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 4년에 한 번 오는 날.
내전이 진행중인 소말리아.
“형. 나 배고파.”
“나도 배고파.”
어린 바로크와 알도프가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길거리 위에 있다.
주위에는 불타오르는 차와 싸늘해진 시체가 마치 낙엽처럼 뒹굴고 있었다.
순간 알도프의 눈이 빛난다.
어디론가 재빨리 달려가는 그를 보며 바로크가 의아해한다.
“어디가?”
“잠깐만!”
이윽고 알도프가 불타는 차량 앞에서 멈춰선다.
갑자기 몸을 숙이며 차량 밑으로 기어들어간다.
바로크는 깜짝 놀라며 알도프에게 달려간다.
이미 전소가 거의 완료된 차량이지만 혹시나 재폭발의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뭐하는 거야! 얼른 나와!”
그 순간 알도프가 헤벌쭉 미소를 지으며 차량 바깥으로 다시 기어나왔다.
별일이 없음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바로크.
알도프의 얼굴은 기름때와 검은 재로 인하여 새까매졌지만 한 손을 들어올려 미소를 짓는다.
미제 건빵.
차량 밑에 버려진 가방에서 삐져나온 것을 발견하고는 곧장 달려든 것이다.
“이걸 본거야?”
“응.”
눈이 좋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주위를 파악하는 시야나 동체 시력까지 자신의 동생이지만 가끔 놀라울 때가 있었다.
곧바로 건방 봉지를 뜯어 한 주먹을 바로크에게 건넨다.
양손으로 조심히 받은 바로크가 한입에 건빵을 털어 넣는다.
볼이 씰룩거릴 만큼 많은 양의 건빵.
목이 막힐만도 했지만 두 아이는 한참을 굶었는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이 꼬맹이들.”
험상궂은 흑인 사내가 한 손에 칼을 늘어뜨리며 두 사람에게 다가온다.
바로크와 알도프는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에서 위험한 사람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정부군과 반군.
그리고 이 혼란을 틈타 생겨난 갱단들.
그 어느 곳도 국민을 보호해주지 않았고 약한 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적자생존(適者生存) 그 자체인 소말리아.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아이들은 팔아넘기고 위해를 가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알도프는 슬쩍 건빵봉지를 자신의 등 뒤로 집어넣었다.
“어머니는 어디 계시지?”
“아저씨가 뭔 상관이야.”
까칠한 바로크의 말투.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듯 곧바로 도망갈 준비를 하였다.
사내는 슬쩍 주위를 살펴본다.
부모가 되어보이는 사람은 없고 옷도 며칠을 갈아입지 못한 듯 구질구질하다.
이 말인즉슨.
사내가 섬뜩한 표정으로 씨익 미소를 짓는다.
“고아라는 얘기구나,”
“알도프 튀어!”
바로크의 외침에 알도프는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고 바로크는 땅에서 모래 한 줌을 집는다.
이윽고 사내의 얼굴을 향해 흩뿌린다.
“이 새끼들이!”
사내가 눈에 모래가 들어간 듯 세차게 비비는 동안 알도프와 바로크는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쳤다.
하지만 아이와 어른의 속도는 신체 크기 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곧바로 알도프의 뒷목을 사내가 거칠게 잡아챘다.
알도프가 발버둥을 쳐보지만 어림도 없었다.
“이거 놔!”
죽을 힘을 다해 발길질을 해 사내의 낭심을 걷어 차버린다.
“으윽...”
결국 사내는 알도프를 놓쳤고 자유로워진 알도프가 힘겹게 한숨을 내쉰다.
이윽고 누군가 알도프의 옆을 스치듯 달려간다.
바로크가 벽돌을 집어든 채 사내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싸늘하게 굳은 표정.
이 아이의 나이대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아니 나와서는 안 되는 표정이었다.
뻐억!
사내가 머리를 붙잡고 쓰러지지만 바로크는 계속해서 내리찍었다.
뻐억!
뻐억!
사내의 머리는 완파가 되어 바닥으로 피와 뇌수가 쏟아진다.
알도프가 겁먹은 표정으로 슬쩍 바로크의 옷을 잡는다.
“형...”
“알도프.”
알도프의 만류에 그제서야 벽돌을 내려놓는 바로크.
그 역시 체력적으로 한계였는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울먹거리는 알도프의 양 어깨를 잡으며 바로크가 냉정한 표정으로 말한다.
“살아남는 방법은 정말 똑똑해지거나. 정말 강해지는 수밖에 없어.”
