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장 (3/187)

2장. 죽음의 땅에서

호구별성.

마마라고 불렸던 천연두의 신.

머리를 조아리고 빌면서, 인간은 그저 자비가 내리기만 바랐던 지독한 역병의 신.

그녀의 신화 중 가장 유명한 신화는 뱃사공 신화였다.

어느 날, 강을 건너려던 호구별성이 뱃사공을 불렀다.

그런데 뱃사공은 호구별성의 예쁜 겉모습만 보고 어처구니없는 수작을 부렸다.

감히 신에게 ‘아가씨가 하룻밤만 자주면 공짜로 배를 태워 주겠다’고 희롱한 것이다.

화가 난 호구별성은 그 즉시 뱃사공의 목을 잘라 강바닥에 버렸다.

그러고도 화가 안 풀려서 뱃사공의 집에 찾아가 그 세 아들까지 목을 쳤다.

그야말로 씨를 말려버린 것이다.

내 사수였던 강림 형은 그녀를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무를 수 없는 예정된 죽음이라면, 역신은 때때로 물릴 수 있다는 것마저 비참하게 만드는 병마다.

그랬다.

뱃사공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을 박대한 김장자의 아들에게 역병을 내린 얘기로도 유명했다.

낌새를 눈치챈 김장자가 아들을 절에 맡기자, 호구별성은 엄마 목소리까지 흉내 내면서 아이를 꾀어냈다.

그리고는 죄 없는 아이를 저주해 온갖 역병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죽게 만들었다.

아들을 잃은 김장자가 뒤늦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나서야 다시 애를 살려줬다지.

결국 그녀의 자비는 오로지 그녀의 변덕에 달린 것이다.

때로는 나을 듯 낫지 않는 병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처럼.

……한데.

그런 께름칙한 신이,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아주 든든한 진상이 되어 나타났다.

“야, 이 잡놈 새끼야! 인두겁을 뒤집어쓰고 할 짓이 따로 있지! 남의 무덤을 밀어버려?!”

“아니, 아니 선생님, 그게 아니고요!”

공무원의 멱살을 잡은 호구별성이 그를 짤짤 흔들었다.

멱살을 쥐고 흔드는 그녀보다도 공무원의 덩치가 훨씬 더 커서, 새우처럼 몸이 굽은 꼴이 우스웠다.

“아니, 선생님, 이러시면 곤란, 어억……!”

속절없이 흔들리던 공무원이 컥 숨을 삼켰다.

주변에 가득한 독기 때문인지 얼굴에는 그새 보랏빛이 돌았다.

역신은 자기도 모르게 독기를 뿜는다고 했던가.

나는 그녀를 입에 담을 때마다 몹시 불쾌해 했던 강림 형을 떠올렸다.

역병의 권능은 때때로 역신 본인조차도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예로부터 나라에 역병이 돌면 과로로 쓰러진 차사가 한둘이 아니었다지.

오죽하면 백신의 등장을 제일 반긴 게, 사실은 역병이 돌 때마다 같이 죽어나가던 차사들이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그 얘기를 하면서, 강림 형은 역신하고는 상종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는데.

이제 와서 이런 식으로 역신과 마주치게 될 줄이야.

“아니, 그러니까 선생님, 이것 좀 놓고! 억!”

“놔? 놓으면 어쩔 건데! 저 똥차 치울 거야?!”

“억, 아니, 그럴 수는, 어억!”

“그럼 그냥 죽어!”

나는 공무원을 쥐고 흔드는 호구별성을 살폈다.

언성을 높일 때마다 닿는 축축한 독기는 내 아버지, 소멸한 염라에 대한 그녀의 정(情)일 것이다.

그것을 깨닫자 처음의 섬뜩한 긴장 대신 의문이 들었다.

벌써 오래전에 사라졌다던 역병의 신은, 대체 어떤 일로 저승까지 찾아왔으며…… 또 무슨 사연으로 염라의 죽음에 제 일처럼 화를 내는 것일까.

