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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65화 (165/204)

165화 : 가시밭길 끝엔 영광이 있다.

출렁이는 파도 위에 떠 있는 배 한 척.

임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아늑하다.

사막같은 험지를 지나가도 난기류를 만나 흔들리는 비행기 안이라도 결국은 집에 도착할 것을 알기에 마음이 편한 것이다.

상철은 갑판에 나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있었다.

사실 담배를 다 피운 지는 한참 됐지만 손이 어색하여 하나를 더 피우는 것이다.

“안 주무십니까?”

선원실에서 걸어나오는 도혁이 의아한 눈으로 상철을 바라본다.

“어 도혁이. 아직 안자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그냥.”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상철.

혼자만의 착각 같지만 인도양의 바다는 늘 새롭다.

어쩔때는 하품이 날 정도로 지루한 바다.

하지만 수백수천 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묻어버리는 엄청난 사이클론이 덮쳐올 때가 있다.

그러나 수억 명이 사용할 원료를 옮기기 위해서는 이 바다를 지나야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건너야 할 바다이지만 주위에 섬 하나 없는 망망대해라 GPS가 없다면 조난 당하기 십상이다.

인도양의 바다는 마치 인생과 같다.

한치 앞을 모르지만 분명히 의미는 있다.

그 모든 여정을 견디고 넘어서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가질 수 있다.

도혁이 그 모습을 보며 씨익 미소 짓는다.

“결혼하기 전날이라 그런지 굉장히 감성적이시네.”

“그런가. 넌 결혼 같은거 하지마라.”

“왜요.”

“하지 말라면 하지마.”

사회인의 입버릇 같은 농담에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고 크게 웃었다.

“은퇴...할 겁니까?”

용병은 결혼하면 대체로 은퇴를 선언한다.

일 자체가 험하기도 하지만 상시 가족의 곁을 떠나있어야 하니 용병들에겐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안 좋은 일이 생긴다 할지라도 자신들은 국가 소속 군인이 아니라 대우를 바라기도 힘들다.

“아니. 안한다.”

“네?”

그의 머릿속에서 차분히 지난 과거의 기억들이 돌이켜진다.

첫 총을 잡은 날.

래진을 만나 옐로우 맘바로 입단한 날.

첫 임무.

캡틴으로 취임.

알파팀의 캡틴으로서 겪은 수많은 작전과 동료들.

“이 소중한 걸 두고 어디가겠냐.”

“지금 형수님 만나야 한다고 임무 거절하던 상철 형님 어디 가셨나?”

두 사람은 다시 큰 소리로 웃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 일은 정말 웃겼는지 상철의 표정이 밝았다.

가슴팍에서 담배 하나를 꺼낸 상철이 도혁에게 건넸다.

그러나 도혁은 고개를 젓는다.

“끊으려구요. 이제 결혼도 하시는데 형님도 끊으셔야죠.”

“지만 혼자 오래 살겠다고. 의리 없이.”

상철은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한숨 같은 긴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그가 다시 망망대해로 시선이 고정된다.

잠시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두사람.

상철이 넋두리하듯 말한다.

“내 자식은 하고 싶은거 하게 할거야. 너무 책임이 막중하면 자신의 삶을 즐기지 못하거든. 딱 자신의 인생만큼만 책임질 수 있을 정도로 가르치고 마음대로 살게 할거야.”

도혁은 그 말에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려면 난 오래 살아야 돼. 적어도 내 자식이 뭘 하든 뒷바라지 해줄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싶다.”

상철이 담배를 다시 물며 씨익 미소 짓는다.

이윽고 도혁을 돌아본다.

“오래 살자 우리. 때론 빌기도 하고 구질구질하게 변명이라도 하면서 오래 살아남자.”

상철이 미소짓자 도혁이 따라 웃으며 바다를 본다.

“이런 얘기 했다는거 래진 형님에겐 비밀로 해요. 잔소리 퍼부을 테니까.”

“그래.”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동안 인도양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빌어서라도. 구질구질하게 변명을 해서라도 살아남자면서요.’

말과는 달리 상철은 임무에 타협하지 않았다.

오직 명령에 절대복종하며 가장 군인답게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 상철을 알기에 래진은 신뢰했고 동료로서 인간으로서 귀감이 되었다.

