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 가시밭길 끝엔 영광이 있다.
상철은 마치 약올리듯 차 밑으로 상체를 숙였다.
보기좋게 빗나가 버린 총알.
그 사이 알파팀 사내가 바로크 바로 뒤 차량에서 튀어나온다.
곧바로 바로크를 향해 총을 겨눈다.
그의 머리를 노리고 격발했지만 바로크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고개를 숙여 피해냈다.
“옐로우 맘바 이름이 이런 비겁한 짓으로 얻은 거였구나.”
“방금껀 일부러 안 맞춘건데. 배려인걸 못 느꼈나보네.”
바로크가 벼락같이 권총을 들어 그를 겨냥했지만 알파팀 사내가 그의 허리춤을 부여잡고 태클을 한다.
쾅!
엄청난 힘에 밀려 바로크가 차에 부딪친다.
이윽고 두 사람의 몸싸움이 시작된다.
바로크의 이마에는 핏줄이 돋아난다.
“싹 다 죽여! 오늘 이 새끼들이라도 다 잡는다.”
알파팀 사내가 목에 핏대가 보일 만큼 힘을 주고 있지만 표정엔 미소가 지어졌다.
“할 수 있을까?”
바로크 역시 온 힘을 다하고 있지만 표정엔 애써 여유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무렴. 뱀 새끼 잡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아프리카 양아치 새끼가 입씨름은 제법이구나.”
바로크의 눈이 순간 빛난다.
사내의 다리를 뻥하니 차자 알파팀 사내가 옆으로 쓰러진다.
하지만 그 역시 그대로 넘어져 주지는 않았다.
바로크의 상의 옷을 잡아채며 바닥으로 같이 굴러 떨어진다.
처절한 난투극을 벌이는 두 사람.
상철이 그를 도와주기 위해 달려가려 하지만 그에게 총알이 쏟아진다.
탕탕!
“젠장.”
어쩔 수 없이 다시 차량 뒤로 몸을 숨긴 상철이 살짝 고개를 들어 상대편 너머를 바라본다.
끝없이 쏟아지는 포그스컬스의 병력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이 몰려드는 사내들에게 질릴 지경이었다.
‘필리핀 깡패 새끼들 있는대로 다 끌어왔나보군.’
어느새 상대의 병력은 어림잡아도 300명이 넘어 보인다.
더군다나 교전의 형태가 일자 진형이라 피해를 각오하고 머릿수로 밀고 들어온다면 답도 없다.
본능적으로 상철은 오늘 일이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임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자신은 대 옐로우맘바 알파팀의 캡틴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한 판단을 내려야하고 끝까지 부하들을 독려해야한다.
그리고 늘 그렇듯 이번 임무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총기를 집어들어 다시 싸울 준비를 하는 상철.
‘도혁이가 모술에서 한 500명은 잡았으려나.’
그가 미소를 지으며 총기를 재장전한다.
‘형이 되어가지고 동생보다 못할 순 없지.’
그의 눈빛에 붉은 불꽃이 피어오른다.
여기서 숫자를 줄이지 못한다면 이 인원이 그대로 래진이 있는 미국으로 향할 것이다.
‘오늘 이놈들이랑 같이 죽는다.’
상철이 벼락같이 상체를 일으켜 세워 곧바로 전투에 돌입한다.
먼 하늘을 보고 있는 래진.
“그러고 보니 상철이를 알고 지낸지 30년이 다 되어가네.”
나이 차이도 별로 안날뿐더러 자신의 말이라면 그저 믿고 따라와준 상철.
도혁과 영철의 세대 이전 옐로우 맘바 용병 중 가장 돋보였다.
옐로우맘바에 들어오자 말자 끝없는 임무와 전투를 반복해왔고 래진과 상철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캡틴을 달게 되었다.
만약 전쟁터에서 자신의 뒤를 맡겨야 할 단 한 사람이 필요하다면 도혁에게 미안한 소리이지만 자신은 상철을 선택할 것이다.
그만큼 세월이 만들어준 신뢰와 유대감은 무시할 수 없다.
어둡지만 달빛으로 인하여 하늘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 순간.
별똥별 하나가 동쪽으로 툭 떨어진다.
