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 가시밭길 끝엔 영광이 있다.
2시간 전.
바로크는 편안하게 앉아 클래식 음악을 듣고있었다.
비록 자신의 사무실만 못한 음향시설이지만 클래식은 음질에 상관없이 공간을 채워준다 생각하기에 이것도 나름 매력있었다.
필리핀의 산미 있는 커피만 제외한다면 훌륭한 여가시간이었다.
그 순간 머레이가 그에게 다가왔다.
“저...”
바로크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의 어깨를 툭 친다.
“무슨일이야?”
“이게 무슨일 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왜. 뭔데?”
“카바나투얀 항구에 자정 넘어 배 한 척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바로크는 앉아있는 소파앞 다이닝 테이블에 발을 올린다.
척!
“항구에 배 들어오는게 뭐. 당연한거 아니야?”
그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자 머레이가 머리를 긁는다.
“그런데 그 선박소유자 명의가 아카데미입니다.”
“아카데미?”
바로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점차 표정은 어두워져갔고 이내 본능적으로 심각함을 감지했다.
아카데미는 유럽과 아프리카대륙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메이저 용병단체.
그들은 주로 국가간의 대규모 전쟁대리나 공작업무 대행을 전문적으로 맡아서 진행한다.
그런 그들이 어째서 동남아의 가난한 나라 필리핀으로 왔을까.
바로크는 눈을 좁히며 시간을 바라본다.
‘더군다나 자정이 넘은 새벽에 들어온다?’
그것은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몇 톤급.”
“자세히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자재류를 옮기는 대형 선박이라고 합니다.”
“이런 개 씨...”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바로크는 서둘러 벗어두었던 탄띠를 착용하며 소리쳤다.
“싹 다 집합시켜!”
머레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라는 표정을 짓자 바로크가 험악한 표정을 짓는다.
“모르겠어? 이 새끼들 지금 우리 물건 실어갈라고 그러는거 아니야. 급해 빨리!”
“네! 알겠습니다.”
“여차하면 아카데미 새끼들이랑 한바탕해야 하니까 인원이랑 장비 싹다 긁어와. 필리핀 거지들도 부르고.”
“바로 준비시키겠습니다.”
머레이가 다급하게 방을 빠져나갔고 곧바로 포그 스컬스가 사용하는 숙소는 번잡해졌다.
탄띠 착용을 마치고 방탄조끼까지 입은 바로크의 표정은 분노에 가득찼다.
“남의 물건을 훔친것도 모자라 이제는 뒤통수까지 치려한다 이거지...”
화가 난 바로크가 아까까지 발을 올리던 테이블을 뻥하니 걷어찬다.
이내 재빠르게 권총을 꺼내 들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트럭의 뒤편에서 사내들이 무언가를 꺼내든다.
대전차용 로켓무기 RPG.
바로크가 트럭 짐칸에 올라와 운전석 위에 자리를 잡는다.
그가 곧바로 운전석 천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선박을 향해 조준한다.
“어딜가 이 새끼들아.”
피슈우웅!
아카데미가 끌고온 선박의 선장실로 로켓이 굉음을 내며 날라간다.
콰앙!
퍼엉!
선장실은 단 한 발로 인하여 불바다가 된다.
그 모습을 본 펠슨은 다급하게 소리친다.
“서둘러서 물건 실어! 옐로우 맘바가 시간을 벌어줄 거야! 엔진실에는 출발 준비 마치라 그래!”
대형선박에는 선장실 뿐만이 아니라 엔진실 자체에서도 운행을 준비할 수 있다.
비상시에 사용하게 준비되어있는 곳으로 운행을 위해 직원들 몇 명이 다급하게 뛰어간다.
맹혁과 직원들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까지 모두 달려든다.
근처에 지게차까지 끌어와 물건을 옮겨보지만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젠장...”
펠슨이 시계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남아있는 무기들의 양을 어림짐작해본다.
‘최소 15분...’
상철과 알파팀이 최소 15분은 버텨주어야 무기들을 모두 빼돌리고 탈출까지 할 수 있다.
바로크가 RPG를 뒤로 건네며 자신의 총을 돌려 받는다.
“바로 선박으로 진입한다. 알짱거리는 새끼들은 모두 죽....”
바로크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자신들의 옆길에서 한 차량이 튀어나온다.
노란색으로 래핑된 옐로우 맘바 특유의 지프차.
바로크가 그들을 보며 침을 탁 뱉은 다음 곧바로 차 짐칸으로 뛰어든다.
