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장 (1) (11/187)

6장. 서쪽 하늘의 신화(1)

정체불명의 단지.

그 안에 봉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순간, 나는 경악했다.

신화가 현실이 된 세계에서도 이런 짓은 역시 금기였기 때문이다.

“네, 대왕님.”

내 반응에도 바리는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저는 여기 그분들의 백(魄)을 모셨어요.”

“뭐?”

듣고 있던 호구별성도 놀랐다.

“아니, 야, 너…… 지금, 죽은 사람을 살려달라는 거야?”

사람이 죽으면 혼은 윤회하고 백은 땅으로 흩어진다.

혼은 영원불멸한 카르마이며, 백은 잊히는 한 때의 삶이니.

한 번의 생이 끝나면 백은 육신과 함께 우주로 돌아가는 게 이치다.

그러니 사자가 부활하려면, 육신을 지켜 백이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우선.

결국 바리가 저 단지에 모셨다는 것은, 아마 아이의…….

……처참하게 살해당한 조부모를, 바리는 제 손으로 직접.

“…….”

생각지 못한 부탁에 당황했다.

사실 나는 이미 몇 번 사람을 살린 적이 있었다.

나는 명부를 토대로 죽음을 집행하는 저승차사였으니까.

수명이 다한 자가 안타까워서, 그래서 조금 더 살게 해주는 것은 모든 차사가 이따금씩 겪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미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것은 또 다른 얘기였다.

혼이 육신을 빠져나간 순간 곧바로 백의 붕괴가 시작된다.

한 번 시작된 붕괴는 막을 수 없다.

단지 쌓아온 카르마를 토대로 재창조할 수 있을 뿐.

그러니 사자의 완전한 부활은 죽음의 권능이 아니라 생의 권능…….

“……!”

그 순간 스치는 생각이 있어, 나는 바리를 바라봤다.

“……네, 대왕님.”

내 생각을 읽었는지, 바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 봤어요.”

흔들림 없는 눈으로.

“오색 꽃이 만발한 그곳에서, 환하게 웃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아이가 본 것은 미래였을까, 아니면 현실이 된 신화였을까.

나는 비로소 바리가 말하는 바를 온전히 깨달았다.

서천꽃밭.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꽃이 피는 곳.

먼 옛날, 아이와 같은 이름의 신은 서천꽃밭의 다섯 꽃으로 부모를 살리고 이승과 저승을 잇는 무조신이 되었으니.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같은 이름을 가진 소녀가, 조부모를 살리기 위해 꽃밭을 찾았다.

***

저승으로 가는 길목.

큰물을 세 번 건너면 서천꽃밭으로 갈 수 있다.

“이거 참, 21세기에 사람 살린다고 꽃밭을 가는 애가 다 있네.”

호구별성이 불쑥 말을 꺼냈다.

“게다가 이름은 또 바리라니.”

가벼운 어투였지만, 아마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닐 터다.

“……무조신 바리공주님은.”

나는 그녀의 말을 받았다.

“제가 저승에 왔을 때에는 이미 사라진 분이셨죠.”

워낙 유명한 신인 만큼 나도 인간이었을 적부터 그 이름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차사가 되었을 때, 바리공주는 이미 저승은 물론 이승에서도 모습을 감춘 지 오래였다.

그런데 같은 이름을 가진 소녀가 저승의 왕이 된 나를 찾았고.

심지어 마고할미를 모신 만신이 되어 있다니.

……이게 그냥 우연일까?

아마 호구별성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터였다.

망자의 부활을 믿고 시체를 직접 거두는 소녀가 역시 그냥 평범한 소녀일 리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문득 호구별성이 다른 말을 꺼냈다.

“저승이 폭삭 망했는데 꽃밭은 괜찮겠냐?”

아무래도 꽃밭의 권능은 건재한지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잠시 서천꽃밭을 떠올리다가.

“괜찮을 거예요, 아마.”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저승이 무너졌을 때도, 꽃밭은 피해가 적은 편이었거든요.”

10년 전, 헌터들의 예고 없는 침략으로 거의 모든 저승신이 사라졌다.

살아남은 저승 시왕은 우리 대왕님뿐, 삼백 차사도 나와 강림 형밖에 남지 않았다.

지옥을 지키던 수백의 신수와 옥졸은 그냥 전멸이었다.

그런데 그 치열했던 전쟁에서, 서천꽃밭의 할락궁이와 그의 어머니 원강아미는 살아남았다.

“사라수대왕님께서 꽃밭과 가족을 지켜내셨다더군요.”

사라수대왕.

다른 이름으로는 사라도령.

