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 가시밭길 끝엔 영광이 있다.
두호의 뒤에 싱긋 웃으며 서 있는 무.
언제나 생기 넘치는 모습이었던 그녀는 왜인지 굉장히 야위어 있었다.
무언가 고생이 많았구나 어렴풋이 느끼는 두호였다.
“오셨습니까.”
“왔지 그럼!”
두호가 올라가던 계단 바로 아래칸에 털썩 앉은 무는 자신의 옆자리에 앉으라는 듯 바닥을 툭툭 쳤다.
무의 옆자리에 천천히 앉는 두호.
그의 표정을 조심히 살펴본다.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아실 것 아닙니까.”
두호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걸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고민의 문제는 처음이라는 게 없었다.
문제의 해결은 언제나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자신은 그저 흐름대로 살아왔을 뿐이다.
군인의 꿈을 꾼 것이 잘못인가?
그러기엔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군인들은 뭐란 말인가.
아니면 용병이 잘못된 것인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수했지만 결국 받은 건 차디찬 무관심 뿐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은 용병일 밖에 더 있겠는가.
무는 두호의 표정을 보며 옅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잘못을 찾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두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팔짱을 끼며 동네의 경치를 둘러본다.
“참 편안한 곳이야. 산속에 둘러쌓인듯한 느낌을 주지만 올라와 있는 몇 개의 고층빌딩이 이곳이 도시라는 걸 알게 해주지.”
무가 천천히 두호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듯 두호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뭐일까? 산속에 둘러싸인 느낌일까. 아니면 고층빌딩이 알게해주는 도시라는 걸까.”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인 두호.
그러나 그의 시선이 무의 말을 따라 천천히 옮겨가며 자신의 동네를 바라본다.
마침 기분 좋은 바람이 뒤에서 불어온다.
무는 날아가는 나뭇잎 하나를 집어들어 손가락으로 핑그르르 돌린다.
“도시는 사실이고 산속에 둘러쌓인 것은 네가 느낀 점이지.”
무는 불어오는 바람으로 잡았던 나뭇잎을 살짝 놓는다.
나뭇잎은 살랑이는 바람에 몸을 맡겼고 자연스레 멀어져간다.
“현실은 파도에 부딪치는 배처럼 흘러가는 게 맞아. 내가 생각해도 너의 삶은 무엇인가 다른 것을 생각하며 살아가기엔 순탄치 않았지. 근데 이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야. 누가 가난하게 태어나고 싶고, 위험한 곳에서 자라고 싶겠어.”
두호는 말없이 무를 바라보았다.
문득 드는 생각이다.
인간의 모습을 조율할 수 있는 능력자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인생.
그것을 한낱 인간의 지식으로 깨달으려 했단 게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중요한 게 원칙과 신념이라는 거야. 절대 변하지 않는 하나의 가치. 그 가치가 마치 손바닥 뒤집듯 쉬우면 신념이 아닌거지. 아니면 애초에 잘못된 신념이라던가”
“잘못된 신념이라면?”
무가 흙이 묻어있는 계단을 향해 손가락을 뻗는다.
“결과주의적 방식을 말하는 거야. 이번만은 되겠지. 아무도 모르니까 이렇게 하면 되겠지. 요령과 능률로 속여지고 있는 모든 것. 하지만 그런 것들이 하나둘 쌓여 폐습이라는걸 만들거든.”
두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악의 평범성. 인간이 만들어놓은 이해관계와 경쟁에 너는 그저 업무라는 명목하에 살인을 자행해왔겠지. 그 벌은 달게 받아. 대신 너라는 사람은 자신의 죗값을 몸으로 느끼고 속죄하려는 삶이라는 것만 알아둬.”
무의 말에 두호는 헛웃음을 지었다.
잘못이 문제가 아니다.
잘못을 저질렀지만 잘못인 줄 모른 게 더 문제다.
속죄하고 벌을 받으면 괜찮단 뜻이다.
완전히 괜찮아지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위로에 조금은 나아짐을 느꼈다.
무 역시 미소를 짓는다.
“언제나 죗값은 죄보다 더 무거워해야해. 그래야 죄를 짓지 않는 사람들 마음에 위안이 되니까.”
무가 두호를 흘겨보았다.
“복잡한 생각하지말고 그냥 저지른 죗값 치룬다고 생각하고 살아.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선 안 그러더니. 해외에선 자꾸 쥐어터지고 다녀?”
