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88화 (188/204)

188화 : 4 년의 한번 오는 날.

영철은 차가워진 래진을 끌어안은 채 오열했다.

“이 인간아. 내가 그렇게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했는데...”

창백해진 얼굴과 땀이 말라 굳어버린 그의 머릿결을 만져보는 영철.

“대장이 이리 가면 어쩝니까. 남은 찰리와 애들은...”

철저하게 주위를 살피며 혹시 모르는 기습을 대비하는 옐로우 맘바 찰리 팀.

그러나 그들의 눈은 영철과 같이 시뻘게져 있었고 눈물이 흘러나온다.

눈물이 내려와 뺨을 타고 흘러 턱에서 떨어진다.

누군가 그랬다.

옐로우 맘바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 기계들이라고.

하지만 존경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은 세계를 주름잡는 용병들이라고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영철은 그의 정장 안주머니에 살짝 삐져나온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애써 닦아내며 종이를 꺼내 펼쳐보는 그.

래진이 남긴 마지막 편지겸 유언장이었다.

-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나는 패했고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는 뜻이겠지. 평생을 전쟁터에서 살아왔다. 수많은 생명을 내 손으로 앗아갔으니 내 목숨 역시 누군가에게 거둬질 수 있음을 알기에 억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남아있는 직원들과 후배들에게 이런 소식을 글 몇 자로 전하게 된 것을 매우 미안하게 생각한다.

영철은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으며 한숨을 내뱉는다.

-처음 회사명을 지었던 때. 나는 1대 보스에게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왜 하필 많은 동물들중에 하필 뱀이냐고. 그때 그분께서는 젊은 나에게 이렇게 대답해주셨다. ‘뱀은 독하고 영리하며 겁을 모른다. 어디든 갈 수 있으며 어디든 올라갈 수 있는 진짜 영물이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시기에 나는 다시 물어보았다. 그럼 왜 하필 노란색이냐고. 동양인이라서 그런건가 싶었지. 하지만 그의 대답은 지금까지도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울림을 준 한마디였다. 노란색은 언제나 눈에 띄는 색깔이다. 살인 청부업자. 전투 용병. 버림받은 군인. 이 모든 오명속에서도 당당하게 어깨펴고 살라는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영철의 주위로 찰리팀이 하나둘씩 모인다.

그들 모두 영철의 뒤에서 래진의 마지막 말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당당해라. 군인의 걸음엔 망설임이란 없는 것이다. 그 어떤 시련과 고난이 오더라도 나아가는 것이 너희가 다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다. 알파는 유능하고 브라보는 거침없다.

찰리는 강인하며 델타는 영리하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닥친 문제를 힘을 합해 함께 해결해라. 명심해라. 세계의 최고란 증명의 연속인 삶이다. 옐로우 맘바가 어떻게 최고가 될 수 있었는지 너희들이 한 번더 증명해야 한다.

부하들은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린다.

한 팀원은 바닥에 털썩 주저 앉으며 머리를 싸맨다.

영철의 눈물이 편지로 뚝 떨어진다.

-난 마지막엔 보스의 삶보다 인간 박래진의 삶을 선택했다. 더이상 동생들과 부하들의 죽음을 외면할 수가 없어 복수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보스로서 실격이다. 나와 상철. 그리고 도혁이의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는 너희들이 옐로우 맘바의 주축이 되어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나 따위 늙은 사람보다는 훨씬 더 잘 해낼 것임을 믿기에 이렇게 이 싸움터까지 나올 수 있던 것이다. 내 후계는 영철에게 맡긴다. 유능하고 따뜻한 속을 가진 사람이다.

영철의 손이 떨리며 떨어진 총을 주워든다.

부하들도 하나씩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들의 장비를 점검한다.

아까의 슬픔은 조금씩 사라지고 맹렬한 투지만이 그들에게 남는다.

-너무 슬퍼하지마라. 승패병가상사(勝敗兵家常事). 그저 인간 박래진이 마지막 임무를 실패했을 뿐이다.

영철은 한숨을 내쉬며 종이를 반으로 접는다.

이윽고 자신의 지갑에 곱게 넣어 상의 안 주머니에 넣었다.

