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 가시밭길 끝엔 영광이 있다.
에릭은 눈을 좁혔다.
아카데미 시절이 아닌 블랙워터 시절의 병력.
이것은 참 많은 것을 의미했다.
아카데미가 지금이야 메이저 시장 일 등을 차지하지만 과거 굴곡 많은 역사가 있었다.
은퇴한 군인들의 모임은 대중들의 시선에 고울 리가 없었다.
그러니 간간히 들어오는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야 계속해서 일거리를 받을 수 있었다.
첫 임무는 갱단에게 빼앗기는 사납금을 되찾아 오는 일이었다.
아무리 갱단이라지만 자국민을 지키던 군인이었던 에릭은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무엇을 못하겠는가.
갱단 수십 명을 사살하고 나서 그들은 업계에서 조금 더 유명해졌다.
조금씩이지만 늘어가는 일들은 대체로 이해관계로 비롯된 일이었다.
처음 회사를 설립할 때 기대하던 선과 악의 구도는 없었고 대체로 복수와 배신이었다.
그런 일을 뒤탈없이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잔혹해져야 한다.
자신들을 믿고 따라온 부하들과 동료들을 위해.
그렇게 그들은 어느새 꽤 유명해졌지만 대체로 악명이었다.
-블랙워터가 자란 자리에는 풀 한포기도 남지 않는데!
-블랙워터가 어제 이동하는 걸 봤어. 분명히 대학살이 일어날거야.
블랙워터라는 이름으로 정점에 설 무렵 자신들은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렇게 가다가는 국가 공인 카르텔이 될 것은 시간 문제였기에 아카데미로 이름을 바꾸고 국가 단위에 일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야 겨우 악질용병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진 아카데미.
그러나 래진이 원하는 것은 그 시절의 자신들이다.
“자세히 좀 말씀해주시죠.”
“포그스컬스를 뿌리 뽑으려 합니다.”
“그들과 전쟁 중이라는 얘기는 들었습니다만.”
사실 에릭 역시 놀랐다.
래진이라는 사람을 잘 알거니와 옐로우 맘바가 마이너 용병시장에 어떠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지도.
메이저와 마이너 시장은 완벽하게 선이 그어져 있어 서로 개입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다.
“저희가 앞뒤 가릴 상황이 아닙니다.”
“믿기지가 않는군요.”
지금 자신들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것은 곧 밀리고 있단 뜻.
오는 길에 보고를 받아보니 필리핀 교전을 통해 알파팀 전원이 사망했단 것을 확인했다.
래진이 한숨을 내쉰다.
“지금 저희 쪽에서 가용 가능한 인원은 이제 여기있는 찰리팀이 전부입니다. 포그스컬스 특성상 인원수가 너무 많아 버거운 것도 사실이죠.”
포그스컬스 자체 인원은 300명이 채안된다.
하지만 그들 휘하의 블랙러프 인원들과 저번 필리핀 사건처럼 현지 흑막들을 고용하여 엄청난 숫자를 움직이고 있다.
에릭은 썩 달가운 표정이 아니었다.
래진은 그가 무엇을 망설이는지 알고 있다.
선.
언제나 먼저 선을 넘은 사람은 선례가 되고 추후에 일어날 모든 일의 원인이 된다.
지금 세계에서 아카데미를 위협할만한 메이저 회사는 없지만 사람 일은 알 수가 없다.
자신들이 포그스컬스를 공격한다.
언젠가 마이너 단체 중 그들과 같은 사람들이 이것을 빌미로 자신들을 노릴 것이 분명해진다.
당한 일에는 복수를 해야하는 것 역시 이곳 용병시장에 복잡한 메커니즘이다.
래진이 에릭을 지긋이 응시했다.
“10명당 100억. 총 50명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으흠.”
에릭이 팔짱을 낀다.
구미가 당기는지 그의 눈썹이 들썩들썩한다.
총 의뢰비는 5000억.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
이 정도 액수라면 이라크에서 테러조직과 대리전쟁을 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이다.
하지만 여전히 선을 넘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에릭이었다.
래진은 담배 하나를 꺼내문다.
