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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85화 (185/204)

185화 : 4년에 한 번 오는 날.

실바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케이지 안을 바라보았다.

지금껏 알도프의 경기는 솔직히 말해서 서커스에 가까웠다.

최강의 맹수를 과연 누가 꺾을 것인가.

사람들은 그가 무너지길 바라면서도 그의 승리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 궁금해 했다.

하지만 알도프의 선언은 분명한 응징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침을 꿀꺽 삼키는 실바의 옆에서 레이첼이 말없이 일어난다.

“레이첼.”

“네?”

레이첼은 뭘 그렇게 심각하냐는 듯 실바를 바라보았다.

어이없는듯한 표정을 실바가 짓자 그녀는 싱긋 웃으며 걸어나간다.

그녀의 뒤를 재빨리 실바가 따라붙는다.

“레이첼!”

“손 한 번만 흔들어줘요. 레이첼!”

한 팬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반가워한다.

레이첼은 그의 손을 가볍게 잡아 입을 맞춰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강렬한 서비스에 팬들은 정신을 못 차린다.

성공한 여성 사업가.

남자들의 처절한 콜로세움의 주인.

그녀의 인기는 웬만한 격투기 선수들과 비견 될 만하다.

두 사람은 선수들이 이용하는 통로에 들어섰다.

“실바.”

“네. 레이첼.”

“화살은 시위를 떠났고 그 화살은 과녁만 보고 날아가는 것이죠.”

“그게 무슨 뜻 입니까.”

앞서가던 걸음을 멈춘 그녀가 실바를 돌아본다.

이윽고 싱긋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친다.

“불어오는 바람. 관객의 환호성. 사수의 신경을 방해하는 그 모든 것들은 경기의 일부죠. 그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까지 사수의 실력이라는 얘기입니다.”

실바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저 열심히 달리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자는 의연한 말처럼 했지만, 실바는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이미 이 미들급의 판도는 레이첼이 손도 못 댈 만큼 어지러워졌구나.’

레이첼은 그의 속마음처럼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미들급의 앞날이 궁금해지네요.”

문득 두호의 얼굴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왜인지 모르게 응원하고 싶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사람.

베테랑 파이터들에게도 듣지 못했던 말을 들은 탓인가.

너무나 아깝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왜인지 이겼으면 좋겠네요. 다른 걸 다 제쳐두고라도.”

“네?”

실바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자 레이첼은 어깨를 으쓱한다.

“아니에요. 실바. 시간 있으면 저녁이나 같이 먹죠.”

“네. 레이첼.”

두 사람은 그렇게 계속 걸었다.

***

탁현이 대기실의 중계화면을 끄자 데이비드가 신음에 가까운 한숨을 내쉰다.

“독이 바짝 올랐군요.”

탁현이 두호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

그러나 수많은 훈련과 경기들을 지켜본 세컨의 입장으로써 그를 잘 안다.

처음 느끼는 듯한 긴장감과 불타오르는 승부욕.

상반되는 두 감정이 뒤섞여 저런 오묘한 표정이 나오는 것이다.

탁현이 슬쩍 미소 짓는다.

‘처음 느껴보는 위기감이겠지.’

평소 알도프의 스타일은 철저한 아웃파이팅으로 승패 자체에 집착하는 스타일이다.

착실하게 점수를 쌓아올려 실점을 경계하고 조금이라도 위험한 전략은 지양한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그의 압도적인 피지컬과 냉철한 머리는 처음으로 승패가 아닌 감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엄벌(嚴罰).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두호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잔혹한 경기 운영과 랭킹 2위를 순식간에 찍어누르는 실력.

이 모든 무기는 너를 향할 것이라는 경고.

“어떠십니까? 데이비드.”

데이비드는 팔짱을 끼며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음. 사실 저 역시도 처음 보는 모습입니다. 그는 항상 장난스러운 모습이지만 속내는 철저하게 감추는 게 특기죠. 그러나 오늘 모습은...”

데이비드는 말끝을 흐렸다.

그 뒷말은 말해주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말이다.

두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늘 하던대로 하면 됩니다.”

예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는 워낙 유명한 악인이니까요.”

