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70화 (170/204)

170화 : 가시밭길 끝엔 영광이 있다.

눈 앞에서 사라지는 영철의 모습을 보며 알도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알도프의 옆으로 구급차에서 내린 직원들이 재빠르게 달려왔다.

“괜찮으십니까? 현재 상황이... 세상에 알도프 코와르키 아니세요!?”

알도프는 애써 괜찮은 듯 미소를 지어 보인다.

영철에겐 포그스컬스이겠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자신은 스포츠 스타다.

“네. 괜찮습니다.”

“일찍 신고를 하셨으면 저희가 금방 왔을텐데요.”

알도프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젓고 뒷목을 주무른다.

마치 교통사고 피해인 척하는 모습이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저도 정신을 잃었다가. 방금 깨어나서요.”

“다행이네요. 세계적인 격투기 스타를 잃을 뻔 했군요.”

구급대원의 걱정 어린 말이 알도프의 귀에는 무언가 거슬렸다.

방금전까지 자신을 죽이려고 안간힘을 쓰던 영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알도프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지자 구급대원은 당황한 표정으로 서둘러 딴청을 피웠다.

“이 도로는 제가 몇 번을 건의했는데...아직도 가로등 보수가...”

그러자 차 안으로 뛰어든 다른 직원이 서둘러 그를 불렀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 병원으로 서둘러 이동해야 자세한 부상상태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 그래.”

영철이 사라진 방향을 계속해서 바라보던 알도프를 구급대원이 불렀다.

“알도프씨. 큰 부상은 아닌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 같이 병원으로 이동해서 검사 한번 받아보시죠.”

“네.”

알도프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겨우 떼었다.

구급대원을 따라 굳은 표정으로 구급차에 탑승한다.

지금 당장 영철을 쫓아가 분질러놓고 싶은 마음을 애써 달랜다.

***

소말리아에서 다시 미국으로 향하는 배에 탄 래진.

아카데미의 도움으로 전술용 쾌속선을 빌려 순식간에 소말리아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앞으로의 전쟁 향방을 생각해보고 있었다.

‘알도프나 바로크 둘 중 하나라도 죽어준다면 좋고. 아니더라도 병력이 분산 되었을테니 각개 격파를 노리면 된다. 하지만...’

필사적인 적을 상대할 때는 이성적으로만 생각해선 안된다.

더군다나 상대는 독이 바짝 오른 포그스컬스.

심지어 자신의 집이 불타버린 상황에서 어떤 기상천외한 일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래진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나는 바로크다. 나는 바로크다...’

한참을 눈을 감는 동안 래진의 머릿속은 수만 가지의 상황을 떠올려본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이렇다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완벽히 자신의 생각을 분리하기에는 지금 벌어진 일들이 너무나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다.

그 순간 래진의 생각을 멈추게 할 무전기가 울린다.

-찰리 캡틴입니다.

“어. 영철아. 어떻게 됐어.”

이번 알도프를 제거하기 위하여 영철에게 지시했다.

찰리 캡틴이라면 혼자서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영철의 대답은 힘이 없었다.

-실패했습니다.

잠시 말이 없어진 래진.

바로크와 달리 알도프는 현장 실력을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됐어.”

큰 부상이라도 입혔으면 충분하다.

지금 당장 포그스컬스의 전력이라도 줄일 수 있었으니.

하지만 이번에도 영철의 대답은 풀 죽어 있었다.

-보통 놈이 아닙니다. 교통사고의 충격을 제외하고는 몇 방 먹인 것이 전부였습니다.

“뭐?”

엄연히 스포츠와 현실 싸움은 다르다.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고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을 일반인이 어떻게 이기겠는가.

하지만 죽이려는 의도라면 틀리다.

단순히 흉기를 들고 싸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목표.

총기와 각종 보호구를 입은 상태에서 상대를 죽이는 목표를 가진 사람은 틀리기 때문이다.

죽고 죽이는 싸움을 수백 번 해온 영철이 버거워할 정도라면 알도프는 자신들과 수준이 다르다는 뜻이다.

“일단 알겠다. 아카데미한테 인계받은 쉘터에서 몸 좀 추스르고 있어.”

-죄송합니다.

영철은 자기 자신에게 실망한 듯 힘이 빠진 목소리였다.

도혁과 상철에게 가려져 있지만 그 역시 캡틴.

