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 가시밭길 끝엔 영광이 있다.
채호의 수술은 10시간이 넘는 대수술이었다.
팀 코리안 몬스터와 필린의 직원들은 모두 불안한 눈빛으로 채호의 수술이 끝마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채호에 대한 걱정과 더불어 두호로 인하여 좌불안석이었다.
가끔식 두호가 토해내는 한숨에 심장이 옥죄고 있었다.
수술실에 점등되어있던 수술중이라는 단어에 불이 꺼지며 문이 열린다.
사람들은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수술실 앞에 모인다.
집도의와 함께 병원의 직원들이 걸어나온다.
-위잉
예수가 다급하게 채호의 상태를 물어보았다.
“대표님은 어떻게 되었나요...?”
“이채호 환자님.”
의사의 다음말을 기다리는 순간이 세상이 멈춘 듯 길었다.
두호는 자리에 앉아 고개만 들어 의사를 바라보았다.
의사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채호 환자님. 수술은 잘 마쳤습니다. 고비는 넘겼지만 중 환자실에서 회복경과를 지켜봐야할 듯 싶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다리에 힘이 풀리듯 주저 앉았고 채수는 울먹였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탁현이 채수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네.”
의사는 직원들을 돌아보며 안내사항을 설명해주었다.
“워낙 건강관리를 잘하셨는지 수술 중 쇼크가 다행히도 없었습니다. 대체로 저 정도의 출혈량과 자상이라면 과다출혈로 인해 쇼크로 수술 중 사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사가 옆에 서 있는 간호사를 쳐다보자 채호의 메디컬차트를 건네준다.
“음. 수술 직후라 혈압은 낮지만 곧 회복될 것이라 보입니다. 하지만 빠른 시간에 의식이 깨어나는 것은 힘들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쏟은 피로 바닥이 얼룩질 정도였다.
일반인이었다면 진작에 사망했을 테지만 두호는 믿고 있었다.
옛날부터 체력과 의지 하나만큼은 옐로우 맘바 제일이던 친구 아닌가.
두호가 말없이 일어난다.
예수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두호는 몸을 돌려 나간다.
“두호씨...”
그의 옆을 곧바로 태건이 따라붙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찰떡같이 알아채는 태건이었다.
두호가 무표정하게 태건을 바라본다.
“바쁘실텐데.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그렇게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병원을 나섰다.
기자들의 눈을 피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온 두호는 태건의 옆자리에 탑승했다.
차는 미끄러지듯 출발했고 두호는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나 태건은 두호의 말을 듣고는 당황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이 들어본 그 어떠한 말보다 무서운 의미.
-신이시여. 그 모든 벌 달게 받을테니. 꼭 제 손으로 그의 심장을 찢어발길 수 있도록 하소서.
***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백평산이었다.
하지만 수미가 거주하는 파전집과 백평산 등산로 방향이 아닌 전혀 다른 곳이었다.
도로 정비조차 되어있지 않아 아슬아슬한 비탈길의 연속인 곳.
그 험한 돌길을 한참동안을 이동하니 한 산장이 보인다.
산장이라 치기에는 굉장히 컸고 공장이라 하기에는 작은 편이었다.
차에서 내린 두호와 태건.
두호는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태건은 의아한 눈빛이었다.
이곳은 과거부터 현성회가 비밀리의 일을 진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하지만 두호는 마치 이곳을 훤히 알고 있는 듯 막힘없이 걸음을 옮겼다.
두호는 과거 도혁 시절 수미의 의뢰를 처리하기 위해 수십번도 더 와본 곳이기 때문이다.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만한 나무문을 열고 두호가 들어서자 수미의 부하들이 움찔한다.
아무래도 그들 역시 위험한 사내를 잡아두고 있는 것이니 긴장한 것이다.
하지만 두호와 태건임을 알고 긴장을 내려놓는 듯 했다.
두호가 한 사내가 들고 있는 도끼를 말없이 바라본다.
사내는 왜 자신의 도끼를 이렇게 바라보나 싶었다.
이내 두호가 손을 뻗어 그 도끼를 달라 하자 어떻게 하냐는 듯 태건을 바라본다.
