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 4년에 한 번 오는 날.
호텔 객실 방문이 열리고 두호와 브라보팀이 들어선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앉아있던 예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두호씨!”
“네.”
예수는 두호에게 달려들어 껴안는다.
그 모습을 탁현이 의아한 표정을 바라본다.
‘기류가 제법...’
예수가 거칠게 안기자 두호가 신음을 흘리며 억지 미소를 짓는다.
그러자 그녀는 두호가 부상당했음을 인지했는지 놀란 눈으로 뒤로 물러난다.
“조금 아프네요.”
“어서 치료를 해야합니다.”
탁현과 데이비드는 두호의 몸 상태를 살펴보았다.
역시나 성한 곳이 없다.
격투기 선수에게는 볼 수 없는 자상과 총상.
그리고 외투를 벗으니 맨살이 보이지 않을 만큼 피가 범벅이 되어있었다.
현철이 한 발 앞으로 나서 팀 코리안몬스터에게 고개를 숙인다.
“이번 의뢰 책임자입니다. 저희가 더욱 유능했다면 의뢰인에게 이런 부상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죄송합니다.”
그러나 탁현과 데이비드는 손을 젓는다.
“이렇게 큰일 없이 마무리 된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현철과 데이비드, 탁현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예수의 부축을 받아 두호는 침대에 누웠다.
“고맙습니다.”
“그건 제가 할 말이에요.”
예수가 뚫어지게 두호를 바라본다.
두호가 그녀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린다.
“제가 뭐 잘못했습니까?”
“잘못이야 했죠. 챔피언전이 내일인 사람이...”
예수는 슬쩍 손가락으로 두호의 상처를 짚었다.
“위험하게...”
이윽고 자신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 다시 고개를 파묻는다.
두호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준모는 어디 있습니까?”
그 순간 방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온다.
영철과 찰리팀원이었다.
근처 왕진 가능한 의사를 찾아 수소문을 하여 데려온 것이다.
“준모씨는 아마도 과잉충성을 하러 간 것 같습니다.”
“예?”
두호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눈빛으로 영철을 보자 그가 밝게 미소를 짓는다.
“일단 치료 먼저 받으시고 얘기하시죠. 준모씨는 안전합니다.”
두호를 안심시키자 영철 뒤에 선 의사 두 명이 두호에게 다가간다.
진료를 위하여 예수가 자리를 비켜준다.
현철을 발견한 영철.
두 사람은 서로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이윽고 말없이 포옹하는 두 사람.
영철에게도 처음 임무를 나가던 풋내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자신을 대신할 선배들이 너무나 많았지만 지금의 브라보는 자신들을 제외하고 선배가 없다.
앞에서 이끌어줄 사람이 적다는 것은 발전을 하기 위해 더욱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브라보팀과 찰리는 서로를 격려하며 이번 전쟁의 승리를 자축했다.
영철은 무리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두호의 옆에 앉았다.
“포그스컬스 잔당은 저희 쪽에서 도망친 세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제거했습니다. 관리자급의 인원들도 아니니 사실상 포그스컬스는 끝이 났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준모씨는...”
준모의 계획은 이러했다.
옐로우 맘바가 알도프를 직접적으로 건드릴 수가 없으니 자신이 교통사고를 유발한다.
찰리의 신고로 곧바로 준모의 차량에 바짝 따라온 덕에 알도프와의 마찰 없이 경찰서로 이동할 수 있었고 내일 아침 훈방조치를 받을 것이라 말했다.
“미련한 자식...”
두호는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미련한 행동이다.
하지만 아랫사람이 자신에게 이러한 충성심을 보여준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인가.
자신이 사람 복 하나는 정말로 타고 났다고 생각한다.
“내일 경기에만 집중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결전이다.
마지막 한 번의 전투.
국적.
인종.
단체.
이 모든 것을 제쳐두고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승부.