옐로우 맘바에서 캡틴이라는 직위가 가지는 의미를 알기에 그는 부끄러운 것이다.

해내야 했다.

래진은 미소를 지으며 별 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죄송하긴. 너 월급에서 차감하면 되니까 신경쓰지 마라.”

-형님도 참. 알겠습니다. 미국 도착하시면 뵙겠습니다.

추궁할 수도 있지만 농담으로 넘겨준 래진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영철이었다.

이윽고 무전은 끊어졌고 래진은 다시 생각에 잠긴다.

‘영철이가 실패할 정도였다면.’

물론 맨손 파이팅과 나이프 파이팅은 그의 전문 분야가 아니다.

그는 화력을 담당하는 찰리의 캡틴이니까.

하지만 캡틴에 걸 맞는 실력을 가진 것은 분명하다.

래진의 머리가 복잡해진다.

‘내가 한 10년만 젊었어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래진이었지만 오늘따라 자신의 늙어버린 몸이 아쉽다.

‘도혁이가 살아있었다면...’

이내 래진은 고개를 젓는다.

떠나간 사람을 아쉬워하면서 무슨 일을 해결하겠다는 것인가.

래진은 곧바로 주위에 둘러앉은 찰리팀에게 소리쳤다.

“미국에 도착하면 곧바로 하루의 정비를 가지고 바로크를 쫓을거다. 그놈들이 사용하는 포인트는 아카데미에서 조사해주기로 했으니 인계받고 바로 출발한다. 알았나?”

“네!”

래진은 창문 밖을 바라본다.

“이 싸움도 끝으로 향하는구만.”

***

채호가 자신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삐빅!

차 키로 문을 잠그고 손가락 마디에 걸쳐 돌리는 채호.

휘파람을 불며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그가 왜인지 갑자기 멈춰선다.

이윽고 핸드폰을 잠시 만지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에 도로 넣는다.

“뭘 그렇게 많이 모아왔어.”

아무도 없는 듯 텅 빈 주차장이었지만 채호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기세를 감추는 걸로 보아선 기자들은 아니고...그럼 하이에나들이라는 뜻이군.”

한 사내가 승합차에 문을 열고 내리면서 미소를 짓는다.

그는 허리춤에서 짧은 단도를 꺼내 들어 자신의 목을 툭툭 친다.

“은퇴했다더니. 감은 완전히 살아있구만?”

마치 채호를 놀리는듯한 미소를 짓는다.

그는 다름 아닌 얼마 전 두호의 뒤를 쫓다 동수에게서 도망친 사내였다.

사내의 이름은 브룩스.

바로크의 명을 받고 한국으로 파견된 들개 중 한 명이었다.

이윽고 브룩스의 뒤를 따라 주차된 차량과 기둥 뒤에서 사내들이 쏟아져 나온다.

칼과 도끼를 손에 쥔 체 걸어나오는 그들은 미소 짓고 있었다.

마치 좋은 사냥감을 발견했다는 듯이.

브룩스는 여유롭게 채호를 심문했다.

“어떻게 알았지?”

한심하다는 듯 채호가 주위의 사내들을 훑어본다.

“그런 거지 같은 차 타는 사람은 이 아파트 못 살아.”

채호가 징그럽다는 듯 눈을 찡그리며 사내들이 든 무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발전하는 이 시대에 그런 흉물스러운 걸 들고 다니는 사람은 더욱더.”

여유로운 듯 말을 하지만 곁눈질로 사내들의 숫자를 세는 채호였다.

‘19명. 저기 맨 앞에 나서 입 터는 새끼까지 합하면 딱 20이구만.’

눈을 좁히며 바라보던 채호가 목에 걸린 넥타이를 푼다.

“그래. 알겠어. 나 끌고 가려는거면 가자.”

이윽고 마치 수갑을 찬 듯 양손을 모아 브룩스에게 들어보였다.

“네 시체만 있으면 돼. 뭣 하러 번거롭게 산 채로 데려가나.”

채호는 브룩스의 말을 듣기만 해도 피곤한지 뒷목을 주무른다.

“참. 섭섭하게 말하네.”

사내들이 뿌려대는 지독한 살기에도 채호는 여유를 잃지 않은 듯 했다.

하지만 채호 역시도 부담스럽다.

‘현역도 아니고. 이 숫자는 나도 좀 버거운데....’

팽팽하게 손바닥에 넥타이를 감은 채호는 굳은 표정으로 브룩스를 바라본다.

