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 4년에 한 번 오는 날.
탁현은 심각한 표정으로 직원들에게 말한다.
“예수씨랑 준모씨는?”
“지금 병원측과 바로 연락을 취해 보겠습니다.”
한 직원이 전화를 하기 위하여 방 밖으로 빠져나간다.
다니엘이 씁쓸한 표정으로 두호를 바라보았다.
“미안합니다.”
“뭐가요?”
“막았어야 했는데...”
다니엘은 사실상 알도프에게 배제되었다.
훈련 캠프를 참가하지 못했을뿐더러 그 어떠한 소식도 전해듣지 못했다.
하지만 대외적인 행사에서는 불화설에 대한 일말의 언급도 되지 않기 위해 병풍처럼 따라다닐 뿐이었다.
데이비드는 다니엘의 자책에 콧방귀를 뀌었다.
“흥. 그쪽이 막을 수 있는 상대였으면 알도프가 아니지.”
두호는 데이비드에게 그만하라는 듯 손짓을 한다.
이윽고 영철을 바라본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철이 무거운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는다.
사실 그에게도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원래 인질구출작전이라는 것은 상대보다 더욱 많은 인원수를 전제로 작전을 짠다.
상대를 물샐틈 없이 포위한 뒤 빈틈을 찌르고 들어가는 것이 정석.
전투라면 전혀 문제가 없던 찰리팀 인원.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순식간에 불리해지는 인원수이다.
전화 통화를 하던 직원이 창백해진 얼굴로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
“저...예수씨와 준모씨 모두 자리에 없다고 합니다. 위치는 확인이 불가하다고.”
“뭐!?”
탁현이 당황한 표정으로 두호를 돌아본다.
방 안에 있는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저 긴장감에 침을 삼킨다.
“다니엘씨.”
“네.”
두호가 자신의 핸드폰을 건넨다.
“알도프 전화 번호 좀 부탁드립니다.”
“네.”
다니엘은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안다.
죄책감을 느끼는 듯 다니엘은 순순히 두호의 핸드폰에 알도프의 전화번호를 옮겨적었다.
망설임없이 통화버튼을 누른 두호.
묵묵하게 연결을 기다리는 그의 표정은 굉장히 싸늘했다.
조용한 방 안속 심장을 옥죄는 통화연결음만이 들려왔다.
딸깍!
-누구야.
두호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백두호다.”
잠시 말이 없던 알도프는 큰 소리로 웃었다.
-이제 알아챘나? 하여간 그년놈들 아무것도 모르고 죽을뻔했어.
“원하는 게 뭐냐.”
두호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
당장이라도 욕지거리를 뱉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아내고 있었다.
-원하는 게 뭐겠어. 돈? 복수? 그런 단순하게 아니야.
“그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마저 분위기가 변했다.
-별 것 없다. 싱싱한 네 모가지면 충분해.
“원한다면 가져가. 그 전에 예수씨랑 준모는 어디 있나.”
-낄낄 메시지로 남겨주지. 주위 사람들이랑 잘 정리하라고.
전화가 끊어지자 영철이 곧바로 팀원들한테 명령한다.
“준비해.”
“네!”
팀원들은 자신들의 장비를 찾아 이동했고 당장이라도 출발 가능한 준비를 마쳤다.
다니엘은 한숨을 내쉬며 마른 세수를 한다.
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데이비드가 복잡한 표정으로 그의 어깨를 잡는다.
탁현은 곧바로 두호에게 다가간다.
“두호씨. 이번 일은 영철씨에게 맡기고 저희는 내일 있을...”
“이래서 우리가 항상 당한 겁니다.”
“네?”
두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집어든다.
“그놈은 당장 오늘만 보고 사는데. 우리는 항상 내일을 염두에 두니까 한 발씩 늦는 겁니다.”
“하지만 두호씨. 지금 걸린 것이...”
“동료보다 중요한 게 저 벨트라면 전 그만 하렵니다.”
두호의 단호한 말에 탁현은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이번엔 영철이 다가와 두호에게 말을 건넨다.
“두호씨. 이번 일은 저희에게 맡기고 탁현씨 말처럼...”
두호는 말없이 영철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서 영철은 누군가가 겹쳐 보였다.
김도혁이었다.
임무를 앞두기 전 어떠한 감정과 감성이 없는 살인 기계가 된 듯한 표정.
그 순간 핸드폰이 울린다.
