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90화 (190/204)

190화 : 4 년에 한 번 오는 날.

체육관 내부에 있던 사람들은 쉴 틈없이 쏟아지는 총알로 인하여 모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알도프 괜찮아!?”

“볼레로! 뭐야 저 새끼들.”

“노란 뱀 새끼들이다. 잘 엄폐하고 있어!”

정신없이 퍼붓는 총알 속에서 알도프는 총알이 맞은 탄흔을 바라본다.

자동소총이나 반자동 권총이 아니다.

기관총.

알도프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다.

“이 새끼들이. 민가에서 기관총까지 쏴대네.”

볼레로의 무전기가 울린다.

“어. 됐어?”

-예. 시작하시면 됩니다.

볼레로는 가슴에 붙어있던 연막탄의 안전핀을 탁 뽑는다.

이윽고 무심한 표정으로 바닥에 굴렸다.

펑 소리와 함께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순식간에 체육관 내부는 연기로 가득찼고 쏟아지는 총알은 잦아들기 시작했다.

내부가 연막탄으로 인해 보이지 않자 사격을 중지한 것이다.

볼레로는 연기 속에서 살짝 고개를 들어 외부를 확인한다.

조준하는 자세는 잡고 있었지만 더 이상의 사격은 없었다.

“지금!”

볼레로가 거친 목소리로 명령하자 이내 옥상에서 포그스컬스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껏 당한 보복이라도 하듯 무자비하게 옐로우 맘바를 향하여 총알을 퍼부어댔다.

영철과 찰리팀은 생각지도 못한 거센 반격에 잠시 주춤 거린다.

영철이 차 뒤에 몸을 순긴 채 무전기를 잡는다.

“달라진 건 없어 응전해!”

“예!”

차량 뒤에서 정비를 마친 옐로우 맘바가 다시 한번 교전을 시작했고 이내 체육관 근처에는 총성이 가득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찰리 팀원 한 명이 영철을 큰 목소리로 부른다.

“보스! 180도 방면 경찰차 다가옵니다.”

영철은 그의 보고를 듣고는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제길. 일단 철수해!”

아쉽지만 오늘 끝장 볼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서둘러 차량에 탑승한 영철과 찰리팀은 재빠르게 차를 몰아 현장을 벗어났다.

-옐로우 맘바 후퇴했습니다.

“오케이.”

볼레로는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워 외부상황을 파악한다.

이제 보이는 적은 없었다.

깨진 창문으로 연막탄의 연기가 흘러나가며 내부가 조금씩 드러난다.

몸을 돌려 체육관 내부를 살펴보는 볼레로.

체육관의 샌드백은 모두 터져나갔고 집기중에 멀쩡한 것이 하나 없었다.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알도프였다.

창문 쪽으로 다가가자 볼레로가 그의 몸을 살펴본다.

“다친데는?”

“없다.”

무심하게 대답한 알도프의 인상은 구겨져 있었다.

이윽고 멀리서 다가오는 경찰차를 보며 알도프는 침을 탁 뱉는다.

“다 뒤지고 나서야 도착하지 왜.”

알도프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분노를 삭혔다.

저항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대대적인 복수를 할 줄은 몰랐다

자신이 두호를 우습게 본 것이 화근이었다.

“재밌네.”

알도프가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수미가 차향을 음미한다.

지인에게 선물 받은 녹차의 향이 썩 마음에 들었다.

왜인지 녹차는 겨울에 마시는 것이 더욱 좋게 느껴지는 그녀였다.

따듯한 차 속에서 느껴지는 청량함과 정신을 일깨워주는 깊은 맛.

그녀의 맞은편에는 태건이 앉아있었다.

차를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곧잘 수미와 다도를 함께한다.

그녀에게 듣는 말은 단순히 경험으로만 깨닫는 것과는 다른 지혜를 주기 때문이다.

“사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가.”

수미는 커피포트의 물을 잠시 식힌다.

너무 뜨겁게 끓는 물은 차의 맛을 제대로 우려내지 못한다.

어서 말하라는 듯 수미는 태건의 얼굴을 슬쩍 바라본다.

“알도프의 정계 스캔들을 먼저 터트리신 이유가 뭡니까. 그 자가 악명 높은 해적 출신이고 그의 형이 그들의 리더다. 이것이 알도프에게 더욱 큰 타격 아닙니까.”

“타격이라...”

수미는 잠시 식혀두었던 커피포트의 뚜껑을 닫아 찻주전자에 옮겨 닮는다.