두호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
이른 아침부터 소복상회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물건을 구입하거나 찾는 사람은 없었고 너나 할 것 없이 자리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었다.
미국 현지 시간으로 공식 경기 시간은 저녁이지만 한국에서는 낮에 경기가 방송이 된다.
그렇기에 지역 주민들과 시장 사람들이 모두 모여 두호를 응원하기로 한 것이다.
두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팔을 걷어붙이고 사람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 순간 건장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등장했다.
짧은 머리와 다부진 몸.
옷도 검은색 트레이닝복으로 맞춰 입은 그들의 등장에 사람들은 순간 긴장했다.
“아 진짜 겁나 배고프다.”
“뭐 씹을 것 좀 없냐.”
그러나 싸우는 사내들 사이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조용하고. 사장님과 사모님한테 인사드려라.”
사내들을 점잖게 타이르는 양성학이었다.
이 사내들의 정체는 두호의 고등학교 후배들.
야탑고 권투부였다.
“안녕하십니까! 백두호 선배님의 후배인 야탑고 권투부입니다.”
우렁찬 인사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쳐주었다.
오늘 음식을 대접하는 일을 도와주며 함께 응원하러 온 것이다.
두호의 어머니가 앞치마를 닦으며 주방에서 걸어나온다.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양성학에게 다가간다.
“어서와 애들아! 감독님 잘 지내셨어요?”
“네 어머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두호의 어머니가 마음속에서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신들이 채워주지 못한 부모의 역할을 채워준 사람이기에.
양성학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미리 찾아뵈었어야 했는데요.”
그의 미안함은 단순히 오랜시간 그녀를 찾아뵙지 못한 것 때문이 아닐 것이다.
자신을 믿고 맡겨준 제자의 방황.
그걸 바로잡지 못한 사람이 어찌 선생이라고 불리겠는가.
어머니는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그의 손을 붙잡았다.
“덕분에 우리 아들이 이렇게 사람 구실도 하고 참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산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인 양성학을 두호의 어머니가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들의 뒤에서 두호의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손수 만든 잡채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네. 맛있게 드시고 말씀주시면 더 드리겠습니다.”
싱긋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리던 두호의 아버지의 시선에 누군가 들어왔다.
한 교도관 복을 입은 사내가 망설이는 듯 우물쭈물하자 아버지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간다.
“네. 어쩐 일이시죠?”
사내는 깜짝 놀라며 곧바로 품속에 손을 집어넣는다.
명함 한 장을 꺼내들어 두호의 아버지에게 건네며 꾸벅 인사를 한다.
“안녕하십니까. 김천 소년교도소에서 근무하는 교감 오정배라고 합니다.”
두호의 담당 교도관이자 두호가 출소를 하던 때 5만원과 안내를 도와주었던 사내이다.
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자 오정배가 머리를 긁는다.
“제가 두호의 담당 교도관이었습니다. 아마추어 시절 때부터 팬이기도 하죠...”
어딘가 먹먹함을 느낀 아버지는 명함을 손에 꼭 쥐었다.
“제가 괜히 눈치도 없이 이곳에 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희 아들이 오히려 신세를 졌죠. 말썽을 피우지는 않았나요?”
두호가 그럴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예의상 해야 하는 말이다.
“참 모범이 되는 친구였어요. 많은 아이들이 두호를 믿고 따랐죠.”
“감사합니다. 정말.”
그 순간 그의 뒤에서 다른 교도관들이 걸어온다.
말을 맞추고 온 것이 아닌지 그들 역시 오정배를 보며 놀라는 눈치였다.
“에? 선배님이 왜 여기 있으세요.”
“몰랐어요? 오교감님 백두호선수 팬이잖아?”
오정배 역시 그들을 보며 놀라 했다.
“자네들이 왜...?”
그러자 교도관들이 사 가지고 온 과일과 꽃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아버지에게 건네며 장난스럽게 웃는다.
