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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73화 (173/204)

173화 : 가시밭길 끝엔 영광이 있다.

손에 들린 철색 케이스.

과거 일준이 들고 있던 것 보다 훨씬 더 큰 사이즈였다.

“이봐 알도프.”

“너 모르나 본데. 이대로 가면 너 백두호 새끼한테 반도 못 버티고 진다.”

알도프의 말에 로엘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그의 진지한 표정을 지켜본 로엘은 순식간에 불쾌함을 느꼈다.

“내가 그딴 애송이한테 진다고? 그 돼지 레슬러 한 명 잡았다고 너무 높게 쳐주는거 아니야?”

“넌 선을 넘을 줄 모르거든.”

로엘은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알도프를 바라본다.

“너 같이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놈이 아니라는 거지.”

“한 번만 더 말하는데. 알도프 적당히 해.”

그 말을 들은 알도프가 이제야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게 그 차이야.”

“뭐?”

알도프는 자신이 입고 온 정장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너는 너의 자존심을 건드리는걸 못 참잖아. 근데 그놈은 달라.”

로엘이 잔뜩 분노한 눈빛으로 알도프를 쏘아본다.

그러나 알도프는 전혀 개의치 않는 눈빛이었다.

“그놈은 자존심 정도면 싸게 먹히는 장사라고 생각할 거야. 네 목을 따는데. 그리고...”

알도프가 한쪽 팔을 책상에 올리며 로엘을 바라본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여유 있던 모습이 아니었다.

배가 부른 포식자가 먹잇감을 방생해주는 듯한 분위기.

“그딴 눈깔로 날 보지마라. 진짜 죽어.”

로엘은 의기양양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움츠러들었다.

본능적인 패배감.

그 역시 비공식적이지만 알도프에게 처참한 패배를 당한 사람.

과거 그 기억의 한 장면이 떠오른 것이다.

자신을 깔아뭉갠채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날리던 알도프.

스파링이 끝난 그 날 꿈에서도 나올 만큼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알도프는 이내 싱긋 미소 지으며 로엘의 앞쪽으로 봉투 하나를 툭 던진다.

“임상 테스트 갓 끝난 거라 약물 적발될 일도 없다. 부작용 측면은 내가 다 관리해줄 테니까 걱정말고. 이 액수라면 선수금으로 부족하지 않을 거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알도프가 몸을 돌린다.

하지만 무엇인가 깜빡한 것이 생각난 듯 로엘을 바라본다.

“팔 다리 어느 쪽이든 망가뜨리면 100만불. 네가 말하던 돼지 레슬러도 다리 하나 가져오는덴 성공했어. 기대한다.”

로엘의 어깨를 툭툭 치며 체육관 밖으로 향하는 알도프.

그 모습을 로엘이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제길...”

여전히 저 놈 앞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든다.

아마 자신의 가장 큰 목표는 저 알도프를 이겨내는 것.

과연 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문제이다.

받은 철제 케이슬 힘껏 쥔다.

끼이익!

케이스가 일그러지는 소리가 들리지만 버리지는 못했다.

***

체육관을 나선 알도프가 굳은 표정으로 차에 탑승한다.

자신이 아끼던 롤스로이스는 이미 수리 센터로 넘어갔고 급하게 구한 차인 S클래스.

그러나 최고급의 입맛으로 맞춰져 있는 알도프에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차량이었다.

“시트가 더럽게 불편하구만.”

“어디로 모실까요.”

조수석에 앉은 사내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하자 알도프가 잠시 눈을 좁히며 창밖을 바라본다.

‘체육관? 아니면 호텔?’

그가 고민하는 동안 누군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다.

깜짝 놀란 알도프가 곧바로 손을 번쩍 쳐들고 공격을 하려 했다.

하지만 얼굴을 확인한 그가 천천히 손을 내리며 그를 껴안는다.

차를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크였다.

“연락도 안 되서 진짜 뒤진줄 알았잖아.”

“형한테 말하는 본새 하고는...일단 출발해.”

“출발해. 체육관 쪽으로 가자.”

차는 조심히 출발했고 바로크는 며칠을 굶었는지 눈빛이 퀭했다.

