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89화 (189/204)

189화 : 4 년에 한번 오는 날.

다음 날 아침.

많은 사람들이 파이트 매니아의 회의실에 모였다.

가장 열의가 타오를 시기이지만 분위기는 장례식장과 같았다.

시작부터 기세가 완전히 꺾인듯한 분위기에 데이비드가 한숨을 내쉰다.

‘처음부터 말리고 들어갔구만.’

언제나 전쟁의 양상은 기선제압 당한 쪽이 불리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탓할 수는 없는 문제아닌가.

스포츠 경기장 외에 폭탄테러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단 말인가.

LA 경찰에 문의를 해보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예상대로 미적지근했다.

‘아주 돈으로 처발랐나보군.’

두호가 감았던 눈을 뜬다.

그 눈빛을 본 데이비드는 눈을 좁혔다.

맑았다.

처음으로 보는 제 나이의 맞는 두호의 눈빛.

돌 하나를 던지면 물결의 파동이 보일만큼 맑고 잔잔한 호수 같았다.

두호가 입을 연다.

“수많은 사건과 각자의 감정.”

두호의 목소리가 들리자 하나둘씩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여전히 착잡했다.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단 하나의 방법.”

두호가 슬쩍 회의실 안에 있는 관계자들을 모두 돌아본다.

“너무나 멀고도 험해. 과연 거기까지 정말로 닿을 수 있는지 수도 없이 고민하는 곳.”

관계자들의 얼굴에 미소가 조금씩 번진다.

가장 힘들어 할 인물의 의연함과 위로.

“방법이 분명히 존재하니 그리 암담한 상황도 아닙니다. 장담합니다.”

두호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데비이드와 탁현을 바라보았다.

“닿을 수 있습니다. 잘 해봅시다.”

“그래그래!”

“미친놈 잡고 사고 한 번 쳐보자고!”

“Let‘s do this monster! (해보자고 몬스터!)”

사람들은 의기투합을 시작했고 데이비드가 자리를 툭툭치며 몸을 일으킨다.

탁현이 슬쩍 미소짓 는다.

‘가만보면 사람을 끓어오르게 하는 재주가 있단 말이지.’

이윽고 파이트 매니아 직원에게 명령한다.

“준비해.”

“네!”

순식간에 장내의 불이 꺼지고 빔프로젝터가 켜진다.

데이비드는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졌고 덩달아 회의실 인원들의 표정이 모두 심각해진다.

화면에는 알도프 코와르키란 제목의 PPT가 보여졌다.

데이비드는 헛기침을 한번 했다.

“흠. 지금부터 백두호 선수의 대 RKO 알도프 코와르키의 전략 분석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데이비드가 화면을 가르키자 알도프의 사진이 흘러나온다.

“이름 알도프 코와르키. 현재 나이 33. 명실상부 XFC 파운드 포 파운드 최강의 챔피언이라 평가받는 사내입니다. ”

두호는 굉장히 집중했다.

아마 지금 이곳에서 알도프를 데이비드처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짧은 선수 생활에 비해 누구도 이뤄내지 못한 경력을 갖고 있는 정점의 사내입니다.”

데이비드가 몸을 돌려 PPT를 다음 화면으로 돌렸고 알도프의 경기 영상이 흘러나온다.

알도프는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마치 폭력 그 자체를 사랑하는 듯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미들급이지만 라이트 헤비급의 맞먹는 리치. 인앤아웃과 능숙한 스위칭(사우스포와 오소독스의 자세를 변화하는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타격에서는 올마이티(almighty 전능한) 그 자체입니다. 경기 영상 한번 보시죠.”

알도프의 4차 방어전 경기가 재생되었다.

상대는 킥복서 출신으로, 미들급에서만 20전을 넘게 치룬 베테랑이었다.

그러나 경기 내용을 지켜보는 두호의 눈이 찡그려졌다.

얼핏 보면 가만히 자세를 잡고 대치하는 듯 보이지만 두호의 눈엔 보였다.

언제라도 달려들 듯 꿈틀거리는 뒷 발.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별다른 압박 없이 상대를 뒤로 물러나게 한다.

상대의 얼굴 앞에서 힘없이 돌리는 손.