실내는 금연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던 직원 한 명이 움찔하자 영철이 매섭게 노려본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담뱃불을 붙이고 천천히 연기를 내뿜는 래진이 에릭을 바라본다.
“멀리 보십시오. 아무리 선을 넘는 행위라지만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제가 아니라 코와르키 형제라고 한다면...”
에릭은 피식 웃는다.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포그스컬스와 옐로우 맘바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한 가지있다.
근본.
단순한 비즈니스 사업에는 체면이라는 것이 생각외로 중요하다.
자신이 누구와 앉아있고 무엇을 대화하느냐.
래진이야 전설적인 군인이고 옐로우 맘바도 모두가 인정하는 명품이다.
하지만 포그스컬스는 다르다.
해적 출신과 아프리카 갱단들.
아무리 현재 주가가 우상향곡선을 그린다고 하지만 자신이 그런 사람들과 어찌 비즈니스를 하겠는가.
더군다나 그들이 선이 없다는 것은 무기거래 현장에 알도프가 나타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신들은 망설이며 넘지 못할 선을 그들은 줄넘기하듯 쉽게 넘는다.
“좋습니다. 계약 체결하시죠.”
래진이 이제야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결단 감사합니다.”
“저희가 래진씨를 모르는 것도 아니니 델타포스와 그린베레 출신들로 구성하겠습니다. 래진씨 발목을 잡지는 않을 겁니다.”
래진은 씨익 미소를 짓는다.
래진의 발목을 잡지 않을거라 낮춰 말하지만 그들은 사실 가벼운 사람들이 아니다.
델타포스.
미국을 대표하는 특수부대이자 현존 최강이라 평가받는 특수부대.
그리고 그린베레.
그들에겐 이런 말이 있다.
- 돈을 위해 죽인다면 용병이고, 재미를 위해 죽인다면 새디스트다. 둘 다라면 그린베레다.
“역사에 남을 일이겠군요.”
“잘해봅시다.”
첫 메이저와 마이너의 협력 작전.
두 사람은 의자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고 결의에 찬 눈빛으로 악수를 나눈다.
작전 수립을 위해 다시 자신들의 자리로 이동한다.
래진이 미소를 지으며 작전을 설명하자 그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져 입을 벌린다.
***
“백두호 선수 고생하셨습니다!”
“코리안 몬스터 파이팅!”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체육관을 빠져나간다.
팀 코리안 몬스터가 모두 두호에게 몰려든다.
예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두호를 살펴보았다.
“다리는 좀 어떠세요?”
“조금 욱씬거리지만 괜찮습니다.”
두호는 왜인지 깁스를 푼 상태였다.
이것은 채호의 의견이었다.
- 방송적으로만 본다면 깁스를 하고 있는 것이 반응이 좋겠지만, 우리의 최종적인 목표는 알도프잖습니까. 그럼 오히려 부상은 이미 완쾌했고 이미 훈련에 돌입한 것처럼 보여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두호 역시 그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지금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여론의 동정을 받기에는 좋으나 알도프에게는 약점을 노출하는것과 다를 바가 없다.
왜 인지 두호를 직접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은 본격적으로 돌입하지 않은 그들을 조금 더 방심케 하자는 채호였다.
탁현은 주위를 집중 시켰다.
채호가 팀 코리안 몬스터의 정식으로 임명한 탁현.
이제 그는 이 팀의 최종 결정권자이자 리더인 셈이다.
“두호씨의 부상이 완치되는 대로 훈련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다른 스태프들은 모두 퇴근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탁현이 서둘러 장내를 정리하는 듯 하자 직원들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들도 그럴것이 기자회견을 마친 이곳을 정리 해야했다.
하지만 탁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하자 하나둘씩 퇴근을 준비했다.
“네. 알겠습니다.”
탁현을 포함한 직원들은 자신의 짐을 챙겨 자리를 떠났고 준모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는 로드 매니저로서 두호를 위해 남아있어야 하나를 고민하는 그 순간 체육관으로 두 사람이 들어선다.
채호와 동수였다.
의외의 인물인지라 준모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아 다행이네요. 준모씨는 계셔도 괜찮다고 말씀하려고 했거든요.”
