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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69화 (169/204)

169화 : 가시밭길 끝엔 영광이 있다.

한 사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다.

“말이 되나...?”

그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사내는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태건이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힘겹게 기둥에 몸을 기댄다.

이윽고 서 있는 단 한 사람을 보며 자조적인 미소를 짓는다.

‘이제는 따라 잡을 수 없는 곳으로 가 있구만.’

놀라워하는 그들의 반응과는 달리 두호의 몸 상태 역시 좋지 않았다.

처음 입고 있었던 운동복은 어느새 걸레짝이 되어 있었고 곳곳에는 칼로 인한 자상으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역시 힘든 격전이었는지 거친 을 내쉬고 있었다.

동수는 입이 벌어진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노력하면 닿을 수 있다.

하지만 중간에 말이 하나 빠진 것이다.

어디까지.

정점은 단순히 노력 하나로 볼 수 있는 경치가 아니다.

신이 주신 재능과 그것을 뒷받침해줄 신체적 능력.

그리고 매 순간 발전을 멈추지 않는 머리와 경험에서 나오는 감각.

이 모든 것이 어루어져야 비로소 정점에 닿을 수 있다.

사실 두호가 이 공간에서 보여준 것들은 스포츠에서 쓸 수 없는 움직임이다.

상대를 제압하고 까딱 잘못했다가는 죽일 수도 있는 살상의 동작들.

두호의 움직임은 경기였다면 실격은 물론이고 협회 제명까지 당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채호와 수미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채호가 자신의 뒤에 앉아있는 수미를 보며 싱긋 웃는다.

“어떻습니까?”

“도혁이 살아 돌아왔다. 이 말이 가장 적당하겠구만.”

영화같이 안 맞는 싸움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치명타와 허용해도 문제없는 공격을 구분해내는 것은 엄청난 능력이다.

엉망진창으로 변한 그의 모습.

절대로 쓰러지지 않을 공격이기에 허용하고 상대를 공격해 들어가 생긴 상처들이다.

두호가 글러브를 벗어 땅으로 툭 던진다.

글러브의 찢어진 앞 부분으로 솜이 튀어나왔고 그 솜은 피에 절어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하지만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내는 없었다.

태건 역시 옆구리를 부여잡고 몸을 안정시키는데 집중했다.

두호가 수미에게 다가간다.

준모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수미의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는다.

두호는 의자를 가져다 준모에게 싱긋 웃어 보이고는 이내 자리에 털썩 앉았다.

“대단한 건 알고 있었지만. 괄목상대 했구만.”

그러자 수미는 고개를 흔들며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아니지. 괄목상대란 말은 어울리지 않아. 그저 더 날카로워진 정점에 앉게 됐구만.”

두호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다.

“신경 써주신 덕분에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하지만 지금 자네의 움직임들...”

수미는 말을 잠시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엉망이 된 체육관이 그녀의 시선에 담긴다.

격투.

싸움.

이런 가벼운 단어가 아니다.

전투.

목숨을 걸고 싸우며 승자에게 모든 영광과 혜택이 돌아가고 패자는 싸늘한 주검이 될 뿐인 태초의 싸움.

스포츠처럼 패배에서 교훈을 얻을 시간 따위 주지 않는 그저 생사투(生死鬪).

수미의 눈빛은 조금씩 걱정으로 바뀌었다.

“그 철창안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그럼요.”

두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수미의 눈은 고정되어있었다.

마치 정말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말해주기 전까지 자신은 두호의 대답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듯.

두호가 그 의미를 알아채고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주위를 좀 물려주시겠습니까.”

“그러지.”

수미가 눈짓하자 태건과 경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다들 차로 복귀해.”

사내들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체육관 밖으로 향했다.

준모와 동수 역시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한 듯 그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버렸다.

채호가 의자 하나를 가져와 두호의 옆자리에 놓는다.

자리에 앉은 채호가 심각한 표정으로 수미를 바라보았다.

“상황이 많이 복잡합니다.”

채호는 그간 옐로우 맘바와 블랙러프의 전쟁 상황을 수미에게 말해주었다.

상철이 죽고 래진이 중상을 당했으며 알파팀이 전멸했다는 이야기까지.