이 행동은 상대와 자신의 거리를 재며 상대의 공격을 유도하게 한다.

그렇게 상대가 알도프가 보내오는 압박감을 참아내지 못하고 공격을 감행한다.

알도프의 짧은 3타가 상대의 얼굴에 적중한다.

카운터 어퍼컷과 투.

그리고 경쾌하게 날아가는 하이킥.

상대를 KO시키지는 못했지만 순식간에 전방위적인 공격이 3개나 적중한 것이다.

3번의 공격이 3번 모두 적중하는 미친 가성비.

데이비드는 적이지만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정확히 엉키고 설키는 난전 상황 속 자신이 연습한 플레이를 모두 수행하고 나오는 작전 수행능력. 어찌보면 사람들의 눈에는 감정적이고 원초적인 싸움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이성적이며 침착한 사냥개입니다.”

탁현이 신음에 가까운 한숨을 내쉰다.

격투 스포츠 역사상 가장 완벽에 가깝다는 평가가 아깝지 않았다.

“약점은 없습니까?”

“물론 그에게도 약점은 있습니다.”

데이비드가 다음 화면으로 넘기자 다른 상대와의 경기 모습이 흘러나왔다.

그의 일반적인 경기 흐름으로 별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그의 3타는 완벽히 빗나갔고 오히려 상대가 가볍게 투를 맞추고 거리를 벌렸다.

데이비드가 영상을 멈춘다.

“그는 왜인지 지독하게 카운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모든 경기를 통틀어도 선공을 취하는 횟수는 거의 없죠. 그래서 저희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데이비드가 손짓하자 한 사내가 거침없이 뛰어올라온다.

데이비드는 마이크를 내려놓고 그와 자세를 잡는다.

“시작해봐.”

그의 사인에 곧바로 사내는 주먹을 날린다.

연습이라 보더라도 너무나 빠른 속도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리고 서로의 코 앞에서 멈춘 손.

“거리감.”

두호는 데이비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타의 기준은 자신이 처음 때리고자 하는 목표에 정확한 타이밍과 거리가 일치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어떠한 문제로 인하여 평소의 거리보다 짧거나 길면 파워와 정확도는 상당히 떨어지죠.”

데이비드가 잠시 멈춘 상태에서 한 발자국을 뒤로 물러났다.

상대의 손은 허공을 갈랐고 데이비드의 손은 사내에게 닿았다.

애초에 맞출 때까지 길게 뻗는 주먹이였기에 닿을 수 있던 것이다.

“결국 포인트는 알도프의 공격을 끌어내거나. 진입하는 순간의 페이크. 이것이 지금까지 발견된 유일한 공략 포인트입니다.”

탁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호를 바라보았다.

“아직 시간이 많으니 더욱 분석하면 저것 말고도 더 많은 파훼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두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한 사내가 씁쓸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경기야. 둘째치고 더욱 큰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뭡니까?”

사내는 헛웃음을 지으며 탁현과 두호를 바라보았다.

“알도프와의 싸움은 아예 다른 방식이라는 걸 아시잖습니까. 오죽하면 ‘온전한 상태로 경기를 맞이하기만 해도 챔피언이다’는 말이 나왔을까요.”

“그건...”

운동선수가 가장 중요한 경기를 차선으로 생각한다.

이 말을 언제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상대는 그런 말을 가능케 하는 알도프이다.

“경기 외적으로 상대를 괴롭히고 최악의 컨디션과 멘탈을 만들어버리는 게 알도프입니다.”

다시 한번 회의실에 분위기는 침울해졌다.

어찌보면 이미 경기가 시작된 것이다.

비즈니스.

중상모략.

권모술수.

자신들에게는 이 문제를 해결해줄 ‘머리’가 없다.

탁현은 쓴웃음을 삼켰다.

‘이채호 대표님이라도 있었다면...’

채호는 이런 방면에서는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채호마저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자 두호가 싱긋 웃는다.

“그런 사람이 필요한 겁니까?”

“물론이죠.”

“이 스포츠 바닥에 없는 사람도 괜찮나요?”

“네?”

두호는 핸드폰을 집어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몇 번의 전화 연결이 이어가는 중 드디어 상대방이 전화를 받는다.

- 지금이 몇 시인데 전화를 거나. 가뜩이나 늙은이 잠도 없는데.

