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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59화 (159/204)

159화 : 가시밭길 끝엔 영광이 있다.

방금 전 원장실.

황성태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싼다.

두호는 씁슬한 표정으로 황성태를 바라본다.

그의 늙고 험해진 손이 눈에 담긴다.

황성태가 힘겹게 말을 이어간다.

“우리는 개인 화기를 사용하는 것엔 문제가 있다 생각하고 폭파 작전을 세웠네. 근처 에리가보 지역은 우리 때문에 불바다가 되었고 피해는 심각했지. 하지만 이 상황은 정부군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초석이 되었고.”

황성태가 너무나 쓴웃음으로 고개를 젓는다.

“그게 뭔 자랑이라고. 보란 듯이 우리 옐로우 맘바 표식인 깃발을 건물에 걸어놓고 나왔네.”

결국 대형 폭파사건으로 인하여 혼란스러운 에리가보 지역을 공략한 정부군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군 역시 반군을 완벽하게 제압하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고,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사상자가 발생했다.

코와르키와 알도프 역시 에리가보 출신.

전쟁으로 인하여 부모를 잃고 험난한 길거리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소말리아는 평화롭고 행복해졌느냐.

그건 또 아니었다.

원래 소말리아 정부 자체가 비리와 여러 정치 게이트로 인하여 민심을 잃은 상태였으니 계속해서 쿠데타가 이어져왔다.

정치란 그런 것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 수 없는 영역.

그저 다른 이해관계만이 있을 뿐이다.

어찌됐건 그 덕분에 옐로우 맘바는 순식간에 업계에서 주목을 받았고 업계 최고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난 용병생활을 그만 두었지. 잠에 들면 꿈에서 죽은 사람들의 모습이 계속 보였거든.”

자신의 죄를 씻어낼 수 없다는 생각에 몇 달을 술독에 빠진 황성태.

세계를 부랑하며 폐인처럼 지내던 그가 어느날 길거리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고 결심을 한 것이다.

자신의 죄를 씻을수는 없겠지만 평생을 속죄하면서 살겠다고.

두호는 복잡한 생각으로 고개를 떨어트렸다.

황성태와 자신이 다른 것이 무엇인가.

오히려 황성태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남은 인생을 보내고 있었지만, 자신은 멈추지 못했다.

더 이상 이곳에 남아있을 수가 없던 두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힘없이 일어나 문으로 향하는 그의 뒤에서 황성태가 말했다.

“도혁이의 죽음은 내 죄로부터 시작된 것일게야. 그러니 그 또한 나의 잘못이겠지. 미안하네.”

두호는 문고리를 잡고 잠시 멈춰섰다.

문을 열지 못하고 문에 머리를 기대었다.

이윽고 몸을 돌린 두호는 고개를 숙였다.

“또 오겠습니다.”

그렇게 문을 열고 나간 두호.

혼자 남은 황성태는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의 죄를 다시 떠올렸다.

아무말 없이 그저 차에 앉아있는지 십여 분이 지났다.

정적만이 감도는 차 안에서 준모와 예수 두 사람 모두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갑작스런 두호의 저기압에 당황한 듯 핸드폰 메신저로 회의를 하는 것이다.

-이게 뭔 일이래요.

-준모씨가 한번 물어볼래요?

-맞아 죽을 일 있어요? 그렇게 친하시면 그쪽이 하시던가.

-아니 뭐. 아까는 하나의 백 둘의 두호라며요.

-셋에 상황봐서 라는 말은 못 들으셨나봐요?

-하여간 도움이 안된다니까...

두 사람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던 중 조수석의 문이 덜컥 열린다.

“죄송합니다.”

땀을 흘리며 들어오는 동수.

이때다 싶어 준모가 큰 소리를 친다.

“첫날인데 어딜 다녀온거야? 하여간 빠져가지고.”

흠칫 놀라는 동수가 두호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볼일 때문에 잠시 늦었습니다.”

경호의 기본 수칙중 하나는 피 경호자가 불안함을 느끼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들었다.

어찌됐건 도망을 쳤으니 지금 당장은 재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피습을 시도했다는 것은 채호와 먼저 상의 후 말해주는 것이 나을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두호의 표정은 왜인지 아까와는 전혀 달랐다.

두호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습니다. 출발하자.”

