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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83화 (183/204)

183화 : 4년에 한 번 오는 날.

4 라운드의 종료를 알리는 소리가 울린다.

“이게 맞아..?”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관객석 사내의 한 마디였다.

아무리 참신한 경기라도 대체로 그림은 비슷하다.

특별한 경기라고 해봤자 일반적인 상황에서 반전이 나오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이 모습은 관객들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얼굴에 피칠갑을 한 채 겨우 숨을 내쉬는 로엘.

하지만 두호의 얼굴은 약간 부은 게 전부였다.

코너 한쪽에 앉아 고개를 숙인 로엘.

그의 코치 길버트는 착잡한 표정으로 그의 앞에 앉았다.

한쪽 눈은 부어 눈이 떠지지 않을 정도.

성한 곳 하나 없이 얼굴에 모든 부위에서 피가 쏟아졌다.

얼굴을 수건으로 닦았지만 금세 피가 쏟아진다.

헛웃음을 지으며 반대쪽 코너의 앉아있는 두호를 바라본다.

‘탁현과 데이비드 저 자식들은 저런 놈을 어떻게 만든 거지?’

길버트가 더욱 답답한 이유가 하나 있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거지?’

실력.

훈련.

아니면 전략이나 운.

그중에 제대로 된 이유가 하나 없었다.

재능이란 비로소 극한의 상황에서나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 정도의 차이가 나는 재능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로엘이 동네 체육관 수준의 선수가 아니라는 건 자신 역시 알고 있다.

만약 그저 그런 재능이라면 지금 이 케이지 안은 고사하고 자신을 만나지도 못했을 테니까.

로엘이 목 안에서 울컥거리는 무언가를 양동이에 탁하고 뱉는다.

핏물이었다.

“눈은 보이냐.”

“한쪽 눈은 안 보입니다.”

로엘의 힘 빠진 대답에 길버트가 한숨을 내쉰다.

자신 역시 알고 있다.

아마 이 경기가 끝나면 로엘의 커리어는 끝이 난다.

로엘의 눈빛이 살아있는 것은 단순히 의지가 강해서가 아님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다.

통증을 못 느끼는 이유는 스포츠에서 단 하나 밖에 없으니까.

모든 걸 통달한 듯한 표정의 길버트.

“수건 던지자.”

“제자 자살하는 꼴 보고 싶으면 그러십시오.”

“인생 길다.”

“제 격투 인생은 짧습니다.”

인생은 길지만 현역으로서의 삶은 짧다.

길버트는 오랜만의 마음에 드는 대답을 한 로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엇나가버린 녀석이지만 지금 당장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선수다.

“체력은?”

“충분합니다.”

“견뎌라. 네가 선택한 경기다.”

“예.”

길버트는 복잡한 표정으로 두호의 코너를 바라보았다.

데이비드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두호의 회복을 도와주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탁현은 두호의 눈을 바라보았다.

집중이라고 하기엔 느슨했고 방심이라고 하기엔 눈빛이 완전히 살아있다.

아마도 어떠한 깨달음이 있었는지 두호의 플레이는 지금껏 보여주었던 것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놀라운 일이군요.”

두호가 탁현의 말을 무덤덤하게 듣는다.

“그렇습니까.”

“왜 끝내지 않는 겁니까.”

두호는 물을 입에 넣은 뒤 살짝 가글을 한다.

이윽고 양동이에 탁하고 뱉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일반적인 프로 선수라면 1라운드에 끝냈을 겁니다.”

“그런데...”

“로엘은 왜냐구요?”

그 순간 마지막 5라운드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때앵!

두호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탁현을 바라보았다.

“그 재능을 가지고. 다른 선수들의 노력을 우습게 만들었으니 벌을 주는 겁니다.”

실로 광오한 한마디.

탁현이 그를 멍하니 지켜보았다.

데이비드가 미소를 지으며 탁현의 어깨를 툭 쳤다.

“내려갑시다. 미스터 탁.”

탁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케이지를 내려갔다.

‘그는 흔한 천재 따위가 아니었다.’

탁현이 코치석으로 돌아와 가볍게 제자리를 뛰며 몸을 푸는 두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신(神)이구나.’

두호는 비틀거리며 걸어나오는 로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온기 따위는 하나 없었다.

‘이 케이지는 너 같은 놈들이 있을 곳이 아니다.’

