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203화 (203/204)

203화 :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알도프는 어안이 벙벙했다.

분명히 자신의 손에 죽은 사람이다.

“이게 무슨...”

“뭐. 말하자면 길고. 말해줄 시간도 없고.”

도혁은 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옐로우 맘바에게는 둘이 풀어야 할 문제니 다가오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도 거리가 멀고 어두운 곳이라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기 힘들었다.

이 전쟁은 자신이 끝맺어야 한다.

이 모든 진흙탕 싸움에 시작점은 자신이니까.

불을 붙인 뒤 한 모금 들이마신 도혁이 눈을 지긋이 감는다.

꽤 긴 시간 끊었던 담배였다.

맛이 새롭게 느껴졌다.

“일대일이다. 누군가 방해하는 일은 없을 거야.”

이윽고 담배를 알도프에게 던져주는 도혁.

날아오는 담배를 한 손으로 잡은 알도프가 받은 담배곽을 바라본다.

“더럽게 낭만적이네.”

그 역시 도혁처럼 곧바로 담배를 피웠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서는 정적이 흐른다.

담배를 다 피운 알도프가 피운 담배꽁초를 바닥에 툭 던지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하긴 무슨 상관이야.”

도혁이 알도프를 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뭐?”

“네가 왜 살아있고. 어떻게 여기에 있는지를 들어봤자 의미가 없지 않겠어?”

어차피 지금 도혁을 죽이면 옐로우 맘바에 복수할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 것이고 죽으면 모든게 끝나는 상황이다.

그의 냉정한 판단에 도혁은 감탄하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훌륭하군.”

알도프는 등에 멘 가방에서 손을 집어넣어 철제 케이스를 꺼낸다.

그 철제 케이스의 정체를 알고 있는 두호가 짐짓 모른 척하며 물어보았다.

“뭐야 그건?”

케이스 안에서 주사기를 꺼낸 알도프가 어깨를 으쓱하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뭐. 영양제라고 해두지. 몸이 좀 안 좋아서.”

이윽고 옷을 들춰 망설임 없이 아랫배에 주사기를 쿡 찔러넣는다.

눈을 찌푸린 알도프가 주사기를 옆으로 던진다.

갑자기 알도프의 눈에서 생기가 돌았다.

“뭐로 할까?”

“총으로 하면 너무 싱겁잖아?”

도혁은 자신의 허리춤 뒤에서 칼 두 자루를 뽑는다.

이윽고 한 자루를 알도프에게 던져주었다.

챙그랑.

땅에 떨어진 칼을 주워 든 알도프가 칼을 살펴보았다.

기본적인 군용 단검.

칼을 배울 때 가장 기본적으로 잡게 되는 연습용이다.

하지만 날은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그러니까...’

기본 실력.

잔 기교가 아닌 실력으로 승부를 보자는 이야기.

자고로 용병의 실력은 상대를 쓰러트리기만 한다면 반칙은 없다.

알도프가 씨익 미소 지었다.

“좋네.”

이윽고 표정이 싸늘하게 가라앉으며 엄청난 속도로 도혁에게 달려든다.

도혁 역시 웃음기를 지우고 찔러 들어오는 알도프의 칼을 쳐낸다.

이제는 스포츠, 룰 이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철저하게 상대의 빈틈을 공략하며 내 피해보다 상대의 피해가 크면 된다.

알도프가 자세를 낮춰 찌르는 페인팅을 보여주며 횡으로 베어버린다.

칼을 피하며 도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영철이가 애 먹을만 했구만.’

확실히 뛰어나다.

약의 힘이라고 오인할 수도 있지만 약은 그저 잠재력을 폭발시켜주는 역할이다.

수 싸움과 동작을 구현하는 기본기.

이 정도 수준은 용병 생활 통틀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직 멀었어.’

뻐억!

도혁은 휘둘려지는 칼을 피하며 알도프의 가슴팍을 뻥하니 차버린다.

“동작이 너무 크다.”

가슴팍을 부여잡은 채 뒤로 물러난 알도프가 눈을 좁힌다.

‘동작이 크다고?’

그럴 리가 없다.

일반인들이거나 평범한 용병이었으면 목이 벌써 수십 번도 넘게 꿰뚫렸을 공격이다.