그는 생불왕 삼신할미가 정성을 들여 점지한 천신(天神)이었으며, 삼신이 임명한 초대 서천꽃감관이자, 2대 꽃감관인 할락궁이의 아버지였다.

또한 내가 모시던 염라대왕님의 오랜 바둑 친구이기도 했다.

“사라 영감이?”

호구별성도 그를 아는지 눈을 끔뻑였다.

“잉여대왕이 웬일이래?”

잉여대왕.

그 말에는 피식 웃고 말았다.

사라수대왕은 거창한 이름과 달리 한량으로 유명했으니까.

꽃감관으로 임명된 지 15년이 되던 해.

그는 일이 고되다며 고작 열다섯이었던 아들 할락궁이에게 자리를 줘버렸다.

말이 15년이지, 신에게 15년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시간인지라.

결국 영원히 백수로 살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껍데기만 멀쩡한 백수 영감탱이잖아.”

옛날 생각난다는 듯 호구별성이 덧붙였다.

……껍데기라, 이게 또 전해지는 말이 있는데.

꽃밭을 지키는 사명을 부여한 만큼, 삼신께서는 아주 혼신의 힘을 다하여 사라를 점지하셨다고 한다.

‘꽃밭의 신이 얼굴이 못나면 되겠느냐!’

라는 뜻이라나.

이렇듯 생불왕께서 정성을 다하셨으니, 그는 가만있어도 한 떨기 꽃처럼 빛나는 미남이었는데.

그렇게 공을 들인 사라가 꼴랑 15년 만에 은퇴한다니.

소식을 들은 삼신께서는 몹시 허탈해하시며 이렇게 외치셨다.

‘내가 겉가죽만 신경 쓰느라 정작 정신머리를 빼놓았구나!’

그리하여 그는 생불왕 인증 한반도 공식 정신 나간 신이 되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신이었다면 애초에 은퇴도 안 했을 것인지라.

누가 뭐라든 5천 년간 열심히 빈둥거리면서 타고난 용태를 격렬히 낭비했다.

“…….”

문득 염라궁에서 느긋하게 바둑을 두던 사라가 떠올라, 나는 다시 씁쓸해졌다.

“……그분께서 가족과 꽃밭을 지키고 소멸하셨죠.”

10년 전, 사라수대왕은 서천꽃밭을 노린 헌터와의 싸움에서 동귀어진 했다.

부인 원강아미와 아들 할락궁이, 그리고 한 줌의 꽃씨를 지켜내고는.

“그 영감이 죽었다고?”

듣고 있던 호구별성이 인상을 썼다.

“……염병할.”

그러다가 욕을 하는 게, 그의 부고가 충격인 모양이었다.

어느새 또 옅은 독기가 축축하게 번지는 걸 보면.

“그럼, 그래도 원강아미랑 할락궁이는 잘 지내고 있는 거지?”

이어진 물음에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뇨, 그 뒤에 원강아미께서도 소멸하셨어요.”

사라수대왕은 가족과 한 줌의 꽃씨를 지켜냈다.

그러나 내가 서천꽃밭을 다시 찾았을 때, 한 줌의 꽃씨는 어느새 무덤가를 곱게 덮을 만큼 가득 피어 있었다.

-어머니께서 무리하게 꽃을 피우셨죠.

어머니와 아버지의 무덤을 지키며, 홀로 남은 할락궁이가 말했다.

-이 꽃무덤은 어머니의 마지막 신성이에요.

살아남았지만 원강아미의 힘은 거의 바닥난 채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꽃밭의 꽃을 한가득 피워 내고는 눈을 감았다.

“……원강아미도, 죽었다고.”

호구별성이 작게 신음했다.

“하, 참…… 기껏 돌아왔더니 줄초상이네, 아주.”

뒤늦은 부고에 속이 타는지.

옅게 뿜어내던 독기가 그새 한층 짙어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게 10년이 되어가지만, 서천꽃밭에 다시 꽃이 만발하게 되는 날, 들러 달라고 했었죠.”

나는 홀로 남은 할락궁이를 떠올렸다.

사실 똑같이 세상의 끝에 있어도 서천꽃밭과 저승은 다른 영역이었다.

꽃밭은 생불왕 삼신할미가 다스리는 생의 권능이며, 저승은 저승 시왕이 다스리는 죽음의 권능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천꽃밭의 신들과 제법 가까이 지냈다.

서천꽃감관 할락궁이는 삼신의 비서로서, 염라의 비서였던 나와 명부를 주고받았으며.

그의 아버지 사라수대왕은 내가 모시던 염라대왕의 바둑 친구였으니까.