지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pride-k에서 부상을 입더라도 죽을힘을 다해서 달려들던 참가자들.

각자의 사연을 딛고 목표를 위해 모든 걸 내던지던 그들은 숭고하게까지 느껴졌다.

그들 모두는 이딴 편법 따위 쓰지 않았다.

패배가 죽을만큼 억울하고 싫더라도 그들은 정정당당히 승부했다.

이 상황을 용인하면 안 된다.

“이긴 놈이 강한 것은 당연한 얘기지.”

두호의 한마디에 로엘이 눈을 찡그리며 바라본다.

“뭐?”

“근데 어떻게 이기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야.”

“이 새끼 무슨 헛소리야.”

두호는 피식 웃으며 로엘을 바라보았다.

“주먹으로만 싸워야 할 곳에서 다른 것을 들고 나온 너에게 주는 벌이다.”

더 이상 못 들어주겠는지 로엘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좆까 이 개새끼야. 죽어!”

두호는 다리를 살짝 벌렸다.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팔을 가볍게 들어올려 얼굴 앞에 놓는다.

정석.

이 투기 종목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펀치나 킥 따위가 아니었다.

기본 자세.

두호가 달려오는 로엘을 날카롭게 바라본다.

“달게 받아라.”

로엘은 모든 힘을 쥐어 짜내 펀치를 뻗었다.

약물의 힘인지 도저히 5라운드를 진행한 사람의 펀치 속도가 아니었다.

공기를 찢는 파열음이 미세하지만 들려온다.

이성을 잃은 순간에도 이 정도의 날카로움이 나온다는 것이 오히려 놀라웠다.

하지만 두호는 그 주먹을 끝까지 바라본다.

한 발자국.

단 한 발자국을 옆으로 옮기자 로엘의 펀치는 보기 좋게 허공을 갈랐다.

‘뭐?’

기본자세를 배웠다면 가르쳐주는 것은 스텝이다.

사방(四方)으로 움직이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

두호는 순식간에 로엘의 사각을 잡아낸다.

이윽고 가장 처음 배우게 되는 공격 기술.

앞 손으로 로엘의 왼 뺨에 그림같은 원(1)을 찔러넣는다.

마치 동시에 뻗었다고 오해할 만큼 재빠른 속도로 따라 들어가는 투(2).

퍼억!

입에서 피가 터져나오며 바닥에 로엘이 쓰러졌다.

두호가 쓰러진 로엘에게 천천히 다가가자 심판이 벼락같이 달려들어 막아낸다.

이윽고 다급한 표정으로 손을 좌우로 젓는 심판.

- 경기 끝! 코리안몬스터 백두호 선수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불릿 제이미 로엘을 잡아냅니다!

사람들은 수건과 물병을 던지며 광기에 휩싸였다.

“두호야! 챔피언한테 보내는 메시지 인거냐!?”

“몬스터! 몬스터!”

관객들은 모두 두호의 이름을 연호하며 계속해서 뜨거운 박수를 보내었다.

그러나 두호는 별로 기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메디컬 팀이 빠른 속도로 입장해 들것에 로엘을 태웠다.

케이지를 빠져나가는 메디컬 팀의 모습을 보던 두호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버린다.

로엘과 교체되듯 들어온 앤드류가 큰 소리로 외쳤다.

“백두호 선수에게 다시 한 번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케이지 안으로 들어온 그는 흠칫했다.

로엘의 피로 인해 엉망이 된 바닥.

그리고 케이지 안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남자.

앤드류는 문득 자신이 맹수가 사는 우리 안으로 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두호가 몸을 돌려 자신을 바라본다.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그의 얼굴.

그러나 그와 달리 피에 절여진 글러브를 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낀 앤드류였다.

‘뭐지.’

수많은 경기를 지켜봤지만 이런 기분은 태어나 처음 느끼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선수들과 다른 어떠한 위엄이 느껴졌다.

앤드류는 프로답게 미소를 지으며 두호에게 다가갔다.

“정말 믿을 수 없는 퍼포먼스였습니다. 두호씨 만약 GOAT(greatest of all time.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를 칭하는 용어)가 있다면 두호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감 한 마디 해주시죠!”

두호는 고개를 돌려 탁현과 데이비드를 바라본다.