칼을 쥔 손목을 탁하고 털며 재정비를 마친 알도프가 냉철한 눈으로 도혁을 바라본다.

‘아니. 그저 그 순간이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높은 수준에 있다는 거겠지.’

천재는 여럿이다.

하지만 천재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설정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유연하다.

탄력이 좋다.

지능이 좋다.

운동신경에서 꼽히는 모든 자격들을 갖춘 뒤 한 가지가 추가된다면 그 사람은 괴물이 된다.

공포감의 결여.

저 칼에 찔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느긋하게 자신의 칼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말 징그러운 재능이구만.”

자신 역시 천재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이런 수준은 처음 겪는다.

이번엔 도혁이 칼을 손아귀 안에서 팽그르르 돌린다.

이윽고 칼을 바깥쪽으로 쥐고는 씨익 웃는다.

“이제 내 차례야.”

도혁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간다.

마치 도끼로 내려찍듯 엄청난 박력이 느껴진다.

겨우 칼로 막아내는 듯 성공한 알도프의 표정이 굳어진다.

숫제 칼이 아닌 망치를 막은 듯한 느낌에 팔이 울린다.

칼이 부딪친 상태에서 팔뚝을 맞댄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어느 한쪽도 밀리지 않는 팽팽한 줄다리기.

그 순간 도혁이 칼을 놓아버리며 빈손이 되었고, 알도프의 칼 든 손목을 잡아챈다.

탁!

알도프의 칼이 움직이지 못하게 막은 뒤 다른 손으로 떨어지는 칼을 잡으며 알도프의 허벅지를 베어낸다.

다리를 전력으로 빼내어 피해보려 했지만 도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결국 완전히 드러누워 공간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알도프.

이윽고 마치 덤블링을 하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도혁의 앞가슴을 차는데 성공한다.

한 발자국이 물러난 두호가 무심한 표정으로 가슴팍에 묻은 먼지를 턴다.

알도프가 자신의 허벅지를 바라본다.

얼마나 정교하게 베었는지 다른 곳에는 전혀 피가 튀지 않았다.

알도프는 허망한 듯 하늘을 보며 웃었다.

이 한 합으로 도혁과의 격차가 느껴진 것이다.

‘한동안 너무 주먹 싸움에만 익숙해져 있었군.’

알도프는 칼을 단단하게 말아쥐며 두호를 노려보았다.

“래진이라는 놈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분이 10년만 젊었어도 넌 이미 죽었다.”

“하하하하!”

큰 소리로 웃은 알도프는 고개를 저었다.

부러웠다.

지금 자신에게는 이런 말에 발끈해줄 동료도 대신 복수를 해줄 형제도 없다.

천천히 미소를 지우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길게 끌지 말지.”

“나야 뭐.”

두호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칼을 말아쥐며 자세를 잡는다.

지금껏 도혁이 보여주지 못한 자세.

그러나 정갈하게 정돈되어있는 기운이었다.

알도프는 그 자세를 말없이 바라본다.

‘기본 자세.’

처음 군용 단검을 받으면 배우게 되는 가장 기본자세이다.

“좋군.”

“와라.”

알도프가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걸어간다.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한다.

래진때처럼 자신이 공격할 수 있는 최선의 움직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무게중심을 분산하고 근육을 일깨운다.

이윽고.

“으아아아 죽어!”

두호도 마주 달려간다.

챙!

빠른 속도로 칼이 부딪친다.

두 사람의 자리가 바뀌었고 망설임 없이 뒤를 돌아 상대를 베어낸다.

척!

샤악!

두 사람의 움직임이 멈췄다.

도혁의 옷 허리춤이 베이며 피가 묻어나온다.

그러나 도혁의 눈빛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알도프는 그런 도혁을 허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떻게...어떻게...크흡.”

알도프의 목에 빨간 실선이 생기며 피가 쏟아져 나온다.

자로 잰 듯 일정하게 베어진 그의 상처.

목을 움켜쥐며 바닥으로 쓰러지는 알도프를 도혁이 그저 내려다봤다.

“넘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넘본 죗값이다.”

뒤로 털썩 쓰러지는 알도프가 쿨럭거리며 피를 토해낸다.

“넘보지 말았어야 하는 것...”

