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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64화 (164/204)

164화 : 가시밭길 끝엔 영광이 있다.

그렉 역시 아는 얼굴인 듯 눈을 좁힌다.

등장한 인물은 다름 아닌 알도프 코와르키였다.

그의 뒤엔 수백 명에 달하는 포그스컬스 소속 용병들이 뒤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편안한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싸늘한 긴장감이 포틀랜드의 작은 항구에 감돌았다.

아카데미 소속의 용병들은 그들을 매섭게 노려보았고 포그스컬스는 도발기를 머금은 미소로 화답한다.

찰리팀은 금세라도 튀어나갈 듯한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쥔다.

한 팀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영철에게 말한다.

“지금이라도 명령 주시면 저 새끼들을 저희가...”

“그만. 보스가 하실 일이다.”

애써 괜찮은 듯 팀원들은 진정시키지만 영철의 마음은 그들보다 더욱 들끓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알도프의 목을 꺾어버리고 싶은 심정.

그러나 지금 자신들이 움직이는 것은 빌미를 줄 뿐이었다.

래진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에게 말한다.

“아니 이게 누구 십니까. 저명하신 챔피언님이 이 시골 항구에는 어쩐 일이신지?”

“뒷방 늙은이한테 물을게 있어 왔습니다.”

알도프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래진을 바라보았다.

면전에서 대놓고 늙은이라 모욕했지만 래진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오히려 정말 늙어보이는 듯한 행동을 보여준다.

허리를 툭툭 치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래진.

“그래. 애송이가 물을 것이 무엇인가?”

순간 애송이라는 말에 알도프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러나 다시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온 알도프.

“지렁이 새끼가 우리집 창고를 털었는데, 누가 여기서 비슷한 물건을 거래한다 해서. 혹시 아시는 바가 있어서 여쭙니다.”

뱀도 아니고 지렁이.

끝없이 도발하는 그를 보며 래진은 눈을 좁혔다.

물건을 회수하러 온 것인가.

아니면 물건을 핑계로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가.

래진은 알도프를 위아래로 훑어 보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은 애송이.

“아. 등신같이 물건을 도둑 맞았다는 게 자네인가? 그런 물건을 혹시나 본다면 내 말해 줌세.”

여전히 장난스러운 말투로 얘기하는 래진을 보며 그렉이 슬며시 미소 짓는다.

알도프는 씨익 미소 짓는다.

‘늙은 구렁이. 확실히 이빨 하나는 예술로 터는구만.’

자신 역시 수없이 많은 트래쉬 토킹과 도발을 해왔지만 저 래진에겐 전혀 먹히지 않는다.

알도프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내놔. 좋은 말로 할 때.”

“글쎄. 한 번 털린 것에는 주인이 없지. 기본적인 이 바닥 룰도 까먹었나?"

“내놓지 않으면 이빨을 뽑아 버리겠다.”

순간 포그스컬스가 내뿜는 기운이 바뀌었다.

방금까지는 그저 껄렁이는 양아치들이었다면 지금은 그들 역시 베테랑 군인으로 바뀌었다.

명령이라도 떨어지면 바로 총을 뽑아 격발할 기세.

래진이 슬며시 미소 짓는다.

“챔피언이라 그런가? 확실히 안하무인이네. 그런데...”

그의 말과 함께 옐로우 맘바 역시 그들과 같은 자세로 바뀐다.

항구에서 퍼져있던 아카데미의 용병들 역시 전투태세로 돌입하고 넓게 퍼져 선다.

순식간에 포그스컬스를 포위한 모양새.

래진이 자신의 권총집을 손가락으로 툭 튕긴다.

“인생이 자기 성깔대로 되는 게 아니야. 애송아.”

해볼 수 있으면 마음대로 해봐라.

대신 너는 오늘 살아나가지 못한다는 도발이었다.

그렉이 한 발자국 나서며 싸늘한 표정으로 알도프에게 말했다.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봐. 미국 본토에서 아카데미랑 척을 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주지.”

항구는 전운이 감돌았고 누구 하나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서로를 향해 총알을 뿌려댈 것 같은 분위기에 알도프가 말없이 래진을 바라본다.

전대의 거물.

지금의 옐로우 맘바를 만든 사람이자 정점.

더군다나 주위에 포진해 있는 아카데미.

