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 가시밭길 끝엔 영광이 있다.
체육관의 문이 열리고 두호가 들어선다.
“안녕하십니까.”
그의 인사에 체육관 중앙에서 모여있던 팀 코리안 몬스터가 모두 달려나온다.
“두호씨! 잘 쉬셨습니까?”
“일찍 나오셨네요? 점심 이후에 나오셔도 괜찮은데.”
그들은 모두 밝은 표정으로 두호를 반겼다.
두호의 표정은 다행히도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방금 전까지 모여서 예수의 말을 듣고 있던 직원들은 모두 걱정이 한아름이었다.
화천에 다녀온 뒤로 표정이 굳어져 혹시나 그의 멘탈에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었지만, 걱정한 바와는 달리 잘 극복해낸 듯 싶었다.
두호가 그들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싱긋 미소 짓는다.
“피곤이 좀 있었는데 한숨 푹 자니 괜찮네요.”
“아마 시차 때문일거에요. 다행입니다.”
주민과 채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쉰다.
어쩌면 선수에게 운동능력은 두 번째인지도 모른다.
모든 훈련을 견뎌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능력은 모두 멘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탁현 만큼은 아직 어두움이 가시지 않았다.
“일찍 오셔서 어쩌면 다행입니다. 바로 회의할 것이 있으니까요”
두호는 탁현의 태도에서 무언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구나 눈치챘다.
“바로 회의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안건이 뭡니까?”
그러자 체육관의 문이 다시 열리며 누군가 들어온다.
채호였다.
“반갑습니다. 이른 아침의 체육관은 또 느낌이 사뭇 다르네요.”
그의 모든 일정에 첫 부분은 필린의 본사로 이동하여 업무 보고를 받는 것이다.
필린에게 격투기 파트는 아주 작은 계열사중에 하나일 뿐이다.
몇백억 대의 구기종목 파트를 관리하는 그들의 입장에서 두호는 아직 영세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채호가 그런 중요한 업무를 모두 제쳐두고 이곳에 먼저 온 일은 그만큼 심각한 일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채호가 곧바로 회의실을 가르키자 회의 준비를 위해 코리안 몬스터팀이 모두 분주하게 움직였다.
두호 역시 천천히 회의실로 향하자 채호가 그의 옆에 바짝 따라붙는다.
“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채호가 주위를 살피는 듯 하더니 이내 사람이 없는 웨이트장으로 두호를 데리고 이동한다.
둘만 남은 상황에서 채호가 무언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듯 어두운 표정으로 말한다.
“아무래도 필리핀에서 큰 전투가 발생한 모양입니다.”
“필리핀에서?”
자신이 마지막으로 확인한 필리핀의 양상은 이러했다.
다른 용병단체에 무기를 거래할 것이라는 소문을 낸다.
해머필드를 비롯한 많은 무기 거래상들이 접근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무기를 되찾기 위해 포그스컬스가 개입한다.
하지만 해머필드와 다른 무기 거래상들의 눈에는 자신들의 거래를 포그스컬스가 방해하는 것이므로 자연스럽게 그들과의 사이가 틀어진다.
자연스럽게 상대의 적을 늘리고 숫자를 줄일 수 있는 편안한 방법.
그러나 큰 전투가 벌어질 줄은 두호조차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자세히 말해봐.”
“혁이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무기 거래 현장을 바로크가 공격했고 몇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겁니다.”
두호의 눈이 좁혀진다.
알파팀과 맹혁의 직원들을 모두 포함하면 50여명 정도.
하지만 사상자가 몇백 명이라니.
도대체 몇 명이 엉켜 전투를 벌였다는 것인가.
더군다나 바로크가 직접 필리핀에 등장했다는 것은 무엇인가.
“첫 무기 거래때 천억을 제시하며 무기를 회수하려 했지만, 알파팀이 아카데미에게 무기를 팔려하자 홧김에 들이박은 모양입니다.”
두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이 알기에 바로크는 이성적인 인물로 들어왔다.
옐로우 맘바를 압박하는 능력이나 판세를 읽는 능력은 자신도 인정하는 바이다.
단지 자신이 도혁이라는 것을 모르니 일이 틀어졌지만 그것은 엄연히 능력 밖에 일이다.
