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알도프가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끝났다.’
뻗어 날아가는 손끝과 근섬유에서 느껴지는 감각.
수천 번.
아니 수만 번을 내지르고 이 주먹에 쓰러진 사람들에게 느꼈던 감각이 오로지 체감된다.
필살의 감각.
두호는 피할 수 없었어야 했다.
그 순간 두호의 오른 다리가 움찔거리며 자신을 향해 올라온다.
‘하이킥?’
알도프는 코웃음을 쳤다.
이 궤도에서는 관자노리를 내준다 해도 상관없을 만큼 안전한 거리와 자세이다.
‘죽어라.’
그 순간이었다.
두호의 다리가 자신의 머리를 향해 올라오는 것이 아니었다.
오른 다리는 자신의 허리춤을 지나며 왼 다리의 바깥쪽으로 옮겨간다.
‘어?’
순식간의 거리가 좁혀지며 두호의 머리가 움직였다.
그 덕분에 알도프의 공격은 허공을 가르게 되었다.
그리고 두호는 그대로 반 바퀴를 돌아 왼 팔꿈치의 날을 세웠다.
‘제길...’
팔꿈치는 원심력과 알도프의 들어오는 힘으로 인하여 엄청난 파열음을 낸다.
파앙!
턱이 통째로 뜯겨나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파열음이었다.
나오는 펀치를 받아치는 스피닝 백 피스트(Spinning back fist).
순식간에 알도프가 잡고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지며 바닥으로 허물어진다.
두호 역시 체력의 한계치였는지 동시에 쓰러졌다.
그리고 한참을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두호의 눈이 떠진다.
-코리안 몬스터! RKO의 장기 집권을 끝내고 XFC 미들급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합니다!
관객들은 새로운 왕이 등장했음을 한껏 기뻐하며 반겼다.
서로를 얼싸안고 뛰는 사람들.
그중에는 서럽게 우는 사람 역시 있었다.
“진짜 했어! 저 한국인이 해냈다고!”
“두호야 진짜 미친놈이구나!”
“드디어...아시안 챔피언이 XFC에 등장했어...”
연달아 터지는 폭죽과 쏟아지는 조명.
케이지 안으로 팀 코리안 몬스터와 파이트 매니아의 동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두호씨!”
“와아아아! 백두호씨 진짜 말도 안돼!”
그 들은 쓰러진 두호를 포개듯 그 위로 엎어졌다.
두호는 고통스러운 듯 눈을 찡그리며 손을 겨우 빼내 그들을 툭툭 쳤다.
“저 죽어요.”
“아! 예...”
“야야! 챔피언 벨트도 못 들어봤는데 죽게 할거야?”
팀원들은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 두호를 부축했다.
힘겹게 일어서는 두호.
거의 다 일어났을 때 두호는 다리에 힘이 풀리며 바닥으로 쓰러지려 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미 출혈량은 쇼크가 온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응급처치로 묶어놓은 실밥들은 모두 터져나가고 지금 이 순간에도 피는 쏟아지고 있다.
그런 피범벅이 된 두호를 누군가 뒤에서 껴안아 부축했다.
예수였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고 금방이라도 툭 치면 울 것 같은 모양새였다.
두호는 평소 보지 못했던 예수의 여린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울어요?”
예수는 그를 노려보더니 신경질적으로 어깨를 찰싹 때렸다.
“당연한 걸 왜 물어요...”
두호는 굉장히 아픈 듯 어깨를 부여잡았고 예수가 놀란 듯 그를 매만졌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본 채 살짝 웃었고 그녀에게 몸을 기댔다.
절뚝이며 케이지 중앙으로 걸어가는 동안 그는 그녀에게 물었다.
“준모는요?”
“아직 유치장에요. 조사가 더 필요하다네요.”
두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곳이 더 안전할 겁니다.”
“이제 계획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예수의 물음에 두호는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조명은 빌어먹게 밝았지만 조금 전과는 달리 제법 볼만 했다.
두호는 싱긋 웃으며 예수를 바라보았다.
“모르겠습니다. 그저 오늘이 잘 마무리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네. 오늘은 푹 쉬세요.”
