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 가시밭길 끝엔 영광이 있다.
동수가 빠른 속도로 차를 몰고 이동하고 있었다.
“젠장...”
그의 핸드폰에는 채호가 보낸 하나의 메시지가 열려있었다.
-제 자택으로 경호팀 모두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동수는 마지막으로 체육관을 나서기 전 채호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포그스컬스와 블랙러프.
그리고 브라보 선배들이 어떤 죽음을 맞이했는지.
지금 찰리와 알파가 어떠한 전투를 이어가고 있는지를.
자신이 어떤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직과 팀원들이 그런 고초를 겪는지도 모른 채 그저 온실 속 화초같은 삶을 살고있는 것이 죽도록 부끄러웠다.
“제발...”
차는 위태롭게 곡예주행을 하며 빠르게 채호의 집을 향했다.
멀리 채호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외관이 보인다.
끼이익!
직각에 가까운 진입로를 순식간에 들어온 동수의 눈앞에 진입차단기가 보인다.
하지만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오히려 차의 엑셀을 더욱 세게 밟는다.
부아아앙!
퍼엉!
차단기를 통째로 밀어버린 동수의 차는 지체없이 주차장으로 빨려들어갔다.
나선형의 주차장 진입로를 내려가자 멀리 모여있는 사내들이 보인다.
이미 주차장은 엉망진창으로 변해있었고 몇몇 차량은 유리창까지 깨져있었다.
바닥은 흘린 피로 어지럽혀져 마치 생지옥을 보는 듯했다.
동수는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이윽고 무기를 든 채 몰려있는 사내들을 그대로 들이받는다.
퍼퍽!
퍽!
마치 사내들이 차 위에 올라타듯 순식간에 몇 명이 나가 떨어진다.
차에서 황급하게 내린 동수.
그를 본 사내들의 눈빛은 어딘가 이상했다.
흥분한 상태이지만 발악에 가까운 느낌.
하지만 그 눈빛을 분석할 시간마저 동수에겐 사치였다.
한 사내의 얼굴에 날아가듯 발차기를 꽂아 넣는다.
뒤로 벌러덩 쓰러진 사내.
이윽고 주위를 확인하자 한 차량 앞에 등을 기대앉은 채 거친 숨을 내쉬는 채호가 보였다.
“대표님!”
동수가 재빨리 채호에게 달려가지만 한 사내가 눈에 뛴다.
사내는 채호의 머리를 후려치기 위해 쇠 파이프를 들고 힘껏 내리치려 했다.
다행히도 동수가 한발 먼저 도착해 몸을 던져 사내를 밀어낸다.
퍼억!
사내와 동수가 동시에 쓰러졌지만 동수는 벼락같이 몸을 일으켜 세워 채호의 앞을 막아섰다.
“너희들 뭐야. 이 새끼들이...”
곁눈질로 동수는 채호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한눈에 봐도 보이는 수많은 자상.
언제나 깔끔함을 유지하던 채호의 셔츠와 양복은 피로 얼룩져 애초에 무슨 색이었는지도 모를 만큼 축축히 젖어있었다.
다리는 쭉 편 채 차에 등을 기댄 채호가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이미 그가 흘린 피는 의지 따위로 견뎌내기에는 어려운 것이다.
동수는 이를 악물었다.
‘얼른 선배님을 병원에 모시고 가야하는데...’
서 있는 사내들은 7명이 전부였다.
그들 역시 얼마나 치열한 싸움을 벌였는지 몸이 성한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차 사고로 인한 사람을 제외하더라도 바닥에는 많은 사내들이 쓰러져 있었다.
비틀거리며 마치 주문이라도 걸린 듯 동수의 앞으로 모여드는 사내들.
이들 역시 이미 이성을 잃었다.
동수는 침을 꿀꺽 삼킨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해내야 한다.
자신의 첫 임무를 이렇게 얼룩진 상태로 끝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선배이자 고용주를 지키지 못한 오명은 평생 자신을 따라다닐 것이다.
동수가 망설이지 않고 칼을 뽑아 들어 사내들을 겨눈다.
“덤벼 이 새끼들아!”