안주인 원강아미는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으나, 사고 친 사라가 염라궁에 숨어들 때면 내가 밀고를 하곤 했었지.

그래, 저승의 직계가족은 아니었으나, 그들 역시 나의 두 번째 삶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웃들이었다.

-이제연 차사님.

마지막으로 봤던 할락궁이는, 열다섯에 멈춘 앳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서쪽 하늘이란 이름의 꽃밭이, 어째서 땅의 저승과 함께 있는 걸까요.

저승에 홀로 남게 된 이후, 나는 간간이 그 질문을 곱씹곤 했다.

언젠가 홀로 남은 할락궁이를 다시 만난다면, 마찬가지로 이제는 혼자가 되어 버린 내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그런데.

“이게 무슨…….”

마침내 꽃밭에 다다랐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옆에 선 호구별성도 신음했다.

“이거 뭐야, 이거 다 왜 이래?”

형형색색의 꽃잎이 흐드러지던 서천꽃밭에 메마른 흙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짓밟기라도 한 것처럼.

“……말도 안 돼.”

텅 빈 꽃밭에서 바리가 말했다.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가족을 모신 단지를 끌어안은 채로, 잔뜩 움츠리고는.

“분명히 봤어. 틀렸을 리가 없어.”

이제껏 기이하리만치 차분했던 모습 없이, 아이는 망연히 중얼거렸다.

“오색 꽃이 만발한…… 꽃밭에서, 분명히, 분명히 봤어.”

나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소녀를 바라봤다.

“……아, 이런.”

호구별성도 한숨을 쉬었다.

“그래, 역신도 사라진 마당에 부활의 신화가 건재하기는 힘들 텐데.”

꽃밭에 따라오면서도, 사실은 부활의 권능을 계속 의심하고 있었는지.

……그런가.

나는 차사로 살면서 정해진 수명을 늘린 적은 있었지만, 사실 서천꽃밭의 권능으로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는 것은 보지 못했다.

각성자들 사이에서도 상처를 치유하는 힐러나, 망령을 부리는 사령술사, 시체를 움직이는 네크로맨서 말고 진짜 죽은 사람을 살렸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래도 서천꽃감관 할락궁이가 살아있으니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할락궁이는 어디로 갔으며, 꽃밭은 또 왜 이렇게 됐단 말인가.

“……누구냐.”

그 순간.

“누가 감히 생불왕의 꽃밭에서 소란을 피우는 게냐.”

황폐해진 꽃밭 너머로 누군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서른 전후의 몹시 수려한 얼굴.

연기를 뿜는 곰방대에, 몸에는 하얀 상복을 걸친 젊은 남자였다.

“……당신은.”

생각지 못한 등장에 몸을 떨었다.

“뭐야.”

호구별성도 곧바로 그를 알아봤다.

“아니…… 영감탱이, 살아 있었어?”

사라수대왕.

10년 전 처자식을 지키고 소멸했다던 사라였다.

느긋하던 얼굴이 어둡게 그늘지고, 즐겨 입던 비단옷 대신 거친 상복 차림이었지만…… 그는 분명 내가 알던 사라수대왕이었다.

“너는…….”

나를 알아본 사라도 걸음을 멈추었다.

“발설지옥 막내 차사로구나.”

그가 염라궁에 들를 때마다 시중을 드는 것은 막내 차사였던 내 몫이었으니.

“그래, 어찌 용케 살아남았더냐.”

그가 물었다.

“제일 먼저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놈이.”

어째서인지, 기억보다 시니컬한 어투로.

“아니, 이 영감탱이가!”

호구별성이 끼어들었다.

“왜 또 보자마자 시비야! 아직도 성깔 안 고쳤냐!”

그 말에 사라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별성?”

조금 놀랐는지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네가 어찌 아직 남아 있느냐?”

“뭐! 내가 살아서 꼽냐!”

왜 시비냐며 호구별성이 성을 냈다.

그러자 사라는 느릿하게 두 눈을 끔뻑이더니.

“……뭐, 설마 그게 아니꼬울 리 있겠느냐. 네가 역병이래도 인간한테나 해로울 테지.”

다시 아무렇지 않게 곰방대를 물었다.

“돌아온 것은, 그저 돌아온 것일 뿐.”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별 관심 없다는 태도로.

“사라지고 나는 우주의 이치에…… 내 감히 무슨 말을 더하겠느냐.”

다만 그것이 무심하다기보다는, 그저 많이 지쳐 보여서.

나는 잠시간 말없이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은퇴한 신인 만큼 그는 원래도 만사에 달관한 성격이었다.

때로는 생각 없이 산다는 핀잔까지 들을 정도로.