그의 눈빛은 닿으면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의지를 품었다.

“델타한테 연락해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어떻게든 알도프를 찾으라고.”

“예!”

한 부하가 재빠르게 무전기를 집어들어 본부와 연락을 시도한다.

영철이 담배 하나를 물었다.

불을 붙이며 찰리팀을 한 명씩 바라본다.

죽은 래진은 복수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복수는 죽은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산 사람이 못 견뎌서 하는 것이다.

“보스와 먼저 떠나간 동료들의 복수. 말하지도 않아도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영철이 자신의 머리 위로 총을 들었다.

“뱀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자.”

찰리 팀원 모두가 영철과 같이 총을 머리 위로 든다.

군인의 맹세.

영철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물어죽이자고. 그 씹새끼들.”

***

현관문이 열리며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벌컥 열리는 소리에 방 안에 있던 포그스컬스들은 모두 입구를 향해 총을 겨눈다.

하지만 들어온 사람을 확인하고는 모두들 천천히 총구를 내린다.

“알도프?”

“어.”

권총을 집어넣고는 곧바로 알도프에게 달려가는 볼레로.

그의 상태는 한 눈으로 보아도 위독해 보였다.

발목 아래로 흘러 내려오는 피.

상의는 완전히 피로 젖어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알도프를 부축해 침대 위로 눕힌 볼레로.

“뭐야. 어디 다녀온거야.”

“볼일 좀 보고 왔다.”

“누구를 보고 온 건데 이모양 이꼴인거야.”

“바로크의 복수를 하고 왔다.”

장난으로 생각하며 헛웃음을 짓던 볼레로.

그러나 알도프의 진지한 표정과 말도 되지 않는 상처를 보며 무엇인가 깨달았다.

그의 미소는 점점 사라지며 이내 심각해진다.

지금 알도프의 말은 곧 한 가지를 의미한다.

“그럼 박래진을 죽였다는 거야?”

“시체 던져놓고 왔으니까. 가서 확인해 보시던가.”

알도프는 장난기가 많고 가볍게 사는 사람이지만 적어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볼레로는 그의 침대 옆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이윽고 부하 한 사람을 가르킨다.

“의사 불러와.”

“네.”

부하가 곧바로 호텔방을 나선다.

볼레로가 그의 상처를 유심히 본다.

알도프를 만난 이후에 이렇게 큰 부상은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상처의 깊이와 위치.

마치 두부를 썬 듯 상처 부위가 반듯하게 잘려 나갔다.

“확실히 전대 거물은 맞나보군.”

“인정. 여차하면 내 명치에 구멍이 뚫릴 뻔했어.”

알도프는 래진과의 싸움을 잠시 돌이켜본다.

하지만 생각하기도 싫은 듯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남은 놈들은 이게 다야?”

방 안에는 40명 남짓한 사내들이 있었다.

“어. 싹싹 긁어모아도 이게 전부다.”

“왜 이렇게 없어.”

볼레로는 한숨을 내쉬며 씁쓸한 표정으로 사내들을 돌아보았다.

원년 멤버도 아닌 사내들.

용병 보다는 낭인 그 자체인 사람들이다.

돈을 받고 무력을 파는 하류 인생들.

“바로크님이 인터폴 적색수배령 내려진 뒤로 포그스컬스에서 내부 이탈이 있었다. 결속력도 없는 저 친구들을 데리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참...”

알도프가 옆에 물 한 병을 집어들어 곧바로 들이킨다.

한참을 들이키더니 이내 입을 스윽 닦으며 볼레로에게 건네준다.

“그럼 현지 갱들은.”

볼레로가 선반 위에 다시 물을 올려놓으며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없어. 현지에서도 포그스컬스 일감은 배제하려는 모양이야. 인터폴에 쫓기는 데다가 얼마전 인공섬에서 몰살당한 전력도 있으니까.”

“좆같네.”

“그치.”

이내 방문이 열리며 의사를 데리러 간 부하가 돌아왔다.

그의 뒤에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XFC 메디컬 팀원으로 근무하는 사내.

그는 방안에 널부러진 총기들과 술병을 보며 흠칫한다.

그리고 험상궂은 사내들이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에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저...저를 찾으셨다고.”

