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201화 (201/204)

201화 :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두호의 팔을 붙잡던 알도프의 팔이 내리쳐지며 풀렸다.

케이지의 바닥이 울릴 만큼 강한 슬램이였기에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크윽!”

두호는 양 팔이 자유로워졌다.

허리를 뒤로 틀어 팔을 뒤로 뻗는 두호.

“끝이다.”

쾅!

두호의 주먹이 등을 대고 누운 알도프의 안면을 강하게 때린다.

스탠딩 상태에서 주먹을 허용하는 것은 충격을 흘려낼 공간이 있다.

하지만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채 파운딩을 허용하면 충격할 흡수할 공간이 없어 온전히 충격이 전해진다.

마치 도끼로 내려찍듯 엄청난 파운딩이 내려 꽂힌다.

알도프는 간신히 가드를 올려 두호의 공격을 방어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상태가 계속되어선 위험했다.

팔에 전해지는 충격을 보아하니 오래 버틸 수준은 아니다.

더 이상의 펀치를 막아낸다면 자신의 팔 내구도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두호의 이마에서 땀이 한 방울 흘러 떨어진다.

알도프는 무아지경에 빠진 두호와 눈이 마주쳤다.

자신과 다르게 독기가 빠져있는 집중력.

그 모습이 굉장히 불쾌하게 느껴졌다.

가드를 위해 구부리고 있던 팔을 쭉 뻗어 두호의 뒷목을 낚아챈다.

하지만 두호는 머리로 작은 반원을 그리며 알도프의 손을 벗어난다.

이윽고 재차 꽂히는 강력한 파운딩.

쾅!

알도프의 머리가 땅에 세차게 부딪힌다.

충격으로 인하여 가드가 풀린다.

두호가 다시 한 번 내리치는 그 순간.

2라운드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때앵!

알도프의 코앞에서 멈춘 주먹.

자신의 바로 앞에서 멈춘 주먹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바라보던 알도프.

그 모습을 본 두호는 미련없이 일어나 자신의 코너로 돌아간다.

알도프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코너로 돌아갔다.

그렇게 맞이하게 된 두 번째 휴식시간.

TV로 지켜보던 태건이 턱을 쓰다듬는다.

“음.”

분명히 흐름은 두호에게 돌아왔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모든 상황에서의 경험이 있는 알도프와 달리 두호는 5라운드를 정확히 소화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차이는 분명히 반전의 여지를 주기에 충분하다.

그렇기에 태건은 마음을 놓기엔 이르다 판단했다.

수미 역시 말없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는 두호가 목뒤에 얼음을 가져다 댄 채 한숨 돌리고 있었다.

“어떠세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황성태를 바라보는 수미.

눈을 좁히며 두호를 바라보던 황성태가 눈썹이 찌푸려진다.

“한 번 놓친 사냥감은 더욱 경계하고 독해지기 마련이지.”

자신이 보기엔 이번 라운드에서 분명히 끝을 봤어야 한다.

5분 5라운드의 시간은 분명히 길다.

아무리 체력적으로 뛰어난 두호이지만 2라운드에서 연거푸 큰 동작과 대형 공격을 시도했기에 체력적인 손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투는 이겼지만 전쟁으로 보자면 조금은 먼 길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수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알도프의 독기가 터져 나올 차례인 것이다.

3라운드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이제 탐색전은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서로의 거리까지 단숨에 진격한 두 사람은 곧바로 타격 공방전을 시작한다.

허공을 가르는 손이지만 공기를 가르는 소리는 섬뜩하게 느껴진다.

크로스 카운터(서로의 공격이 교차되어 타격의 성공한 상황)가 터진다.

쾅!

뻐억!

두 사람은 비틀거리지만 재빠르게 중심을 회복하고 서로를 향해 달려든다.

발 하나를 사이에 둔 엄청난 인파이팅.

관객들은 환호하고 해설위원은 큰 소리로 외친다.

-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인파이팅 공방전입니다! RKO 커리어에 손에 꼽을 상황을 만들어내는 코리안 몬스터입니다!

두호가 딥킥을 허용하며 케이지로 밀려난다.

곧바로 따라 들어가는 알도프를 잡아채며 목을 붙잡는 두호.

두 사람은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알도프가 히죽거리면서 웃는다.