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모두 전해들은 수미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옐로우 맘바가...”

옐로우 맘바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그녀와 똑같은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수미의 시선이 두호에게로 향한다.

“그럼 자네는 혹시...”

두호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수미에게 말한다.

“저도 제 몸 하나 지킬 능력은 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쓸데없는 소리!”

수미는 처음으로 두호에게 큰 소리를 내었다.

도혁에 대한 그리움과 두호를 위하는 마음으로 그녀는 화를 낸 것이다.

제 몸 하나 지킬 능력.

일반인이라면 동네 체육관이나 다니고 호신술 몇 개를 배우면 끝이 나겠지만 두호는 다르다.

그가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은 이런 쇠붙이가 아니라 총기를 이용해 싸운다.

몸이 아무리 좋다한들 눈 먼 총알을 어떻게 피하겠는가.

더군다나 두호의 성격상 분명히 앞으로 나설테니 너무나 위험한 행동이었다.

“이모 역시 누군가 복수를 해줄 순간을 기다리는 성격이 아니시잖습니까.”

두호의 대답에 수미가 잠시 말을 잃었다.

“자네는 챔피언이 되고 싶은 것인가. 전설이 되고 싶은겐가.”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 그녀의 질문에 두호는 말없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머리 위에 전등 하나가 유독 밝게 빛난다.

두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미를 바라보았다.

“둘 모두 하고 싶습니다.”

수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조금 있으면, 청소부들이 올걸세. 그럼 이만 일어나보도록 하지.”

그녀가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자 두호와 채호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미가 두호를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조심하게.”

“건강하십시오.”

“부탁한 것은 내 준비해둠세.”

“네. 감사합니다.”

지금 얘기는 채호 역시 몰랐던 이야기인 듯 의아한 표정으로 두호를 바라본다.

이윽고 두호가 한쪽 눈을 찡그리며 웃는다.

수미는 뒷짐을 진 채 천천히 체육관 밖으로 향했다.

두호와 채호에게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늙으면 걱정이 많아지는 게야. 걱정하는 일이 일어나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고.”

그렇게 그녀는 체육관을 나섰다.

수미가 차에 가까이 다가오자 태건이 기다렸다는 듯이 차 문을 열었다.

그녀가 차에 탑승하자 차 문을 닫고 그제야 조수석에 탑승한다.

운전석에 앉아있는 경수가 룸미러로 힐끔 수미를 바라본다.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보는 그녀가 걱정되었는지 경수가 넌지시 물어본다.

“말씀은 잘 나누셨습니까.”

“그래. 갈수록 말을 안듣누, 애도 아니고.”

세계챔피언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마치 어린애를 말하듯 하자 태건과 경수가 미소 짓는다.

수미가 물끄러미 경수와 태건을 바라본다.

“자네들은 꿈 없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태건과 경수가 동시에 당황한다.

그 모습을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는 수미.

계속해서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자 경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는 나중에 유럽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해왔던 생각입니다.”

“그래 그건 내가 이뤄주지. 태건은.”

“저는...”

태건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동시에 겹치는지 고민이 길어졌다.

수미는 말없이 태건의 대답을 기다려주었다.

마치 그 고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안다는 듯이.

이내 태건이 고개를 살짝 틀어 수미를 바라본다.

“무탈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면에서.”

무탈(無頉).

그 대답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수미가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참 어려운 꿈이구만. 무탈하다.”

태건이 머쓱한 듯 옅은 미소를 짓는다.

“그렇지만 이 나이쯤 되니 정말 완벽한 꿈이 아닐 수 없구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니니 꼭 이루게나.”

“감사합니다.”

수미가 미소를 지으며 창밖을 바라본다.

어느새 해는 져 완전한 어둠이 도로를 감쌌다.

차가 뿜어내는 빛을 제외하면 제대로 보이는 것 하나 없을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에서 사람은 꽤 멀리보고 산다 생각하지만 눈은 그렇게 멀리있는 것을 바라보지 못한다.

“꿈이 인생을 위험하게 만들어. 모든 탈이 그렇게 나지.”

