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 가시밭길 끝엔 영광이 있다.
래진이 담배를 땅으로 툭 던진다.
“이곳 모래는 정말 숨쉬기도 싫게 짜구만.”
멀리서 찰리 팀원 한 명이 달려온다.
“보스!”
“뛰지 마라. 다친다.”
모래 언덕을 넘어 올라온 그가 거친 숨을 내쉬며 래진의 옆으로 다가온다.
“확인 끝났습니다. 경비병력 20명 제외하고는 모두 자리를 비운 듯 합니다. 그 형제놈들도 안 보이구요. 아무래도 현지 작전은 성공한 듯 싶습니다.”
이내 뒤에서 무전기를 들고 있던 사내 한 명이 래진에게 소리친다.
“보스! 검은별한테 무전 왔습니다. 바로크 확인되었고 교전 시작했답니다!”
“시작하자.”
그의 말 한마디에 여기저기 몸을 숨기고 있던 찰리 팀원들이 사막색의 복면을 착용한다.
작전명 플레어(FLARE).
항공기나 헬기가 적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하여 쓰이는 방법이다.
그 강한 빛과 열기에 미사일은 목표물을 오인하여 빗나간다.
검은별은 이번 아카데미로부터 지원을 받은 50명의 리더인 그렉을 칭하는 콜 사인.
그럴듯한 정보로 그들을 불러들이고 무주공산으로 변한 본진을 급습하는 것이다.
복면을 쓴 래진의 눈동자로 건물 하나가 보인다.
소말리아 부알레 지역 6층 높이로 올라와 있는 빌딩.
포그스컬스의 본사이자 바로크의 본거지이다.
“상철이 빚 갚아주러 가자.”
분노와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눈빛을 보여주며 모래 언덕을 내려가는 찰리팀.
래진이 자신의 소총을 집어든다.
“눈에 보이는 건 전부 파괴한다. 실시.”
“실시!”
롤스로이스 크롬하츠.
명품 주얼리 브랜드 크롬하츠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차량이다.
차량 한 대가 몇십 억을 호가하며 돈이 있어도 못 구하는 희귀한 차량 중 하나였다.
주얼리 브랜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차량 곳곳엔 그들 특유의 장식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고급스러우며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차량에서 어울리지 않게 전자음악이 흘러나왔다.
차 문이 열리며 손 하나가 빠져나와 빈 술병을 툭 던진다.
술병은 곧 산산조각이 나 길바닥에 뿌려졌지만 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멀리 사라진다.
알도프가 거만한 자세로 자리에 앉아 자신의 호텔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볼륨 좀 더 키워봐. 듣는 맛도 안나네.”
“네 알겠습니다!”
곧 조수석에 앉은 사내가 귀청이 떨어질만큼 차 안의 음악 소리를 키웠다.
이제야 만족스러운지 알도프는 미소를 지으며 몸을 들썩거린다.
“아 이제 좀 좋네.”
한참을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알도프가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본다.
산속으로 들어가는 미국의 이름 모를 한 국도.
관광객들이나 이곳 근처에 사는 주민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알도프에겐 그저 벌레 많고 기분 나쁘게 습한 곳 중 하나일 뿐.
더군다나 어두우니 도로를 제외하고는 보이는 것 역시 별로 없었다.
“이런데가 뭐가 좋다고 몰려 다니는 거야.”
조수석에 앉은 사내가 몸을 살짝 돌려 알도프를 바라본다.
“트레이닝 캠프는 안 들리십니까?”
“어. 오늘은 피곤해서 바로 들어가련다. 왜?”
“골드스피릿 대표께서 미팅을 원하십니다.”
“그 노인네가 왜.”
알도프는 인상을 찡그렸다.
한창 호텔에서 느긋하게 휴식할 생각인 알도프의 기분이 나빠질 만한 소식이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재계약 때문인 것 같습니다.”
미국의 대형 체육관은 매니지먼트와 에이전트의 역할도 함께하고 있다.
얼마전 두호의 도발로 인하여 미들급의 주가가 다시 상승했다.
그러니 알도프라는 대어를 놓칠 수가 없는 골드스피릿이었다.
“하여간 그 노친네. 이런 쪽은 머리가 아주 람보르기니야.”
흥이 깨진 듯 알도프는 뒷자석 미니 냉장고에서 술 한 병을 더 꺼내려 했다.
그 순간.
언덕에서 엄청난 속도로 내려오는 불빛을 발견한 조수석의 사내.