“처음에 태어나 맡은 향이 화약 냄새임을 나중에 알게 됐지.”

두호가 공간을 벌리며 어퍼컷을 날려보지만 살짝 고개를 빼 피해낸 알도프가 재차 두호에게 클린치를 성공했다.

“그땐 몰랐어. 그 지옥 같은 상황을 겪은 사람이 세상에 몇 안 된다는 걸.”

알도프가 팔꿈치로 두호의 가드 위를 때린다.

쾅!

쾅!

두호의 팔이 퍼렇게 멍들 정도의 파괴력.

그러나 두호의 표정 변화는 전무했다.

“악마? 도살자? 그딴 표현은 의미 없어. 난 알거든.”

두호가 그의 오른뺨에 펀치를 꽂아넣는다.

깔끔하게 들어간 라이트 훅이었지만 알도프는 목에 힘을 주어 버텨낸 다음 두호의 눈을 똑바로 노려본다.

“그 누구도 그런 지옥에서 자랐으면 나 같은 사람이 됐을 거야.”

“아닌 사람도 있다.”

“그렇겠지. 하지만 그런 놈은 나 같은 놈들한테 다 죽었다.”

“미친놈.”

케이지의 벽으로 두호를 밀어버리는 알도프.

찰랑.

케이지 철창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다시 엄청난 타격 공방이 시작된다.

알도프의 눈가는 찢어져 피가 흐르고 두호의 입에서는 피가 터져 나온다.

두호가 떨어지는 알도프의 머리채를 잡아채며 니킥을 욱여넣는다.

쾅!

두개골이 부셔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력한 니킥.

일반적인 선수라면 쓰러지는 것이 당연한 공격이지만 알도프는 곧바로 두호의 허리춤을 잡아내며 감싸 안는다.

승리에 대한 엄청난 집착을 보여주는 알도프.

“으아아아!”

두호를 번쩍 들어 자신의 뒤로 내던진다.

쿵!

몸이 땅바닥에 내던져지며 두호가 처음으로 경기중에 신음을 터트렸다.

“윽.”

하지만 아직 공격을 받은 데미지가 회복되지 않았는지 추가적인 공격은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두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알도프를 바라본다.

알도프는 씨익 미소를 짓는다.

이윽고 두 사람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서로에게 달려든다.

서로 주먹을 뻗으며 처절하게 상대를 공략하는 두 사람.

수많은 경기에서 보던 원투의 궤적이 아니었다.

태초의 싸움.

기술이라는 것이 없던 시절에 자신의 힘과 근육만을 믿고 싸우던 그 시절의 움직임과 닮아있었다.

서로가 비틀거리며 금방이라도 눈이 풀릴 듯 머리가 크게 흔들리지만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응급처치를 해놓았던 몸의 상처들은 모두 터졌고 피가 쏟아진다.

바닥은 두 사람이 흘리는 피로 흥건해졌다.

두호의 경기를 지켜보던 어머니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자신의 아들이 마치 철창속 맹수처럼 싸우는 것이 보기가 힘든 것이다.

아버지는 조용히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그러나 그의 눈가 역시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듯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아들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라도 자신의 삶보다 자식의 삶을 신경쓰는 것이 부모의 마음.

아들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악을 질러가면서 싸우는 모습.

자신의 품에서 손발조차 못 가누던 시절이 겹쳐보이며 괴로워진다.

알도프가 그대로 두호의 뺨을 팔꿈치로 찍어누르는 장면이 송출된다.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결국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고 아버지에 눈가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저렇게까지 싸워야하는 것일까.’

세상이 원망스럽다.

저 모든 고통이 차라리 자신한테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땡!

3라운드가 지났고 4라운드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코너에 털썩 주저앉은 두호.

데이비드와 탁현은 그의 몸을 차분히 살펴보았다.

총에 맞았던 옆구리와 허벅지 안쪽은 피가 터져 나왔고 그 출혈량은 위험했다.

얼굴에 멀쩡한 곳은 하나 없었고 왼쪽 귀가 찢어져 덜렁거리기 시작했다.

탁현은 차분한 얼굴로 두호의 얼굴을 마른 수건으로 닦아낸다.

바셀린과 응급처치 약으로는 어림도 없는 그의 상처들.