마치 무언가를 암시하는듯한 모습에 래진이 힘겹게 부정하며 고개를 돌린다.
그 모습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영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래진의 옆으로 다가가는 영철.
“잘 하실 겁니다. 상철 형님 강한 분 아니십니까.”
“그렇지. 상철이는 참 강한 사람이지.”
자신 같은 놈팽이보다야 천배 만배는 나은 진짜 군인이다.
그러나 당최 사그라들지 않는 불안감.
그 더러운 기분에 래진은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만약 이번에도 또 한 번 동생을 잃게 된다면 자신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순간 그의 핸드폰이 울린다.
혹시나 상철인가 싶어 황급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지만, 아쉽게도 전화의 주인공은 맹혁이었다.
“어 혁이. 오랜만이구나.”
-오랜만입니다. 보스.
“그래. 일은 어떻게 되었나.”
태연한 척 맹혁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문다.
떨리는 긴장감을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물건은 별 탈 없이 아카데미에게 넘겼습니다. 지금 그들의 선박을 타고 미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는지 래진의 뒷골이 땡겨온다.
차분하게 감정을 가라앉히며 자신의 뒷목을 주무른다.
맹혁이 힘 빠지는 목소리로 말한다.
-상철 형님과 알파팀은 카바나투얀 항구에서 포그스컬스를 저지하시다 배에 탑승하지 못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영철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떨어트렸고 래진은 처연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결국...’
맹혁이 습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한다.
-죄송합니다...
래진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은 무슨. 넌 너 할 일 다한거지. 어디 다친데는 없지?”
-네. 모두 괜찮습니다.
“상철이는 강한 사람이다. 꼭 살아올거야.”
-알겠습니다. 미국 본토 도착해서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래.”
전화가 끊어졌고 래진은 초조한 마음에 담배 하나를 꺼내 문다.
라이터를 찾기 위해 주머니를 뒤지자 영철의 손이 불쑥 들어온다.
래진이 물고있던 담배의 불을 붙여준다.
“하아.”
한숨인지 담배연기를 뿜는지 모를 래진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오늘따라 밤이 유독 길 것 같다.
“죽어 이 씨발새끼야!”
알파팀의 사내가 뒹굴던 포그스컬스 사내의 목에 칼을 찔러넣는다.
사내는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죽었지만 알파팀의 사내 역시 엉망진창이긴 마찬가지였다.
얼굴에 가득 피를 뒤집어썼고 몸에는 성한 곳이 없다.
그의 주위에는 수 많은 시체들이 널려있었다.
마치 쓰레기 매립지에 폐품들처럼 널부러진 시체들을 보니 마치 지옥에 던져진 것 같다.
알파팀의 사내가 거친 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러왔지만 이 정도의 격전은 처음이다.
매 순간 도망가고 싶고 살고 싶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면 총탄이 쏟아지고 폭탄이 터진다.
살기 위해서는 끝없이 움직여야 하고 처절하게 싸워야 했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던 동료는 어느새 차가운 시체가 되어 바닥에 쓰러져있다.
뭐가 그렇게 아쉬운지 눈도 감지 못하는 그를 보며 사내는 쓴웃음을 지었다.
힘겹게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알파 팀원.
그러나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등 뒤에서 불쾌한 느낌이 들어온다.
자신의 내장까지 헤집어놓는 듯한 쇠붙이의 느낌.
알파팀의 사내가 고개를 돌리자 필리핀 갱의 얼굴이다.
오늘은 처음 본 사이이지만 마치 자신을 철천지 원수 보듯 살기가 어린 눈빛을 보니 허망함까지 느껴진다.
‘오늘 집에는 못 들어가겠네.’
알파팀 사내가 몸을 돌리자 필리피노가 칼을 빼내 재차 배에 찔러넣는다.
알파팀 사내는 피를 토하지만 죽을힘을 다해 손을 뻗는다.
이윽고 필리피노의 눈으로 손이 간다.
헤집어놓는 듯 엄지 손가락이 필리피노의 눈에 쑤욱 들어갔다.
“으악!”
사내는 눈을 쥐어잡고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진다.
마지막 순간까지 한 명을 제압한 알파팀의 사내는 뒤로 털썩 쓰러진다.
“아 피곤하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알파 팀원의 사내 역시 숨을 거뒀다.