“뭐야 저거 오토바이야? 미친놈인가.”
처음엔 그저 정신 나간 사람쯤으로 생각했지만 조수석의 사내는 다시 눈을 좁혀 바라보았다.
이 어둠속에서 나무와 돌로 빽빽한 이 산을 저 속도를 유지하며 내려오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뭐지...”
그러자 알도프가 왜 그러냐는 듯 조수석을 발로 툭 찬다.
“별 것 아닙니다. 저기 어떤...뭐야!”
방금 전까지 중턱쯤에 있었던 오토바이가 어느새 가까이 다가왔다.
이내 큰 바위 하나를 올라 타더니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얼이 빠진듯한 표정으로 오토바이를 올려다보는 운전수와 알도프.
오토바이의 운전자는 자신의 품 안으로 손을 집어 넣더니 무언가를 뿌린다.
물풍선 같이 생긴 것이 앞 유리창에 부딪치자 앞 유리에 액체가 퍼져 묻는다.
퍽!
사내가 던진 것은 다름 아닌 페인트 볼이었던 것이다.
운전석의 사내는 당황하여 핸들을 급하게 꺾었고 이내 가드레일을 들이받는다.
쾅!
차량은 가드레일을 들이 받은채 검은 연기를 내뿜었고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이내 오토바이 운전자가 멀리서 다가온다.
그 순간 차량 뒷 자석문을 발로 차내며 알도프가 빠져나온다.
큰 부상은 없었는지 뒷목을 주무르며 나오는 알도프.
“씨발. 이게 뭔 일이야.”
가까이 다가오는 오토바이를 노려보는 알도프.
그러나 오토바이가 쏘아대는 조명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눈을 찌푸린다.
서서히 속도를 줄이는 오토바이 운전자.
이내 시동을 완전히 끄고 알도프에게 다가온다.
알도프가 눈을 좁히며 그를 바라보았다.
오토바이 운전자가 헬멧을 벗으며 얼굴을 드러낸다.
영철이었다.
알도프는 어딘가 익숙한 얼굴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너 이 새끼 뭐 하는 놈이야.”
“해적 잡으러 온 놈.”
그의 짧은 대답에 알도프가 허리춤에 손을 얹으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뭐?”
“실력 좀 보자.”
“이젠 하다하다 별 미친놈을 다 보...”
영철이 순식간에 허리춤에서 칼을 빼내들어 알도프를 향해 찔러들어간다.
알도프의 눈이 순간 빛난다.
‘뭐야?’
어설픈 용병이나 해결사의 칼질이 아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다가오는 쾌검.
알도프가 몸을 틀어 칼을 피해낸다.
순식간에 영철의 팔을 걷어내듯 칼을 쳐낸 다음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지른다.
일류 운동선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패악질로 가려져 있지만 알도프는 세계최강이라는 XFC 정점에 서 있는 사람.
그러나 그의 주먹은 허공을 가른다.
‘피했다고?’
영철이 곧바로 바닥에 쓰러지듯 자세를 낮춰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
그의 예상치 못한 공격에 넘어지는 듯 싶었지만 오히려 몸을 앞으로 쏟는다.
자세가 낮아진 영철의 얼굴로 향하는 주먹.
영철이 다급하게 가드를 올려 막아내는데 성공하지만 두 사람 모두 자세가 무너졌다.
이윽고 서로 재빠르게 뒷걸음질 쳐 다시 거리를 벌린다.
영철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이 정도의 실력이라고?’
가볍게 알도프를 죽이고 가려던 마음이 사라진다.
이 사내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워야 하는 상대다.
알도프 역시 차분하게 목에 걸려있던 넥타이를 풀어 손에 감는다.
그 역시 영철과 같은 생각이었다.
‘이거 잘못하다간 개망신 당하겠는데...’
손에 넥타이를 팽팽하게 돌려 감은 알도프가 한마디를 툭 던진다.
“이름이나 압시다?”
영철은 대답하지 않으려는 듯 조용하더니 씨익 미소를 짓는다.
알아도 상관없고 어차피 지금 죽인다면 자연스럽게 묻힐 이야기다.
“부영철이요.”
알도프가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하여 기억을 더듬어본다.
이윽고 생각이 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아. 그날 항구에서 본 놈이구만. 아마 찰리팀 캡틴?”
“기억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
“뱀 새끼들 아니랄까봐 비겁하기는 세계 제일이네.”