[ 치이이익---- ]

그런데 그때였다.

[ ---치이익---지구 양식에 맞춰 변환 중입니다---치이이익--- ]

허공에 또 새까만 구가 생겨났다.

방금 전 불도저가 되었던 것과 똑같은 구체였다.

“……!”

이번에 튀어나온 것은 불도저가 아니라, 세상에, 무슨 2m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여자였다.

새까만 선글라스에 잔머리는 말끔히 뒤로 넘기고, 두툼한 근육은 정장으로 감싼, 어…… 설마 이 사람도 공무원?

“구청장님!”

정말로 공무원이 맞는지, 멱살 잡힌 공무원이 구세주처럼 그녀를 불렀다.

저 공무원도 한 덩치 하는데, 지금 나타난 여자와 비교하니 숫제 아담할 정도였다.

……아니, 근데 진짜 공무원은 맞는 건가?

호구별성도 살아있는 마당에, 저 여자도 장승이나 뭐 그런 거일 수도 있잖아?

“음.”

위엄 있게 주변을 살핀 구청장이 내게 걸어왔다.

“지구청장 조옥희입니다. 지구식 이름이죠.”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지구청장(地區廳長)?

지구(地球)가 지구(地區)였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선생님.”

어느새 그녀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나도 딱히 왜소한 체격은 아닌데, 그녀의 몸 두께가 내 두 배는 되는 듯해 괜히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대별왕의 신격이 카오스에 흡수되면서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권한이 우주질서보존회에 병합되었습니다. 평소 대별왕과 시왕의 권한은 독립적이지만, 지금은 시왕의 부재에 따라 지옥의 최고결정권도 우주질서보존회의 대리인 지구청장 조옥희에게 있습니다. 저는 오늘부로 지옥의 모든 기능을 정지하고 해산합니다. 따라서 지금부터 선생님의 행위는 우주공무집행방해죄가 됩니다.”

뭔가 구구절절 긴 설명이 이어졌다.

그런데 첫마디가 너무 충격적인지라 뒷말은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별왕이…… 뭐요?”

대별왕.

그는 천지왕의 맏아들로서 오랜 세월 저승을 지탱해온 신이다.

애초에 이 땅에 망조가 든 것도 저승의 기(氣) 그 자체였던 대별왕이 실종되면서부터였으니까.

헌터 시대가 되고도 한동안 굳건했던 저승이었으나, 대별왕이 사라지고 그의 권능인 ‘운명적인 죽음’ 그 자체가 마모되면서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그때부터 운명적인 죽음을 기록하는 명부가 완전히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에.

그런데 대별왕이, 뭐라고?

“……모르셨군요.”

내 물음에 구청장이 말했다.

사무적인 어조에 표정이 거의 없어 마치 기계와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 대별왕은 우주 신화 대통합 시범 사업에서 탈락했습니다.”

이어지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희 우주질서보존회의 과실이 컸죠.”

***

우주 신화 대통합 시범 사업.

정리하자면 이랬다.

지구 시간으로 50년 전, 온 우주의 법칙을 관리하는 ‘우주질서보존회’에서 전 우주에 퍼져 있는 신화를 통폐합하기로 결정했다.

세계마다 법칙이 제멋대로라 혼란을 야기한다는 이유였다.

다만 우주질서보존회도 무작정 정책을 추진할 수는 없었다.

예산도 문제거니와, 전례 없는 일이다 보니 모든 신화를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주질서보존회는 일단 행성 하나를 시범 구역으로 삼기로 했다.

“지구는 여러 가지로 적합한 행성이었죠.”

구청장이 설명했다.

“꽤 많은 신화가 쌓여 있는 데다가, 행성의 규모도 적당했고요.”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이유였다.