“네. 알겠습니다.”

준모가 서둘러 차의 시동을 걸었고 이내 차는 보육원에서 멀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성태.

그의 손엔 낡고 헤져 껍질이 다 벗겨진 나무 묵주가 있었다.

묵주를 쥐었다 펴며 멀어지는 두호의 차를 본다.

“이 모든 죗값을 제가 치루게 해주시고. 남은 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소서...”

애절한 기도 소리는 누구에게 닿을것만 같았다.

**

늦은 새벽.

침대 위에 누워 있던 래진의 눈이 힘겹게 떠진다.

“으으.”

정신이 들자마자 통증이 몰려오는 듯 그의 눈은 찡그려졌고, 고개만 살짝 들어 자신의 몸을 살펴본다.

곳곳에 감겨진 붕대와 오른팔에 꽂힌 링거.

의사가 와서 치료하고 간 듯 훌륭한 솜씨였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 영철이 일어나 있는 래진을 발견하자 순식간에 달려온다.

저벅저벅.

그의 다급한 군화 소리에 자고 있던 찰리팀 전원이 기상한다.

찰리팀 모두 래진이 깨어났음을 인지하고 서둘러 그에게로 다가간다.

전원이 래진의 침대를 둘러싼 형태가 되자 래진이 헛웃음을 지었다.

“눈 뜨자마자 뷰가 이 모양인데, 완치를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이거라도 보이는 걸 다행으로 여기십시오.”

폭발로 일어난 충격파에 날아간 래진.

만약 재수없이 척추를 다쳤다면 래진은 평생 휠체어를 타야했다고 한다.

래진도 그 말을 인정하는 듯 한숨을 내쉰다.

“재하씨는.”

“사망하셨습니다. 그의 사체도 불에 타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길...”

래진은 너무나 쓰렸다.

자신들에게 납치가 되었긴 하지만 그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이렇게 투자자를 구출하는 것도 아닌 살해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나간 일은 어떻게 되었어?”

영철을 비롯한 찰리팀이 외부로 빠져나간 것은 하나의 임무였다.

재하에게 받은 투자자들의 목록을 토대로 회유를 하려던 것.

어차피 포그스컬스에게 가면 돈은 돈대로 뺏기고 죽을 것이다.

자신들이 도와줄테니 포그스컬스를 몰아내자.

하지만 영철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이미 모두 죽어있었습니다. 미국에서 발견한 모든 투자자들은 포그스컬스에서 한 발 앞서 제거한 듯 싶습니다.”

“뭐!?”

래진은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 표정을 구겼다.

‘미친놈. 그렇다고 자신의 투자자들을 모두 죽여.’

이미 이재하가 납치되었다는 소문은 모두 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아마도 포그스컬스는 재하가 납치된 시점부터 배신을 예상하고 미리 다 죽여놓은 것이다.

미국이 이렇다면 전 세계에서 흩어져있는 대형 투자자들도 같은 상황일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이미 그들의 재산을 처분하고 있을 것이다.

‘독한 놈들. 어떻게든 이기겠다 이거구만.’

이 불리한 상황을 뒤집는 방법은 단 한 가지다.

포그스컬스가 옐로우 맘바를 제압하고 마이너 용병시장을 점령하는 것.

그렇게 된다면 이번 사건은 그저 사소한 해프닝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들 역시 도박을 거는 것이다.

자신들이 시체가 되던가.

옐로우 맘바가 시체가 되던가.

래진이 쓴 웃음을 지었다.

나이 60에 무슨 투쟁심이고 승부욕이겠는가.

하지만 이것은 궤를 달리하는 싸움이다.

그동안의 싸움이 단순히 이해관계를 위한 싸움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생존을 위한 싸움.

계백은 황산벌로 나가기전 자신의 가족들을 몰살시키지 않았는가.

그런 각오가 자신들에게도 필요하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평소처럼 친근한 목소리가 아니다.

찰리는 침을 삼키며 자세를 고쳐 선다.

“이제부터 우리는 포그스컬스와 전면전으로 전환할 거야. 그 새끼들은 우리랑 달라서 선이라는게 없다. 그러니까.”

영철 역시 긴장한 표현이었다.

래진이 단호한 표정으로 찰리팀의 면면을 살핀다.