두호가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다.

“죄송합니다. 도움이 좀 필요해서요.”

이윽고 탁현을 보며 한쪽 눈을 찡긋 감는다.

“이모.”

***

-쾅쾅

-쾅쾅

거칠게 샌드백을 치는 알도프.

평소와 달리 엄청난 속도와 텐션의 트레이닝이었다.

왼손 오른손.

단순히 양손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정도가 아니었다.

양 발의 무게중심은 끊임없이 변한다.

도저히 눈으로는 쫓을 수 없는 무게중심.

불안하다 싶으면 상대가 방심하게 만드는 허수였고, 안정적이다 싶으면 상대의 공격을 망설이게 만드는 패기가 보인다.

샌드백이라 아무 일도 없었지만 사람이었다면 구급차를 불러야 할 수준의 힘이었다.

다니엘이 씨익 미소를 짓는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의 역할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알도프라는 거대 함선에 운좋게 탑승한 인원일 뿐이다.

‘이번에 은퇴하는 게 아쉽긴 하지만...그래도 내 위치는 달라질 것이다.’

알도프와 골드스피릿의 수석 코치였다는 커리어는 평생 자신을 배불릴 것이다.

엄청난 불로소득을 생각하는 다니엘의 미소가 사라질 틈이 없었다.

- 때앵!

샌드백 훈련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자 다니엘이 박수를 치며 알도프에게 다가간다.

“고생했어 알도프. 살살 하라고. 백두호 그 새끼 죽여버릴거야?”

알도프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무런 대답없이 손을 뻗자 한 사내가 다가와 물병과 수건을 건넨다.

코치인 듯 싶었지만 각종 무기들을 휴대한 모습이 일반인은 아님이 확실하다.

포그스컬스들은 이제 알도프의 경호를 맡게 되었다.

사내가 무표정한 얼굴로 다니엘을 바라보다 씨익 미소 짓는다.

그 표정의 다니엘은 뭔가 모를 께름칙함을 느꼈다.

‘뭐지?’

알 수 없는 불안함을 느낀 다니엘의 뒤로 문이 거칠게 열린다.

쾅!

한 골드스피릿 직원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알도프씨 큰일났어요!”

목 뒤의 땀을 닦아내던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직까지도 숨이 가쁜지 허리를 숙인 채 말하는 직원.

“일단 티비를 좀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뭐?”

알도프가 티비를 켜보라는 듯 손짓하자 다니엘이 곧바로 리모컨을 집어들었다.

전원이 들어온 화면은 현지 뉴스 속보였다.

- 파파라치 기자로 활동하는 재키가 세계적인 격투기 선수 알도프 코와르키 선수와 현 텍사스 주 하원의원인 미셸 크리스와의 염문설을 제기하였습니다. 알도프 코와르키 선수는 XFC의...

다니엘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알도프를 슬쩍 바라본다.

“저게 뭔...”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티비를 보던 알도프가 조용히 하라는 듯 손짓한다.

-미셸 크리스는 사실무근이라 일축했지만 웹사이트에서 돌아다니는 그녀와 알도프의 데이트 사진을 공개하며...

알도프는 무표정한 얼굴로 턱을 쓰다듬는다.

이윽고 씨익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재밌게 나오네.”

선전포고.

자신들도 그저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의사표시다.

그리고 저번 폭발물 테러 사건의 복수를 다짐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번 해보자는 거구만?”

“알도프...혹시...”

다니엘이 침을 꿀꺽 삼키며 알도프에게 다가간다.

그러자 알도프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다니엘을 훑어본다.

“뭐. 저거 진짜냐고? 진짜면 어쩌게.”

“뭐?”

“진짜더라도 수습할 준비를 해야지. 수석코치라는 사람이 말이야.”

알도프의 차가운 반응에 다니엘은 굉장히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 순간 볼레로가 창밖을 보던 중 눈이 휘둥그레진다.

“전부 엎드려!”

“어?”

볼레로는 알도프에게 달려들어 그와 함께 넘어졌다.

그리고 정확히 1초 뒤 엄청난 총격음과 함께 체육관의 유리창이 모두 깨진다.

-타타타타!

-퍼엉!

-쨍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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