태건이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망설이며 도끼를 건네준 그에게 고개를 숙인 두호.
그가 도끼의 손잡이를 몇 번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더니 거실의 중앙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곳에는 줄과 박스테이프로 포박되어있는 브룩스와 살아남은 부하들 총 6명이 있었다.
천천히 그들에게 걸어가는 두호.
브룩스는 두호를 보며 씨익 미소 짓는다.
“뭐하려고. 아서라 애기야 너가 지금 무슨 일을...”
콰직!
순식간에 두호가 가까워졌고 자신의 옆에 있던 부하가 뒤로 벌러덩 넘어진다.
두개골 사이에 도끼가 박힌채 쓰러지는 자신의 부하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태건과 수미의 부하들 역시 당황한 듯 두호를 바라보았다.
태건은 눈을 좁혀 쓰러진 사내의 상처를 보았다.
‘깊숙하게 들어갔다.’
일반인이 연장을 아무리 잘 사용하다 치더라도 저 정도의 깊이를 집어넣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저런류의 연장을 사용하는 자신의 부하들 역시 못한다.
태건은 두호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도대체...’
브룩스 역시 당황한 듯한 눈빛이었다.
“너 이새끼...공인이 이래도 돼?”
“말 길게 하는 것 싫어한다. 묻는 것에만 대답하면 상할일 없다.”
두호는 쓰러진 사내의 가슴팍을 짓밟는다.
이윽고 마치 장작에 꽂힌 도끼를 빼내듯 힘을 준다.
쇠붙이가 몸으로 들어오면 근육과 뼈는 엄청난 수축으로 인해 날을 물고 있는다.
하지만 두호가 뽑아내자 마치 두부를 자른 듯 부드럽게 빠졌다.
그 모습에 브룩스는 아연질색한다.
도끼를 다시 집어 든 두호가 공허한 눈빛으로 브룩스를 바라보았다.
“선을 넘는 것을 망설이지 않으려고. 바로크 어딨어?”
“몰라...이 새끼야!”
브룩스가 고개를 젓자 두호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쓰러진 사내의 바로 옆자리에 앉은 사내에게로 걸어간다.
“모든 동물은 주인을 잘 만나야 돼.”
피가 묻은 도끼를 앞뒤로 살펴본 두호가 겁에 질려있는 사내를 바라본다.
“너는 오늘 네 주인 때문에 죽는 거야.”
사내가 무엇을 말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한발 늦었다.
콰직!
이번엔 두호의 얼굴에도 피가 튀었다.
그러나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쓰러지는 사내와 눈을 마주쳤다.
이윽고 다시 천천히 걸어가 사내의 가슴팍에 발을 올리고 도끼를 뽑아 올린다.
그 모습에 경수가 참다 못해 한마디를 한다.
“두호씨. 지금 기분은 알지만 이렇게까지 하시면 두호씨에게...”
두호가 경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요?”
경수는 할 말을 잃었다.
인간에게서 저런 눈빛이 나올 수가 있는 것인가.
긍정과 부정 그 어떠한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 저 오묘한 눈빛.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그는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태건이 경수에게 슬쩍 팔을 뻗어 그를 만류한다.
지금 두호에게 아무런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두호가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브룩스에게 다가간다.
“자 다시. 바로크는 어디 있지?”
브룩스는 두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자신감 넘치던 얼굴이 아니다.
대답을 망설이자 두호가 씨익 미소 짓는다.
“이제 몇 명 안 남았다.”
***
“그만! 그만!”
다급한 외침과 함께 케이지 안으로 사내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파운딩을 꽂고 있는 상대에게 마치 태클을 하듯 달려가 그를 말렸다.
“이러다가 죽이겠어. 그만해 이 새끼야!”
바닥에 깔려있던 사내는 축 늘어졌고 눈은 흰자를 보이고 있었다.
파운딩을 하던 사내는 제이미 로엘이었다.
그는 히죽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 미안 미안. 내가 몰입을 하면 조절을 잘못해.”
파운딩을 맞던 사내는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했고 사내들은 급하게 그를 병원으로 이송했다.