“그만합시다.”

탁현의 말에 두호가 바닥으로 침을 뱉는다.

그러자 피 뭉텅이 하나가 바닥에 떨어진다.

“왜요.”

“죽습니다. 더 하다가는.”

평소보다도 안 좋았던 몸의 상태.

더군다나 총상과 자상이 함께하는 몸에는 너무나 큰 과부화였다.

“이겨도 이긴 몸이 아닐 겁니다. 두호씨의 인생이...”

말을 이어가던 탁현이 두호의 손짓에 말을 멈춘다.

“인생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두호가 거친 숨을 내쉬며 탁현과 데이비드를 바라본다.

체력적으로도 한계인 상태겠지만 그의 눈은 완전히 살아있었다.

“두호씨...”

“누구든 언젠가 죽습니다. 그저 뭘 했나. 뭘 위해 살았나.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남기며 사는가.”

탁현과 데이비드가 울컥하는 표정을 그를 바라본다.

너무나 무거운 이야기였다.

“이만하면 됐어. 충분할 정도로 잘했어. 이딴 말에 위안을 받으며 살라는 겁니까.”

“하지만 지금 두호씨의 몸 상태는...”

“내 상징이 뭡니까, 극복? 도전? 그딴걸로 사랑받고 돈을 벌었던 사람이 이제와 힘들다고 몸을 사리라는 말입니까.”

두호의 시선이 반대편으로 가 있다.

알도프 역시 고개를 젖힌 채로 회복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의 몸 상태 역시 두호와 비교해도 전혀 나을 것이 없었다.

두호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팀원들을 바라본다.

묵묵히 그의 상처를 치료하던 팀원들의 얼굴이 울먹거린다.

“오늘 죽는다 할지라도 전 나가서 싸울 겁니다. 제게 걸려있는 기대와 희망은 둘째치더라도 저는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두호는 케이지의 천장을 바라본다.

조명들이 환하게 번쩍거린다.

빌어먹을 정도로 눈이 부셨다.

“인간 백두호의 삶이 잠깐 반짝이다 가는 게 아니라. 전설로 살다 죽을거라는 걸.”

두호의 말을 끝으로 마지막 5라운드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두호였다.

“다녀오겠습니다. 기도나 해주십시오.”

자리에서 일어난 두호가 링 중앙으로 걸어간다.

반대편에서 알도프 역시 걸어 나왔다.

중앙에서 만난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절망과 지옥을 알던 두 사람.

자신의 능력으로 극복하여 이 케이지 안에서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경기를 치룬다.

너무나 다르지만 발자취가 참 닮아있는 두 사람이었다.

서로의 자세가 잡힌다.

그리고 날아가는 필살의 의지가 담긴 공격.

5라운드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강렬한 공격이 서로에게 적중된다.

퍼억!

쾅!

처절하게 싸운다.

피가 흐르다 못해 바닥으로 쏟아진다.

펀치와 킥 한 번씩에 영혼이 빨려 나가듯 정신이 혼미해진다.

통증이 느껴진다기보다 눈이 풀려오며 졸리기 시작한다.

자신이 휘두르는 펀치가 의미없는 공격이 아니길 바라며 죽을힘을 다해 뻗는다.

알도프의 등이 활처럼 휘어지며 비틀거린다.

두호가 바닥에 피를 토하며 흔들린다.

하지만 멈추어서는 안된다.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은 상대의 숨통을 끊어놓는 것뿐이다.

판정 따위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내 손으로 바닥에 눕혀야 의미가 있다.

알도프의 러시안 훅이 두호의 턱에 적중한다.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두호의 발이 움직인다.

마지막 한계상황에서 내지르는 모든 걸 담은 하이킥.

‘제발 닿아라. 닿아라.’

킥이 날아가는 걸 확인하며 두호의 의식이 끊어진다.

잠시 후 두호가 정신을 차렸다.

자신은 바닥에 누워있었고 천장에서 자신을 비추는 조명에 눈이 부셨다.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폐에 물이 찬 느낌이 들었다.

‘진건가...’

몸에 힘이 풀려 도저히 혼자서는 바닥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들리는 해설위원의 외침.

-코리안 몬스터! RKO의 장기 집권을 끝내고 XFC 미들급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