“문명 수준도 미개했으니까요. 교류하는 행성이 없다는 게 가장 매력적이었습니다. 은하 경제권에 묶여 있으면 아무래도 행성 하나만 건드리기가 쉽지 않거든요.”

……어, 잠깐 그건 지구인으로서 좀 슬픈데.

“게다가 지구는 이미 어떤 신을 믿느냐로 주야장천 싸워 왔으니까요. 주민들도 이 사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

이쯤에서 나는 문득 옛날에 읽은 책 한 권을 떠올렸다.

-보이십니까, 이 퍼렇고 흐릿한 점이. 그러니까 이 X만 한 곳에서 그만 좀 싸우십시오.

뭐, 대충 그런 구절이.

아, 그러니까 작작 좀 싸우지 그랬어, 인간들아.

“던전이 열린 건 그것 때문이었군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예, 신화를 통합하려면 일단 신화가 현실이 되어야 하니까요.”

구청장이 말을 받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까 말한 과실에 대해 설명할 차례였다.

“본래 저희는 이 사업을 이런 식으로 예상했습니다. 신화가 현실이 되면, 신이 인간에게 힘을 빌려주고 인간은 그 신의 대리인이 되겠구나.”

아, 각성자가 그런 거였군. 대충 이해했다.

“신의 대리인이 되면 이제 다른 신화의 괴물과 싸웁니다. 그러다 대리인들끼리도 싸우고요. 한마디로 신들의 대리전이죠.”

여기까지 들었을 때, 나는 그들의 과실이 무엇인지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리인들이 신까지 죽이더군요.”

……그래, 그것 때문에 우리 저승도 망했으니까.

“거주민들의 공격성을 제대로 확인치 못한 저희 측 과실입니다.”

“…….”

아, 이걸 헌터 놈들이 들었어야 했는데.

단 50년 만에 저승까지 멸망시킨 호방함에 우주의 질서마저 통탄할 정도라고.

“뭐, 일단 이 좌표에서 허용된 정보는 이 정도입니다만.”

……좌표?

“사실 인간이 신을 죽이는 것은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닙니다.”

뭐? 문제가 아니야?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계속 생각한 건데, 이 사람…… 뭔가 거북하다.

정중하게 말한다지만 듣다 보면 내가 한낱 우주 먼지가 된 기분이랄까.

“진짜 문제는 사후세계가 붕괴되면서 갈 곳을 잃은 영혼들이 우주퇴적물로 쌓이고 있단 겁니다.”

내 기분이야 어쨌든, 구청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우주퇴적물이 쌓인 행성은 보통 혐오 행성으로 분류되죠.”

그러니까, 헌터가 저승을 멸망시키는 바람에 지구 전체가 쓰레기 매립지가 되어버렸다는 건가.

“우주퇴적물이 쌓인 행성은 환경 미화를 위해 보통 백 년 내로 철거됩니다.”

……심지어 보기 흉하다고 1세기 안에 사라지게 생겼고.

“그런데 아무래도 행성 철거는 반감을 사기 쉬운 처분인지라, 일단 임시로라도 사후세계를 복구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는데요.”

이게 진짜 본론인 것 같았다.

“유감스럽게도 이미 한반도의 저승신이 선생님 한 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구청장이 선글라스를 치켜올리며 말했다.

“한마디로, 선생님께서 저승의 지정생존자가 되신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차가운 무언가가 내리꽂혔다.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가정이 당장 현실로 끄집어내질 것만 같은 그런 불길한 예감이.

“저승 지정생존자요?”

한 박자 늦게 반응했더니, 구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확인된바, 한반도 저승법에 따르면 저승 시왕이 임기를 채우지 못할 시 직속 차사에게 권한이 승계되더군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왕이라 불려도 저승 시왕의 공식 직위는 ‘판관’이니까.

물론 대왕님들 평균 임기는 1만 4782년으로, 열 분 모두 돌아가실 때까지 은퇴 그런 거 없었지만.