물을 가득 채운 그녀는 싱긋 미소 짓는다.

“자네 싸움을 할 때 한 방에 상대를 쓰러트린 적이 있는가?”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태건은 잠시 머뭇거린다.

기억을 더듬던 그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몇 번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몇 번이라...”

수미는 미소를 지으며 찻잔에 녹차를 가득 따라 태건에게 건네주었다.

태건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두 손으로 찻잔을 받는다.

“그 친구들은 아마 가장 하수겠지?”

언뜻 보면 자신의 주먹을 무시하는 듯 하지만 전혀 그런뜻이 아니다.

큰 공격 한 번에 쓰러진 사내들은 정말로 싸움을 전혀 못하거나 어설픈 자들이었으니까.

태건은 수미의 의중을 알아챈 듯 고개를 끄덕였다.

“큰 동물을 잡을 때는 덫 하나에 걸렸다고 포수들이 흥분해서 달려들면 몰살당하는 법일세.”

곰 같은 동물들 역시 쇠 덫이라 할지라도 우습게 견뎌버린다.

“사냥은 되도록 천천히. 전혀 타격이 없어 보이는 것으로 시작하는 법일세.”

태건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염문설을 먼저 터트린 것은...”

수미가 차향을 편안히 느낀다.

마시지도 않았고 단순히 향을 맡을 뿐이지만 머리가 맑아짐을 느낀다.

이것이 겨울 녹차의 진짜 힘 아닐까.

“처음에는 단순히 연예계 찌라시 같은 스캔들이겠지. 알도프 자체에는 전혀 타격이 없는. 그러나 정치인 입장에서도 그럴까?”

정치인들의 가장 큰 타격점은 도덕성과 이미지다.

세금 조금만 밀려도 국민들의 반발에 직격탄을 맞는 정치인.

그러나 결혼까지 하고 아이까지 있는 하원의원?

스포츠 스타와의 단순 불륜 사건이 아닌 정치 생명을 잃을만한 사건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미셸의 발등에 불이 붙겠지. 발등에 불이 붙었을 때 불을 끄는 제일 쉬운 방법이 무엇인줄 알아?”

“뭡니까.”

수미는 소리내지 않고 차를 한 입 마셨다.

“불이 붙은 신발을 벗어 던지는 거지.”

“그렇군요.”

미셸은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와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알도프를 쳐낼 것이다.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던 것처럼 일축하고 알도프를 내팽겨친다면 그때 포그스컬스의 문제점까지 터트린다.

수미가 씨익 미소를 짓는다.

“그럼 공격적인 움직임이 덜 해질테니. 두호 녀석이 상대하기도 쉬워지겠지.”

“대단하십니다.”

“하지만...”

하지만 수미는 만족스럽지 못한 듯 고개를 젓는다.

태건은 왜 그러냐는 듯 수미를 바라본다.

“미친개를 상대하는 것에 가장 큰 주의점은 지치지 않는 체력이나 날카로운 이빨이 아니야.”

“뭡니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충동이지.”

“그렇군요.”

순간 태건의 머릿속에서는 상반된 두 인물이 떠오른다.

일준과 두호.

두호의 완승으로 끝난 싸움이지만 알도프는 그 궤를 달리한다.

“제가 도울 일은 없겠습니까. 두호씨 혼자서 너무...”

“마음은 알겠지만 접게나. 선무당이 사람잡는 법이라네.”

미국 본토에서의 싸움.

쇠붙이나 휘두르는 자신은 도울 것이 없었다.

수미는 그 마음을 알아챈 듯 고개를 끄덕인다.

“좋은 때가 있겠지.”

***

두호는 러닝을 하고 있었다.

탁현과 데이비드가 당분간 위험하니 혼자 다니지 말라했지만 두호는 미소를 지으며 거절했다.

그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나온 이유는 한 가지이다.

테러 이후 자신을 따라다니는 한 무리가 있는 것.

‘숫자는 어림잡아 8명 정도...’

두호는 대로에서 순식간에 방향을 틀었다.

번화가에서 벗어나 공장단지가 위치한 외진 곳으로 달리는 두호.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을 없애기 위하여 엄청난 속도로 달린다.

두호가 급속도로 달리자 변장을 한 상태로 그의 뒤를 쫓던 사내들이 당황한다.

“뭐야. 어쩔까요?”

“어쩌긴. 빨리 따라가!”

