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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86화 (186/204)

186화 : 4년에 한 번 오는 날.

끼이익!

차는 완전히 뒤집혀져 한참을 도로에서 미끄러졌다.

창문은 모두 깨졌고 문은 반쯤 찌그러져 도저히 방금까지 이용한 차라고 보기 힘들었다.

퍼엉!

차는 굉음과 함께 엄청난 크기의 불이 타올랐다.

불길에 휩싸인 차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고 타오르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 순간.

퍼억!

퍼억!

누군가 차 문을 거칠게 발로 차댔다.

이윽고 문을 고정하는 칩이 부서지며 큰 소리와 함께 차 문이 떨어져 나갔다.

두호가 이마에 피가 흐른 채 인상을 찡그린다.

그는 안간힘을 쓰며 누군가를 꺼내려 하고 있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예수였다.

여성이지만 좁은 차 안과 실신한 그녀를 차 안에서 빼내기는 쉽지 않았다.

두호는 이마의 핏줄이 드러날 만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제발...”

이윽고 차 내부의 걸려있던 그녀의 구두가 벗겨지며 예수가 쑥 하고 빠져나왔다.

차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놔야 했기에 서두르는 두호.

도로 한켠에 예수를 눕힌 다음 자신의 외투를 벗어 그녀의 목뒤에 껴놓았다.

살짝 얼굴을 다가가 그녀가 숨을 쉬는지 확인한다.

다행히도 아직 그녀는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얕은 숨이었고 안심하긴 일렀다.

“으으...”

들려오는 신음소리에 두호는 고개를 돌린다.

준모가 창문으로 상체만 빠져나온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과 예수보다 더욱 심각한 상태였다.

“준모야!”

“형...형님.”

서둘러 달려가 준모를 꺼내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준모는 고통스러운지 인상을 찡그리며 괴성을 질렀다.

“아악!”

“뭐야. 왜 그래.”

“다리... 다리가 안 움직입니다. 형님.”

몸을 낮춰 차량 내부를 살펴보니 시트에 스프링이 튀어나와 그의 정강이를 꿰뚫었다.

정면으로 시작해서 종아리까지 뚫고나와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자세히 바라보니 무릎까지 뒤틀려 있었다.

지금 살아있는 게 용할 지경이었다.

준모는 미소를 지으며 두호의 손을 잡는다.

“형님 저 보다... 먼저 기사님을 부탁드립니다.”

“준모야!”

준모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나온다.

자신 역시 고통스럽지만 억지로 참아내고 있는 것이다.

“형님 어서요...”

“잠깐만 버티고 있어. 금방 다녀올게.”

두호는 서둘러 운전석을 향해 뛰어간다.

운전기사는 목이 축 늘어져 의식을 잃은 듯 보였다.

몸에는 특별한 외상이 없었지만 이상하리만큼 그는 움직임이 없었다.

두호는 곧바로 약간 벌어진 문틈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으아아아!”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두호가 힘을 주지만 요지부동이다.

두호가 열고 나온 문보다 더욱 망가진 문의 상태.

두호는 고개를 돌려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을 찾아본다.

이윽고 반대쪽 차선까지 날아간 부러진 앞 범버를 발견했다.

쏜살같이 달려가 부러진 앞 범퍼 들고 와 문틈 사이로 집어넣기 위해 주먹으로 때려댔다.

손이 부러질 만한 상황이지만 두호는 지금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겨우 들어간 앞 범퍼를 이용해 지렛대의 원리로 문을 여는데 성공한 두호.

곧바로 안전벨트를 풀어 운전기사를 들춰맨다.

그 순간 멀리서 경적이 울리며 차 한 대가 다가온다.

탁현과 데이비드가 타 있는 후발대 차량이었다.

두호가 예수의 옆에 사내를 눕힌 다음 다급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차는 멈춰 섰고 이내 탁현과 데이비드가 달려 나온다.

“이게 뭔 일 입니까.”

“폭탄 테러를 당했습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저기 준모가 아직 못 나왔습니다.”

“데이비드는 구급차를 불러주십시오.”

“네!”

후발대 차에서 경호팀 사내들도 도움을 주기 위해 달려 나왔다.

준모는 이제는 버틸 체력이 없는 듯 조금씩 눈이 풀려간다.

두호가 가볍게 준모의 뺨을 때렸다.

“자면 안돼! 눈 떠!”

과다출혈 상태에서 잠을 자게 되면 호흡을 조절할 수가 없다.

억지로라도 눈을 뜨게 해 강제로 숨을 내뱉어야 한다.