“해적질하는 양아치 새끼들 상대하는데. 이 정도쯤은 애교로 봐주시지.”
순간 알도프의 눈빛이 바뀐다.
일반인이라면 눈을 피하고 싶을 만큼 살기가 가득해진다.
그의 역린(逆鱗)을 영철이 건드린 것이다.
평소 출신의 대하여 자격지심을 갖고 있던 알도프이기에 그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너 죽어.”
영철이 그런 그를 보며 비웃듯이 말한다.
“아니. 내가 널.”
이윽고 그가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순간 영철은 그의 분위기가 변했음을 감지했다.
‘정말이지. 지독한 기세구나.’
광기 어린 미소.
아무런 죄의식이 없는 순수한 악(惡).
“잘해봐?”
이번엔 알도프가 먼저 달려든다.
자신보다 배는 빠른 듯한 그 주먹에 영철이 당황한다.
쾅!
어지저찌 막아내기는 성공했지만 연거푸 알도프의 공격이 쏟아진다.
결국 얼굴에 정타 한 대를 허용한 영철.
당할수 만은 없던 영철이 아래에서 위로 칼을 긋는다.
그러나 여유롭게 피해낸 알도프가 그의 옆구리를 발로 차버린다.
영철은 호흡이 불편해짐을 느끼며 뒤로 몸을 던져 공격 거리를 벗어난다.
알도프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서늘하게 웃는다.
“할 수 있겠어?”
그의 조소를 보며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영철이었지만 침착하게 이성을 유지했다.
흥분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분하게 숨을 내쉰 영철이 몸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낸다.
“제대로 하지.”
다시 자세를 잡은 영철이 알도프에게 달려든다.
자신은 상철 형님의 복수를 해야한다.
“으아아아!”
인공섬에서는 엄청난 격전이 치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좁혀지지 않는 거리.
차도로 곳곳에는 부비트랩과 함께 차량 바퀴를 터트리는 스파이크가 설치되어 있어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들의 뒤쪽 다리가 끊겨 꼼짝없이 포위당한 상황.
바다라고는 하지만 건물 10층 높이 정도 되는 다리 위라 함부로 뛰어들 수도 없었다.
너무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채 총알을 퍼부어대는 그렉.
그의 표정엔 단 한 명도 살려보내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보였다.
“젠장. 여기 5mm 탄알집 두 개만 던져봐!”
건너편 도로에서 응전을 하던 부하가 바로크를 향해 탄알집을 던진다.
품으로 탄알집을 받아든 그가 입술을 질끈 깨문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자신들은 곧 말려죽을 것이다.
그 순간 한 사내가 총알을 피하기 위해 자세를 숙인 채 바로크에게 서둘러 달려온다.
몸을 던지듯 그의 옆에 도착한 사내를 보며 바로크가 인상을 찌푸린다.
“뭐야?”
“이것 좀 보십시오.”
한 사내에게 도착한 사진 몇 장과 메시지.
그 사진을 본 바로크는 이마에 핏줄이 곤두선다.
그리고 끝내 화를 참아내지 못하고 고함을 질러댄다.
“이...개새끼들이!”
사내는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바로크를 바라보았다.
사진은 포그스컬스의 소말리아 본사가 불타오르는 장면이었다.
건물에 유리창은 모두 깨지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게 서 있는 건물.
하지만 바로크를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건물 정중앙에 걸려있는 옐로우 맘바의 깃발이다.
마치 이곳은 자신들이 점령했다는 듯한 모양새.
그리고 사진 밑에는 메시지 한 줄이 적혀있었다.
잘 놀다 간다. -래진-
너무 쎄게 입술을 문 탓인지 입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사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바로크에게 말한다.
“어떡할까요?”
“전군 철수. 다리 끝 쪽에서 뛰어내려.”
분노와 복수심으로 인해 이성을 잃은 바로크가 곧바로 다리 뒤쪽을 향해 달린다.
총알이 빗발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반대편을 향해 달렸다.
사내가 입 앞에 손을 모아 소리친다.
“전 병력 후퇴! 다리 뒤쪽으로 뛰어내려라!”
사내들은 어리둥절하다 이내 다리 뒤쪽으로 바로크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렉 역시 크게 소리친다.
“한 놈도 놓치지마. 오늘 여기서 다 잡는다!”
바로크의 시선에 다리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속으로 분노를 삼켰다.
‘래진. 넌 꼭 내 손으로 죽인다.’
다리 끝에 도착한 바로크는 망설임없이 다리 밑으로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