고통스러워하는 알도프의 표정을 본 도혁의 싸늘한 표정이 꽤 누그러졌다.

알도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잘 처먹고 잘 살아라...”

그의 고개는 꺾였고 더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다.

그의 품 위로 칼을 던져놓은 두호가 자신이 걸어나왔던 건물로 걸어간다.

한쪽 구석에 자신이 입었던 옷을 벗어던지며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고생했어.”

느닷없이 들리는 목소리에 도혁이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본다.

무였다.

“깜짝 놀래키시는 건 여전하시네요.”

도혁은 마지막으로 이 몸을 사용하길 무에게 부탁했고, 그로인해 오랜만에 무를 만나게 된 것이다.

저번보다도 훨씬 야윈 얼굴로 걸어오는 무.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너무나 말랐다.

그 모습에 마음이 아픈 도혁이었다.

“오늘은 나보다 먼저 얘기해야 할 사람이 따로 있어.”

그녀는 도혁의 뺨을 슬쩍 어루만지더니 자리를 비켜선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온다.

두호였다.

도혁은 깜짝 놀라며 걸어 나오는 그를 바라보았다.

어색한 감정과 함께 약간의 당황함까지 느껴졌다.

두호가 말없이 걸어와 무의 옆에 선다.

“인사해 두 사람.”

두호는 어색한 듯 머리를 매만지며 이내 도혁에게 고개를 숙인다.

“안녕하세요. 형.”

“어. 안녕.”

도혁 역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무는 두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싱긋 미소 지었다.

“말해야지?”

두호는 피식 웃으며 도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두호는 한 발자국 앞서 나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저 대신 꿈을 이뤄주셔서 그리고 가족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눈빛에 도혁은 주변 사람들에게 두호가 왜 그런 평가를 받았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농담이라고는 모를 것 같은 진중한 눈빛.

척 보아도 말수가 없지만 정확하게 전하고자 하는 말은 하는 성격.

그 모습을 보던 도혁은 옅은 미소를 띄웠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생했다.”

두호는 그에게 다가가 포옹하였다.

도혁 역시 그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잠깐의 포옹을 마친 두호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만 가볼게요. 남은 제 삶 부탁드립니다.”

“뭐라고?”

도혁은 당황하며 손을 뻗지만 이미 두호는 자리에서 사라졌다.

무는 사라진 두호가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도 이제는 안녕일 거야.”

“네?”

도혁은 거듭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무를 바라보았다.

“사실 너의 일을 마지막으로 나는 이 관리자의 역할에서 물러가게 되었어. 그래도 마지막에 너처럼 마음 가는 녀석을 맡아 기분은 좋았네.”

도혁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이별에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조금 친해졌으니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무는 그 마음을 안다는 듯 표정을 지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알지 못해야 아름다운 것들이 있어.”

그녀는 고개를 돌린다.

미국 서북부의 바다가 눈에 담긴다.

멀리 빛을 뿜어내는 등대가 보인다.

오늘도 저 등대에 의지하여 작은 고깃배들이 안전하게 입출항을 할 것이다.

“인간의 삶은 언제나 불확실하고 어렵지. 정답은 없지만 오답은 있는 것이 인간 세상이니까.”

천천히 고개를 돌린 무.

어느새 도혁은 두호로 바뀌어있었다.

“그렇기에 모범이라는 것이 참 중요해. 삶의 목표점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정확한 이정표가 되어주기도 하거든.”

어디로 흘러가는가를 고민하는 인간들에게 좋은 방향을 제시한 두호가 대견한 것이다.

“지금까지 도혁의 지은 죄는 지금 두호의 몸으로 천천히 갚아. 다 갚진 못하겠지만 설령 다른 관리자를 만난다 할지라도 충분히 감안해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무는 두호에게 다가가 말없이 그를 안아주었다.

한참을 그렇게 안겨있던 무가 조용히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 고생했어. 너의 다른 삶을 축복하며 응원할거야. 저 등대처럼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들의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줘.”

두호는 감정이 벅차올랐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정말 갈게. 몸 조심하고. 잘 지내!”

늘 그렇듯 밝은 표정을 지어주며 손을 흔든 그녀.

몇 걸음 안가 그녀 역시 안개처럼 사라졌다.

두호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게 끝이 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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