하지만 차를 뒤집으려 살짝 밀자 준모가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내뱉는다.

“으으으...”

사내들이 어쩔 줄 몰라하자 두호가 경호팀 사내에게 손을 뻗는다.

“총 있습니까?”

“네?”

“총 있냐구요!”

“아. 네네.”

경호팀 사내가 권총집에서 권총을 꺼내 두호에게 건네준다.

탁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두호씨 뭐하시는...”

“나오세요.”

두호는 순식간에 약실과 탄알집을 확인한다.

실탄이 들었음을 확인하고는 준모의 앞에 엎드린다.

그 순간 차량 앞에 불이 다시 타오른다.

2차 폭발이 시작하려는 것이다.

두호는 망설일 틈이 없었다.

“준모야 움직이지 말고. 잠깐만 참아라.”

이윽고 울린 총성.

탕탕!

준모의 허벅지를 꿰뚫었던 시트의 스프링이 부러졌다.

“빨리 꺼내세요!”

“아...예!”

사내들과 탁현이 달려들어 준모를 빼내자 준모는 그대로 털썩 고개가 떨어진다.

정신을 잃은 것이다.

예수의 옆으로 옮겨놓는 순간.

차량이 다시 한번 굉음과 함께 폭발해버린다.

사람들은 모두 휘청거리며 눈이 휘둥그레진다.

운전기사의 옆에 준모를 눕히자 모두를 밀치고 두호가 달려온다.

자신의 상의를 길게 찢어 준모의 상처 부위를 동여매 지혈한다.

“상처 부위를 살짝 높게 들어주십시오. 떨어지면 안 됩니다.”

“네!”

경호원 사내가 다리를 살짝 받쳐들자 두호가 준모의 몸 위로 올라탄다.

준모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지고 있었다.

두호는 절실한 표정으로 흉부 압박을 시작했다.

“제발. 제발...”

***

늦은 밤.

래진은 화장터에서 조금 떨어진 벤치에 앉아 있었다.

“우리 참 철이 없었다. 그때는 정말 뭐든지 다 할 것 같았지. 세상에 있는 돈과 여자는 다 우리 것이라고 느꼈는데.”

그의 옆에는 작은 유골함이 있었다.

래진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옆에 앉은 유골함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상철아?”

그는 유골함을 마치 진짜 상철처럼 쓰다듬는다.

얼마 전 필리핀에서 송환된 그의 시체는 신원불명자로 분류되어 화장되었다.

한국이라는 분명한 국적이 있었고 유상철이라는 이름이 존재하지만 그의 신원을 드러내면 국제적으로 큰 문제가 되기에 내린 가슴 아픈 결정이었다.

그의 유골함 옆에는 생전 그가 사용하던 장비들이 놓여져 있었다.

이윽고 래진의 미소는 사라지고 눈가가 촉촉해진다.

“미안하다. 상철아 정말 미안하다.”

그는 유골함을 부여잡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동생을 또한번 사지로 밀어넣는 내가 미친놈이다. 그딴 명령을 내리는 내가 무슨 형이란 말이냐.”

자신이 가장 후회하는 명령 두 개가 있었다.

도혁에게 말한 모술로 이동하라.

상철에게 내린 무기를 절대 사수하라.

두 명령으로 인하여 자신이 아끼는 동생 둘과 알파팀 브라보팀 전원이 죽었다.

자신은 이들에게 형이었나.

아니면 매정한 보스였나.

성공적인 리더쉽이었나.

목표지향적인 인간인것인가.

그 복잡한 물음은 래진을 괴롭게만 하였고 그 어떤 다짐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제수씨 얼굴은 어떻게 보냐... 상철아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이냐.”

실로 무의미한 싸움이었다.

설령 이 싸움을 승리로 끝낸다 할지라도 동생들과 부하들의 시체 위로 쌓아 올린 영광이 다 무슨 의미인가.

잃을 게 많은 사람들이 싸움을 피하는 이유는 다 이런 식이다.

래진은 이제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상철아.”

그는 유골함에 얼굴을 파묻은 채 한참을 오열했다.

잠시 후 그런 래진의 귀에 누군가의 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래진은 파묻은 고개를 들어올려 눈물을 닦는다.

“그래. 나는 매정하고 목표지향적인 나쁜 인간이다.”

래진은 손을 뻗어 생전 상철이 사용하던 장비들 중 칼 하나를 뽑아든다.

“그래도 동생의 복수는 해주는 사람이란걸 알아둬라.”

그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걸어나오는 사람을 바라본다.

“또 보네. 우리.”