이번 볼크 경기에서 입은 부상을 말하는 듯 싶었다.
두호가 당황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아 그게. 말하자면 복잡한데.”
“너 사실 막 그렇게 안 쎈거 아니야? 내가 이 임무의 적임자를 잘못 봤나?”
두호 팔짱을 끼며 먼 산을 바라본다.
“총 싸움으로 하면 제가 다 이깁니다.”
두호의 썰렁한 농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이 터진다.
참 두호답지 않은 대답이었다.
두 사람 모두 실로 오랜만에 숨이 가쁠정도로 크게 웃었다.
조금씩 웃음이 멎어드는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재미없는 농담 듣는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네.”
“네?”
두호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인다.
무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싱긋 미소 짓는다.
“자세한건 말 못해 주고. 만약 기회가 된다면 말해줄게.”
두호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람이야 몰라도 무는 절대적인 존재 아닌가.
어찌하여 그녀가 사라진단 말인가.
그리고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몸을 돌려 걸어가려던 무가 두호를 돌아본다.
이윽고 서서히 다가가 두호의 목을 잡아당긴다.
두호의 이마에 쪽 소리가 나게 입맞춤을 한 무.
“내 욕심에. 내 실수에. 팔자에 없는 고생을 하게 됐구나. 내가 해줄수 있는 것이 별로 없지만. 마무리까지도 잘 부탁한다.”
무는 그대로 뒤를 돌아갔고 두호는 멍한 표정으로 그녀가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당황스럽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언제나 자신의 고민과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해주었다.
이제는 그녀의 도움 없이 막연히 헤쳐나가야 한단 생각에 막연한 감정이 든다.
두호는 그녀가 사라지는 방향으로 자세를 곧게 서 경례를 하였다.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존중의 방식으로.
다시 몸을 돌려 집으로 걸어간다.
자신은 나아가고 헤쳐나가야 한다.
하지만 오늘 만큼은 푹 쉬겠다는 마음을 먹은 두호였다.
두호가 집 앞에 도착하여 초인종을 누른다.
“저에요.”
이내 문이 활짝 열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를 맞이한다.
“다녀왔습니다.”
***
자정이 훌쩍 넘어간 시간.
카바나투얀 항구에 산더미 같은 나무 상자들과 철제 상자가 쌓여져 있었다.
이윽고 그 짐 더미들 뒤에서 두 사람이 걸어나온다.
상철과 맹혁.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알파팀과 맹혁의 부하직원들이 쏟아져 나온다.
50명은 족히 넘어보이는 인원은 하나같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했다.
담배 하나를 꺼내무는 상철이 표정을 구긴채 하늘을 바라본다.
이곳은 저녁 늦게도 밤 구름이 보여 좋다.
그렇게 시선을 돌리는 중 맹혁을 향해 담배곽을 내민다.
하나 피겠냐는 듯 담배곽을 툭 흔들어 담배 한 개비 만을 뽑아 올렸다.
맹혁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담배를 뽑아 입에 물자 상철이 불을 붙인다.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들인 맹혁이 상철을 보며 싱긋 웃는다.
“후회 안하시죠?”
“총 잡은 이후 매일 후회인데...”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 상철.
알파 팀원들이 긴장한 기색 하나 없이 하품을 한다.
그러더니 왜 쳐다보냐는 듯 퉁명스럽게 상철을 바라보는 알파팀원들.
상철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침을 뱉는다.
“저것들 표정 보니 멋진 말이 생각이 안난다. 후회 안해 씨발.”
맹혁이 낄낄대며 자신들의 직원들을 돌아본다.
알파팀과는 표정이 사뭇 다른 직원들.
그들의 표정엔 긴장감과 걱정이 서려있었다.
“너네는 걱정할 것 없어 빠르게 물건 싣고 도망가면 되는거야. 입금된 것 다 확인했지?”
직원들은 긴장감을 다스리기 위해 크게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한 사람당 10억.
퇴직금으로 충분한 돈을 지급했다.
“그 돈이면 어느 나라를 가든 새 출발하기 부족함이 없을거야. 그동안 고생했다.”
직원들은 착잡한 표정으로 맹혁을 바라보았다.
상철이 맹혁을 툭 치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후회는 너가 하는 것 같은데?”
“네. 존나 후회합니다.”