두호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알겠어. 나중에 얘기하자. 알파팀은?”
“그게...”
“왜?”
“알파팀 전원 연락 두절이라고 합니다.”
두호의 표정이 어둡게 내려앉는다.
그리고 그의 분노는 숨겨지지 않았고 엄청난 살기를 내뿜는다.
그 기세에 채호가 흠칫한다.
“형님...아시겠지만 이제는 우리가 낄 수 있는 판이 아닙니다. 부디 진정하시고...”
“알았으니까. 나중에 얘기해.”
두호는 굳은 표정으로 훽하니 돌아섰고 회의실로 걸어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채호가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본다.
‘제발. 형님. 침착하세요. 지금은 형님의 뜨거운 가슴보단 차가운 머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채호는 한숨을 내쉬며 두호를 따라 회의실로 향한다.
***
평소의 회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빔 프로젝트에서는 화상회의를 준비하는 듯 대형 스크린과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방의 불은 모두 어둡게 꺼져 자세히 서류를 살펴보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탁현과 채호는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 내용을 모르는 채수와 주민의 표정은 편안해 보인다.
이내 연결중이라는 스크린의 모습이 바뀌며 곧 한 여자가 등장한다.
레이첼이었다.
채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레이첼.”
그녀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숙인다.
-반갑습니다. 이채호 대표님. 이렇게라도 만나니 좋네요.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여유롭지 않았고 오히려 잠을 설친듯 다크서클이 두터웠다.
화면속에 그녀와 같은 자리에 매치 메이커인 로드 실바를 비롯하여 수많은 XFC 간부들이 모여있었다.
이쪽에서도 채호가 직접 나와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비즈니스 미팅엔 엄연히 급을 맞춰야 하니까.
-저희도 마냥 두호 선수의 승리를 만끽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는 일이 생겼네요.
채호가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호는 무슨 일인지 채호를 돌아보자 탁현이 무거운 표정으로 대신 말해주었다.
“우리와 다음 매치 선수로 내정되어있던 프란시스가 의문의 차량 폭발 사고로 인하여 중상을 입었습니다. 목숨엔 지장이 없다 하지만 아직 의식이 없어 다음 경기엔 불참 예정입니다.”
두호는 눈을 좁히며 화면 속에 레이첼을 바라본다.
“그렇다는 건.”
-네. 저번에 말씀드린대로 싸움은 벌써부터 시작되었어요. 이것마저 우연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우리 XFC측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경찰은 뭐랍니까.”
-경찰들이 수사를 착수했지만 마침 그 시간대에 CCTV 회로가 모두 손상되어 수사의 난항을 겪고 있다는군요.
두호는 눈을 감고 팔짱을 꼈다.
알도프만이 가능한 방법.
포그스컬스라는 확실한 행동대원들이 있으니 가능한 부분이다.
레이첼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두호를 바라본다.
두호는 채호를 바라보며 슬쩍 고개를 끄덕인다.
계속해서 진행하자는 뜻이었다.
채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레이첼에게 필린의 뜻을 전했다.
“우리 선수와 저희 필린측은 내부회의를 거친 결과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했으면 하는 바입니다.”
-네. 벌써부터 이런 일이 생기니 두호씨를 위한 각별한 관리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일단은 저희 측에서 제안 드리는 선수를 확인해보시고 다시 연결 부탁드립니다.
이윽고 연결이 끊어졌고 한 직원이 빠르게 달려가 회의실 내부의 불을 켰다.
탁현은 주민과 채수에게 알도프와의 관련된 추문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주민과 채수는 상황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한 걸 알고는 분노했다.
“뭐 그런 놈이 다 있냐.”
“세상에 또라이들 많다더니. 하필 정점에 앉은 놈이 그 모양이네.”
채호가 박수를 쳐 이목을 집중시킨다.
“자자! 일단은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고 현재에 집중합시다.”
탁현은 대형 스크린으로 걸어갔고 이내 한 화면을 띄운다.
XFC의 공식 메일 주소로 보내온 메일.
그 안에는 다음 선수와 관련된 정보가 담겨있었다.
스크린에 한 사내가 떠오른다.
얇게 찢어진 눈에 백인.
헤어스타일은 굉장히 특이하게 윗 머리만을 제외하고는 삭발한 상태였다.
