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96화 (196/204)

196화 : 4년에 한 번 오는 날.

동수가 싸늘한 표정으로 볼레로를 바라보았다.

“총 내려놓지 그래.”

볼레로는 인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단순히 자신에게 명령조로 말한 것이 기분 나쁘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전혀 느끼지를 못했다.’

비록 자신의 앞에 두호라는 대어와 플래쉬에 의존해야 하는 어둠이 깔려 있었지만 자신들의 감각은 일반인과 다르다.

이런 어두움과 시선교란 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이 숫자 모두가 움직이면서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무릎을 꿇고 있던 두호가 씨익 미소 짓는다.

‘잘 자라주었구나.’

늠름한 모습.

순식간에 총격전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여유.

옐로우 맘바가 자랑하는 브라보 그 자체였다.

한 사내가 모자를 살짝 들어 두호에게 인사한다.

채호가 우습게 보일만큼 거대한 덩치.

작게 찢어진 눈에 동공은 흔들림이 하나 없을 만큼 진중했다.

“전 대의 브라보 캡틴의 동생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네. 누구시죠?”

“뉴 브라보의 캡틴을 맡게 된 정현철입니다.”

“반갑습니다.”

“저 역시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타앙!

볼레로가 바닥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미소를 짓던 브라보와 두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진다.

“이 씨발 새끼들이...”

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항상 냉정한 볼레로였지만 자신을 무시하는 그들의 모습에 분노한 것이다.

동수가 그의 머리를 총구로 살짝 밀어낸다.

“흥분하지 말고 머리 날라가기전에. 인질 풀어.”

“자신 있으면 너가 가서 풀어주던지. 어디 한번 해봐.”

팽팽한 신경전이 오고 간다.

누구 하나라도 섣불리 움직였다간 곧바로 방아쇠는 서로를 향해 당겨질 테니까.

두호가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자신의 앞에 던져놓았던 권총을 집어들며 한숨을 내쉰다.

말없이 예수를 향해 다가가는 두호였다.

절뚝이던 걸음은 어느새 의자에 묶여있는 예수의 앞에 도착했다.

무릎을 살짝 꿇어앉은 두호가 통증 때문인지 인상이 찡그려진다.

이내 예수를 올려다보며 살짝 미소 짓는다.

“미안해요. 금방 풀어드릴게요.”

예수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숙인다.

두호가 칼을 꺼내들어 그녀가 묶인 밧줄을 풀어내었다.

툭!

밧줄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예수가 손을 뻗어 두호의 뺨을 잡는다.

“미안해요...저 때문에...”

“다 제 잘못입니다.”

두호가 슬쩍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고 예수가 그 손을 붙잡는다.

두호에게 온전히 몸을 맡겨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장시간 묶여있던 탓인지 거동이 쉽지 않았다.

느릿하게 체육관을 빠져나가는 두 사람.

볼레로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이 개새끼들이 진짜로 죽을라고.,,”

볼레로가 훽하니 고개를 돌려 동수의 품 안으로 순식간에 달려든다.

탕!

“제길.”

동수가 방아쇠를 당겨보지만 이미 자신의 품 안까지 다가온 볼레로가 권총을 그의 턱에 가져다 대고 격발한다.

탕!

순식간에 고개를 젖혀 그의 총을 손으로 때린 동수.

총을 떨어트린 볼레로는 자신의 손목을 잡은 채 포그스컬스에게 소리친다.

“싹 다 죽여. 오늘 노란뱀 다 잡는다!”

정현철 역시 거친 목소리로 소리친다.

“의뢰인 지켜! 빠르게 제압한다.”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총성이 들리고 거친 몸싸움이 일어난다.

탕탕!

“죽어 이 새끼야!”

“어딜!”

떨어트린 랜턴에는 사내들의 발과 가끔씩 넘어진 사내의 얼굴들이 보인다.

두호는 예수를 끌어안고 죽을 힘을 다해 창고 철문을 향해 달린다.

타앙!

총알 한 발이 두호의 어깨의 스치지만 아파할 여유가 없었다.

“으윽.”

예수는 겁에 질린 채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철문 앞에 도착한 두호가 문을 당겨보지만 단단하게 잠겨있었다.