로엘의 코치가 그를 싸늘하게 바라본다.
“이게 몇 번째냐.”
“아. 왜요. 열심히 하면 됐지.”
듣는둥마는둥 글러브를 벗어던진 그가 코치를 향해 씨익 미소 짓고는 케이지를 벗어난다.
안하무인 그 자체의 행동.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메달과 트로피들이 빛나지 않는 이유가 이것 때문인 듯 싶었다.
코치는 한숨을 내쉬며 샤워실로 들어가는 로엘을 바라보았다.
“하여간. 겸손을 모른다니까.”
코치는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천재적인 운동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망가지는 이유가 하나 있다.
바로 겸손하지 못하다는 것.
자만은 방심을 불러일으키고 그 방심은 패배를 만든다.
수 없이 패배하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일반인들은 그 패배를 겸허하게 넘긴다.
하지만 천재들은 자신보다 더욱 큰 재능을 마주했을 때 길을 잃고 헤매인다.
수십 년간 로엘을 가르쳤던 사람으로서 언제가 그가 화를 입을 것이라는걸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자는 이미 월드클래스의 격투가이다.
자신의 말은 그저 고리타분한 늙은이의 말로 받아들일 테니 방법이 없다.
“하여간...”
짤랑!
체육관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온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쏟아지듯 들어왔고 코치는 그들을 노려보았다.
“뭐야. 당신들.”
그 정장의 덩치들 사이에서 누군가 걸어 나온다.
“접니다.”
코치의 표정은 순식간에 반가움으로 인하여 밝아진다.
“자네였구만. 알도프 코와르키.”
걸어들어온 사람은 알도프였다.
그러나 그의 눈 위에는 거즈가 붙어있었고 얼굴에는 잔 상처가 가득했다.
왼손에는 붕대를 감고 있자 코치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 이게 다 뭔 일인가.”
알도프는 미소를 지으며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별것 아닙니다. 경미한 교통사고가 있어서.”
“세상에. 그래도 이만한게 다행일세. 챔피언이 조심했어야지.”
“네.”
평소의 알도프와는 다르게 굉장히 친절하고 예의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코치의 이름은 길버트.
수많은 챔피언을 배출해낸 베테랑 코치이자 MMA계에서 영향력이 큰 사내였다.
알도프 입장에서도 괜히 그를 척질 필요가 없던 것이었다.
“알도프 왔나?”
“어. 로엘.”
로엘이 하의만 입은 체 샤워실에서 걸어나와 알도프에게 손을 뻗는다.
알도프 역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마주 잡는다.
“잠깐 얘기 좀 할까?”
“어 그러지. 저쪽으로 가자고.”
코치는 두 사람이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고 두 사람은 체육관 한켠에 설치된 책상으로 이동했다.
마주 앉은 두 사람.
알도프가 곧장 본론으로 넘어갈 생각인지 한쪽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쳐다본다.
로엘이 피식 웃으며 알도프를 바라보았다.
“별것 아니야. 레이첼이 대체 선수 투입되는 조건으로 이 경기에서 승리할시 라커룸 보너스와 5위권 랭킹 진입을 약속했다.”
“준비는 잘 되고?”
한쪽 팔을 뻗어 손등을 바라보는 로엘.
그러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전완근이 마치 살아숨쉬듯 꿈틀거렸다.
실로 엄청난 컨디셔닝 상태.
“그럼.”
“그렇다면 시원하게 돈 더 벌어볼 생각 없어?”
“왜. 아르바이트라도 소개시켜 주게?”
알도프가 미소를 지으며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로엘이 흥미롭다는 듯 그를 바라본다.
알도프가 품에서 꺼낸 물건을 책상 위에 올려놓자 로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는다.
돈이나 꺼낼 줄 알았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물건이었다.
알도프가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딜(DEAL)?”
물건을 집어 든 로엘이 인상을 찡그리며 알도프와 번갈아 바라본다.
“이게 지금 뭐하자는 거야?”
“뭐긴. 널 내 자리까지 닿게해줄 동아줄이지.”
“너 이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