“어떻게 된거야? 나간 병력 모두 연락 끊겼던데.”

“인터폴에 쫓기고 있다. 나간 병력 모두 연락두절이야.”

“뭐?”

알도프는 얼마 전 아카데미와의 교전 이후로 테러리스트로 낙인이 찍혀 인터폴에 쫓기는 신세였다.

다른 나라로 도망이라도 치려 했지만 아카데미가 무슨 수를 써놓은 것인지 모든 밀항선이 막혔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머무를 곳이 없었다.

이미 본진은 초토화됐고 이번 교전으로 인하여 블랙러프와 포그스컬스 모두 숨어지내기 바빴다.

“머레이라도 있었으면 다시 사람을 모아볼텐데.”

“죽은 놈 아쉬워 해서 뭐하냐.”

바로크는 팔 받침대에 설치된 냉장고에서 물 한 병을 꺼낸다.

뚜껑을 던지듯 열어낸 그가 벌컥 들이키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물 한 병을 비워낸 그가 차량 바닥으로 물병을 떨어트린다.

이윽고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기댄다.

“천하의 바로크 꼴이 아주 우습게 됐구만.”

“계획은 있어?”

“일단 너가 최대한 비밀 쉘터로 병력들을 끌어모아봐. 거기서 다시 시작해야겠다.”

“알겠어. 사실 나도 얼마 전 찰리팀 캡틴이라는 놈이 덤벼왔어.”

바로크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옐로우 맘바라면 스포츠 스타인 알도프를 노리지 않을거라 생각했지만 완전히 빗나간 예상이었던 것이다.

물론 알도프가 실력으로 영철을 쫓아냈지만 애초에 노려지고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하마터면 순식간에 자신과 알도프 그리고 포그스컬스 본사까지 모두 날라갈뻔 한 것이다.

“형. 지금 블랙러프에도 문제가 생겼어.”

지난 며칠 아무런 소식을 접하지 못한채 도망만 다니던 바로크였다.

“뭔데.”

“이사들이 블랙러프를 탈퇴하는 움직임이 조금씩 보여. 아무래도 이번 교전의 패배와 본사 테러로 입지가 불안하다고 느끼나 본데.”

“젠장!”

바로크가 앞 자석을 발로 쾅하니 차버린다.

조수석의 사내가 깜짝 놀라 자세를 똑바로 세운다.

바로크는 분이 풀리지 않는 듯 계속해서 거친 숨을 내쉬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알도프는 진정하라는 듯 바로크를 달랜다.

“어차피 스코어로는 동점이야. 그쪽이나 우리나 피해는 비슷하다고.”

“아니. 오히려 전세 역전이다. 그쪽에 아카데미가 확실히 붙었으니.”

“박래진 그놈. 여전히 능구렁이구만.”

“확실히. 베테랑이야.”

분노한 상황에서도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는 형제였다.

“일단은 쉘터로 데려다줘. 다시 재정비를 해야겠다.”

“그래. 알겠어.”

바로크는 그동안 많이 피곤했는지 순식간에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의 한쪽 다리에 감겨진 붕대를 본 알도프가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그 순간 좋은 생각이 났는지 운전석의 사내를 부른다.

“야.”

“네.”

“쉘터로 갔다가. 바로 XFC 본사로 가자. 레이첼 그년 좀 봐야겠어.”

“아. 알겠습니다.”

창밖을 보며 알도프가 미소를 짓는다.

“게임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당신만 잘하는게 아니야. 이제 내 차례다.”

알도프의 생각은 아무도 모르겠지만 조수석의 사내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의 지금 같은 미소는 기상천외한 생각이 나왔을 때 드는 미소란걸.

***

아카데미에서 마련해준 옐로우 맘바의 쉘터.

강화유리로 만들어진 정문이 위로 열리고 한 무리의 사내들이 들어온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찰리팀과 래진이었다.

침대에 누워 쉬고 있던 영철이 그들을 발견하고는 밝게 미소 짓는다.

“오셨습니까.”

래진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간다.

“보스는 이렇게 발로 뛰며 고생하는데 부하 직원이라는 놈이 놀고 있나.”

“그래도 이렇게 만난 게 어디입니까.”

