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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76화 (176/204)

176화 : 4년에 한 번 오는 날.

어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반면 아버지는 팔짱을 끼며 복잡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너는 왜 항상 일을 갑작스럽게...”

어머니는 순간적으로 차오르는 섭섭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를 아버지가 손짓으로 막는다.

평소 어머니라면 끔뻑 죽는 아버지였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

가장의 무게.

또는 남자의 인생.

두호가 지금 이야기를 꺼내려 하는 것은 부모로서가 아니라 인생을 먼저 겪은 선배로서 듣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것이다.

“잠시 얘기 좀 들어봅시다.”

옅은 미소를 띄운 아버지가 두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두호는 두 사람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진중함과 함께 굳은 결의가 보였다.

“아버지. 어머니.”

“그래.”

두호는 거실의 한켠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킹 챔피언쉽에서 받은 챔피언 벨트가 유리상자 안에 담겨있었다.

집안의 모든 물건중 가장 빛나며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놓인 자신의 벨트.

그 벨트의 의미는 어쩌면 두호 자신보다 부모님에게 더욱 클 것이다.

불안정한 청춘을 겪는 아들의 부모가 처음으로 한시름 놓게 한 선물 같은 벨트니까.

“처음 아버지는 제게 권투를 허락하실 때 무엇을 강조하셨습니까.”

“너의 행복을 위해서 달리라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았다.

지금보다도 훨씬 앳되었던 과거 두호의 얼굴이 스친다.

“너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라 했다.”

모든 투기종목에 부모가 겪는 딜레마.

이 아이가 지금은 운동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혹시나 잘못된다면.

남들보다 월등한 신체와 끓는 승부욕을 가지고 살던 아이들이 엇나가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저는 처음으로 지키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뺏기 위한 싸움을 해볼까 합니다.”

그 말에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고 아버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생을 도망다녔습니다. 가난으로부터. 주위 시선으로부터.”

두호의 한마디에 어머니는 결국 조용히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언제나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는 아들이지만 깊은 내면엔 큰 상처가 있었음을 느꼈다.

‘우리가 너무 경솔했다.’

아버지는 복잡한 표정으로 두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보니. 큰 돈도 벌었고 주위 사람들의 따뜻한 응원도 들었습니다. 소년 범죄자 백두호는 어느새 누군가의 희망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두호의 표정은 평소와 달랐다.

닳고 닳은 도혁이 아니라 진짜 두호가 말하듯 눈 안에 순수함이 가득했다.

“그래서 미안했습니다. 제자신에게. 남들은 갖지 못하는 재능을 가지고 그 재능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제대로 시도조차 못한다면 너무나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그의 눈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담긴다.

너무나 큰 현실의 짐.

그리고 어린 자신까지 짊어져야 했던 늙은 두 사람이.

“저는 처음으로 욕심을 내보려고 합니다. 주먹질로 돈을 버는 삶을 살게 되어 너무나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해봐야겠습니다. 제가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제가 무엇을 이뤄낼 수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두호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왜인지 너무나 처연했고 슬펐다.

“어린 시절의 저에게 너무나 미안할 것 같아서요.”

어머니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너무나 술술 나왔다.

마치 내가 아니라 정말 그 시절을 겪은 두호의 마음처럼.

아버지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두호의 어깨를 툭툭 치던 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이에게 무슨 위로가 필요하겠는가.

이미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 자신을 위한 방법을 아는데.

“넌 가끔 보면 내 아들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단 말이지.”

두호의 어깨를 주무르는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싱크대 옆 작은 서랍을 열고 이내 팔을 깊숙이 집어넣는다.

그곳에서 나온 통장 하나.

두호에게 건네며 아버지가 다시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두호가 이게 뭐냐는 듯 아버지를 바라보자 별 것 아니라는 듯 대답한다.

“너 나중에 출소하면 가게 하나 차려줄까 하고 조금씩 모아놓은 거다. 적금 액수로는 10년은 더 있어야 할 테지만. 그때까지는 우리가 충분히 일할 수 있다고 판단했으니까.”