그 순간 멀리서 차량 소리가 들려온다.
동수는 환한 표정으로 손을 흔든다.
채호의 경호팀과 수미의 부하들이었다.
그들 역시 마음이 급한지 일찌감치 차에서 내려 달려왔다.
“대표님 어디야!?”
“동수씨 저기 있습니다! 이 개새끼들이!”
달려오는 사내들을 발견한 브룩스가 자신의 분을 못 이겨 고함을 지른다.
“이 개새끼들이 진짜...아!”
총을 사용할 수 있으면 진작 채호를 죽이고 도망을 쳤을 테지만 바로크의 엄명이 있었다.
총기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에서 만약 총기 살해 사건이 일어난다면 한국은 발칵 뒤집어질 것이고 전방위적인 수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그렇다면 결국 그 수사는 블랙러프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마에서 방금 전 채호로 인해 생긴 상처에 피가 다시 흐른다.
“철수...!”
이윽고 브룩스가 몸을 내빼자 정신을 차린 사내들이 모두 차에 탑승해 도망간다.
태건이 소리친다.
“무조건 잡아!”
수미의 부하들이 다시 차에 탑승하여 전속력으로 도망치는 그들을 쫓는다.
태건이 달려와 동수의 앞에 선다.
“대표님은...대표님!”
태건이 동수와 함께 채호의 상태를 확인한다.
미약하지만 숨은 쉬고 있다.
“여기는 제가 정리할테니. 동수씨가 얼른 병원으로 이송 부탁드립니다. 구급차를 기다리기엔 너무 급박합니다.”
“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태건과 동수가 힘을 합해 채호를 번쩍 든다.
딱 채호의 무게만큼만 느껴지는 걸로 보아 신체의 모든 힘이 빠진 듯 싶었다.
동수가 타고 온 차에 채호를 태우자마자 황급히 운전석으로 뛰어간다.
순식간에 차가 미끄러지며 출발한다.
“선배님 제발...!”
동수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차는 엄청난 속도로 병원으로 향한다.
***
다음 날 아침.
아주 이른 시간이지만 두호는 체육관에 나와 있었다.
다리 부상 역시 훈련을 소화할 정도는 되었는지 평소와 같은 스트레칭 루틴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탁현은 두호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얼굴 곳곳에 난 상처들.
누군가 바라본다면 당연히 훈련중 생긴 상처로 받아들이겠지만 탁현의 눈을 속일수는 없었다.
‘저건 쇠붙이에 베인 상처인데.’
맞은 상처는 찢어지는 것이 아니라 터진다.
상처를 봉합하더라도 순식간에 말려들어간 피부를 완전히 봉합해 낼수는 없다.
하지만 두호의 상처는 깨끗하게 꿰매어져 있었다.
‘도대체 어제 우리가 퇴근한 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러나 채호 역시 이 일을 비밀로 지켜달라 했기에 궁금증을 해결할 수가 없었다.
탁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소와 달리 체육관이 굉장히 휑하게 느껴졌다.
어제와 달라진 것은 하나 없었고 아직은 이른 시간이기에 직원들 몇몇이 출근을 안한것 뿐이지만 묘한 느낌이든다.
적막함과 공허함.
우연의 일치인지 채수와 예수까지 연락이 되질 않았다.
알 수 없는 싸늘함.
두호가 밴드를 땅에 내려놓은 채 탁현에게 다가온다.
“아침 일찍이라 다들 없으신가요?”
두호 역시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나온 것은 처음이기에 달라진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했다.
탁현도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그러려니 넘어가려 했다.
“곧 다들 도착하실 겁니다.”
조용한 체육관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탁현이 티비를 틀었다.
불이 들어온 화면엔 아침 뉴스 여자 앵커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뉴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오늘 새벽 필린의 이채호 대표이사가 괴한에게 습격을 당하여 긴급 이송되었다는 속보입니다. 이채호 대표는 스포츠 산업에서 한 획을 긋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로서 경찰은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태입니다.
탁현은 충격에 빠진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두호를 훽하니 돌아보자 두호는 이미 외투를 챙겨 병원으로 달려갈 준비를 마쳤다.
