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204화 (완결) (204/204)

204화 : 완결.

카메라의 빨간불이 들어오며 소파에 앉아있던 여성이 싱긋 미소 짓는다.

“안녕하세요. 오늘 저희 프로그램과 아주 인연이 깊은 분을 초대했습니다.”

짧은 단발이었던 미주의 머리는 긴 머리로 바뀌어있었다.

열정적이던 그녀의 모습은 어딘가 차분해져 있었지만, 그 변화가 그리 나쁜 것이 아님을 느끼게 했다.

그녀는 이제 현장 리포터가 아닌 인터뷰 프로그램의 메인 MC를 맡고 있었다.

선 굵은 취재와 특유의 시원한 화법으로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미주였다.

“XFC의 미들급 챔피언 6차 방어전의 성공한 백두호 선수를 모셨습니다.”

“반갑습니다. 데일리토픽 시청자 여러분. 격투기 선수 백두호입니다.”

사람들은 미소를 지으며 두호를 환영했다.

경기를 치룬지 며칠 되지 않은 듯 그의 얼굴에는 하얀색 거즈가 이마와 볼에 붙어있었다.

“6차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치루셨는데 기분은 어떠세요?”

두호는 과거와 달리 굉장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인터뷰를 응했다.

“팬분들의 응원과 격려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하. 제가 아는 백두호 선수는 이렇게 재미없게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아닌데요.”

“저희 어머니가 방송 보시면서 좀 농담도 하라고 하셔서...하하.”

이제는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도로 친해진 두 사람이었다.

어쩌면 커리어의 시작점부터 함께한 두 사람이다 보니 알게 모르게 유대감이 쌓인 듯 했다.

미주는 두호를 보며 싱긋 웃었다.

‘몸에 독기 밖에 없던 꼬맹이가. 이렇게 성장했네.’

날 서 있는 독기는 힘이 되어주지만 주위 사람을 힘들게 한다.

물론 두호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이성을 유지할 줄 아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방송 화면에는 공격적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도 두호의 성격은 많이 바뀌었다.

이성적인 냉철함은 여전했지만, 여유로워지고 곧잘 농담도 던졌다.

가끔은 엉뚱한 모습도 보이며 우리 사회속에서 평범한 사람들과 같아졌다.

“이번 6차 방어전에 관련해서 질문을 드릴까해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이번 경기를 기점으로 라이트헤비급의 대한 월장(체급을 옮기는 것)이 기정 사실화가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두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주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 순간 두호의 눈에 촬영장 안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이 보인다.

준모와 한 여성이었다.

준모는 한국에서 총 4번의 다리 수술을 진행했다.

이제는 목발이 없어도 걸을 수준은 되었고, 어느덧 매니저팀 팀장으로 승진하였다.

그의 옆에서 걸어오는 여성은 준모의 여자친구 김지혜.

필린의 운영팀인 김지혜씨와 준모는 예수의 소개팅으로 연인 사이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준모는 느릿한 걸음으로 조용히 촬영장 구석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서 있던 예수와 탁현은 다가오는 두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세요?”

두호는 미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라이트 헤비라는 새로운 도전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단기간의 준비가 아닌 평체부터 차근히 쌓아올려 만반의 준비를 마친 채로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미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질문지를 넘겼고 이내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도 파이트머니 전체를 저소득층 아이들의 교육을 위하여 기부를 하셨어요.”

두호는 챔피언이 등극한 이후 파이트머니 전액을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특이한 것이 필린의 직원들과 함께 아이들과 한 끼 식사 프로젝트를 진행중이신데 혹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두호는 잠시 고민하는 듯 턱을 쓰다듬는다.

“사실 제가 먼저 제안한 겁니다. 생계형 범죄 아시죠?”

“네. 빈곤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저지른 범죄를 뜻하는 것이죠.”

“하지만 아이들이 범죄를 저지른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해요. 정말 단지 배가 고프기 때문입니다. 당장 뭐라도 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아이들에게는 사회의 규칙들이 잘 와닿지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필린과 함께 밥을 먹자 이건가요?”

“인생의 선배로서. 또 같은 상처를 받아본 사람으로서. 밥은 내가 사 줄테니 든든하게 먹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한 번 고민해봐라 라는 의미였습니다.”