들어온 출구는 반대.

예수까지 지켜내며 저 총격전을 뚫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두호는 예수의 어깨를 잡는다.

“예수씨.”

하지만 거친 총성의 소리와 공포로 인하여 그녀에게 들리진 않았다.

“예수씨!”

두호가 그녀의 뺨을 잡으며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어둠 속이지만 두호의 눈이 살짝 보인다.

싱긋 미소짓는 두호.

“저 믿죠?”

세상을 품은 듯한 그의 깊은 눈에 예수는 무엇인가를 느꼈다.

이 남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고.

“네.”

두호는 그녀의 대답과 동시에 번쩍 예수를 안아든다.

“꺄악!”

“유리 튈 수 있으니. 얼굴 감싸 쥐세요.”

그의 말대로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싸 쥔 예수.

두호는 망설임 없이 권총으로 창고 창문을 향해 격발했다.

탕탕탕!

산산조각이 난 유리와 창문을 틀어막는 용도의 나무 목판으로 몸을 던진 두호.

두호와 예수는 창고 밑 언덕으로 굴렀다.

두호는 그녀를 끌어안은 채 한참을 구르다 이내 완전히 멈춰 섰다.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는 두호는 그녀의 상태를 먼저 확인했다.

“괜찮으세요?”

“네...두호씨는요?”

두호는 말없이 주위를 훑어보았다.

싸움은 더욱 격렬해진 듯 비명소리와 총격음이 점점 커졌다.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그 순간 멀리서 클락션 소리가 들려온다.

빵빵!

“형님! 예수씨!”

오토바이를 탄 채 달려오는 준모가 보인다.

그는 손을 흔들며 그들에게 다가와 멈춰섰다.

준모는 두호의 상태를 보며 눈물을 글썽인다.

“형님 저는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고생 많았다. 미안해.”

두호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서둘러 이곳을 떠날 준비를 했다.

준모의 등에 매달리듯 탄 예수를 두호가 잠시 멈춰 세운다.

“잠시만요.”

그녀의 머리를 들추자 목의 화상자국이 드러난다.

잠시 그 상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방금전 볼레로가 그녀의 목에 가져다 댄 총구가 원흉인 듯싶었다.

예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두호를 바라보자 두호가 준모에게 말한다.

“먼저 가라.”

“네? 형님 어서 도망가야죠!”

“할 일 있으니까. 먼저 가. 곧 돌아갈게.”

두호는 허리를 숙여 자신이 떨어트린 권총과 칼을 집어든다.

“두호씨! 지금 안 가면...”

예수가 걱정스러운 듯 두호를 바라보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녀오겠습니다.”

두호가 얼른 출발하라는 듯 준모의 어깨를 살짝 두드린다.

준모는 눈을 질끈 감고 오토바이의 시동을 건다.

“형님 조심하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조심하셔야 돼요...”

고개를 끄덕인 두호는 몸을 돌려 창고로 걸어간다.

준모와 예수는 시선을 떼지 못했지만 이내 굳게 마음을 먹고 출발했다.

***

콰아앙!

책상을 휩쓸 듯 내던져진 동수.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그의 표정은 굉장히 굳어있었다.

다른 포그스컬스들은 딱히 걸림돌이 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저 숫자가 많을 뿐 전투가 벌어지는 이곳 창고는 어둡기에 수적 우세는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볼레로는 부하들과 차원이 달랐다.

자신과 현철이 동시에 달려들어도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특히 저 덩치에 나오는 반사 신경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제길...”

“브라보도 뭐 별것 없구만.”

볼레로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동수에게 걸어간다.

어둠 속이지만 슬슬 눈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선대 브라보들에게 가서 전해라. 당신들이 살아 돌아왔어도 안 됐다고.”

그 순간.

창고의 불이 켜지며 주위가 환해졌다.

갑작스럽게 강한 불이 들어오자 싸우던 모두가 눈을 질끈 감거나 고개를 숙였다.

“으악!”

“뭐야!”

그리고 총성 두 발이 들려온다.

탕탕!

끼익!

듣기 싫은 소음과 함께 굳게 닫혀있던 철문이 열린다.