‘자식들이랑 형수님은 어쩌려고 그리 가신 겁니까.’

도혁의 눈물은 이제 방울이 아니라 줄기가 되었다.

흐르는 눈물은 애써 닦아보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운명이란 두렵다.

이제 누구를 데려갈 것이며 또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

그 사이 준모와 예수가 다시 체육관으로 들어온다.

오랜시간 동안 밖에서 기다려도 나오지 않자 다시 찾으러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케이지 앞에서 흐느끼고 있는 그를 보며 준모와 예수가 당황한다.

채호가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그들을 안심시키고 잠시 자리를 비워달라는 듯 손짓한다.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

하지만 얼굴엔 걱정이 가득하다.

조심스럽게 체육관 문을 열고 나간다.

가끔.

아주 가끔은 강한 사람에게도 잠시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하다.

***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들어온다.

바로크였다.

거친 숨을 내쉬며 방안으로 힘겹게 걸어들어간다.

자신의 집무실 책상까지 지나치는 그가 다가간 곳은 자신의 술 창고 앞이였다.

마치 배의 방향키를 잡듯 돌리니 커다란 창고가 열린다.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모든 술이 다 있는 듯 종류별로 년도 별로 분리가 되어있었다.

손을 뻗어 그중 한 병을 집어든다.

리버 앙트와느 르와이얄 그레나디안 럼.

그레나다가 자랑하는 명주.

높은 도수의 술로 유명하고 애호가들 사이에서 웃돈을 주고서도 구하려 하지만 매물이 없는 귀한 술이었다.

단도를 꺼내 코르크를 툭 찌르는 바로크.

청량한 소리와 함께 술병이 열린다.

90도에 육박하는 독한 술이지만 마치 물을 먹듯 술술 넘긴다.

이윽고 표정을 찡그리며 한숨을 내쉬는 바로크.

“더럽게 독하구만.”

이내 술을 자신의 아랫배에 붓는다.

“으윽!”

한 방울이라도 흘린다면 아까울 술이지만 반 병이 넘게 아랫배에 붓는다.

이윽고 떨어진 술은 바닥을 축축하게 적셨다.

바로크가 여전히 표정을 구긴 채 자신의 상의를 들춘다.

아직도 피가 새어 나오는 총에 맞은 상처가 드러난다.

급하게 필리핀 현지에서 응급처치를 하긴 했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치료가 필요하다.

바닥에 쓰러지듯 앉은 그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무엇을 고민하는지 인상을 찌푸리다 다시 평온해 지다를 반복한다.

“청승맞게 여기서 뭐해?”

“어. 알도프.”

술 창고를 들어서는 알도프가 마치 백화점에 온 듯 술을 구경한다.

형의 상태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태도가 거슬릴법도 하지만 바로크 역시 개의치 않는다.

이내 마음에 드는 술을 하나 골랐는지 입을 다신다.

달모어 50년산 디켄더.

일 년에 단 50병만 제작된다는 술이지만 아무런 감흥없이 병뚜껑을 열어버리고는 한 입 마신다.

“역시 클래식은 변하지 않아.”

이윽고 바로크의 옆에 똑같이 주저 앉는다.

“OG 멤버들 모두 죽었다매?”

“그래도 남는 장사였다.”

해적질부터 시작하여 평생을 함께한 동료들이지만 물건쯤으로 말하는 바로크.

하지만 그도 그럴것이 옐로우 맘바를 상대로 자신들은 고작 50명 정도를 잃은 것이다.

잔혹할 정도로 냉정한 말이지만 남는 장사.

“그건 맞지.”

술을 병째로 한 입 더 마신 알도프가 포틀랜드에서의 일을 말해준다.

“그 늙은이랑 아카데미랑 동맹인지가 감이 안잡히네. 단순히 무기거래 건수 치고는 가까워 보이는데. 그렇다고 동맹이라 하기에는 병력 서 있는 위치가 이상해. 옐로우 맘바가 2선으로 밀려나 있더라고.”

그들과 몇 마디 주고받지 않았지만 알도프는 순식간에 두 단체의 동맹 가능성을 유추하고 있었다.

“알도프.”

“왜.”

“각오 단단히 해라.”