“아니 우리 학교(교도소를 이르는 속칭)가 세계 챔피언을 배출하는 역사적인 날인데 당연히 와봐야죠!”
두호의 아버지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자리 안쪽을 가리킨다.
“어서 앉으세요! 식사는 하셨나요?”
“이야. 냄새가 먹고 왔어도 한 끼 더 먹어야겠는데요!”
사람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두호의 경기를 기다렸다.
***
짤랑.
풍경 소리가 울린다.
“풍경 소리가 참 맑습니다.”
“그렇지?”
수미와 황성태는 마주 보고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오늘 이들 역시 두호의 경기를 응원하고자 덕현보육원에 모인 것이다.
“손 좀 거들어줬다고?”
황성태의 말에 수미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용돈 달라기에 몇 푼 쥐어주었죠.”
“나이가 몇인데 아직까지 용돈을 타 쓰나. 쯧쯧.”
말과는 다르게 황성태는 자신보다 더 두호를 잘 도와주는 수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손 씻은 몸.
더군다나 이곳 아이들과 종교인으로서의 일 모두를 지켜야 하는 그의 입장은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었다.
“잘했네.”
“아닙니다.”
비워진 찻잔을 재차 따르며 황성태가 콧노래를 부른다.
그 모습을 수미가 신기한 듯 바라본다.
“이렇게 기분 좋아보이시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좋은 날이지.”
수미의 찻잔을 채워준 황성태가 싱긋 미소를 짓는다.
“거친 풍파 속에서 살아남은 야생화가 얼마나 멋진지 모두가 알게 되는 날 아닌가.”
“멋진 말이에요.”
“멋진 아이인거지.”
황성태의 말에 두 사람은 큰 목소리로 웃었다.
참 인연이라는 게 신기했다.
다시는 만날 리가 없던 두 사람이 두호로 인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
거친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지만 이제는 많은 걸 내려놓고 제법 편한 웃음을 지을 줄 아는 사람들이 되었으니까.
“좋은 영향을 끼친거겠죠.”
“우리 같은 사람들보다야. 더욱 건실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에겐 더 큰 영향을 미칠걸세.”
황성태가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슬쩍 눈짓한다.
“우리도 슬슬 가볼까?”
“네.”
두 사람은 찻잔을 그대로 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느릿한 걸음으로 방을 빠져나가니 밖에 서 있던 태건과 경수가 보인다.
두 사람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앞장서 안내했다.
대형 티비가 놓인 강당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두 사람이었다.
***
어두운 조명.
비춰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리고 케이지를 향해 한 줄기의 빛이 쏘아진다.
그곳에는 앤드류가 정장을 입은 채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인생은 증명의 연속. 오늘 이 철창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싸움이 벌어집니다!”
사람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앤드류를 바라본다.
“아프리카 난민이자 길바닥 부랑아로 살아왔지만 두 주먹으로 당당하게 최강이라는 칭호를 따낸 알도프 코와르키!”
반대쪽 카메라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옮기는 앤드류.
“세상의 오해로 소년 범죄자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오히려 힘껏 박차고 일어선 도전자 백두호!”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함성을 애써 삼키며 사람들은 안절부절못했다.
전운이 감도는 것을 표현하듯 수 많은 빛줄기들이 쏟아지며 케이지를 어지럽게 감싼다.
“세계 최고만이 허리에 두를 수 있는 벨트를 차지하기 위한 그들의 처절한 싸움! XFC 미들급 챔피언전 알도프 코와르키 대 백두호의 경기를 지금 시작합니다!”
와아!
“몬스터! 몬스터!”
“RKO! RKO!”
천둥 같은 함성이 터져 나오며 사람들은 각자가 응원하는 선수의 이름을 연호했다.
앤드류가 마이크를 들고 거칠게 소리친다.
“도전자. 코리안 몬스터 백두호 선수가 입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