사람들은 감탄하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어린 나이이지만 왠지 모를 현기까지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미주는 미소를 지으며 다음 질문지를 이어갔다.

“현 PRIDE–K ROAD의 미들급 챔피언인 최구열 선수가 자신의 목표는 백두호 선수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하여 한 말씀 해주시죠.”

PRIDE–K ROAD는 수미가 PRIDE-K를 인수하며 생겨난 단체이다.

단순히 단발성 대회가 아닌 XFC처럼 한국에서도 튼튼한 자본을 가진 격투기 단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구열은 전 챔피언인 정혁에게 5번의 패배 끝에 결국 6번째 도전에서 당당하게 PRIDE-K ROAD의 챔피언 벨트를 따내었다.

두호는 그의 소식을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 듯 씨익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흘린 땀과 피를 발판 삼아 올라선 사람의 도전을 마다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싸우기 위해 저는 격투기를 하는 것이니까요.”

두호의 대답을 끝으로 두 사람의 대담은 끝이 났다.

“고생하셨습니다. 백두호 선수님!”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주님.”

소파에서 일어난 두 사람은 가볍게 대화를 나누었고 미주가 팀 코리안 몬스터 사람들을 지긋이 바라본다.

이윽고 전할 말이 있는 듯 두호의 귀에 대고 귓속말을 웃으며 하기 시작한다.

조용히 미주의 말을 들은 두호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내 두호는 몸을 돌려 팀 코리안 몬스터를 향해 걸어간다.

“자 가시죠. 지금 출발하면 아슬아슬하게 도착하겠네요.”

다음 일정은 모두가 기다리던 일인지 다들 신나보였다.

그러나 두호가 탁현의 어깨를 툭 친다.

“탁 코치님은 여기 남아요.”

탁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두호를 바라보았다.

“네? 저는 왜...”

두호가 고갯짓으로 미주를 가르킨다.

“저분이 저녁 식사 같이하고 싶다고 전해달래요.”

탁현은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이었다.

예수와 준모, 지혜가 깔깔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린다.

“탁 코치님! 얼른 가요. 이때 아니면 언제 한국 대표 리포터 오미주님이랑 저녁을 먹겠어요.”

“그러게요. 탁현님 얼른 출발! 노총각 탈출하자!”

탁현은 머리를 매만지며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미주를 향해간다.

이윽고 두호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는 손짓한다.

“어서 갑시다. 늦겠어요.”

“네!”

준모와 지혜가 먼저 앞장서고 그 뒤를 두호와 예수가 따랐다.

“이제는 아예 연예인이 다 되셨어요?”

예수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두호를 올려다보자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필린은 음반회사 없나요? 이참에 가수로 진출하는 것도...”

“제가 눈에 콩깍지가 씌이긴 했지만, 두호씨 노래는 아니에요.”

“뭐 인정합니다.”

두 사람은 기분 좋게 웃었고 일행들은 차량이 주차되어있는 차에 탑승했다.

모두가 차에 탑승했음을 확인한 준모가 미소를 지으며 차량을 몰았다.

“출발하겠습니다!”

꽃향기를 머금은 기분 좋은 봄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온다.

***

차량이 도착한 곳은 야탑고 권투부가 사용하는 체육관이었다.

오늘은 두호의 6번째 미들급 방어전을 성공한 기념 파티이다.

하지만 굳이 이곳 권투부 체육관에서 파티를 연 이유는 하나가 더 있었다.

필린은 야탑고 권투부와 연계하여 프로 복싱으로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일종의 필린의 격투기 사업부 회식이자 야탑고 권투부와 필린의 여정을 출발하는 출정식이기도 했다.

드르륵!

문이 덜컥 열린다.

두호와 일행들이 들어서자 권투부 학생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난다.

“선배님 반갑습니다!”

“그래 너희들도 잘 지내지? 축하한다.”

한 사람씩 인사를 나누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동안 누군가 다가와 두호의 어깨를 잡아당긴다.

두호의 어머니였다.

“얘는 왔으면 바로 일할 준비를 해야지. 감독님들 식사 기다리시잖아.”