“네?”
두호는 자리에 앉아 몸을 풀기 시작했다.
아마도 훈련과 관련된 일인지 평소 몸을 푸는 루틴과 동일했다.
곧이어 한 무리의 사내들이 체육관으로 들어온다.
어두운 체육관 정문을 뚫고 들어온 사내들의 맨 앞에 선 사람은 다름 아닌 태건과 경수.
그리고 수미의 부하 스무 명이었다.
채호가 그들을 향해 반갑게 인사한다.
“오랜만입니다. 태건씨.”
“잘 지내셨습니까. 대표님.”
서릿발 같은 차가운 모습만을 보였던 태건은 어느새 자연스러운 미소를 짓는 사람이 되었다.
채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완전히 무르익었구나.’
외유내강.
진정한 강자들이 가지는 최고의 특징이다.
경수와 그의 부하들이 모두 체육관으로 들어서자 뒤늦게 걸어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수미였다.
채호가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고 두호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갑습니다.”
“오셨어요?”
수미가 두호를 보며 섭섭함을 숨기지 않았다.
“죽은 줄 알았다. 필요 없어졌다고 너무 빨리 팽하는 것 아닌가.”
“죄송합니다.”
두호가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어간다.
“일이 좀 많았습니다.”
사실 수미는 두호에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자신의 직원을 죽인 흉수를 직접 찾아내 자신들에게 건네주었기 때문이다.
바쁜 일정 중에서도 관계를 챙길 줄 아는 사람.
준모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채호와 수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여긴 어쩐일로...”
“저놈이 도와달라는데. 도와줘야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경수가 부하들에게 명령한다.
“공간 좀 넓혀라.”
“네!”
수미의 부하들은 흩어져서 운동기구들을 번쩍 들어 옮기기 시작했다.
무거운 운동기구들이지만 삼삼오오 모여 옮기니 금세 체육관엔 빈 공터가 만들어졌다.
두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핸드랩을 감으며 중앙으로 걸어간다.
채호가 동수에게 소리친다.
“동수씨. CCTV 녹화 중단 좀 해주십시오.”
뭔가 이상한 요청에 준모가 알 수 없는 서늘함을 느낀다.
‘뭐지.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공간을 만드는 거지.’
수미는 태건과 경수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인다.
태건은 입고 왔던 정장 상의를 벗어던진 뒤 팔소매를 걷어붙혔고 경수는 소리친다.
“상의 탈의!”
경수의 한마디에 태건처럼 외투를 벗어던지는 부하들.
태건과 비슷한 복장이 되자 경수 역시 상의를 탈의한다.
수미가 두호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지으며 가까운 의자로 향한다.
공터 중앙에 두호가 잘 보이는 곳을 선점한 수미.
“오랜만에 실력 좀 보겠구만.”
수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각자 몸에 지니고 있던 연장들을 꺼낸다.
절대로 보여주기식이 아니라는 듯 날이 서늘하게 서 있는 칼.
“하여간. 상상을 초월하는 놈이라니까.”
채호가 멀리서 두호에게 글러브를 가져다준다.
오픈 핑거 글러브.
채호가 전해준 글러브를 받아 착용하니 서서히 두호를 중심으로 에워싸기 시작한다.
태건과 경수가 두호에게 고개를 숙인다.
“그럼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저희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태건의 말에 두호가 싱긋 웃는다.
“못본새 겸손해지셨군요. 재대로 부탁드립니다.”
“네.”
태건과 경수가 양 끝으로 흩어져 부하들의 앞에 선다.
이윽고 그들의 표정 역시 진지하게 바뀐다.
“집중해라. 방심하는 순간 어디 한군데 부러지는 거 순식간이다.”
“각오 단단히 해. 니들이 패싸움때 맞던 그런 솜방망이 아니니까.”
태건은 칼의 손잡이를 단단히 말아쥐고 경수 역시 품 안에서 칼을 빼들었다.
두호가 씨익 웃는다.
“하시죠.”
경수가 거친 목소리로 소리친다.
“가자!”
부하들은 살기 어린 표정으로 두호를 향해 달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