그런데 지금의 그는 달관하다 못해 완전히 풍화된 것만 같았다.

그래, 마치 이대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이.

“……그래서.”

곰방대로 물었던 사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여기는 무슨 일이지?”

쉰 것처럼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였다.

나는 대답 대신 바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이는 단지를 더 꽉 끌어안으며 사라를 바라보았다.

혼란과 두려움이 어린 눈을 하고서, 뭔가를 말하고 싶은 듯 입술을 달싹였으나 한참이나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영영 돌이킬 수 없을 게 무서운 듯이.

“그래…… 재미있구나.”

결국 사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살아 있는 인간이 이제 와 제 발로 이곳을 찾다니.”

상복 차림의 서천꽃감관이 천천히 걸어와 가족 잃은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예전에도 꼭 너 같은 아이가 있었지.”

사라가 누구를 말하는지는 바로 알았다.

바리데기 바리공주.

오래전 다섯 꽃으로 부모를 살렸던 신을 말하는 것일 터였다.

“하지만 너무 오래된 일이야. 인간은 이제 잊어버리다 못해 믿지도 못할 만큼.”

오래된 신은 잠시 소녀를 관조했다.

수천 년의 세월이 담긴 눈이 아이가 품은 단지에 멈추었다.

주술로 봉한 백(魄)을 느꼈으리라.

신의 눈이 두려운 듯, 움츠린 바리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 백은 본디 우주의 법도를 어겨 붙잡아 둔 것이었으니.

이미 인간을 벗어난 것처럼 보였던 소녀는, 가족의 죽음 앞에서 신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겁낼 것 없다.”

사라가 말했다.

“살아 있는 인간이 꽃밭을 찾으면, 대가 없이 꽃을 내주는 게 이곳의 법도야.”

달래듯이 부드러운 어조로, 은퇴한 신이 타고난 사명을 읊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산 채로 저승의 강을 건넜으니, 그 정성이 얼마나 갸륵하냔 말이지.”

그러더니 다시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헌데 내가 지금은 힘이 없어…… 꽃을 두 송이밖에 피울 수 없겠구나.”

연기를 한 번 길게 내뿜고 나지막이 물어 왔다.

“그러니 너는, 그들이 어떤 모습이라도 사랑할 자신이 있느냐.”

신이 인간을 시험하는 것처럼.

“…….”

그 순간 여태 흔들림 없던 바리의 눈에서 후두둑 눈물이 쏟아졌다.

“……네.”

간신히 대답한 아이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네, 네, 제발…… 네, 네!”

줄곧 나이에 비해 터무니없이 침착했던 것과 다르게.

마치 둑이 터진 것처럼 격한 반응이었다.

“네, 네, 네……!”

몇 번이고 반복하던 아이가 간신히 말했다.

“제발, 제발 제게 두 분을 돌려주세요……!”

작은 어깨가 끊임없이 들썩였다.

인간을 벗어나 거리낌 없이 가족의 시체에 주술을 걸었던 소녀가, 어찌할 수 없는 가족의 죽음에 인간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그것만이 인간이 신에게 보일 수 있는 진심이라는 듯.

“고개를 들어라.”

사라는 잠시 소녀를 바라보더니 이윽고 다시 말했다.

“이것은 생명을 점지하는 생불왕의 뜻일지니.”

섬세한 손가락에 희미하게 빛이 맺혔다.

“검은 꽃은 뼈를 살리는 뼈살이꽃이요.”

그 빛은 곧 작고 까만 꽃을 피워 내더니.

“파란 꽃은 숨을 살리는 숨살이꽃이라.”

또 한 차례, 푸른 꽃도 피워 냈다.

“이 꽃으로 생불왕께 치성을 다하면 너의 소중한 사람들이, 일부나마 그 육이 돌아올 것이다.”

꽃을 두 송이 피워낸 사라가 그것을 바리에게 건넸다.

꽃을 받은 바리는 조심스럽게 단지를 내려놓았다.

“……제발.”

그 위로 두 꽃을 겹치고 다시 납작 엎드렸다.

“제발, 제발, 돌아와주세요.”

소녀는 기도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소중한 사람을 위한 기도.

간절한 기도에 꽃잎이 환한 빛을 뿜어내었다.

작은 빛에서부터 번진 신성은 순식간에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흩어진 백으로 모여들었다.

기적을 일으키는 부활의 권능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그때였다.

“……막내 차사.”

묵묵히 바리를 지켜보던 사라가 나지막이 나를 불렀다.

“만약, 돌아온 저들의 육신이 사특하다면.”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작은 목소리로 내게 귀띔했다.

“반드시 다시 죽여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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