“이름. 제이미 로엘. 올해 나이로 30. XFC 미들급 랭킹 8위에 안착한 선수입니다.”
곧이어 탁현이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로 접속해 로엘의 경기를 틀었다.
“2021년 올해의 KO로 선정되었던 그의 경기입니다. 함께 보시죠.”
올해의 매치.
XFC에서는 한 해 가장 뛰어난 KO를 보여준 선수에게 엄청난 액수의 보너스와 다음 연도 XFC 굿즈에 대표 이미지로 새겨주는 혜택을 부여한다.
경기가 시작되고 로엘이 상대 선수에게 다가간다.
미들급 치고는 작은 체구의 로엘은 상대 선수와 마주하니 더욱 작아 보였다.
하지만 그의 파이팅은 체구와는 전혀 달랐다.
상대는 리치를 앞세워 창 같은 잽을 찔러넣었다.
그러나 로엘은 그 펀치를 그대로 패링한 다음 상대의 얼굴에 순식간에 5연타를 꽂아 넣는다.
비틀거리는 상대가 위기임을 감지하고 곧바로 팔을 휘둘러 거리를 벌려본다.
그의 노력은 아쉽게도 허사가 되었다.
로엘은 순식간에 사각을 잡아내며 다시 4연타를 찔러넣는다.
완전히 다리가 풀려 겨우 중심을 잡고있는 그의 얼굴을 붙잡은 채 플라잉 니킥.
마우스 피스를 끼고 있었지만 앞니가 부러질 정도로 엄청난 위력이었다.
“닉네임 불릿(bullet. 총알). 2016 WBA 복싱 슈퍼웰터급, 미들급 챔피언. 이후 프로복싱에서 은퇴를 선언한 이후 유럽 대륙 킥복싱 대회에서도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XFC에 거액의 돈을 받고 입단한 선수이죠.”
과연 불릿이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엄청난 핸드스피드와 정확한 타점을 보여주었다.
두호가 탁현의 말에 더욱 집중한다.
“엄청난 핸드 스피드에서 나오는 칼 같은 카운터. 더군다나 근본있는 스트라이커 답게 능수능란한 거리조절로 상대에게 절망감을 느끼게 하는 선수입니다.”
탁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두호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의 진짜 문제점은 따로 있습니다.”
두호가 의아한 표정으로 탁현을 바라본다.
***
포틀랜드의 작은 항구.
과거 19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갖은 군수 품목이 태평양으로 넘어가는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샌프란시스코에 대형 항구가 생긴 이후로 작은 소매 단위에 매물만이 오고가는 항구로 퇴색했다.
이제는 잘 활용되지 않는 항구인지라 큰 선박은 찾기 힘든 곳에 옐로우 맘바 찰리팀을 포함하여 절제된 모습의 군인들 수십 명이 서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파견된 용병들이 이번 무기 거래의 물건을 이송하러 온 것이다.
아카데미의 전 이름은 블랙워터.
그들은 이름답게 검은색의 사막복으로 맞춰 입고 칼 같은 기세를 내뿜는다.
이번 이송팀의 책임자인 그렉과 서 있는 래진.
그렉이 래진에게 종이컵에 담긴 커피 한잔을 내민다.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LJ.”
“그 호칭도 오랜만이네요. 감사합니다.”
래진은 살짝 미소를 지어 감사를 표하고 그가 내민 커피를 받는다.
LJ.
자신이 현역시절 수 많은 용병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Little Jesus(작은 신).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다는 그의 별명은 용병업계에서 전설로 남았다.
래진이 현장으로 복귀했다는 말을 듣고 그렉은 그의 얼굴이나 한번 보고자 나온 것이다.
“이번 거래의 감사를 전해달라는 대표의 명령을 듣고 나왔습니다.”
“별말씀을. 아카데미 정도나 되어야 소화 가능한 물건이니까요.”
메이저의 아카데미.
마이너의 옐로우 맘바.
두 양대산맥이 한자리에서 거래 현장을 지키는 진 풍경이었다.
포틀랜드의 바람은 선선했고 햇살 역시 가을 날씨와 맞지 않게 따듯했다.
그 순간이었다.
“사람 존나게 많네.”
수많은 인파와 등장한 한 사내로 인해 래진의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