두호가 알도프에게 온 메시지임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내용을 확인한다.
- 여자는 산타마리아 항구 자재공장. 남자는 센타바버라 101번 국도 폐공장. 시간은 한 시간. 늦으면 두 년놈 다 죽는 거야.
영철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젠장...”
인질을 둘로 나누었다는 것은 기필코 두호만큼은 잡고야 말겠다는 의지다.
더군다나 한 쪽을 빠르게 정리하고 합류하기엔 거리가 너무나 멀었고 시간이 촉박하다.
이윽고 메시지 한 통이 더 도착했다.
의자에 앉아 묶여있는 예수와 준모.
두호의 이마에 핏줄이 터질 듯 올라왔다.
“영철씨.”
“네. 두호씨.”
“권총 한 자루 부탁합니다. 9mm탄 15피 넘는 반 자동으로.”
“예?”
두호가 권총을 다룰 줄 아는 것은 둘째치고 이렇게 재원을 세세하게 알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영철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고개를 살짝 돌려 팀원에게 명령을 내린다.
“베레타 가져와.”
찰리 팀원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총기보관함에서 상자를 꺼낸다.
두호에게 건네주니 곧바로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권총 하나가 보인다.
영철이 씨익 미소를 짓는다.
“베레타 M9A1 반자동 권총입니다. 저희가 부수적으로 개량을 하여 방탄복 정도는 우습게 뚫죠.”
다른 부하가 건네준 탄알집 벨트를 허리에 두른 두호가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탁현이 답답한 표정으로 다가오자 두호가 그의 어깨를 잡는다.
“기도나 해주십시오. 벨트가 아니라 누구 하나 다치지 않길.”
두호가 영철과 찰리팀원들을 돌아본다.
“갑시다.”
찰리팀은 이상함을 느꼈다.
영철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안정감.
마치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두호의 말 한 마디.
영철은 소리친다.
“가자!”
***
예수가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뱉는다.
“으으.”
“야 깼다 깼어.”
한 흑인 사내가 얼굴을 들이밀자 예수가 경악을 한다.
“꺄악!”
사내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입가에 미소를 띄운다.
음흉한 눈빛으로 예수를 훑어본 사내가 입맛을 다신다.
“크. 진짜 임무만 아니라면 그냥...”
“닥쳐라.”
싱글벙글한 미소를 짓던 사내가 볼레로의 일갈에 쭈뼛거리며 뒷걸음질 친다.
볼레로가 무표정한 얼굴로 의자 하나를 끌고 와 예수의 앞에 털썩 앉는다.
“미안합니다. 이렇게 모실 일이 아니었는데. 이해 좀 해주십시오.”
“당신들 뭐야!”
볼레로가 담배 하나를 꺼내 물며 불을 붙인다.
연기를 내뿜으며 무뚝뚝하게 대답한다.
“그쪽 선수와 이해관계가 복잡한 사람이라는 것만 알아 두시면 됩니다. 알도프 코와르키 쪽에서 일하고 있죠.”
“이렇게까지 일을 벌이고 당신들은 멀쩡할 것 같애? 당장 경찰에서...”
볼레로는 말없이 품에 손을 넣는다.
예수는 볼레로의 행동에 긴장감을 느끼며 침을 꿀꺽 삼킨다.
무기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 것과는 달리 그의 손에서는 사진 몇 장이 나왔다.
“얼마 전 우리가 모시는 보스이자, 알도프의 친형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니 그곳에는 두호와 동수의 사진이 보였다.
“그분을 죽인 흉수가 처음에는 다른 사람인 줄 알았지만 하나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두호와 동수가 텍사스 주점 내부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고 가게 문을 닫는 모습이 찍힌 CCTV 캡쳐 화면이었다.
“바 안에 있던 모두가 죽었고. 그들은 보스가 숨어있는 은신처를 아는 유일한 친구들이었죠.”
“그렇다는 건.”
“네. 우리는 보스를 죽인 사람이 두호씨라고 확신하고. 당신들로 유인해내 그를 죽일 겁니다.”
볼레로는 싸늘한 표정으로 사진을 집어넣는다.
예수는 아무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두호씨가 정말...”
“곧 끝납니다. 한...”
시계와 자재창고 밖 항구를 살펴보던 볼레로가 예수를 응시한다.
“30분 정도.”
***
“야이 씨발놈들아!”
