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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78화 (178/204)

178화 : 4년에 한 번 오는 날.

한 사내가 책상의 집기들을 쓸듯이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동수가 턱 아래로 맺힌 땀을 옷 소매로 닦아낸다.

‘끝도 없구만.’

싸움 실력도 실력이지만 사내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자신의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슬쩍 쳐다보았다.

이윽고 자신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늑대처럼 자신을 노려보는 사내들을 마주 노려본다.

“으아아악!”

한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진다.

팔이 빠진 듯 바닥을 뒹구르지만 두호가 거침없이 그의 턱을 차버린다.

빠악!

이윽고 바닥에 쓰러져 축 늘어진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두호.

그 모습에 동수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자신의 팔은 이미 사용불능.

더군다나 방금 전의 발차기 역시 잘못 디디고 찼는지 발목 역시 온전치 못하다.

하지만 두호는 달랐다.

이마에 약간 땀이 맺힌 것을 제외하고는 처음과 달라진 것이 전혀 없었다.

두호가 무표정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다 동수와 눈이 마주친다.

동수의 상태를 확인한 두호는 싱긋 미소 짓는다.

마치 나이 많은 형이 갓 걸음마를 뗀 막내 동생을 바라보듯이.

“힘드십니까?”

“조금 숨이 차긴 합니다.”

“그만하면 훌륭한 겁니다.”

두호는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보는 눈빛과 동수를 바라보는 눈빛이 전혀 달랐다.

자신과 눈이 마주친 사내들은 더 이상 싸우기가 싫다는 듯 시선을 피한다.

그러나 동수를 바라보는 눈빛은 약한 사냥감을 발견한 포식자의 눈과 같다.

‘이제 슬슬 접어야 되겠군.’

교육도 좋지만 동수가 더 이상 다치는 것은 계획에 없는 일이다.

두호가 사내들의 시선을 가로막듯 동수의 앞에 선다.

“지금 당신들을 쫓고 있는 두 무리가 있어.”

사내들의 눈이 찌푸려진다.

“무슨 소리냐.”

아직 전체적인 상황을 접하지 못한 듯 싶었다.

“인터폴과 옐로우 맘바.”

사내들은 역시나 처음 듣는 소리인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인터폴에 잡히면 몇 년 수감생활이나 하다가 나오겠지만, 옐로우 맘바에게 잡히면 알지?”

사내들은 이번에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두호를 바라본다.

블랙러프로 활동하고 있지만 엄연히 따지자면 이들은 포그스컬스 소속일 것이다.

이런 비밀쉘터를 측근이 아닌 사람에게 경비를 맡길 리 없기 때문이다.

바로크가 패배했다?

이것은 상상한 적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 일.

“못 믿겠으면 여기서 하루 더 있어도 좋아. 내일 나 같은 사람 14명 정도가 찾아올 테니까.”

두호가 자신의 상의 안 주머니에서 사진 몇 장을 던진다.

나풀거리다 이내 바닥으로 떨어진 사진.

맹혁이 찍고 수미에게 건네받은 인공섬 전투 현장이었다.

포그스컬스의 사내들과 블랙러프 사내들이 대량으로 사살된 시신들.

그 사진을 보면서도 여전히 사내들은 긴가민가한 표정이었다.

두호의 말을 듣고 꽁무니를 뺀 것을 알면 바로크가 자신을 찾아 나서서 죽일 테니까.

자신들의 앞에서 믿지 못할 실력을 보여주는 두호와 바로크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도 저도 싫으면 계속하고. 하지만 이제는 쉽게 안 갈거야.”

두호가 자신의 바로 옆 나무 의자 등받이를 잡는다.

이윽고 의자 다리를 거침없이 차니 툭 하고 나무 다리가 부러진다.

찌르기 좋게 부러진 나무를 보며 사내들이 식겁한다.

지금껏 두호는 맨손으로 싸웠지만 그의 손속은 무자비했다.

그런 그가 무기까지 들고 싸운다면 설령 이기더라도 자신들은 큰 부상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두호가 말한대로 정말 옐로우 맘바들이 자신의 뒤를 쫓고 있다면 정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목숨을 걸고 도박할 수는 없는 상황.

조금이라도 살 가능성이 많은 곳이 좋다.