알도프가 울먹거림을 겨우 참아내며 옷 소매로 눈물을 닦는다.
“미안해. 이런 현실에 살게 해서. 하지만 기억해둬. 인간은 친구가 아니야. 강자와 약자로 나뉠 뿐이지. 꼭 기억해둬.”
다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알도프의 손을 잡는 바로크.
두 사람은 전쟁터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잠시 우두커니 서 있던 알도프가 바닥에 떨어진 사진을 바라본다.
이윽고 무표정한 얼굴로 볼레로의 상의를 열어젖혀 순식간에 권총을 빼어든다.
하지만 볼레로가 그의 손목을 잡아챈다.
“뭐하는 거야?”
“놔. 죽기 싫으면.”
“정신차려.”
그러나 알도프는 순식간에 볼레로의 손목을 쳐내고 걸어간다.
볼레로는 걸어가는 알도프를 몸으로 막아내며 어떻게든 그를 저지하려 했다.
“이 새끼야. 이제는 너가 포그스컬스를 이끌어야 해.”
“제발 놔줘 볼레로. 널 죽이고 싶진 않다.”
그 순간 XFC의 진행요원 한 명이 멀리서 알도프를 부른다.
“알도프 코와르키 선수! 이제 곧 경기 입장...”
흥분한 듯 몸을 돌려 직원을 겨냥하는 알도프.
직원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뒷 걸음질을 친다.
“으익! 죄...죄송합니다!”
부리나케 도망가는 직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알도프.
그러나 그의 눈빛은 분노보다는 그리움과 쓸쓸함이었다.
볼레로가 그의 손을 천천히 내리며 총기를 회수해간다.
이윽고 자신의 권총집에 집어넣으며 그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는다.
“형님을 대신에 너가 우리를 이끌어야 해. 형님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들거야?”
알도프는 눈을 감았다.
참으로 웃긴 사람이었다.
수십 명의 적들에게 둘러싸여도 자신감을 잃지 않던 사람.
산전수전 겪은 베테랑들을 말 몇 마디로 압도하는 배짱을 가진 인물.
그러나 자신과 부하들 앞에서는 헐렁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형...’
결국 알도프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슬쩍 떨어진다.
그리고 어린 시절처럼 옷 소매로 그 눈물을 닦아냈다.
아직은 아니었다.
알도프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눈빛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인간의 약한 감정은 모두가 배제된 듯 공허만이 남아있는 눈.
어린 시절 그 지옥에서 살아남게 한 독기가 엿보인다.
“볼레로.”
“어.”
“고맙다.”
“됐어.”
알도프는 복도 끝을 바라본다.
먼 듯 싶지만 분명히 멀지 않다.
저 끝의 닿는 법은 단순하게 그저 걸음을 옮기는 것 뿐이었다.
“남은 놈들 싹싹 긁어모아. 저녁에는 다 모일 수 있게 해.”
“알았어.”
대기실 문을 열고 나온 다니엘이 슬쩍 주위를 살핀다.
알도프가 한참을 들어오지 않자 무슨 일이 있나 나와본 것이다.
“바로 경기장으로 입장할 거야.”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방 안으로 소리친다.
“가자!”
곧 안에서는 골드스피릿 직원들이 쏟아져나왔고 걸음을 옮긴다.
알도프 역시 경기장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볼레로를 슬쩍 돌아본 알도프.
“다녀올게.”
그는 직원들을 가로질러 경기장으로 향한다.
“지옥은 내가 태어난 곳이야. 니들도 한번 살아남아 보라고.”
알도프는 자신의 상징인 XFC 미들급 챔피언 벨트를 어깨에 걸었다.
케이지 안은 늘 그렇듯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도전자는 미들급 랭킹 2위.
알렉산더 치마노프.
엘리트 레슬러 출신으로 3년 전 알도프의 2차 방어전 희생양이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풀며 반대편 코너의 서 있는 알도프를 바라보았다.
‘오늘 너의 왕관을 뺏어가 주마.’
그러나 평소의 경기와는 달리 알도프는 굉장히 차분해져 있었다.
다른 선수들이 그런 모습을 보였다면 그저 긴장한 것이겠거니 하겠지만 알도프의 모습은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뭔가 이상하군.’
그러나 기분과는 달리 자신감이 넘친다.
지난 3년간 알도프만을 꺾기 위해 미친 듯 훈련에 매진했다.
피와 땀은 배신하지 않고 수천 번의 스파링은 기어코 자신에게 벨트를 가져다 줄 것이다.
“라인업!”