탁현과 데이비드는 결의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진행해야 할 싸움은 혼자만의 각오론 이겨낼 수 없다.

어떻게 이기는 것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한 사내.

이 마지막 여정을 함께해줄 동료들의 신뢰가 필요했다.

두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쳐다본다.

“알도프. 곧 보자고.”

짧은 한마디.

그러나 모두가 기다려왔던 이야기였다.

- 와아아아!

앤드류를 지나쳐 그대로 케이지를 걸어 나가는 두호였다.

케이지를 벗어난 두호가 입장할 때와 똑같은 길을 걸었다.

두호의 오른쪽으로 한 명이 따라붙었다.

싱글벙글 웃는 표정의 준모.

그리고 두호의 왼쪽에는 싱그러운 미소를 띈 예수가 다가왔다.

그 세 사람의 뒤로 팀 코리안 몬스터와 파이트 매니아의 사람들이 줄지어 따라붙었다.

수많은 플래쉬와 카메라 셔터음이 들려온다.

세간의 이목이 모두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각기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누군가는 정말로 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심 가득한 눈이었다.

또 다른 사람은 결과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으로 두호를 바라보았다.

두호의 도전이 실패로 끝났으면 하는 사람과 성공하길 바라는 사람들의 극명한 반응.

그러나 두호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단순히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었다.

이 발자취를 기억해줄 동료들이 있기에 두호는 그저 괜찮다고 느꼈다.

“해보자고.”

대기실의 모니터를 바라보는 알도프.

불과 두 경기 후가 본인의 경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로엘이 그리 쉬운 친구는 아닌데. 재밌네.”

골드스피릿의 수석코치로 부임한 다니엘이 그의 어깨를 주무른다.

“저렇게 날뛰어봤자 널 만나면 어차피 무너질 놈이야.”

사심 가득한 미소로 알도프를 칭찬하는 그의 모습에서 성격이 유추된다.

데이비드와 달리 그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였다.

실력과 인성보다는 편법으로 사회생활을 버텨온 다니엘.

한참 모자란 능력으로 데이비드의 빈자리를 맡게 되는 영광까지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알도프는 그의 아부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는지 피식 웃었다.

“그렇긴하지. 다니엘. 나 이온음료 좀 가져다 줘.”

“그래 그래. 웜업하게?”

“어. 시작할게.”

자리에서 일어난 알도프는 평소와 같은 루틴을 시작했다.

스트레칭과 가벼운 쉐도잉으로 잠든 몸을 일깨운다.

하지만 그의 쉐도잉은 여타의 선수들과 차원이 달랐다.

포악하면서도 공격적인 움직임.

변화무쌍한 쉐도잉에 코치진들은 그저 말없이 지켜볼 뿐이었다.

9차 방어전.

미들급 최강의 챔피언.

XFC 파운드 포 파운드 1위.

이 모든 평가는 이 쉐도잉을 보기 전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투기 종목의 발을 담군 사람이라면 상상으로만 해봤을 퍼포먼스.

알도프는 그런 움직임을 몸풀기에서부터 보여주고 있었다.

이마에 가벼운 땀이 고이자 슬쩍 손을 뻗는다.

다니엘이 수건을 가져다주니 이마를 찍듯이 땀을 닦아내는 알도프.

다음 경기가 시작하는 듯 하자 티비를 향해 고갯짓을 한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척하면 척인 듯 다니엘이 티비 볼륨을 크게 올린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한 백인 사내가 알도프를 부른다.

이마부터 정수리까지 일본 이레즈미 문신으로 가득한 사내.

포그스컬스 소속이자 알도프의 전담 경호원.

그와 동시에 알도프의 몇 안 되는 친구인 볼레로였다.

“알도프. 잠깐 나와봐.”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볼레로를 바라보지만 그의 표정이 굉장히 심각하다.

“뭔데. 그래.”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대기실을 벗어난 알도프.

볼레로가 종이봉투를 알도프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뭔데.”

봉투를 힘으로 뜯어 내용물을 살펴본 그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의 손에 들린 사진 몇 장.

이마의 핏줄이 돋아나며 얼굴이 시뻘개진 알도프.

이내 바닥으로 사진을 내동댕이 치며 벽을 강하게 때린다.

“으아!”

퍼억!

사진이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앉는다.

그 사진 속에서는 자신의 형인 바로크의 시체가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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