두호는 통장을 살짝 펴보았다.

내역을 살펴보니 울컥하는 두호였다.

-우리 아들 창업 적금. 입금 500,000원.

아버지는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떠넣으며 농담처럼 말했다.

“그냥 너희 엄마랑 하와이나 가볼걸 그랬나. 너가 챔피언으로 이렇게 잘 나갈지 누가 알았겠니.”

분위기를 애써 무마해보려는 아버지의 노력은 먹히지 않았다.

두호의 눈은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고 결국 고개를 떨어트렸다.

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아이가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인적이 언제인가.

“평생 파도를 거스르지 말라고 가르쳤지만 너의 꿈을 들으니 말을 달리해야겠구나. 굳건히 버티고 서거라.”

두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세상은 흘러간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담담히 바람과 파도를 견뎌내거라. 밀리지만 말아라. 그렇게 한다면.”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들은 너의 뒷모습만 보게 되는 자리에 있을거다.”

두호에게 다가가 따듯하게 안아주었다.

다시 만난 그날처럼.

떠나기 전의 그날처럼.

“그리고 그 자리에 도착했을 때 내 아들은 주위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구나.”

***

래진이 담배 하나를 꺼내문다.

이곳 몬테나로 향하는 밀밭엔 수십 명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 순간 영철이 천천히 걸어온다.

그 역시 엄청난 격전을 치뤘는지 옷은 피로 엉망이었다.

“세 놈은 빠져나갔습니다.”

“그래?”

세 명을 놓쳤다는 얘기를 듣고도 왜인지 래진은 느긋했다.

영철이 래진을 따라 담배 하나를 꺼내물었고 찰리팀이 주위로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한 사내가 태블릿 pc같이 생긴 물건을 들여다 보며 다가왔다.

래진은 그를 향해 고갯짓을 했다.

“위치는?”

“몬테나 산길 뛰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가까운가 봅니다.”

“택배 도착하면 터트려.”

“네.”

그가 든 것은 드론 조종 패널이었다.

드론에 달아놓은 폭탄을 이용해서 쉘터 전체를 날릴 셈이었던 것이다.

“소음이 문제긴 한데.”

“걱정 마십시오. 아카데미에서 그 타이밍에 맞춰 항공시험운용 등록을 해놔 소음은 가려질 것입니다.”

아카데미에서는 옐로우 맘바의 작전 시간에 맞춰 항공기를 띄워 소음을 분산시키기로 한 것이다.

광활한 미국 땅과 아카데미라는 든든한 우방이 있어 가능한 전략이었다.

이윽고 멀리서 큰 트럭 3대가 다가왔다.

래진이 아는 차인 듯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든다.

맨 앞 트럭 조수석 문이 열렸다.

털썩!

문을 열고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그렉이었다.

그가 휘파람을 부르며 주위를 둘러본다.

“정말 이 인원으로 다 제거 하신겁니까...”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래진에게 다가오는 그렉.

자신들 역시 용병이지만 이 정도의 수준은 보고서도 믿기지 않는 수준이다.

아카데미야 현대전으로 포격과 신무기 화력으로 밀어붙인다.

하지만 이렇게 일신의 무위(武位)로 밀어붙이는 것은 정말 경이롭다.

래진은 그렉의 뒤를 따라오는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청소팀 입니까?”

“네. 아카데미에서는 청소팀을 직접 운용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래진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개인적인 청소팀을 운영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비밀 유지 협약을 맺어도 결국 비밀은 새어나가기 마련이다.

특히나 이런 군 작전에서 민간인을 끼워넣을 수는 더더욱 없기에 아카데미만한 자본력으로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청소팀은 모두 흩어져 주위에 블랙러프 시신들을 한 곳으로 옮겼다.

래진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린다.

“아무래도...”

