리가 여분의 몸을 챙기라던 것이 이런 뜻이었을까.

나는 새삼 아이의 예지에 다시 한번 놀랐다.

“이곳에 올 때 바리는 봤다고 했습니다.”

바리의 예지가 맞았다면 사라도 설득할 수 있을 터였다.

“……만발한 오색 꽃밭에서 가족과 다시 만나는 것을. 그렇다면 결국 서천꽃밭이 돌아온다는 뜻이고.”

나는 한 번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사라와 눈을 맞췄다.

“그때는 당신의 가족도 돌아올 수 있다는 뜻이겠죠.”

서천꽃밭의 신성으로 서천꽃감관 사라를 살려 냈으니, 꽃밭이 돌아온다면 꽃밭의 다른 신들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사라는 내 말에 잠시 침묵하더니.

“……이미 끝났다고 하지 않았느냐.”

표정이 거의 없던 얼굴에 짜내듯이 인상을 썼다.

낮게 깔린 목소리마저 끝이 거칠게 갈라졌다.

“이 신화는 끝났어. 꽃밭이 망가지는 순간이 아니라.”

신경질적으로 곰방대까지 내던지면서.

“10년 전, 인간이 신화를 부정하고 신에게 도전한 순간 이미 끝났다!”

드물게도, 그는 화를 내고 있었다.

“나도 어리석어 끝을 못 받아들이고 그놈들과 같이 죽었지만.”

“……사라수대왕님.”

“그렇게 한들, 남은 것은 처자식까지 잡아먹고 비참하게 연명하는 생뿐이었지.”

언성을 높이던 그가 이마를 감쌌다.

“우주의 뜻을 부정하면 더욱 고달파질 뿐이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화를 냈어도 기분은 상하지 않았다.

단지 그가 나와 같은 고통을 겪었음을 재차 느꼈을 뿐.

“하지만.”

때문에 나는 다시 말했다.

“하지만 결국 이겼잖습니까.”

10년 전, 1만 명의 헌터들이 저승을 침공했다.

우리는 그때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으나, 결국 침략자들을 모두 벌레로 환생시키고 주동자들을 무간지옥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비록 10년이 흘러 무간지옥을 탈옥한 놈들이 염라대왕님을 살해하고 도망쳤을지라도.

“이겨?”

사라가 코웃음을 쳤다.

“패잔병이 죽지도 못한 게 아니라?”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대꾸였다.

“제가…… 당신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쓰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홀로 남은 할락궁이가 제게 물었죠.”

-이제연 차사님.

-……서쪽 하늘이란 이름의 꽃밭이, 어째서 땅의 저승과 함께 있는 걸까요.

“그때는 답을 못했습니다. 그때는 아직 강림 형과 대왕님께서 계셨거든요.”

결국 정말로 혼자가 돼서야, 나는 그 물음을 진지하게 되새겼다.

“저 또한 홀로 남아 환생문을 닦던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린다는 서천꽃밭과 죽은 사람이 간다는 저승.

그 본질은 결국 같을 것이라고.

“서천의 신화도, 저승의 신화도, 결국 헤어진 이를 다시 만나고자 하는 신화이기 때문일 거라고.”

할락궁이에게 하려던 대답을, 그의 아버지 사라에게 전했다.

“저도 당신과 같았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곱씹었다.

저승이 무너진 것을 받아들이고 환생을 준비하던 그 비참한 순간을.

“저도 이 신화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더군요.”

또한 나는 사라가 숨기지 못한 눈빛도 곱씹었다.

오래된 신답게 그는 순식간에 미련과 분노를 감추었으나, 사실 그렇지 않을 터였다.

왜냐하면 그는 결국 서천꽃밭의 신이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도, 끝나버린 인연도.

기적처럼 다시 붙잡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신이기 때문이다.

“방법이 생긴 순간, 쉽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연하겠죠.”

나는 그에게 웃어 보였다.

“우리의 신화는, 애초에 끝을 끝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으니까.”

말을 마친 후, 나는 잠시 사라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는 곧바로 입을 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가 함께할 것임을 알았다.

우리는 결국, 끝을 부정하는 저승과 부활의 신이었기 때문이다.

“하.”

이윽고 사라가 웃음을 터트렸다.

“막내가 그새 신을 다루는 법을 배웠구나.”

그리고 나를 분명하게 응시했다.

“그래, 우리는 인간과 달라. 타고난 이유 없이 생에서 죽음까지 사는 인간과 달리, 우리는 하나의 숙명을 갖고 영원을 살지.”

허탈하게 웃되, 아주 조금은 이전과 다른 얼굴이 되어.

“네 말이 맞다, 새로운 왕이여. 나는 생불왕의 서천꽃감관, 부활의 권능을 다스리는 신이다.”

어느새 나를 ‘왕’이라 부르면서.

“그러니 꽃밭을 되살리자는 네 말을 거절한다면, 나는 되살리는 것이 숙명인 스스로를 부정하는 꼴이 되겠구나.”

그 순간이었다.

[ (!) 당신의 카르마에 따라 미완의 ‘풍문(E)’이 발생합니다. ]

팝업창이 떴다.

굳이 내용을 확인하지 않아도, 나는 그것이 어떤 풍문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 언젠가 오색 꽃이 만발한 꽃밭에서.

사라와 바둑을 두던 우리 대왕님, 그리고 원강아미와 할락궁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리운 광경을 되새기다가, 나는 다시 그를 불렀다.

“사라수대왕님.”

그는 내가 신을 설득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건 아닐 것이다.

외로운 이는 본디 무슨 말을 해도 쉽게 넘어오는 법이니까.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실지라도, 저는 당신을 다시 뵌 게 좋습니다.”

결국 사라도 슬며시 웃어 보였다.

“……나도 그렇다, 막내 차사.”

다시 팝업창이 떴다.

[ (!) 당신의 카르마에 따라 ‘풍문(E)’이 완성되었습니다. ]

서쪽 하늘과 세상의 저편을 잇는 이야기가.

[ ‘서쪽 하늘의 약속.’ ]

- 분류 : 풍문(E)

- 인연 : 일직차사 사라수대왕, 염라

- 내용 : 세상 저편의 왕이 차사가 된 서천의 꽃감관에게 약속했다. 언젠가 꽃밭에 꽃이 만발하는 날,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 효과 : (!) 해당 풍문은 인연(因緣)의 풍문입니다. 차사가 왕의 명령을 수행할 시 능력치가 30% 상승합니다.

6장. 서쪽 하늘의 신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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