케이지 안으로 응급요원들이 뛰어 들어온다.
누워있는 알도프를 들것에 태워 급하게 실어나간다.
그 모습을 본 두호는 한참 동안을 눈을 떼지 못했다.
후련하지만 아주 조금.
아주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앤드류가 들어오자 예수가 자신의 어깨에 걸린 두호의 팔을 살짝 빼낸다.
인터뷰에 응하라는 뜻이다.
앤드류 역시 상기된 표정으로 두호를 바라보았다.
“몇 년만의 미들급의 주인이 바뀌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코리안 몬스터!”
“감사합니다.”
앤드류는 그에게 마이크를 건네며 손을 뻗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의미였다.
레이첼의 제안이었다.
이 모든 마무리의 상황을 그에게 맡겨보자고.
이 순간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많을 사람이니.
두호는 싫다는 듯 마이크를 도로 밀었지만 앤드류가 미소를 지으며 다시 건넸다.
곤란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자 모든 동료들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여정의 끝을 장식 해야 하는 사람은 두호이기 때문이다.
“저는...”
두호는 A&T 아레나에 있는 관객 모두를 바라보며 천천히 운을 떼었다.
“범죄자입니다. 그렇기에 사회에서 제대로 된 직업 하나 구하기 힘든 사람이죠.”
두호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서러움과 걱정.
불안과 두려움.
모든 젊음들이 느낄 감정이지만 그에게는 유독 크게 다가왔던 감정이었다.
“사회는 실수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은 죄는 저의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게 되었죠.”
한 마디 한 마디를 어렵게 뱉어내는 두호.
그 진심이 와닿은 듯 수십만의 관객들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괴로웠습니다. 내 삶은 송두리 채 흔들렸고 그 누구도 저를 좋은 시선으로 봐주지 않을 것을 깨달았습니다. 부끄럽지만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하려 했었습니다.”
앤드류는 그를 보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호는 쓴 웃음을 짓는다.
“그때 느꼈습니다. 이게 진짜 진거구나.”
조용히 말을 듣고 있던 관객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었다.
“인생은 발버둥의 연속입니다. 제게 나아가라 다그쳤던 그 사람들의 말은 폭력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곳에 서 있지 못했겠죠.”
그의 동료들은 밝은 표정으로 바뀐다.
관객들 역시 환한 미소로 케이지 안의 두호를 바라본다.
“죽을힘을 다해 도전하십시오. 기억에 남을 인생을 사십시오. 많이 상처받고 아파하십시오. 목표를 이뤄낸 순간이 극복이 아닙니다. 그 모든 순간을 견디고 버텨낸다면 그게 극복인 겁니다.”
두호는 말을 잠시 멈추고 전광판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12시가 지난 시간.
3월로 바뀌었다.
“유독 이번 겨울은 추웠지만 봄이 온 것 같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다음에 뵙겠습니다.”
사람들은 열광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두호가 케이지를 느릿하게 빠져나가자 사람들은 소리친다.
“백두호! 백두호!”
***
워싱턴 시애틀 주 포크스 부두.
미국 북서부의 끝으로 이미 산업지구의 역할을 잃은 곳이다.
그저 작은 고깃배 정도만이 오고 가는 이곳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4명의 사내.
그러나 굉장히 지친 듯 그들의 어깨는 푹 떨어져 있었다.
“괜찮습니까?”
“제길...”
후드를 뒤집어쓴 채 걸어가는 그들의 정체는 알도프와 포그스컬스 잔당들이었다.
치료가 끝나면 곧바로 경찰 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그들은 밀항을 선택한 것이다.
특히 알도프는 들것에서 깨어나자마자 응급요원들을 밀치고 곧바로 도망친 것이다.
“여기 맞아?”
“네. 얼마 전 북부에서 벌어진 전투로 남은 밀항 루트는 이곳밖에 없습니다.”
알도프를 추격하기 위하여 대량 살상을 벌인 결과 모든 밀항 루트가 막혔다.
더군다나 옐로우 맘바 인원들과 아카데미 인원들은 비밀리에 자신들을 쫓고 있을 것이다.