“부양 가족 있는 놈들은 모두 해고다. 이제 옐로우 맘바 소속이 아닌거야.”

“예!?”

찰리팀원들은 모두 어리둥절하고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영철의 표정은 복잡했다.

그 역시 와이프와 딸 하나가 있었다.

“앞으로의 싸움은 지저분하고 앞뒤 가릴 것이 없다. 너희 뿐만이 아니라 너희 가족들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얘기야. 눈치 보지 말고 떠나. 이 싸움의 끝에서 남을 전리품의 무게는 너희들의 소중한 사람보다 무겁지 않다.”

래진의 한마디에 모두가 한숨을 내쉰다.

순간적으로 몇몇의 얼굴에 걱정이 스친다.

그 순간 찰리 팀원 중 가장 어린 마이클이 손을 들었다.

“태어나보니 부모도 집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길바닥에서 쓰레기통 뒤져가며 겨우 버텨냈죠.”

평소에 말이 없던 마이클이었던지라 팀원들은 모두 놀란 눈치였다.

그러나 마이클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태어나 처음 사귄 친구가 지금 제 옆에 있는 로버트였고, 처음 제가 총에 맞았을 때 총알비를 뚫고 병원으로 이송해 저를 살려준 사람들이 찰리입니다.”

그가 한 발자국 나서서 래진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래진 역시 마이클의 표정을 살폈다.

단호한 결의.

“제 가족이 옐로우 맘바고. 제 동생이자 형. 친구이자 동료가 이 사람들입니다.”

그의 말에 영철과 찰리팀의 표정이 밝아진다.

마이클이 씨익 웃는다.

“여기가 제 고향인데 어딜 떠납니까.”

그러자 사내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달려들며 그의 머리를 두들긴다.

“이 새끼. 벙어리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말도 이쁘게 할 줄아네?”

“마이클 저 새끼 주머니 까봐. 대본 써놓은거 아니야?”

사내들은 별 것 아니라는 듯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선다.

마이클의 행동에 용기를 얻은 듯 평소와 같은 넉살이 돌아온다.

“적금 붓는거 아들 명의로 돌려놓을 시간은 되죠?”

“씨발 난 어차피 살거니까 상관없어. 약한 놈이나 뒤지는거지.”

순식간에 화기애애해진 찰리팀.

그들의 전투의지는 다시 타오르고 있었다.

영철이 머리를 긁적이며 래진에게 말한다.

“사실 난 빠지고 싶은데. 이제와서 형님 버리고 도망가기엔 너무 알고 지낸 세월이 오래됐네요.”

그러나 래진은 영철에게만큼은 단호한 표정을 짓는다.

“넌 해고 아니야. 나 포로로 잡혀서 고문이라도 당하면 네 이름 바로 불거니까 딴 생각하지마.”

래진의 섬뜩한 농담에 영철과 찰리팀은 크게 웃는다.

“죽자.”

그러자 모두 총기를 들면서 거칠게 소리친다.

“죽자!”

래진이 씨익 미소지으며 자신의 핸드폰을 집어든다.

이윽고 상철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가 연결되자 래진이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상철아. 위험한 일 하나 맡겨도 괜찮겠냐.”

그러자 잠시 수화기 너머 상철은 아무말이 없었다.

-하시오. 형님.

***

두호가 집 앞 언덕을 올라간다.

실로 오랜만에 올라가는 언덕이지만 그다지 반갑지가 않았다.

처음엔 대한민국 특수부대원으로 시작했다.

어느 영화에서 보던 군인은 언제나 절대적인 선이었고 동료들의 마약같은 신뢰속에 멋지게 임무를 해내었다.

조직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목숨을 걸고 투입된 위험한 임무에서 자신의 동료들이 죽었다.

그러나 국가에서는 국가를 위해 싸우다 죽은 동료들을 현충원에 묻는 게 고작이었다.

고작 국립묘지에 묻힌 것이 대우라니.

국민들과 국가 그 누구에게도 보호를 받지 못한 군인이라는 신분에 회의를 느껴 전역하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온 래진.

그는 옐로우 맘바에 입사할 것을 권했고 그렇게 자신의 용병생활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인생 자체가 피를 묻히며 살아왔구나.”

한숨을 내쉬며 잠시 걸음을 멈춰선 그때.

누군가 그의 뒤로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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