“아. 네.”

반강제로 간이 부엌으로 끌려가는 두호를 보며 예수는 미소 지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예수씨는 앉아있어요!”

아버지가 부엌에서 나오며 예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아이고. 아가 왔구나.”

“아버님 안녕하세요!”

예수를 아가로 부르는 아버지.

그 호칭이 마음에 드는 듯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에게 살갑게 행동하는 예수였다.

멀리서 채호와 양성학 감독이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프로복싱을 진출하는 것에서 저는 한국 시장을 최대한 건너 뛰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한국 시장에서 출발은 오히려 마케팅 상 주목을 받기 힘들거든요. 저는 곧바로 WBA나 WBO로 진출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야탑고 권투부의 프로 권투 진출에 대하여 의논 중이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외국으로 먼저 진출을 해야 아무래도 국내 협회에 대한 압박을 무리 없이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채호는 알도프와의 승부 후 약 1주일이 지나서야 깨어났다.

흘린 피가 너무나 많아 예상외로 회복에 긴 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그의 옆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태건과 경수를 비롯하여 수미의 직원들이 보였다.

수미와 황성태는 자리가 번거롭다고 초대의 응하지 않았다.

PRIDE-K의 메디컬 파트를 맡아주는 도민영 닥터와 직원들이 보인다.

두호가 쟁반 두 개에 접시를 가득 담아 내오는 동안 입구가 다시 한 번 열린다.

음식을 책상 위에 내려놓은 두호가 반가운 표정으로 그들을 맞이한다.

“오셨어요?”

밝은 미소로 두호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은 영철이었다.

그의 뒤로는 오랜만에 임무 없이 휴가를 받은 찰리 팀원 몇 명과 브라보 팀원들이 보인다.

동수를 발견한 준모가 번쩍 손을 든다.

“동수 동생!”

“아이고 형님!”

두 사람은 반갑게 포옹하며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영철은 두호의 몸을 훑어보며 감탄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야. 아주 무적이야 무적?”

“운이 좋았습니다.”

“형님이 좋아하시겠다.”

“네. 그랬으면 좋겠네요.”

두호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자리 역시 안내했고 곧바로 식사는 시작되었다.

둘러앉아 음식을 먹으며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며 미소를 짓는 두호.

조용히 외투를 챙겨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이윽고 학교 운동장이 내려다 보이는 벤치에 앉은 두호.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회상에 잠긴 것이다.

그의 옆에 누군가 털썩 앉았다.

예수였다.

“왜 여기서 혼자서 무게 잡는데?”

“그냥. 뭔가 신기해서.”

사람들의 앞에서는 존댓말을 하는 두 사람이지만, 이렇게 사석에서는 편하게 말을 놓는다.

올해로 두 사람은 4년차를 맞이했다.

“뭐가 신기한데?”

“처음 시작했던 곳. 처음으로 도전했던 곳.”

“아. 감성적인 추억팔이구나?”

그녀의 말에 두호는 피식 웃음 짓는다.

“추억팔이라고 하기엔 너무 중요한 기억인데...”

둘은 서로를 마주 보고는 짧게 웃었다.

고개를 돌린 두호가 운동장을 말없이 돌아본다.

지나갈 것 같지 않던 시간.

하지만 그 시간 역시 결국은 지나갔고 자신은 이렇게 달라졌다.

“이제 말해주지?”

“뭘.”

“앞으로 뭘 어떻게 할건지. 4년 전에 나중에 말해줄 거라고 그랬잖아. 나 오래 기다렸어.”

예수는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며 두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두호는 잠시 말없이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결국은 해가 뜰 것이다.

만약 해가 뜰 것 임을 몰랐다면 이 밤은 너무나 괴롭고 무서울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해는 뜬다.

그렇기에 오늘을 달릴 힘을 얻는 것이다.

“일단은 올해 말 쯤에...”

두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예수의 입술이 두호의 입에 포개어졌기 때문이다.

산뜻한 봄바람의 향기가 맡아진다.

또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이고 또 극복해낼 것이다.

이제는 그 시간들이 두렵지 않게 느껴지는 두호였다.

전쟁의 신이자 코리안 몬스터는 그렇게 살아간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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