전화기를 집어 든 두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접니다. 어딥니까.”
그의 표정은 싸늘해졌다.
두호는 체육관 문을 열고 빠져나갔고 탁현 역시 다급하게 정신을 차려 그의 뒤를 쫓아갔다.
“두호씨! 같이 갑시다.”
체육관은 다시 텅비게 되었다.
청일대학병원으로 도착한 두호와 탁현.
그러나 이미 병원 입구는 기자들로 인하여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한 기자가 병원으로 걸어오는 두호와 탁현을 발견하고는 크게 소리쳤다.
“백두호다!”
“어디 어디?”
“백두호씨!
굳은 표정으로 걸어오는 두호를 발견한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쉬가 연달아 터진다.
두호의 기분이야 신경도 쓰지 않고 질문을 쏟아내는 기자들.
“데일리 코리아 김정일 기자입니다. 이번 이채호 대표 피습사건에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연속되는 테러가 대표에게까지 번졌습니다. 혹시 이유를 아십니까?”
“XFC에서 특별한 혜택을 받고 있다는 루머가 있습니다. 혹시 그로인한 문제로 벌어진 일입니까?”
탁현은 한숨을 내쉬며 두호의 앞으로 달려가 기자들을 통제했다.
“먼저 가시죠. 여긴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코치님.”
두호는 탁현의 도움으로 별다른 실랑이 없이 병원 본관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이어 다급한 걸음걸이로 안내소에 도착한 두호,
병원 앞에 모인 기자들로 인하여 긴장하던 경비가 두호를 발견하고는 눈이 커진다.
두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혹시 수술실이 어딥니까.”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왼쪽 끝 복도입니다.”
두호는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서둘러 달려간다.
위층으로 올라온 그가 곧장 왼쪽을 바라보니 필린의 직원들과 예수 그리고 동수가 보였다.
그들은 모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벽에 기대어 서 있던 태건이 다가오는 두호를 발견하고는 사람들에게 알린다.
“백두호 선수 오십니다.”
그들은 더욱 고민이 가중되는 듯 보였다.
채호의 피습 소식이 두호의 귀에 들어간다면 훈련에 지장이 생길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일부러 말을 전하지 않은 것인데 병원의 신고로 인하여 기자들이 냄새를 맡은 것이다.
굳은 표정으로 다가오는 그를 예수가 맞는다.
“두호씨...대표님은 지금 수술중이라...”
예수가 침을 꿀꺽 삼켰다.
두호의 표정은 단 한 번도 예수에게 지어보인 적이 없는 표정이었다.
분노가 그를 집어삼킨듯한 모양새.
“왜. 말을 안 한 겁니까.”
“저희는 두호씨를 위해...그리고 아직 대표님이 수술 중이라 경과를...”
두호가 예수를 내려다본다.
그 눈빛에 담긴 의미는 예수는 절대 모를 살기였지만 숨을 멎게 할 정도로 강렬했다.
“그렇게 숨기면 제가 좋아할 줄 알았습니까?”
“저희 역시 아직 상황이...”
두호는 훽 하니 고개를 돌려 한쪽 벽면에 힘없이 서 있는 동수를 바라보았다.
그에게 망설임 없이 다가간 두호가 그의 멱살을 움켜쥔다.
직원들은 말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나 두호의 표정을 보고는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뭐 했습니까? 경호라는 사람이.”
“죄송합니다.”
두호는 순식간의 그의 뺨을 후려친다.
짝!
너무 큰 소리에 병원 이용객들이 돌아보기에 충분했고 그제서야 직원들은 두호를 말리기 위해 달려들었다.
두호는 동수를 보며 싸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목표물에서 떨어져 나온 주변인물이 언제나 첫 번째 타겟이야. 그것도 모르는 애송이가 누굴 경호한다고 여길 와?”
동수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명백한 자신의 실수임을 알기에.
사람들이 뜯어말리듯 두호를 때어놓자 두호는 그제서야 동수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수술실의 초록색 글자가 오늘따라 더욱 안타까워 보였다.
“채호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