‘지금 한바탕 벌인다면...’

포위는 당했지만 딱히 불리한 지형도 아니다.

근처에 놓인 자재들로 숨어 들어가기만 한다면 오히려 숨을 곳이 없는 쪽은 아카데미의 용병들이다.

잠시 생각에 잠긴 알도프는 히죽 웃는다.

“아카데미가 뭐라고. 조만간 찾아갈 테니까 보관이나 잘 해둬라. 덩어리.”

몸을 돌려 걸어가는 알도프.

몇 걸음을 옮기다 멈춰선 그가 무언가 생각난 듯 래진을 돌아본다.

“그쪽 부하직원은 별일 없습니까? 부고장 날라오면 연락주쇼.”

그 말에 찰리팀이 격분했지만 다시 영철이 말렸다.

래진 역시 잠시의 동요가 있었지만 그를 그저 내버려 두었다.

멀찍이 걸어가는 포그스컬스와 알도프를 보며 그렉이 눈을 좁힌다.

“형제가 쌍으로 미친놈들이라더니. 정말인가 보군요.”

“객기가 아닙니다. 저 말 유의해서 들으세요.”

그들이라면 미국 백악관을 공격할 정도로 무모하다.

“주의하겠습니다.”

래진은 한숨을 내쉰다.

마지막으로 뱉은 알도프의 말이 턱하니 가슴에 걸린 것이다.

그 순간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들려온다.

부아아앙!

멀리서 다가오는 배를 발견한 그렉이 밝게 미소 짓는다.

“왔나 봅니다.”

“그러네요.”

조금씩 가까워지는 배.

그러나 선장실의 창문은 모두 깨져있고 외벽은 검게 그을러져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엄청난 격전이 있었음을 알게하는 흔적들.

래진은 말없이 다가오는 배를 지켜보고 있었고 어느새 배는 100미터 안까지 접근했다.

그 순간 래진의 핸드폰이 울린다.

핸드폰의 화면을 본 래진은 우두커니 멈춰섰다.

그 모습을 본 영철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전화를 받은 래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네. 접니다.”

잠시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는 래진.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래진은 쓰러지듯 자리에 주저앉는다.

이윽고 그의 얼굴엔 허망함이 가득했고 닭똥같은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상철아... 이 새끼야...”

그렇게 작은 항구에는 래진의 울음소리만이 가득했다.

***

탁현과 두호는 케이지 안으로 들어왔다.

이내 두 사람이 서 있는 케이지 안으로 글러브 두 개가 던져졌고 두호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부상이시니 진짜 때리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체감은 해보시죠.”

무엇인가 직접 보여주려 하는 듯 글러브를 착용하는 탁현.

두호는 그의 의도를 파악하고 탁현와 마찬가지로 글러브를 착용했다.

탁현과 마주보고 있는 두호.

전형적인 사우스포(왼손잡이의 기본적인 타격 자세) 자세에 탁현.

더군다나 완벽하게 복싱 자세이다.

그러나 어딘가 불편함을 느낀다.

왠지 펀치를 뻗기가 불편해지니 두호가 유심히 탁현의 모습을 살펴본다.

하지만 그의 자세에서는 특이한 점을 느낄 수가 없었다.

탁현은 두호를 보며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다.

‘좋아. 느끼고 있어.’

탁현은 손바닥으로 두호에게 들어오라는 듯 손짓했다.

두호는 탁현이 자신에게 전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내 가볍게 잽을 지른다.

부상중이니 무리하진 않았지만 가벼운 스파링이라 치기에는 꽤 빠른 속도였다.

그러나 탁현은 순식간에 두호의 잽을 패링하며 순식간에 사각을 잡아낸다.

만약 탁현이 카운터를 날릴 의도로 주먹을 뻗었다면 꼼짝없이 허용했을 각도.

두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 빠르지도 않았지만 순식간에 자신의 사각이 잡힐 만큼 거리가 좁혀졌다.

“오소독스(오른손잡이의 기본 타격자세)가 사우스포를 상대해야할 때 기본적으로 행해야하는 셋업이 있습니다.”

탁현은 자신의 앞발을 툭친다.