그래, 차사가 왕위를 넘겨받는 게…… 아주 없는 얘기는 아니다만.

“어…… 그.”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떤 감정이 불쑥 치솟는 걸 느꼈다.

“강림차사가…… 있었을 텐데요.”

차사는 분명 시왕의 자리를 잇는다.

……그래서 강림 형도, 떠나기 전에 저승의 최고권자로서 나를 인간으로 환생시켜준다고 했었는데.

“아뇨.”

구청장이 말했다.

“현재 확인된 한반도의 저승신은 선생님뿐이십니다.”

어째서일까.

순간 내 귓가에 울린 것은 구청장의 목소리가 아니라 저승을 떠나던 날 형의 목소리였다.

-살아라, 제연아.

그 목소리를 무심코 곱씹은 순간.

나는 역설적으로 그의 부재를 실감했다.

실감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다시금 떠올랐다.

살 것을 당부하던 목소리.

그리고 아주 잠깐 머리칼을 스치던 그의 서툰 손길까지도.

그래, 이제 정말 나만 남았구나.

“……전 그냥, 환생하려고 했는데요.”

짜내듯이 대꾸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환생하고 싶었다.

모기든 뭐든, 이대로 다시 태어난다면…… 이별도, 슬픔도, 다 잊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우주질서보존회가 임시로 저승을 운영하게 됩니다.”

“…….”

복잡한 심경에 저승을 돌아봤다.

열심히 닦던 환생문.

죄수가 탈옥한 지옥들.

풀 한 포기 없는 나의 아버지, 염라의 무덤.

마지막으로, 저승을 밀어버리려던 불도저.

“그럼 철거는 왜 하시는 거예요?”

문득 신경이 쓰였다.

어차피 우주질서보존회가 사후세계를 운영하는 거라면, 그냥 둬도 되는 것 아닌가?

“아무도 안 믿으니까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입술을 달싹였다.

무의미하게 몇 번 말을 삼키고서야, 나는 그것이 반박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권선과 징악의 신화가 유명무실하게 되었으니 그냥 기본만 남기는 거죠. 죽음 그 자체만.”

그래.

이미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던 현실이었다.

그런데도 그 현실을,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듣는 순간.

“……그러면.”

가슴속에서 어떤 불씨가 되살아났다.

계속해서 눌러 담아 왔지만, 결국은 꺼트릴 수 없었던 불씨가.

그래서 지금도 불쑥 나를 움직이려는 그것이.

“그러면 제가, 저승의 최고신이 되면.”

이미 다 꺼진 줄 알았던 세상 저편에 대한 미련이.

“권선과 징악의 신화를…… 되돌릴 수 있을까요?”

산 사람의 세상이 불공정할지라도 죽은 사람의 세상만큼은 공정하다는 그 위안이.

“…….”

구청장은 잠시 나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예.”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많이 뒤처지신 상황이십니다만, 뭐, 선생님께서 신화를 직접 실현하신다면 가능하겠죠.”

전혀 긍정적인 여지가 없는, 어쨌든 0은 아니라는 식의 성의 없는 대답.

그런데 그 의미 없는 일말의 가능성에도, 억눌렀던 미련은 다시금 열망이 되었다.

역시 나는 이 세계를 포기하기 싫었으니까.

“할래요.”

-사는 게 무서워서 죽음을 택했으니, 그 마음이 어디 가셨겠느냐.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나는 죽음을 잃어버리는 게 더 두려웠던 걸지도 모른다.

다시 살아가야 하는 것도.

삶보다 공정한 죽음을 되찾아야 하는 것도.

어느 쪽도 결국 치열하게 맞서야 할 수밖에 없다면.

그렇다면, 나 혼자만이라도 공명정대한 죽음을 택할 만큼.

“하겠습니다, 저승왕.”

그래서 나는 결단했다.

삶에 끌려가기보다, 이 죽음의 땅에 다시 제 발로 서기로.

2장. 죽음의 땅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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