사내들은 이제 변장이고 뭐고 두호를 향해 전속력으로 쫓아가기 시작했다.

건장한 사내들이지만 두호의 속도를 감당하긴 어려웠는 듯 조금씩 거리가 벌어진다.

이윽고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두호를 찾기 위하여 하나둘씩 흩어진다.

한 사내가 거친 숨을 내쉬며 이마에 땀을 닦는다.

“어우. 새끼 더럽게 빠르네.”

비슷하게 생긴 공장 단지들이 늘어선 것을 보며 알 수 없는 불쾌함을 느낀다.

이런 곳에서는 만약 두호를 찾는다 할지라도 위치 설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젠장.”

사내가 등 뒤에 숨겨놓았던 권총을 꺼내 장전한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신중하게 주위를 살핀다.

한 공장 내부로 진입하는 사내.

그러나 순식간에 두호가 벽에서 튀어나와 권총을 낚아챈다.

이윽고 사내의 턱을 순식간에 손바닥으로 후려친다.

강한충격으로 눈이 풀리자 두호는 그의 등 뒤로 돌아가 뒷목을 낚아챘다.

등을 붙잡고 강하게 뒷목을 조이니 사내는 이내 털썩 쓰러진다.

두호는 쓰러지는 그의 몸을 받아들며 조용히 땅에 눕혔다.

이윽고 그의 뒷 주머니에서 남은 탄창을 모조리 뺏어 든 두호였다.

“총기 관리가 아주 엉망이구만...”

사내의 총기 관리 상태가 맘에 들지 않는 듯 두호가 가볍게 인상을 썼다.

하지만 잠시 사용하기에는 충분한 상태다.

두호는 망설임 없이 권총을 장전하여 하늘을 향해 격발한다.

탕!

“자. 여기 여기 붙어라.”

미소를 지으며 두호는 다시 달렸다.

“헤이 피터! 정신차려봐!”

두호가 쓰러트린 사내의 주위로 다른 인원들이 모두 모였다.

주위를 살펴보니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이 정도로 순식간에 당했다고?”

“계속 쫓을까요?”

리더로 보이는 사내가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물론 두호를 잡아내면 자신들이야 큰 돈을 받겠지만 무리해서 상할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공식적인 임무는 두호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니까.

“일단 철수한다. 피터 챙겨.”

“네. 업어라.”

한 사내가 피터를 들춰 매자 총성이 울린다.

탕!

피터를 들춰 맸던 사내가 바닥에 쓰러지며 비명을 지른다.

“아악!”

“모두 산개해!”

리더가 소리치자 뿔뿔히 흩어진다.

공장 옥상에서 아래쪽을 향해 총을 격발하는 두호였다.

탕탕!

자동권총도 아니지만 빠른 속도로 사격을 하며 세 사람을 더 무력화 시켰다.

순식간에 12발의 총알을 모두 쓴 두호가 뒷 주머니에서 탄알집을 꺼내든다.

이윽고 다시 총기를 재결합하여 발사하려 하지만 왜인지 총알이 발사되지 않았다.

총기 상태가 엉망이어서 고장이 난 것이다. 두호는 눈을 찡그렸다.

“하여간. 총으로 먹고 사는 놈이 총기 관리도 못해서야.”

그 순간 정비를 마치고 자리를 잡은 사내가 옥상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두호는 고개를 숙여 순식간에 총기를 분해하였다.

아예 재조립을 하여 상태를 정비하는 것이 빠를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총기 분해가 끝나자 순간 다른 총소리가 들려왔다.

권총보다는 더욱 두꺼운 총성.

자동소총이었다.

두호는 더이상 옥상을 향해 총알이 올라오지 않자 고개를 슬쩍 내밀어 확인했다.

가면을 쓴 한 무리의 사내들이 엄청난 속도로 자신의 뒤를 쫓던 사내들을 모두 정리해낸다.

그 모습을 본 두호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사내가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진다.

영철이었다.

“두호씨. 내려오시죠.”

“오랜만입니다.”

옥상에서 풀쩍 튀어내린 두호.

털썩.

엄청난 높이에서 뛰어내렸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이기에 서로 반갑게 악수를 하였다.

“잘 지내셨습니까?”

“사실 전해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뭡니까?”

이제 공식적으로 자신과 옐로우 맘바는 볼 일이 없다.

박래진 보스의 사망소식과 함께 포그스컬스와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였다.

두호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되묻는다.

“뭐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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