심판이 두 사람을 케이지 중앙으로 불렀다.
천천히 걸어 나오는 두 사람.
이내 시선을 마주친다.
“3년 전의 복수를 해주마.”
“복수? 너가 그런 걸 알아?”
“뭐?”
알도프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 치마노프.
하지만 알도프의 표정엔 장난기가 전혀 없었다.
“복수는 애송아. 목숨까지 거둬갈 각오로 하는 거야.”
심판이 각 코너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내린다.
훽하니 몸을 돌려 걸어가는 알도프를 멍하니 바라보는 치마노프.
하지만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케이지로 돌아간다.
심판은 양쪽을 바라보며 경기를 준비시킨다.
“레디?”
치마노프가 가슴팍을 쾅쾅 치며 괴성을 지른다.
“으아아아아!”
그 모습에 관객들은 열띤 환호를 보낸다.
“가자! 치마노프!”
“저 새끼 은퇴하기 전에 벨트 뺏어가자고!”
심판이 이번에는 알도프를 바라본다.
“레디?”
알도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판의 손이 하늘로 향한다.
이내 세상을 두 쪽으로 가를 듯 힘차게 떨어진다.
“파이트!”
괴성을 지르며 달려가는 치마노프.
계획대로라면 알도프는 철저한 아웃파이팅으로 유효타를 만들어낼 것이다.
빠지는 그를 수 없이 상상하며 다듬어낸 자신의 그래플링.
그러나 알도프는 오히려 치마노프를 향해 마주 걸어간다.
‘뭐야?’
치마노프는 쾌재를 불렀다.
오히려 자신과 정면승부를 하려 하다니.
자신의 목 두께와 몸통의 너비는 XFC에서도 손에 꼽는다.
“죽어라 알도프!”
호기롭게 날아가는 뒷손.
그러나 알도프는 가볍게 고개를 젖혀 그의 주먹을 피해낸다.
이윽고 무심하게 날리는 카운터 뒷손.
뻐억.
눈이 풀린 치마노프가 비틀거린다.
하지만 알도프는 두호와 달리 그가 쓰러질 순간을 주지 않았다.
한쪽 팔을 겨드랑이로 집어넣어 그를 일으켜 세운다.
이윽고 이미 정신을 잃은 그의 얼굴을 슬쩍 손으로 가린다.
심판과 관객들이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만든 다음 이를 악물고 펀치를 내는 알도프.
얼굴을 통째로 부수는 듯한 엄청난 파열음이 케이지 안에서 울려 퍼진다.
퍼억!
퍼억!
펀치가 여덟 방이 넘어가는 시점 온몸에 힘이 풀린 듯 바닥으로 쓰러진다.
그대로 그의 몸 위로 올라타 마운트 포지션을 잡는다.
이번엔 양손으로 파운딩을 내려치는 알도프.
그 모습에 관객들은 숨소리 조차 낼 수가 없었다.
이것은 스포츠가 아니다.
순수하고 원시적인 폭력.
심판 역시 넋을 놓고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감정이 없어 더욱 무서운 그의 주먹질.
치마노프의 코치가 거친 목소리로 심판에게 일갈한다.
“심판 뭐해! 우리 선수 죽게 내비둘거야!?”
그제서야 심판이 정신을 차리고 알도프에게 달려든다.
하지만 알도프는 주먹을 멈추지 않았고 심판이 겨우 치마노프의 몸을 덮어서야 경기가 멈췄다.
-K...KO! 알도프 선수! 여전히 살아있는 챔피언의 기량을 보여주며 압도적으로 치마노프 선수를 잡아냅니다. 9차 방어전이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천천히 일어선 알도프가 이미 정신을 잃은 치마노프에게 툭 한마디를 뱉는다.
“그럴 각오가 아니라면. 복수는 엄두도 내지 않는 게 지혜다.”
앤드류가 걸어 나와 그의 옆에 선다.
하지만 알도프는 그가 입을 떼기 전부터 마이크를 잡는다.
“놀랐냐? 기대와는 달라서.”
바로크는 관중들한테 손가락질을 해댄다.
“내 몰락을 원했던 새끼들한텐 미안한 소리지만 어림도 없다.”
그는 사자였다.
우리 안에 갇힌 듯싶지만 누구도 그와 같은 곳에 서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남은 한 경기. 다음 경기의 선수는 무조건 죽일거다.”
그 선수는 백두호임이 분명하다.
그리고는 카메라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알도프.
“애송아. 잘 해봐.”
마이크를 땅 바닥에 집어던진 알도프가 케이지를 벗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