영철의 너스레에 래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힘껏 안았다.

“고생 많았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영철이 래진의 몸 상태를 살피자 래진은 멀쩡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두 손을 들어올린다.

“나야 뭐. 찰리팀 전원 개인정비 시작해라.”

“네!”

체력으로는 운동선수 저리가라 할 그들이지만 앞으로의 상황은 함부로 예측할 수 없으니 쉴 수 있을 때 쉬게 하려는 래진이다.

“잔당들 위치는.”

“일단 앉아서 얘기하시죠.”

한켠에 마련되어있는 책상으로 래진을 안내했고 마침 그렉 역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별말씀을.”

“자 마침 잘 오셨습니다. 같이 말씀 좀 나누시죠.”

래진이 자리에 앉자 영철이 곧바로 포그스컬스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알도프 그놈.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칼이나 연장 따위는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겠지. 전쟁터에서 나고 자란 놈이니까. 냉정하게 네가 판단하기엔 어때?”

영철을 바라보는 래진.

그의 실력을 어림짐작 해보려는 눈치였다.

영철이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에 잠기는 눈치였다.

알도프의 움직임을 다시 떠올려보며 복기를 해봤지만 쉽사리 감이 오지 않았다.

“김도혁 선배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뭐?”

래진의 표정은 순식간에 심각해진다.

도혁이라면 옐로우 맘바에서도 굳건히 일인자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다.

현역 시절의 자신과 비교해도 도혁이 앞서는 부분이 훨씬 많을 정도로.

“어렵겠구만.”

“그 정도라면 몸으로 부딪혀서 잡아낼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합니다. 미국의 스포츠 스타를 저격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렉 역시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단신으로서도 위험하지만 그는 언제나 동료들과 몰려다니죠.”

“결국 제거 방법이 문제라는건데.”

래진은 그렉을 바라보았다.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아카데미는 비밀리에 인터폴과 협력을 하고있는 관계다.

메이저 용병 시장의 정점이 가지는 정보는 왠만한 국가기관의 정보력과 맞먹기에 두 집단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렉은 다행히도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바로크 그놈이 워낙 신출귀몰해서 추적이 힘들지만, 다른 잔당들은 위치가 대강 잡혔습니다. 9할 정도는 이번 주 내로 찾아내 제거가능할 것 같습니다.”

“얼추 100명 정도 남았다는 이야기군요.”

그렉은 지도 하나를 펼쳐 책상에 올려놓았다.

미국에 모든 주가 한눈에 보이는 위성 전술 지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집결지입니다. 결국은 어디론가 목표를 향해서 달리고 있다는 뜻인데 워낙 사방팔방으로 퍼져서 집결지 유추가 힘든 상황입니다.”

“예상되는 곳은?”

그렉이 지도에서 세 곳을 차례대로 짚었다.

미네소타 주.

미시간 주.

몬태나 주.

영철은 의외라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이유가 뭐죠?”

그렉은 팔짱을 끼며 눈썹을 찌푸렸다.

“근거는 모두가 북부로 향하는 국도에서 발견됐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이곳이 요새 캐나다로 넘어가는 난민들의 밀입국 코스입니다. 다양한 인종과 인구밀집도가 낮아 야간 활동에 용이하죠.”

“겨우 그것만으로는 판단하기가 부적절하네요.”

“하지만 확실한 패 한 장이 있습니다.”

확실한 패라는 말에 래진과 영철이 모두 흥미로운 듯 그렉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 아프리카 쪽에서 활동하는 블랙러프 소속 용병 단체 하나가 저희 쪽으로 연락을 넣어왔습니다. 아무래도 항복 의사 같은데 그자를 통해 물어보면 조금 더 추려질 겁니다.”

“좋은 소식이군요. 블랙러프의 확실한 균열이 저희 쪽에 더욱 승기를 가져다줄 겁니다.”

영철은 래진을 바라본다.

“이제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연어 사냥의 포인트가 뭔 줄 알아?”

“네?”

갑작스러운 연어사냥이라는 말에 영철은 의아한 듯했다.

추격과 연어사냥이 무슨 관계인가.

래진이 씨익 미소를 짓는다.

“가장 좁은 개울물에 서 있는 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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