“상대의 앞발보다 더 바깥쪽으로 나가 있을 것. 그것만으로도 왼손잡이의 이점을 상당히 줄일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오소독스의 싸움과는 달리 왼손잡이들의 싸움 양상은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

늘 그렇듯 오른손잡이에게 파고들 듯이 달려든다면 왼손잡이의 뒷손과 자신의 얼굴이 가까워진다.

그리고 나의 주 손인 오른손은 상대의 등 쪽을 바라보게 되어 유효타를 먹이기 어려워진다.

“제이미 로엘은 오른손잡이를 상대로 승률이 90%에 육박합니다.”

두호는 자신의 두 다리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습관처럼 나왔던 두호의 타격 싸움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것이다.

“지구상에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의 숫자들 보다 훨씬 적죠. 그렇기에 오른손잡이 선수는 연습하기가 더욱 힘듭니다. 그간 상대해왔던 사우스포 선수들과는 달리 엄청난 완성도를 보이는 선수죠”

동네 체육관 수준의 복싱장을 다닌다 할지라도 운동인 10명 중 8~9명은 오른손잡이이다.

하지만 왼손잡이들은 수 많은 오른손잡이들과의 싸움으로 이미 익숙해져 있기에 두호는 상당히 불리한 조건에서 싸워야한다.

“지금부터 우리는 오소독스 헌터인 불릿을 잡기 위해 왼손잡이들을 끝없이 분석하고 맞춰 훈련을 진행할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탁현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케이지를 내려간다.

“좋습니다. XFC에서 제안한 오퍼를 수락하기로 하고 회의 들어갑시다. 팀 코리안 몬스터는 모두 회의실로 모여주세요. 두호씨는 오늘 저녁에 기자회견 있으니 샵이라도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두호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코리안 몬스터 팀원들은 모두 회의실로 떠났다.

예수와 준모가 두호에게 다가간다.

그 순간 채호가 한발 먼저 두호를 불렀다.

“두호씨. 잠시 얘기 좀 나누시죠.”

예수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본다.

“저는 그럼. 샵을 예약하고 있을게요.”

그러자 준모도 두 사람이 나눌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눈치를 챘고 손을 번쩍 쳐든다.

“밖에서 차 대기해놓고 있겠습니다. 편하게 말씀 나누십시오.”

이내 각자의 역할을 위해 흩어졌고 케이지 앞에는 채호와 두호만이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

두호는 글러브를 벗으며 말했다.

“아까 얘기 더 해봐.”

“네. 연락이 모두 두절되었는데. 현지 언론에서 공개하기로는 옐로우 맘바의 지프 차량이 4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두호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일반적으로 옐로우 맘바 팀 하나가 움직일 때 지프 차량은 4대가 동원된다.

하지만 4대 모두가 사건 현장에 있다는 것은 한 가지를 의미한다.

모두 죽어 차량을 회수하지 못한 것.

너무 부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두호는 고개를 저었다.

“복잡하네.”

“정말 별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나 역시.”

그 순간 채호의 핸드폰이 울린다.

맹혁이라고 떠 있는 이름을 보며 채호가 다급히 전화를 받는다.

“어. 혁아. 별일 없어?”

-나는 괜찮다. 무기랑 함께 미국으로 왔고 아카데미한테 무기 다 넘겼다. 근데...

말끝을 흐리는 맹혁으로 인해 본능적으로 일이 잘못되었음을 감지하는 채호.

무기는 다 넘겼고 거래까지 성공했으니 남은 일은 하나다.

알파팀의 복귀.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문제.

-상철 형님. 돌아가셨다.

“뭐!?”

채호가 눈이 휘둥그레진다.

-래진 형님이 아까 필리핀 현지 경찰에게 소식 전해 들으셨나봐. 시체중에 옐로우 맘바 알파팀 전원 신원 확인 됐단다. 상철 형님도 마찬가지고.

덤덤한 듯 말하지만 수화기 너머로도 그의 감정이 전달되었다.

갈라지며 떨리는 목소리.

-지금 래진 형님 오열하셔서 쓰러졌다. 나중에 또 연락줄게.

“그래. 알겠다.”

전화를 끊은 채호가 착잡한 표정으로 두호를 바라보았다.

“상철 선배님. 사망하셨답니다.”

두호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잠시 멍해졌다.

초점없는 눈으로 채호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가 숙여진다.

이윽고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한숨을 내쉬는 두호.

이내 손바닥 사이로 눈물이 떨어진다.

또 한 명이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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