레이첼에게 직접 듣고 풍문에 떠도는 소문에 다음 경기를 긴장하며 기다리기엔 충분했다.

두호는 그저 싱긋 웃었다.

“괴물대 악인. 재밌네요.”

그의 썰렁한 농담에 대기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웃음이 터져 나온다.

어차피 저지른 일이다.

이제는 달려야만 한다.

“이번에도 역시 잘 부탁드립니다.”

준모가 거친 목소리로 크게 소리 지른다.

“팀 코리안 몬스터!”

사람들은 서로 눈빛을 맞춘다.

“화이팅!”

당찬 기합과 함께 모두 짐을 챙겨 복도로 빠져나왔다.

두호가 방 문을 열고 나오자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어이. 옐로우 몽키.”

두호가 슬쩍 다가오자 어둠 속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걸어나온다.

알도프와 골드 스피릿.

그리고 그의 포그스컬스 동료들.

각자 두호와 알도프를 선봉에 세운 채 서로 엄청난 신경전을 펼친다.

적이다.

서로를 물어뜯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적.

알도프가 두호에게 한 발짝 다가선다.

“일을 아주 시원하게 저질렀어?”

그러자 데이비드가 싸늘한 표정으로 팔을 뻗어 알도프의 접근을 막는다.

“불필요한 접촉은 지양해주시죠.”

“당신이나 손 치워. 어디 챔피언 몸에 손을 대?”

다니엘이 한 발자국 걸어나와 데이비드를 노려본다.

순식간에 분위기는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여유로운 표정으로 다니엘을 진정시키는 알도프.

“다니엘 굳이 화낼 필요 없어. 어차피 얼마 안 남은 목숨들이야.”

두호가 미소를 지으며 알도프를 바라본다.

“여전히 겁먹은 건가?”

알도프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지난번 XFC 본사에서 들었던 말이 다시 한 번 떠오르며 순식간에 불쾌감이 전신을 감싼다.

다시 한 발자국 더 두호에게 다가간 알도프.

서로 눈을 마주쳤고 그 누구도 피하지 않았다.

‘묘한 놈이야.’

알도프가 솔직하게 내린 두호의 대한 평가였다.

애송이 같지만 어떠한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알고 있다.

저 눈 뒤에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것을 느끼며 살고 있는지.

두호의 목표점이 돈이 아닌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음이 읽힌다.

이 바닥에서 저런 눈빛은 딱 두 종류다.

‘폭력 그 자체를 사랑하는 놈이던가...’

두호를 슬쩍 위 아래로 흝어보는 알도프.

‘브루스 리(bruce lee. 이소룡) 같은 타입이군.’

이소룡.

그는 철학자이자 무도인이다.

- 만 가지의 발차기를 할 줄 아는 사람보다 한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한 사람이 두렵다.

그는 승리의 영광보다는 인간의 깨달음에 집중하기 위하여 무도를 택한 것이다.

자신과는 지극히 상반되는 모습.

두호 역시 천천히 알도프의 몸을 살핀다.

‘과연 세계 제일이라고 불릴 만한 몸이다.’

그의 잔혹한 심성과 장난스러운 성격의 대비되는 완벽에 가까운 밸런스.

강해지기 위하여 어떠한 사선을 넘어다니고 망설이지 않았는지 단번에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에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하였다.

- 붙으면 내가 이긴다.

알도프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두호의 어깨를 툭친다.

“케이지 안까지만 올라와봐. 그것만 하더라도 대단한 업적이니까.”

그는 여유롭게 두호를 스쳐 지나간다.

이윽고 길을 막고 서 있는 탁현과 팀 코리안 몬스터들을 보며 싸늘하게 말한다.

“비켜. 뒤지기 싫으면.”

그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킨 사람들이 마지못해 길을 터준다.

홍해처럼 길이 뚫린 그 뒤를 알도프와 그의 동료들이 걸어간다.

예수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역시나 불쾌한 사람이네요.”

그녀가 동의를 구하는 듯 두호를 바라본다.

그러나 두호의 표정은 사뭇 달랐다.

아까보다 더욱 잔잔히 가라앉은 표정.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었다.

***

잠깐이지만 달콤한 휴식을 취하는 찰리팀.