지프차는 곧바로 포그스컬스 행렬의 맨 앞차를 들이 받았다.
콰아앙!
두 바퀴를 구른 차는 곧바로 멈춰섰고 이내 충돌을 피하려는 차들끼리 엉키고 섥킨다.
“야 이새끼야! 피해!”
“차 돌려 임마!”
그러나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차들은 피할새도 없이 서로 부딪힌다.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하는 항구 입구.
넘어지고 부딪친 차들에서 포그스컬스가 기어나오자 이내 숨어있던 옐로우 맘바가 하나둘 씩 튀어나와 제압한다.
탕!
탕탕!
상철이 거칠게 소리친다.
“한 놈도 보내지마! 이놈들은 오늘 우리가 잡는다!”
“네!”
알파팀은 거친 목소리로 대답했고 동시에 순식간에 어지럽혀진 차량들 사이로 침투한다.
처음부터 난전을 계획한 듯 거침없이 포그스컬스의 중심으로 파고든다.
사고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한 사내들이 정신을 못차리고 차 밖으로 기어나온다.
“씨발...이게 뭔...”
그러자 찰리팀 한 명이 그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민다.
“잘 가라.”
“이 씨...”
탕!
사내는 머리가 총알에 꿰뚫린채 바닥에 널부러졌다.
사고현장에 앞쪽의 상황은 단언코 옐로우 맘바의 학살이었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인원들이 헤매는 동안 옐로우 맘바는 차분하게 숫자를 줄여갔고 벌써 10명이 넘는 숫자가 사살되었다.
바로크가 비틀거리며 짐칸에서 뛰어내린다.
이윽고 옐로우 맘바 한 명이 그의 뒷목에 총을 겨눈다.
척!
“끝났어. 해적 새끼야.”
“누구 맘대로.”
총구가 겨누는 뱡향으로 오히려 고개를 들이민 바로크.
곧바로 격발했지만 간발의 차로 총알은 빗나갔다.
타앙!
재사격을 하기 위해 총구 방향을 틀었지만 순식간에 찰리 팀원의 손목이 붙잡힌다.
바로크가 곧바로 칼을 빼내 들어 상대의 다리를 찔렀다.
“억!”
자세가 무너진 그의 앞다리를 잡아채 완전히 뒤로 넘어뜨린다.
이윽고 찰리 팀원의 몸 위로 올라탄 바로크가 사정없이 칼로 난도질을 한다.
푸슉푸슉!
곧 찰리 팀원의 몸은 축 늘어졌고 그의 권총을 뺏어들어 확인사살까지 한다.
탕탕!
바로크가 얼굴의 묻은 피를 어깨춤으로 대충 닦아내고는 소리친다.
“차분하게 응전해. 어차피 숫자는 우리가 많다! 차량에 엄폐해서 조금씩 달라붙으면 돼!”
그의 외침에 하나둘씩 정신을 차린 포그스컬스가 응전을 시작했다.
상철이 바로크의 목소리를 들으며 흥미로운 듯 미소짓는다.
“어린놈의 새끼가 제법...”
순식간에 상황을 판단하고 부하들에게 해결방안까지 제시한다.
‘저 녀석도 어지간히 닳고 닳은 놈인가 보군.’
그 순간 상철의 옆에서 한 사내가 튀어나온다.
“죽어. 이 새끼야!”
상철은 곧바로 바닥으로 몸을 엎드려 사내의 발을 걷어찼다.
자세가 무너지며 쓰러진 사내의 가슴과 어깨의 총을 한 발씩 박아넣는다.
탕탕!
순식간에 무력화된 상대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상철은 빠르게 주위 전황을 확인한다.
어느새 부터인가 상대의 인원이 줄어드는 속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 원인을 찾고자 부지런히 주위를 살피던 중 두 사람이 눈에 뛴다.
바로크와 머레이.
바로크는 오히려 공격적으로 옐로우 맘바와 교전을 펼쳤고 머레이는 차분하게 주위 병력을 이끌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저 두 놈 중 하나는 끊어내야한다.
분위기의 흐름을 바꾸는 구심점을 없애야 전투는 자신들에게 유리해질것이다.
그 순간 상철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포그 스컬스의 뒤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차량들.
어림짐작해도 족히 스무대는 넘어보였다.
이 먼땅에서 아군일리는 없을테니 무조건 적이다.