그리고는 두호가 들어선다.

상황 내부는 지옥 그 자체였다.

아직도 바닥을 뒹굴며 서로의 목에 칼을 박아넣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고 목을 붙잡고 벽에 바짝 붙여 힘 싸움을 하는 사내들도 있었다.

두호가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현철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이 지독한 상황에서 싸우는 이유는 두호라는 의뢰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돌아와 버린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나 동수는 그저 미소지을 뿐이었다.

“두호씨! 빨리 도망...”

퍼억!

날아온 의자에 맞은 현철이 팔을 부여잡는다.

볼레로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두호를 바라본다.

“넝쿨째 들어왔는데. 그건 안되지. 저 새끼만 잡아 무조건!”

볼레로의 명령에 싸움을 이어나가던 사내들이 모두 두호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두호는 오른손에 총을 왼손에 칼을 든 체 무표정하게 그들에게 마주 걸어간다.

“죽어!”

한 사내가 찔러들어 온 칼을 슬쩍 피해낸 두호가 그를 메치듯 뒤로 넘긴다.

이윽고 정확하게 사내의 머리에 총을 격발한다.

탕!

반항 한번 못해보고 축 늘어진 사내.

두호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있었다.

“모두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마라.”

사내들이 숫적 우위를 이용하여 덤벼들지만 아무 의미 없었다.

현철은 그 모습을 보며 넋을 놓았다.

“뭐야...”

뱀.

영리한 뱀 그 자체였다.

몸통을 잡았다 싶으면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그리고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상대의 사각을 잡아낸다.

마치 독으로 상대를 마비시키듯 권총으로 정확히 상대를 무력화 시켰다.

자신의 의뢰인이지만 그의 싸움을 지켜보며 현철은 움직일 생각을 못했다.

두호는 찔러들어 온 칼을 앞 손에 든 칼로 정확히 쳐내며 오히려 명치에 칼을 박아넣는다.

숨이 막혀 비명을 지르지 못한 사내.

뒤에서 따라오던 사내가 두호를 향해 권총을 격발한다.

하지만 칼을 맞은 사내를 방패로 이용하여 총알을 피해낸 두호가 그의 어깨와 목 사이로 사내를 정확하게 조준한다.

탕탕!

쓰러진 사내를 보며 볼레로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상상속.

아니 상상 속에서도 못해본 싸움이다.

저것은 임기응변이 아니다.

그저 지독하게 몸에 배인 훈련이 머리보다 먼저 반응하는 것.

고작 20대 소년이 그 어떤 군인도 보여주지 못한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느새 권총의 탄을 다 소비한 듯 곧바로 칼 하나를 주워 든 채 달려드는 두호.

총을 맞은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 못할 속도였다.

- 방어적인 움직임의 목표는 반격. 공격적인 움직임의 목표는 상대가 반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 두 가지를 적절하게 운영할 수 있다면 못 잡아낼 상대가 없는 거지.

래진의 가르침이다.

좁아진 거리를 순식간에 움직여 미처 상대가 조준을 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조준을 했다 싶으면 자신들의 무리 안으로 파고들어 버린다.

팀원을 맞출 순 없으니 권총을 들고 있던 사내들은 금방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 아무런 움직임을 취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열 명.

스무 명.

마지막 사내가 칼이 박힌 목을 부여잡고 피를 흘린다.

“괴...괴물...”

두호가 무심하게 그를 바라보더니 목에 칼을 빼버린다.

“너희가 만든 상황이야. 받아들여.”

이윽고 두호는 한숨을 내쉬며 볼레로를 바라본다.

볼레로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두호는 칼에 묻은 피를 자신의 팔꿈치 사이에 껴 닦아낸다.

“달게 받아.”

볼레로는 다급히 정신을 차린다.

이윽고 권총을 벼락같이 꺼내들지만 현철이 한 발 빨랐다.

그의 권총을 맞추어 낸 것.

“움직이지마.”

“내버려 두십시오.”

두호가 현철에게 말하자 현철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몸이나 풀고 가렵니다.”

두호는 칼을 손아귀에서 빙그르르 돌리며 볼레로를 향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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