준모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한 포그스컬스의 사내가 귀를 문지르며 인상을 찡그린다.
“어제 먹은 술 때문에 숙취도 안 가시는데. 저 새끼 고함소리에 머리까지 울린다.”
“좀만 참아. 인질은 상하면 가치가 없어지는 거야.”
그를 위로하듯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툭친다.
그러나 준모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사람을 잡아다 놨으면 뭐 때문인지 이야기는 해주던가. 어차피 도망도 못가니까 밧줄은 좀 풀어라.”
준모는 자신의 말처럼 밧줄을 풀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다리 한쪽은 꼼짝을 하지 못했다.
폭탄 테러로 인하여 다친 다리였다.
“씨발 눈 떠보니까. 흰 놈 검은 놈. 아주 바둑돌들 같은 새끼들만 지천에 널려가지고...”
머리를 싸메던 포그스컬스 사내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안 되겠어.”
“왜? 뭐하려고.”
“저 새끼 한 대 꽂아야 마음이라도 편하겠어.”
“야! 대표님이 절대 하지 말라고...”
사내가 권총을 집어들고는 준모에게 다가간다.
준모는 권총을 보더니 순간 얼굴이 창백해진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목소리는 작아지고 표정은 온화한 미소로 바뀐다.
“죄송합니다. 제가 시끄러웠다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알면 진작!”
뻐억!
권총 손잡이로 준모의 이마를 후려친다.
준모의 목이 축 늘어진다.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준모는 고통스러운지 인상을 찡그렸다.
준모는 순간 겁이 났지만 머릿속에서 단 한 가지의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잃은 척 눈만 감고 있을 때 포그스컬스가 두호를 끌어내려는 전략이 있음을 알아챘다.
‘차라리 죽어야 한다. 그래야 두호 형님이 위험에 빠지지 않아.’
두호를 위해 차라리 죽을 것을 각오한 것이다.
준모는 힘겹게 고개를 쳐올리며 사내를 바라보며 히죽 웃는다.
“야 이 개새끼야. 하다못해 강아지도 먹여주고 키워준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데, 사람 새끼가 그러면 되겠냐.”
“이 새끼가 끝까지...”
사내는 흥분한 듯 권총을 제대로 잡아들고는 준모의 머리를 겨냥한다.
그러나 준모는 아까와 달리 거칠게 소리친다.
“챔피언이고 국회의원이고 다 해먹으실 형님인데 내가 도와드리진 못할 망정 발목을 잡으면 오른팔이 할 짓이냐 그게. 쏴 봐 이 개새끼야.”
사내는 참을성이 다 되었는지 장전까지 마치고는 그의 이마를 겨눈다.
다른 사내가 그를 만류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야! 야! 그만해 임마!”
순간 준모의 시선이 올려다보던 사내 너머를 힐끔 바라본다.
이윽고 눈빛이 슬쩍 바뀌며 히죽 미소 짓는다.
“얘들아...”
사내가 씩씩거리며 준모의 머리채를 쥐어 잡는다.
“끝까지 주둥이는 살아가지고. 뭐 이 새끼야.”
“사람이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게 세상 이치래...”
준모의 알 수 없는 말에 사내는 어이가 없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이 새끼가 단단히 미쳤구나.”
“그러니까...”
준모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사내에게 내민다.
“달게 받아라.”
이윽고는 사내의 정강이를 힘껏 차버린다.
뻐억!
“으악!”
그리고는 준모가 온 힘을 다해 옆으로 몸을 눕히자 묶인 의자 채로 쓰러진다.
그 순간.
창문이 깨지며 총알이 쏟아진다.
탕탕!
준모를 죽이려 했던 사내는 순식간에 쏟아지는 총알을 맞아 벌집이 된다.
그를 만류하던 사내가 몸을 던지며 황급히 총격을 피한다.
“뭐야!”
갑작스러운 기습에 포그스컬스 사내들은 우왕좌왕했다.
어두운 달빛이 폐공장 안으로 들어온다.
느릿하게 창문으로 넘어온 영철이 담배 하나를 피우며 그 모습을 바라본다.
“준모씨 잘했어.”
찰리 팀원 두 명이 포그스컬스가 정신이 없는 틈을 타 준모를 의자째로 끌고 폐공장을 빠져나간다.
찰리는 무전기를 잡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명령한다.
“오늘 포그스컬스는 역사에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