“어. 여기.”

그나마 아는 얼굴이 알도프이지만 그의 소문 역시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의 상처는 누가 보아도 자상.

분명히 싸우다 다친 것일 테다.

‘망나니 같은 새끼...’

볼레로가 자신이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사내에게 손짓한다.

“여기.”

“아! 네 알겠습니다.”

쪼르르 달려와 그 의자에 앉은 사내가 알도프의 상처를 훑어본다.

“저. 아무래도 꿰매야 할 것 같으니. 마취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됐수다. 그냥 하쇼.”

사내는 깜짝 놀라며 걱정스러운 듯 말한다.

“하지만 매우 고통스러우실 텐데요...”

“그냥 하쇼. 위스키 한 병 가져와.”

“어.”

사내는 망설이다 이내 상처를 꿰매기 위한 도구들을 깔아놓는다.

선반 앞에 멈춰선 볼레로가 슬쩍 알도프에게 물어본다.

“스카치(스코틀랜드에서 만들어지는 위스키)? 아이리쉬(아일랜드에서 만들어지는 위스키)?”

“아이리쉬.”

고개를 끄덕이며 위스키를 누워있는 알도프에게 던진다.

한 손으로 받아든 알도프.

그는 곧바로 뚜껑을 열어 한 입 들이킨다.

“크으.”

그는 멀뚱히 서 있는 사내를 보며 왜 그러고 있냐는 듯 쳐다본다.

“뭐해? 시작해.”

“아. 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가지만 알도프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다.

전문적인 의사가 아니다 보니 바늘의 깊이는 일정하지 못하다.

너무 깊게 들어갔다 싶은 순간에도 알도프는 그저 말없이 위스키를 마실 뿐이었다.

이윽고 잠시 눈을 감는 알도프.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호텔 방 안에는 그저 삭막한 가위질 소리와 살을 꿰뚫는 바느질 소리만 들린다.

그렇게 한 시간여가 지나자 사내는 이마의 구슬땀이 잔뜩 맺혔다.

마지막으로 실의 끝부분을 돌돌 말아 묶은 다음 가위질로 끊어낸다.

사내는 그제서야 숨을 몰아쉬며 장갑을 툭툭 벗는다.

“네. 봉합은 잘 끝났습니다. 하지만 상처가 너무 깊어 큰 병원은 한번 가셔야...”

“알겠어.”

자신의 자켓에서 지갑을 꺼낸 알도프가 수표 한 장을 꺼낸다.

액수를 본 사내가 화들짝 놀란다.

만 달러의 수표였다.

“저..그..”

“가져가. 대신...”

알도프가 입에 지퍼를 잠그는 시늉을 하자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가방을 챙겨 빠져나간다.

사내가 자리를 벗어나자 알도프가 볼레로를 바라본다.

“볼레로.”

“왜.”

“결속력이 없다 그랬지?”

“어.”

알도프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워 앉았다.

“모두 집중.”

포그스컬스 사내들은 모두 알도프를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옐로우 맘바놈들 한 명 죽일 때마다 100만 달러. 캡틴 급을 잡은 사람한테는 1000만 달러.”

사내들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흐리멍텅한 눈은 맑아지며 순식간에 열의가 타오른다,

옐로우 맘바 둘셋만 잡으면 번듯하게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캡틴이라도 잡는 날에는 돈방석에 앉는 것이다.

“볼레로. 결속력은 말이야.”

알도프는 지갑을 손끝으로 잡아 살짝 흔든다.

“이걸로 하는 거야.”

순식간에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알도프였다.

그 모습에 볼레로는 씨익 미소 짓는다.

피는 못 속인다.

그에게도 바로크와 같은 보스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내려다볼 재능이 있다면 아마 알도프가 가지고 있는 거겠지.’

알도프는 위스키를 한입 더 들이키며 인상을 찡그린다.

“크으. 정신들 바짝 차려. 마지막이다. 이번일만 잘 끝나면 일반인들은 평생 구경도 못 할 액수의 현금을 손에 얻는 거야.”

알도프는 창밖을 바라본다.

라스베이거스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층 빌딩.

그가 씨익 미소 짓는다.

“옐로우 맘바. 백두호. 이번에 다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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