그들의 차량 앞에 달린 깃발로 정체를 확인한 상철은 바닥으로 침을 탁 뱉는다.
필리피노들이 모여 만든 현지 갱단.
“아무래도 현지에서 급하게 캐스팅 됐나보군.”
상철이 다급하게 선박쪽을 돌아본다.
어느새 꽤 많이 줄어있는 짐.
‘서둘러라 혁아. 오래는 못 버틸 것 같다.’
그가 자신의 소총인 HK416을 앞으로 메며 고개를 젓는다.
“도혁이는 700명이랑도 싸웠는데. 이쯤이야.”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달려간다.
마지막 상자 하나를 집어든채 달리는 아카데미의 직원.
총 한 발이 날아와 그의 뒷 허벅지에 맞는다.
탕!
“으악!”
비명을 지르며 상자를 놓친 직원.
맹혁과 부하들이 달려들어 그를 부축하고 떨어뜨린 무기를 집어들어 선박으로 달린다.
모두가 다급하게 소리치고 서둘러 출발 준비를 시작한다.
펠슨이 인원을 확인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맹혁을 바라본다.
“상철씨 보고 복귀하라고 하십시오. 이제 됐습니다.”
맹혁이 쓴 웃음을 짓는다.
“형님은 안 올겁니다.”
“예?”
펠슨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자 맹혁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바라본다.
-혁아.
-네.
-우리가 만약 물건을 다 실었는데도 오지 않는다면 먼저 출발해라.
-아니 선배님. 그게 무슨 소리세요.
-누군가는 해야 돼. 그래야 선박이 완전히 도망칠 시간까지 벌 수 있다.
-선배님...
-그리고 선배님이 뭐야 임마.
‘형님...’
맹혁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형님이 시간을 끄시는 동안 우리는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합니다. 만약 무기라도 뺏기면 현지 갱단의 소행이라고 우기면 무기를 되찾을 수도 없어요. 그러니까 빨리!”
맹혁의 다급한 소리에도 펠슨이 머뭇거린다.
그러자 맹혁이 펠슨의 멱살을 잡아채며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펠슨은 그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분노, 흥분, 그리고 미안함과 슬픔이 엿보인다.
맹혁이 울먹임을 겨우 참는 목소리로 펠슨에게 말한다.
“우리 형님 희생. 헛되게 하지 마요. 실패하면 겨우 천억에 형님 목숨 팔아넘긴게 되니까.”
그의 꽉쥔 손을 펠슨이 조심스럽게 떼어낸다.
이윽고 소리치는 펠슨.
“출발하자! 전원 자리로 이동해!”
사내들은 분주히 움직였고 맹혁은 직원들에게 소리쳤다.
“너희들도 저 사람들 도와서 출항 준비를 도와라!”
“네!”
사람들은 모두 흩어졌고 맹혁은 기어이 참았던 눈물을 흘린다.
“형님...”
탕탕!
총소리로 인하여 그 어떤것도 들리지 않았다.
바로크의 얼굴은 피와 땀이 범벅이 되어 누군지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시간이 없는데...‘
확실히 옐로우 맘바는 옐로우 맘바였다.
시간을 끄는것도 모자라 어느새부터인가 자신들의 숫자가 상당히 줄어있었다.
이렇게 지옥같은 난전은 일반 군인들에겐 한번 겪을까 말까 한 상황이었지만, 저들은 마치 이곳에서 나고 자란 듯 익숙해보였다.
무엇보다도 틈을 아는 듯 정확한 움직임.
교전중에 잠시라도 긴장감이 느슨해지면 순식간에 교전선을 당겨 자신들을 밀어내었다.
전투가 지속될수록 교전선이 선박과 멀어지고 있다.
‘젠장...’
그 순간 들리는 한 소리.
부아아앙!
커다란 뱃고동 소리가 잠시 교전 지역에 정적이 흐르게 했다.
이윽고 뱃머리가 바다를 향해 돌려지고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한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로크가 일어선다.
교전중이라는것도 망각한 채 멍하니 배를 바라보는 바로크.
그의 표정은 복잡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상철 역시 고개를 들어 멀어져가는 배를 보며 싱긋 웃는다.
이내 눈이 마주친 두 사람.
상철이 어깨를 으쓱하며 싱긋 웃는다.
바로크의 표정이 돌변한다.
악마가 살아 돌아왔다면 이런 표정일까 싶을 정도로.
“이 씨발 새끼들이....”
바로크의 총구가 상철을 향해 겨누어진다.
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