태건과 경수에게는 아직 와닿지 않는 말인 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까 꿈이겠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수미는 쌀쌀한 듯 겉옷을 더 바짝 당겨입었다.

“다른 젊음들처럼 평범한 운명이었음 좋겠건만.”

그녀는 이 말 이후 어떠한 말도 없었다.

조용한 바깥처럼 차 안에서도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퍽!

영철이 알도프의 앞가슴을 뻥하니 차버리자 알도프가 뒤로 한 바퀴 굴렀다.

거친 숨을 내쉬며 알도프를 바라보는 영철.

꽤나 위협적인 공격이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표정은 어두웠다.

한쪽 팔을 축 늘어뜨린 채 서 있는 영철.

아무래도 팔이 부러진 듯했다.

쓰러졌던 알도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방금 전 큰 공격을 당했던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멀쩡한 미소를 보인다.

“방금 건 좀 멋있었어?”

상대의 공격을 칭찬해줄 만큼 그는 여유로웠다.

영철이 입술을 깨문다.

‘쉽지 않구만.’

싸움 내내 알도프에게 끌려다니기만 했다.

정타를 몇 대 넣긴 했지만 알도프를 쓰러트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영철의 눈이 한 곳으로 집중된다.

알도프의 발.

장난스러운 그의 표정과 달리 끊임없이 움직이는 저 발.

닿았다 싶으면 멀어지고 멀다 싶으면 공격이 가드를 비집고 들어온다.

칼은 이미 떨어트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만큼 알도프의 공격은 사람의 머릿속을 흔들어놓았다.

알도프는 목을 좌우로 툭툭 꺾으며 영철에게 말한다.

“힘 좀 내봐. 그거 맞고 누가 쓰러지기나 하겠어?”

영철이 각오를 다잡고 주먹을 뻗는다.

하지만 이번에도 알도프의 귀를 스치듯이 때릴 뿐 유호타를 먹이지는 못했다.

알도프는 곧바로 영철의 품 안으로 더킹하여 바디를 적중시킨다.

“커억.”

침이 튀어나올 만큼 엄청난 위력.

이윽고 깨끗하게 올라오는 숏 어퍼.

영철은 그의 공격을 맞고는 벌러덩 뒤로 넘어진다.

바닥에 쓰러진 채 뒷걸음질 치는 영철을 보며 알도프가 히죽 웃는다.

“총이나 칼을 들고 있을 때가 훨씬 나았어. 맨손으로 나를 잡으려면 십 년은 이르다.”

영철은 분한 마음이 들었다.

격투기 선수와 일반인들의 싸움 실력은 하늘과 땅 차이다.

하지만 글러브를 낀 격투기 선수와 총을 쥔 일반인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영철은 본연의 격투 실력도 뛰어나지만 무기를 잘 다루는 무기술의 달인이다.

지금처럼 맨손 격투로는 그를 잡아내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옛날에 내가 죽인 놈보다는 훨씬 낫네. 이제 끝내자.”

영철이 잃어버렸던 칼을 어느샌가 알도프가 쥐고 있었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영철에게 다가가는 그 순간.

멀리서 구급차와 경찰차 소리가 들린다.

교통사고가 난 것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싶은 알도프가 눈을 찌푸린다.

아무래도 차량에 달려있는 GPS신호가 끊기자 자동으로 신고가 접수된 모양이었다.

“하여간 항상 저 새끼들은 뒤늦게...”

고개를 돌리는 알도프의 눈에 모래가 뿌려진다.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트는 알도프.

영철은 온 힘을 다해 점프해서 알도프의 앞가슴을 뻥하니 차버린다.

뒤로 나자빠진 알도프의 뒤로 구급차가 다가오고 있자 영철이 고민한다.

‘지금 마무리 지어야 하나.’

이내 고개를 젓는 영철은 곧바로 자신의 오토바이로 뛰어간다.

‘작전상 후퇴다.

시야가 돌아온 알도프가 이마에 핏줄이 솟을 만큼 화가나 영철을 찾는다.

하지만 이미 영철의 오토바이는 시동을 걸어 재빠르게 달아난다.

“쥐새끼 같은 놈이...”

알도프는 멀어지는 영철의 뒷모습을 계속해서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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