그가 쓰러지자 그의 몸에 총알이 여러발 꽂힌다.
탕탕!
확인사살을 마친 바로크가 쓰러지듯 차량에 몸을 기댄다,
얼굴에 피칠갑을 한 채 다리 한쪽에 총을 맞은 듯 절뚝인다.
그러나 그의 눈만은 또렷했다.
독기와 광기가 어우려져 도저히 다가설 수 없는 눈빛.
이윽고 그가 차량을 밀어내듯 일어서 어디론가 걸어간다.
바로크가 걸음을 떼는 곳마다 레드카펫처럼 바닥이 피로 얼룩진다.
얼마쯤 걸어가니 한 차량 앞에 엎어지듯 주저 앉는다.
느릿하게 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문다.
그리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이곳에 동원된 자신의 부하들과 필리피노들만 400명이 넘어간다.
그러나 멀쩡히 일어서있는 부하는 단 한 명이 없었고 그저 목숨만 부지한 채 버티고 있는 사람 몇몇만 보일뿐이었다.
바로크의 시선이 천천히 돌아와 차에 기대앉은 한 사내에게 고정된다.
유상철.
옆구리의 피를 흘린 채 껄떡이며 숨을 쉬고 있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위태로웠다.
그런 상철의 옆에 차갑게 시체가 되어있는 머레이.
만약 머레이가 상철을 묶어두지 않았다면 지금 상철의 상태는 자신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옆구리를 잡은 채 거친 숨을 내쉬던 상철.
왜 저렇게 까지 하는 거지?
상철을 바라보는 바로크의 눈에 의문이 가득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요? 우리가 돈을 안 준 것도 아니고.”
상철은 바로크의 물음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크윽!”
반대손까지 끌어와 옆구리를 잡아보지만 그가 흘리는 피는 이미 치사량이었다.
힘겹게 상철은 바로크를 바라보았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고?”
“그렇소.”
“넌 군인 출신이 아니라 모르겠지.”
바로크가 의아한 표정으로 상철을 바라본다.
상철의 눈빛은 완전히 살아있었다.
오히려 기계처럼 싸워야 했던 전투때 보다 더욱 생기있는 시선이었다.
“군인은 자신에게 내려진 명령에 절대라는 단어가 붙은 순간. 이유와 의문 그리고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다.”
힘겹게 말을 이어나가다 기침을 하는 상철.
피가 마치 분수처럼 튀어나왔다.
바로크의 얼굴에까지 피가 튀었지만 그는 전혀 불쾌한 표정이 아니었다.
상철이 그를 보며 씨익 웃는다.
“내가 받은 명령은 아카데미의 무기 거래 현장을 절대 사수하라였다. 그럼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명령에 죽는 거지.”
이토록 처절하게 싸운 이유가 그저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말.
그 말을 들은 바로크가 허망한 듯 헛웃음을 지었다.
아마 여기에 있는 자신들의 부하는 머레이를 제외하고 모두 돈으로 고용된 용병이다.
과연 이런 말을 자신있게 할 수 있는 부하가 자신에게는 몇이나 있을까.
“난 오히려 바로크 자네가 신기하네. 사람 몇백 명이 죽은 현장에서 하는 질문이 고작 그거라니.”
상철은 고개를 젓는다.
“인간이랑 싸운 게 아니었어. 난 악마랑 싸운거야.”
그 말을 들은 바로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다.
잠시 말없이 상철을 내려다보는 바로크.
무표정한 얼굴로 권총을 상철에게 겨눈다.
“훌륭했소.”
“별말씀을.”
탕!
탕탕!
그러나 확인 사살은 멈추지 않았고 이미 죽어버린 상철을 향해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자신의 더러운 기분을 풀어내려는 듯이.
하지만 총을 쏘면 쏠수록 그 더러운 기분은 더욱 심해져 갔다.
틱틱!
결국 탄을 모두 소비하고 나서야 팔을 떨어트리는 그.
그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악마라...”
주위를 둘러본다.
수십 명의 사람들의 신음소리와 살려달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바로크는 그들을 내버려둔 채 현장을 떠난다.
그가 보기만해도 섬뜩한 미소를 짓는다.
“맞지. 악마가 사는 방식이 이런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