지난 몇 달간의 격전으로 제대로 쉬지도 못한 그들에게는 정말 꿀맛같은 시간이었다.

영철이 오랜만에 맥주 한 캔을 쭉 들이키며 입을 닦는다.

“이 좋은 걸 잊고 지냈네. 인생 참.”

팀원 하나가 핸드폰 게임을 하며 무심하게 뱉었다.

“그러게 알도프까지 진작에 죽였으면 벌써 250차 정도까지 마셨을 겁니다.”

영철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순식간에 남은 캔의 맥주를 다 비워낸 다음 캔을 바짝 구긴다.

이윽고 게임을 하는 팀원의 머리에 훽하니 던진다.

깡!

사내가 머리를 매만지며 바닥으로 쓰러지자 다른 팀원들이 모두 낄낄거린다.

영철이 인상을 찡그리며 사내에게 한마디 한다.

“나라도 되니까 살아나왔지. 너였으면 벌써 장례식 시작했어 임마.”

“그래도 맥주캔 던지는 건 너무 한 것 아닙니까?”

“지휘관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 즉결처형.”

편안한 분위기 속 래진이 방에서 나왔다.

팀원들이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래진을 맞이한다.

그러나 래진의 모습은 평소와 완전히 달랐다.

전투 사막화는 명품 G사 구두로 바뀌어있었다.

검정색 슈트와 검은 베스트.

멋지게 넘긴 머리는 평소의 야인같던 모습의 래진이 아니었다.

팀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래진을 추켜 세우니 그가 질색을 하며 손사래를 친다.

“됐어. 이 자식들아.”

“어디 가십니까?”

영철 역시 오랜만에 보는 그의 복장에 의아한 표정이었다.

래진은 오래된 롤렉스 시계를 차며 싱긋 웃는다.

“일이 있어서. 쉬고들 있어.”

이윽고 래진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며 카드 한 장을 올려놓는다.

“오늘 마음껏 먹어라. 나는 내일까지 못 들어오니까 푹 쉬고.”

찰리 팀원 하나가 손을 번쩍 쳐들며 싱긋 웃는다.

“레스토랑에서 안심 썰어도 됩니까?”

“마음대로 해 새끼야.”

래진은 장난스럽게 욕을 한번 뱉고는 몸을 돌린다.

기뻐하는 찰리팀을 뒤로하며 걸어가는 중 영철이 배웅을 나선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없다. 너도 푹 쉬어.”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진 래진이 말없이 영철을 돌아본다.

“고생했다. 그동안.”

“뭡니까. 어색하게.”

영철이 인상을 찡그리자 그의 어깨를 툭치며 래진이 미소 짓는다.

“그냥. 애들 잘 챙겨라.”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가는 래진을 영철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간 래진은 어딘가 힘없이 걸었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영철은 무언가 불안한 기운을 느끼며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본다.

***

차에 탑승하는 코리안 몬스터.

XFC 측에서 제공해준 차량으로 호텔까지 이동하기로 한 것이다.

“출발하시죠.”

차량에는 두호와 예수 그리고 준모가 탑승해 있었다.

운전 기사도 XFC에서 보내준 사람이 맡아주고 있었다.

라스베이거스의 밤은 여전히 뜨거웠다.

두호가 말없이 창문을 바라보자 예수가 서류 하나를 보여준다.

“XFC에서는 4월에 경기 진행을 바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4월이 메인 이벤트가 가장 적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기도 좋으니까요.”

“그렇군요.”

두호가 건성으로 대답하자 예수가 그의 얼굴을 슬쩍 바라본다.

“무슨 고민 있으세요?”

“아닙니다. 조금 피곤하네요.”

“아무래도 알도프 때문이신가요?”

예수와 두호는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매니저의 역할은 선수의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것 역시 필요하다.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며 두호의 기분을 살피는 와중.

차는 라스베이거스를 벗어나는 국도에 진입했다.

그 순간 멀리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온다.

어떠한 기억이 스쳐지나가는 두호.

그가 거친 목소리로 외쳤다.

“준모야! 고개 숙여!”

“네?”

이윽고 두호가 예수를 다급하게 껴안는다.

그리고 오토바이가 멀어지자 귀청이 찢어진다.

-퍼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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