알도프는 길가의 가로수를 거세게 걷어차 버린다.
“씨발! 씨발!”
분노가 극에 달하면 이성이 마비된다던가.
도피는 은밀함이 가장 중요한 법 이지만 알도프는 분을 감추지 못했다.
전쟁도 전투도 얻은 것이 하나 없었고 그저 완패했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게 만드는 것이다.
“두고 보자...”
다시 시작하면 된다.
격투기 선수가 아니라 용병 단체 포그스컬스의 에이스 알도프 코와르키로 돌아가면 된다.
나이지리아와 소말리아의 부랑자 용병들을 긁어모아 복수를 하면 된다.
자신이라면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그놈은 어디래?”
작은 부둣가의 서 있는 그들이 이곳에서 발걸음을 멈춘지 벌써 15분이 지났다.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 애꾸가 이곳으로 올 겁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사내가 어둠 속에서 걸어나온다.
이곳 서북부 지역의 밀항을 총괄하는 벨라스케즈이다.
그의 별명처럼 왼쪽 눈에 검은자위는 아예 보이지 않았고 흰자만이 남아있어 서늘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런 거물들을 내가 모시게 되다니...”
그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알도프를 위아래로 훑었다.
알도프는 당장이라도 나머지 눈깔을 파내버리고 싶었지만, 이 자가 아니면 캐나다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캐나다로 넘어가면 아프리카로 가는 밀항선들이 많기에 당장은 참아야 했다.
“됐고. 진행이나 하지.”
“그래, 빠른 것 좋지. 근데 사고를 많이 치셨더라고?”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젓는 벨라스케즈.
“뭔 말이야.”
“나한테도 위험이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
“뭐?”
이 말인즉, 돈을 더 달라는 이야기이다.
사전에 협의되지 않았던 위험수당을 요구한 것.
알도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본다.
“어이 애꾸. 뒤지고 싶냐.”
“죽일거면 죽여. DEA(미합중국 마약 단속국)랑 FBI에 쫓기는 놈 퍼날랐다가 무슨 피해를 입으려고.”
결국 당신들이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나밖에 없는데 별 수 있냐는 뜻이다.
알도프는 이를 갈며 가까스로 화를 참아냈다.
“얼마.”
벨라스케즈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펼쳤다.
“그니까 얼마...”
모두 펴져 있는 손가락.
열 배를 의미한다.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뭐 열 배?”
“됐음 꺼져. 바쁘다.”
열 배면 한 사람 당 일 억이다.
미국에서 한국 퍼스트 클래스를 4번 왕복할 돈.
알도프는 벨라스케즈에게 가방 하나를 툭 던진다.
벨라스케즈는 가방을 살짝 들어보고는 가방이 묵직함을 확인했다.
“그거면 5억은 넘는다. 바쁘니까 빨리.”
“역시 거물이라 화통하네.”
그제서야 따라오라는 듯 손짓을 한다.
그 순간.
슈웅.
퍼엉!
벨라스케즈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바닥으로 쓰러진다.
알도프는 당황하며 주위를 살펴본다.
저격.
주위에 저격 포인트가 없었지만 단발에 성공한 것으로 보아 엄청난 실력자다.
“산개해!”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는 사내들.
그리고 곧바로 그들을 향해 총알이 쏟아진다.
필사적으로 달리는 알도프의 어깨너머로 차량의 불빛이 넘어온다.
“젠장.”
전력으로 달리지만 이내 알도프의 달음박질은 멈춰졌다.
맞은편에서도 보이는 옐로우 맘바의 차량.
순식간에 포위당한 것이다.
“으아아아아!”
하지만 왜인지 더이상 가까워지지 않는 차량들.
알도프가 의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바로 옆 건물에서 누군가가 걸어나온다.
떡 벌어진 어깨.
정돈 되어있는 걸음걸이.
알도프는 눈을 좁히며 걸어 나오는 사람을 확인한다.
뚫어지게 바라보던 알도프가 이내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어떻게?”
“오랜만이야.”
어둠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
옐로우 맘바 브라보의 캡틴 김도혁이었다.
도혁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간다.
“끝을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