“뭔 소리야. 갑자기.”

바로크는 알도프가 들고 있던 술병을 뺏어 들다시피 가져가 입으로 가져간다.

그러나 한 입 두 입 마시는 것이 아닌 벌컥벌컥 들이킨다.

이윽고 입을 닦으며 매서운 눈빛으로 바뀐다.

“우리는 진짜 군인이랑 싸우고 있는 거야.”

“그래봤자. 용병이지 뭐.”

대수롭지 않은 듯 생각하는 알도프를 바라보며 바로크가 피식 웃는다.

자신의 강함은 아무것도 아니다.

알도프의 승리에 대한 집착과 여유는 진짜 강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재능이니까.

“이제 한 팀 남았지?”

“찰리 하나.”

델타는 정보전에 능한 팀이니 신경쓸 바가 아니다.

옐로우 맘바에서 가장 강한 화력을 가진 찰리팀과 그들의 상징 래진.

그들만 꺾어낸다면 이제 무서울 것이 없다.

“미국으로 모두 집합완료 했지?”

“어. 총 814명. 중요 임무 진행중인 몇 명을 제외하고는 다 모였어.”

바로크가 술병을 알도프에게 건넨다.

“내일부터 시작하자.”

“좋지.”

알도프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크에게 손을 내민다.

손을 잡고 힘겹게 일어난 두 사람은 싸늘한 얼굴로 술 창고를 나선다.

그렇다 어차피 믿을 건 둘 뿐이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늘 그래왔다.

“알파팀 캡틴이라는 놈이 나한테 악마라 그러더군.”

“악마?”

알도프가 비열한 웃음을 짓는다.

이긴 놈이 강하다.

앞에 한마디가 빠졌다.

어떻게든 이긴 놈이 강한거다.

“우리한테 딱 어울리는 말이네.”

태어난 그때부터 매 순간이 지옥이었다.

죽어서도 갈 곳이 지옥이라면 두려울 것이 없다.

“가자.”

***

넓은 회의실.

수십 명이 앉을 만한 대형 원탁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래진과 영철은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영철이 슬그머니 래진을 바라보다.

“괜찮으십니까?”

상철의 부고를 전해들은 뒤부터 눈에 띄게 수척해진 래진이었다.

특유의 능글맞고 여유로운 기색은 없어졌고 오직 칼 같은 복수심만이 남아있다.

“괜찮다.”

차가운 말투.

그러나 영철은 래진이 어떻게든 이성을 지키려 노력하는 방법임을 눈치챘다.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들어온다.

전 블랙워터.

현 아카데미의 이사들과 간부들.

그 뒤로 현 아카데미의 대표인 에릭 코첼로가 들어온다.

밝은 미소로 래진에게 다가온 그가 먼저 손을 내민다.

“이게 얼마만입니까. LJ”

“잘 지내셨습니까. 대표님.”

에릭 역시 특수부대 출신이기에 래진과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다만 래진이 현장을 떠나고 에릭 역시 대표자리에 취임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거리는 멀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만나니 그간의 향수들이 떠오르며 반가워진 것이다.

에릭이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래진을 바라본다.

“이번 무기거래는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오히려 빠른 결단을 내려주신 것에 감사하죠.”

거래는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의미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누가 사고 누가 파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먹으면 탈이 나는 음식이 있는 것처럼 거래 상대를 잘 확인해야 했다.

판매자인 옐로우 맘바는 믿을만 했지만 포그스컬스의 물건은 아카데미로서도 부담이 된다.

하지만 에릭은 늦은 새벽에도 결단을 내렸고 늦지않게 필리핀에 선박이 도착하게 된 것이다.

“자 그럼. 반가움의 인사는 이따가 회의 끝나고 하기로 하구요.”

그가 책상 위에 팔을 올려 깍지를 낀다.

“의뢰하실 것이 있다구요.”

순식간에 비즈니스맨으로 돌변한 에릭의 태도에 영철은 당황했지만 래진은 전혀 동요가 없었다.

원래 대표의 자리란 이런 것이니까.

래진이 자신의 자리 앞에 놓여진 물 한 컵을 순식간에 비운다.

이윽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에릭을 바라본다.

“아카데미. 아니 블랙워터 시절의 병력 좀 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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