어둠 속에서 섬뜩한 눈빛을 드러내며 다가오는 사람.

알도프 코와르키였다.

“꽤 늦었군.”

“그쪽과 다르게 나는 공인이라서 말이지.”

래진과 알도프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간 원흉.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심장을 난도질하고 목을 부러뜨리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내는 중이었다.

알도프가 주위를 차분히 살펴본다.

아무런 인기척과 서늘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윽고 피식 웃으며 래진을 바라본다.

“진짜 혼자네.”

“내가 할 말이다.”

래진 역시 그가 혼자 왔음을 알고 놀라는 중이었다.

자신과 다르게 비겁한 수를 쓸 것임을 예상했다.

하지만 의외로 그 역시 자신과 같이 혼자서 온 것이다.

“어째서지?”

“뭐?”

래진은 눈을 좁혀 알도프를 바라보았다.

“왜 정말로 혼자서 온 것인가.”

“그걸 질문이라고 하다니. 아저씨.”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잠시 하늘을 쳐다본다.

만약 조명이 없었다면 바로 앞의 사람도 못 알아볼 만큼 어두운 밤이었다.

“복수를 남의 손에 맡기는 놈이 어디있어. 그건 하류 인생들이나 하는 짓이지.”

자신의 예상과는 달랐지만 의도 자체는 생각한 바와 똑같았다.

“그렇지. 그 맛을 아는 놈이었구만.”

래진에게 알도프는 그저 햇병아리일 뿐이었다.

저 어린놈이 걸음마를 막 뗐을 때 자신은 이미 전설이 되었으니까.

“죽은 우리 형이 그러더라고. 래진을 뛰어넘어야 진짜 일등이 되는 거라고.”

“시체가 그런 말도 하던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눈깔이 뒤집혀서 달려들 만도 했지만 알도프는 그저 웃어넘겼다.

“죽은 게 뭐. 인간은 누구나 다 죽으니까.”

알도프가 외투를 벗어 던진다.

가죽끈으로 만들어진 칼집이 훤히 들어난다.

발검(拔劍)의 소리를 느끼는 듯 아주 천천히 칼을 뽑아든다.

시잉.

래진의 눈이 좁혀진다.

경력은 짧을지 몰라도 실력은 이미 정상급이다.

‘영철이가 애먹을만 했구만.’

자신이 뽑은 칼을 천천히 감상하는 알도프.

“내가 그 엿 같은 전쟁 바닥에서 살아남으면서 느낀 게 하나 있어.”

“뭐지.”

알도프는 칼을 늘어뜨리며 무표정한 얼굴로 변했다.

래진은 그 모습을 보며 땅에 침을 한번 뱉는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알도프의 살기를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분위기가 변했군.’

아까는 뜨겁게 타오르는 활화산 같았다면 지금은 또 다르다.

조용히 모든 걸 집어삼킬 파도가 되었다.

“세상엔 다 주인이 있더라고. 건물이나 땅은 물론이고 바닥에 떨어진 빵 한 조각까지도.”

“당연한 것 아닌가. 먼저 태어난 사람이 가진 유일한 장점이니까.”

래진의 담담한 말에 알도프가 큰 소리로 웃는다.

“그래 맞아. 그렇게 가진 놈들은 독하고 앞뒤를 가리지 않더군. 그래서 결심했어.”

알도프는 래진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래진 역시 망설이지 않고 마주 다가간다.

“더 독하고 더 앞뒤를 가리지 않겠다고.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그런 감상적인 짓은 사치라고 생각해.”

둘의 걷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아저씨는 아저씨의 복수를 해.”

알도프가 섬뜩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난 우리 형 복수를 할 테니까.”

순식간에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진다.

챙!

엄청난 속도로 칼이 부딪히자 불꽃이 튄다.

알도프는 곧바로 몸을 숙여 래진의 하체를 노리며 칼을 휘두른다.

그러나 다리를 살짝 뒤로 빼내 칼을 피해낸 래진.

이윽고 물 흐르듯 그의 안면을 향해 니킥을 날린다.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기절을 할 만큼 완벽한 각도였지만 알도프는 달랐다.

괴기하다고 느껴질 만큼 몸이 사선으로 틀어지며 래진의 니킥을 피해낸다.

그리고 다리로 향했던 칼은 어느새 래진의 안면으로 향한다.

슈웅!

래진의 코 앞을 지나가는 알도프의 칼.

두 사람은 순식간의 자세를 재정비한다.

지나간 공격을 분석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쏟아내야 한다.

“흐아!”

“하압!”

두 사람은 엄청난 기합과 함께 서로에게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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