“어이 못생긴 놈. 나 은퇴했고 지금은 그냥 사업가야.”

“출신을 탓해라. 총은 안 쓸거니까 걱정말고.”

하지만 채호는 어렴풋이 사내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미 한국에서 자신과 트러블이 생길만한 흑막들은 수미가 정리해주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자신의 출신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하니 포그스컬스나 블랙러프 소속임이 틀림없다.

“은퇴를 한 게 다 의미 없구나.”

슬슬 채호의 입씨름에 짜증이 난 듯 브룩스는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빨리 시작하자. 여기 미국 아니라 경찰들 발 빠르다.”

명령을 듣자마자 사내들이 채호에게 달려든다.

껄렁이는 방금 전과 다르게 칼로 찔러 들어오는 모양새가 보통은 아니었다.

채호가 뒤로 물러나며 칼을 피한다.

그러자 재차 찔러 들어오는 사내를 채호가 가볍게 허리를 튕겨 땅으로 메쳐낸다.

이윽고 발로 찍어누르듯 강하게 스탬핑(킥복싱 반칙 중 하나. 누워있는 상대를 발로 도장을 찍듯 내려찍는 킥)을 했다.

구두 굽에 맞은 사내의 코에서 코피가 터져 나온다.

그 순간 채호의 어깨 위로 칼 하나가 스치듯 들어온다.

과거와 달리 다수와의 싸움은 이제 채호에게 쉽지 않은 듯 아슬아슬하다.

채호가 팔을 쭉 펴 휘두르듯 상대의 머리를 잡아채고 땅에 꽂는다.

콰앙!

마치 몽둥이로 사내의 머리를 후려치듯 때리자 사내는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브룩스의 눈이 좁혀진다.

‘무슨 짐승을 보는 기분이군.’

태생적으로 엄청난 피지컬을 자랑하는 채호에게 맞은 사내들은 가드를 하여도 휘청이기 일쑤다.

심지어 한 사내는 채호에게 정면으로 펀치를 허용하더니 턱이 빠진 듯 보였다.

하지만 채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벌써 숨차네. 제길...’

두호와 달리 그는 더 이상 싸움을 주먹으로 하지 않았다.

계산기와 머리 그리고 입으로 싸움을 해왔으니 과거와 같을 수는 없다.

한 사내가 아예 맞을 각오를 한 듯 채호에게 달려든다.

채호가 그를 단번에 제압할 의도로 크게 펀치를 지르자 사내가 순식간에 고개를 숙여 피해낸다.

이윽고 칼끝은 원래의 목표가 아닌 채호의 허벅지로 향한다.

“윽!”

깊지는 않았지만 상대가 다수라는걸 감안한다면 치명상이다.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다면 언제라도 포위가 된다는 의미였으니까.

채호가 자신의 허리춤에서 멈춰있는 사내의 머리채를 쥐어잡는다.

이윽고 사내의 머리를 주차장 바닥에 내리 꽂는다.

그러나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정신을 잃은 그의 머리채를 계속해서 땅바닥에 내리친다.

쾅!

쾅!

이윽고 다섯 번째로 사내가 머리에 부딪치자 이마가 깨진 듯 사내는 움직임이 멈췄다.

바닥은 그의 이마에서 흘러나온 피로 가득했다.

순간 사내들의 기가 한풀 꺾였다.

채호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사내들을 노려본다.

일대 다수에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기선제압이다.

힘은 좀 빠지더라도 한 사내를 굉장히 잔인하게 제압해야 한다.

그리고는 사내들과 눈을 마주쳐야 한다.

그렇다면 본능적으로 다수는 생각한다.

저 모습이 자신이 될수도 있겠구나.

그 말의 반증이라도 하듯 사내들은 채호를 포위했지만 섣불리 달려들지는 못했다.

곰 한 마리를 수십 마리의 늑대가 둘러싸도 공격을 망설이는 것처럼.

채호가 다시 자세를 잡는다.

“내가 손은 씻었지만 니깟 놈들한테 죽어줄 정도는 아니다.”

사내들이 움찔움찔한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자신들이 기세가 꺾였다는 것을 알아챈 브룩스가 소리친다.

“뭐해. 이 새끼들아! 빨리 잡아!”

망설이던 한 사내가 칼을 번쩍 쳐든다.

“이 씨발...! 죽어 이 개새끼야!”

채호의 눈이 빛난다.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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