상철이 호탕하게 웃으며 담배를 땅에다 툭 버린다.
이윽고 어두운 카바나투얀 항구에 빛 한줄기가 쏘아진다.
엄청난 크기에 선박이 항구로 다가오고 있었다.
가까워진 배가 천천히 항구로 진입하자 이내 상철과 맹혁이 마주 걸어간다.
선박에서 큰 다리 하나가 내려와 항구에 굉음을 내며 놓여졌다.
콰앙!
이윽고 내려진 다리로 누군가가 걸어온다.
반듯한 정장차림에 사무용 가방을 들고 내려오는 사람들.
상철이 반가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간다.
반기는 상철을 발견한 사내 역시 밝은 미소로 손을 흔든다.
이윽고 항구에서 만난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눴다.
사내의 정체는 전 블랙워터. 현 아카데미의 부사장 닉 펠슨.
맹혁과 상철은 윈스턴에서 입수한 무기를 메이저 용병시장의 정점인 아카데미에게 팔기로 한 것이다.
그들이라면 뒷탈도 문제 없을 것이며 포그스컬스에게 흘러들어갈 일 또한 없을 것이다.
“마음만 같으면 오랜만에 뵈니 술이라도 한 잔 걸치고 싶지만...”
펠슨이 주위를 돌아본다.
산더미처럼 쌓인 무기상자들.
엄지손가락으로 무기를 가르킨 펠슨이 피식 웃는다.
“저 양은 도저히 감당이 안되서.”
“네. 다음에 하도록 하시죠. 일단은 저희도 일이 먼저니까요.”
“그러면 바로 계약서 작성하시죠.”
세 사람은 무기가 적당한 높이로 쌓인 상자로 이동하여 서류를 펼쳤다.
거래계약서와 비밀서약서를 작성하는 동안 맹혁이 직원들에게 소리친다.
“옮기자! 서둘러!”
거래 대금을 확인하지도 않았지만 맹혁은 왜인지 굉장히 서둘렀다.
펠슨 역시 이곳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거래의 자세한 내용은 듣지 못했다.
아카데미의 사장과 래진의 개인적인 비즈니스인 듯 자신에게도 비밀로 부쳤다.
그저 싼 값의 무기를 넘겨 받을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 것인데 맹혁의 행동을 보며 눈치를 챈 것이다.
펠슨이 비밀유지서약서의 사인을 마치고 상철을 보며 싱긋 웃는다.
“아무래도 이 물건. 그거 맞죠?”
비밀유지서약서의 싸인을 하던 상철이 싱긋 웃는다.
이내 싸인까지 마무리한 상철이 그제서야 대답한다.
“네. 맞습니다.”
지금 용병시장에는 옐로우 맘바가 윈스턴의 3000억 가량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아카데미 같은 용병회사는 이 사건의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더 알고 있다.
이것이 옐로우 맘바 무기가 아닌 포그스컬스의 무기라는 것을.
상철이 어깨를 으쓱한다.
“괜찮으시겠죠?”
그들의 무기를 사가는건데 뒷탈 없겠냐는 뜻이다.
엄연히 메이저와 마이너 용병시장으로 구분되었지만 포그스컬스에게 선이라는 것은 없으니.
하지만 펠슨이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프리카 양아치들 쯤이야.”
충분히 감당가능하다는 것이다.
상철이 고개를 끄덕이고 무기 박스를 바라보며 소리친다.
“다 옮겨! 직원분들도 내려오시죠!”
서둘러 짐을 싣기 시작했고 이내 배 안에 직원들까지 내려와 무기를 싣기 시작했다.
펠슨이 가방 하나를 올려놓는다.
“무기명 채권으로 1000억 준비했습니다.”
상철은 가방을 확인한다.
천억.
정확했다.
하지만 그 순간.
어두운 하늘에 조명탄 하나가 쏘아올라오며 멀리 배기음과 함께 수많은 차량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모습을 본 펠슨이 미소를 짓는다.
“물건 주인이 왔나보군요.”
“저희가 막을테니. 물건 부탁드립니다.”
“네. 무탈하시길.”
펠슨이 손을 내밀자 상철이 마주 잡는다.
“그쪽 역시.”
멀리서 수 십대의 차량이 달려온다.
기관총이 걸려있는 트럭 위에 바로크가 이마의 핏줄이 설 만큼 분노한 표정을 짓는다.
“이 개새끼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