“네. 몬테나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렉 역시 그 말에 동의하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언제나 도망자는 추격자를 뿌리칠 수십 개의 구멍을 파놓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바로크 같은 지략가가 어떠한 연막작전도 없이 쉘터로 도망치는 머저리들한테 자신의 보금자리를 가르쳐줄 리가 없다.

드론 조종 패널을 만지고 있던 팀원이 래진을 불렀다.

“찾았습니다. 모두 쉘터로 입장했습니다.”

“그래. 비행기 뜨면 폭파시켜.”

“네!”

그렉을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윽고 그가 자신의 오른 어깨에 찬 무전기를 통해 명령한다.

“여기는 그렉. 여기는 그렉. 항공기 운용 허가. 운용 허가.”

잠시 후 하늘에는 엄청난 크기의 헬리콥터가 보인다.

미국이 자랑하는 다목적 수송 전술 체계의 명물.

UH-60 블랙호크 세 대가 몬테나의 하늘을 비행하며 엄청난 굉음을 쏟아낸다.

이윽고 작게 들려오는 폭발음 소리.

퍼엉!

곧 작은 연기와 함께 불이 하늘로 치솟는다.

그러나 블랙호크에서는 미리 준비가 되었는지 곧바로 싣고 있던 물을 쏟아낸다.

엄청난 물의 양이 쏟아지니 이내 불길은 사그라들었고 곧 검은 연기만이 하늘로 올라갈 뿐이었다.

래진은 영철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 정리하고 와.”

“네. 가자!”

찰리팀은 모두 영철을 따라 나섰고 그렉 역시 래진에게 살짝 고개 숙인다.

“저희도 가는 김에 곧장 현장정리 시작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윽고 그렉 역시 부하 몇 명과 트럭에 탑승하여 찰리팀을 따라 이동한다.

래진은 턱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짓는다.

“이 쥐새끼가 어디로 갔을까...”

***

공항을 나서는 두호와 동수.

그러나 그들이 내린 곳은 XFC의 본사와 대회가 열리는 라스베이거스가 아닌 미니애폴리스 세인트폴 국제공항이었다.

두호가 미네소타주의 지도를 보며 턱을 매만진다.

동수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두호가 싱긋 웃으며 그를 바라본다.

“이전에 때린 뺨은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한 일이지요.”

“김도혁이라고 아십니까?”

“그 예전 브라보 캡틴이셨다는 전설 아닙니까?”

칭찬을 듣고자 한 말이 아니었지만 동수가 너무 띄워주자 오히려 멋쩍은 두호였다.

“흠흠. 제가 동생입니다. 그래서 제가 몇 가지를 가르쳐드릴까 합니다.”

“동생이시라는 말씀은 들었습니다만. 뭘 가르쳐 주신다는 건지?”

동수는 의아한 눈빛으로 두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두호는 자신이 아무리 말해봤자 이해를 하지 못 할테니 더이상 다른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두호가 지도를 동수에게 건넨다.

“추격을 뿌리치는 쪽과 추격을 하는 쪽. 누가 더 어려울까요.”

동수는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

“아무래도 추격을 하는 쪽 아니겠습니까?”

“네. 맞습니다. 추격을 뿌리치는 쪽에서는 정보의 혼선을 주기도 쉽고. 또 사실이더라도 추격을 하는 쪽에서 진짜 정보와 가짜 정보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굉장한 부담이니까요.”

두호가 한쪽을 가르키면서 걸음을 옮긴다.

동수가 재빨리 두호의 옆으로 따라붙자 다시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럼 똑똑한 놈과 체력 좋은 놈 중 누구를 쫓는 게 쉽겠습니까.”

“그건...”

동수가 이번만은 답을 못하자 두호가 미소를 짓는다.

“똑똑한 놈. 그놈은 예측을 할 수 있지만 체력 좋은 놈은 사방 팔방으로 뛰어다니니 오히려 어렵거든요,”

두호가 씨익 미소 짓는다.

“지금부터 똑똑한 놈 잡는 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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