“떠나지.”

“잘 생각했어.”

한 사내가 자신이 들고 있던 칼을 품 안으로 집어넣는다.

사내들은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두호가 무엇인가 생각난 듯 살짝 손짓한다.

“그 전에.”

사내가 걸음을 멈추고 두호를 돌아본다.

“당신들 쉘터가 어디야. 은신처나 본부로 사용하는 곳.”

“그것은 왜 묻지.”

두호의 여유로운 표정은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마치 그 대답을 듣고 싶으면 그냥 이 자리에서 싸우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것처럼.

사내들은 흠칫한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

가다 말면 아니 간만 못한다.

목숨을 살려줄 때 다 뱉고 후련하게 떠나는 것이 낫다.

“여기 호수를 끼고 20km 정도 돌면 산 중턱에 위치한 자그마한 산장 보일 거다. 그곳 창고 지하.”

“신뢰할 수 있는 정보겠지?”

사내가 쓴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린다.

“자네 정도 되는 사람이 다음 수를 생각해놓지 않을 리가 없지.”

그 대답에 두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신 역시 수미에게 알아낸 정보가 있다.

미네소타주에서 캐나다로 밀입국을 하는 루트.

만약 허위 정보라면 다시 이들을 쫓으면 그만이다.

“눈치가 빠르군.”

“그런데 얼굴이나 한번 봤으면 좋겠군.”

두호가 단호하게 고개를 젓자 사내가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가자.”

사내들은 모두 풀이 죽은 채 바를 나섰다.

모두 밖으로 빠져나가자 이내 두호가 동수를 바라본다.

“괜찮으십니까?”

“처음부터 쉽게 갈 수는 없는 겁니까.”

두호는 그 말을 듣고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들고 있던 나무를 바닥에 대고 다시 밟는다.

아까와는 다르게 깨끗하게 부러진 나뭇가지를 들고 동수에게 다가간다.

옆에 테이블의 식탁보를 주욱 찢어 동수가 다친 발목에 대고 단단하게 동여맨다.

“만약 제가 그냥 물어봤어도 결국 이랬을 겁니다. 자신과 상대의 실력차와 올바른 현장판단으로 피해를 최소화했으니 저쪽도 꽤나 실력자들이겠죠.”

“그렇군요.”

두호가 부목을 모두 묶어내자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다.

“불편함은 없습니까.”

동수가 신기하다는 듯 땅에 몇 번 발을 디뎌본다.

아까와는 달리 훨씬 움직이기가 용이 했다.

“네. 이런 건 어떻게 다 아시는 겁니까.”

두호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외투를 입는다.

“운동하다 보면 많이 다치잖습니까.”

동수가 별일 아니라는 듯 밖으로 빠져나가는 두호를 말없이 바라본다.

자신보다도 어린 나이.

운동선수라지만 군대 근처도 못 간 사람이 자신보다 더욱 많이 알고 있다.

더군다나 수없이 많은 실전을 겪은 듯 망설임이라는 것이 없다.

동수가 한쪽 다리를 조심스럽게 내밀며 두호를 뒤따라 걸어간다.

가게를 빠져나오자 두호가 기다렸다는 듯이 가게 문을 닫고 셔터를 내렸다.

완벽히 문을 닫은 듯한 모습으로 변한 가게.

두호가 워스키쉬 앞 호수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는다.

그 모습을 따라 동수가 나란히 선다.

“용병으로 살아남는 것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뭡니까.”

“도망치지 않는 것. 지키고 싶은 게 있다면 먼저 달려드십시오.”

동수는 이해하지 못한 듯 눈을 찡그렸다.

그러나 두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

“지금 상비 퍼플 복용했다.”

바로크가 상의를 벗은 채 소파에 누워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몸 관리 잘해. 이제부터는 내가 움직여볼게.

통화 상대는 알도프였다.

그는 이제 바로크를 대신하여 많은 것을 짊어졌다.

몸을 회복시키고 다시 거점을 잡는다.

흩어진 블랙러프와 포그스컬스를 다시 모은다면 자신 역시 아직 기회가 있었다.

스포츠 스타를 저격하지 않을 테니 알도프에게 위협이 될 만한 상황은 없다.

과거 김도혁 역시 그의 손에 죽지 않았는가.

“그래. 바쁠텐데. 몸 조심해라.”

-어. 형도.

짧은 통화가 끊어지고 바로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퍼플이 담겼던 주사기를 만지작 거리는 바로크.

이것은 윈스턴과 포그스컬스가 합작으로 만들어낸 합성 약물이다.

심장이 뿜어내는 혈류량을 높여 회복을 돕고 강제적으로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켜 몸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독자적으로 극비에 제조된 약물.

‘하긴. 운동선수가 아니고서야 누가 관심이나 갖겠냐만.’

그러나 바로크의 기분은 좋지 않았다.

이 약물을 복용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패배했다는 기분이 훨씬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만약 이 약물이 아니었다면 지금 자신은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할 상태임이 분명했다.

손으로 주사기를 움켜쥐자 유리 주사기가 펑하고 터진다.

유리 조각들이 바닥에 쏟아진다.

미처 떨어지지 못한 유리조각들이 손바닥으로 파고들어 핏물이 땅에 떨어지지만 바로크는 무표정했다.

“무엇일까.”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바로크가 하얀 전등을 바라본다.

하지만 보이지가 않는다.

너무 밝아 그 뒤가 보이지 않으니 근원을 알 수가 없었다.

복잡해진 머리를 달래고자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문이 열린다.

바로크는 눈을 뜨지 않았다.

발걸음 소리를 들은 바로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하하. 재밌어. 정말 재밌어.”

일어난 바로크가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냉장고로 향한 그가 다시 맥주 한 캔을 꺼내든다.

“정말 생각을 많이 했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바로크가 맥주캔을 열고 들이키려는 직전 잠시 멈췄다.

“처음? 아니야 아니야.”

고개를 저으며 바로크가 맥주를 한 입 마셨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되거든. 그 정도로 어설프게 계획을 세우진 않으니까.”

맥주를 다시 들이키는 바로크.

이번엔 한 캔을 모두 비우고 나서야 캔을 입에서 떼었다.

“크으.”

몸을 돌려 들어온 사람을 바라본다.

비밀 쉘터로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두호와 동수였다.

“너야. 너가 우리의 레이더에 들어온 이후로 그때부터 모든 게 꼬여가기 시작했지.”

두호는 술집에서도 벗지 않던 마스크를 벗었다.

바로크를 바라보며 씨익 미소 짓는다.

“계시다니 다행입니다.”

두호가 고개를 숙여 바로크한테 인사했다.

그 모습이 우스운지 다시 큰소리로 웃는 바로크.

“정말 알 수가 없는 놈이구만.”

바로크는 캔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는 두호를 향해 조금씩 걸어간다.

20살이라고 들었다.

과연 20살짜리가 부상당한 포그스컬스의 대표를 비밀쉘터에서 만나게 될 확률이 몇이나 될까.

단언컨대 없다.

결국 자신들의 패배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두호가 분명하다.

“어떻게 알았나.”

“물어 물어 왔습니다.”

“둘이서 되겠어? 칼은 맞아봤고?”

“혼자입니다.”

두호가 동수를 바라보며 자리를 비켜달라는 듯 고갯짓을 한다.

망설이던 동수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상철과 다른 선배들을 죽인 바로크를 당장이라도 달려가 찢어발기고 싶지만 지금 자신의 몸 상태로는 방해만 될 뿐이다.

동수가 말없이 뒤돌아 걸어간다.

“직접 대면한 것은 처음이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빚이 많더군.”

“그렇습니까.”

바로크가 책상 위에 올려진 자신의 나이프를 집어든다.

두호 역시 동수에게 넘겨받았던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운명인 게지. 운명인 거야.”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로크가 나이프를 뽑아 들어 수염이 가득한 턱을 긁는다.

“오늘 둘 중 한 명의 빚은 청산하자.”

두호가 칼을 늘어뜨리며 천천히 바로크에게 다가간다.

죽은 브라보 팀원들과 알파 팀.

상철과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채호의 얼굴이 떠오른다.

“곱게 죽지는 않을거다.”

두호가 기합을 지르며 바로크에게 달려간다.

바로크 역시 씨익 미소를 지으며 두호에게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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