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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56화 (156/204)

156화 : 가시밭길 끝엔 영광이 있다.

준모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알죠. 하지만 우리 형님이 다...”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는 준모를 레이첼이 무표정하게 쳐다본다.

마치 자신만 아는 무언가가 있는 듯 그녀에게 삭막함이 느껴진다.

그 표정을 본 준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일신의 무력? 과연 그게 강함의 기준일까요?”

격투기 선수에게 단순한 신체의 강함은 그저 껍데기다.

잘 만든 전술과 전략은 그저 이행하기가 쉬울 뿐.

하지만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건 조금 다른 의미인 듯 싶었다.

머쓱해 하는 준모를 바라보며 두호가 싱긋 미소 짓는다.

“알도프는 다르다는 겁니까?”

레이첼이 무언가 불쾌한 기억이 떠오르는 듯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

이윽고 먼 곳을 바라보며 차분히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한숨을 내쉰다.

“그의 XFC 데뷔는 6년 전. 그동안 알도프는 총 14전의 싸움을 XFC에서 치뤘습니다.”

그녀가 대표로 부임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알도프가 챔피언에 등극했다.

손가락 3개를 펴보이는 레이첼.

그 손가락의 의미를 모르는 두호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선수는 단 3명 밖에 없습니다.”

데이비드는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고 탁현의 표정은 심각하게 바뀌었다.

선수들의 선수 생명은 천차만별이다.

실제로도 40살이 넘어가더라도 선수 생활을 거뜬히 이어가는 선수가 있고 프로 무대에 데뷔했지만 미성년자인 경우도 있다.

그런데 알도프와 싸운 사람 중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이 3명 밖에 없다는 것이 어딘가 석연찮다.

예수가 긴장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인가요?”

데이비드가 한 발자국 걸어 나온다.

골드 스피릿 전 수석 코치이자 알도프와 앙숙관계.

어쩌면 알도프의 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알고 있을 사람은 데이비드일 것이다.

데이비드가 팔짱을 끼며 인상을 찌푸린다.

“상대 선수의 직접 부상은 4명 정도입니다. 하지만 어찌보면 그들의 부상은 다행일 수도 있죠.”

알도프는 슬러거형 스트라이커가 아니다.

철저하게 상대를 갉아먹어 무너뜨리는 아웃파이터.

하지만 승리의 흐름을 탔을 때는 상대를 완벽하게 부수는 파워 역시 존재한다.

그의 시그니쳐인 지저분한 경기 운영.

자신이 불리할 때는 심판의 눈을 피해 반칙을 사용하기도 하며 위험한 공격 역시 서슴치 않는다.

그 모든 행동들이 선수들의 기를 꺾어놓고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전술이지만 흥행을 담당하고 있는 알도프인만큼은 눈감아주고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그런 운영은 필연적으로 부상자를 낳기 마련이다.

특히 케이지에서는 부상이 일어나도 경기를 멈추지 않기에 선수 생명의 직격탄을 맞는 셈.

하지만 그런 위험한 경기로 인해 부상을 입은 그들이 훨씬 나은 상황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와 싸웠던 선수들은 대부분 PTSD를 비롯한 정신적인 이유로 그만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두호는 무언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적으로 격투기 선수를 비롯한 모든 스포츠는 투쟁심과 승부욕이 존재한다.

그런 기질을 타고나야 경쟁을 업으로 삼는 운동선수를 직업으로 삼는다.

더군다나 XFC의 진출할 정도면 재능까지 타고났다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한 번 패배하였다고 재도전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니 알도프와 싸우지 않으려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밖에 없다.

“경기 외적인 부분으로 건드린다는 거군요.”

데이비드는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기는 게 무슨 잘못이냐.

언젠가부터 현대 사회의 정서를 관통하는 한 줄의 문장이다.

말 그대로 이기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뜻이다.

하지만 알도프는 그 말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싸워왔다.

“현 페더급 챔피언인 마이클 테너와 같은 체육관 소속 미들급 선수인 닉 피아즈 선수라고 있습니다. 그는 알도프와 랭킹전이 공개된 그 다음날...”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젓는 데이비드.

두호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자 레이첼이 무심하게 한 마디를 뱉는다.

“딸이 납치 되었어요.”

예수와 준모는 경악한 듯 입을 벌렸고 두호는 눈을 찌푸린다.

“경기준비 기간 동안 딸이 납치 되어있으니 훈련이 제대로 집중할 수 있겠어요? 결국 그 선수는 처참하게 패배하였고. 알도프가 얼굴에 침까지 뱉는 굴욕을 당했죠.”

“하지만 그 일을 알도프가 벌였다는 증거가 있나요?”

두호의 말에 레이첼이 싱긋 웃는다.

이윽고 핸드폰에서 사진 한 장을 화면에 띄워 두호에게 보여준다.

비니를 뒤집어쓴 남자가 대로변에서 아이를 납치는 모습이 담긴 CCTV화면.

두호의 눈이 좁혀진다.

사진속 사내들은 비니와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귀 뒤쪽부터 목으로 이어지는 타투.

뚜렷하진 않지만 알도프의 목의 타투와 닮아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가 경찰 수사 선상에 오르게 되었죠. 그와 그의 친구들은 모두 목의 유사한 타투가 있었고 실제로 몇 명은 알리바이가 불분명 했거든요.”

하지만 알도프는 별일 없이 경찰 조사에서 풀려났다.

레이첼이 고개를 저으면서 씁슬한 미소를 짓는다.

“그저 우연의 일치 정도로 저희도 결론을 내렸지만, 그와 싸운 모든 선수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피해를 입었죠.”

정재계 커넥션 폭로.

불륜과 염문설 폭로.

상대 선수들 가족 위협.

살해 협박과 테러.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일이 벌어지면서 그와 싸운 선수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은퇴하기 일쑤였다.

“조심하세요. 백두호 선수. 그가 연루가 된 적은 없지만 모든 선수들이 그렇게 되었어요. 그는 특유의 자본력과 정보력으로 상대 선수의 이성을 먼저 파괴하고 케이지에 오르는 사람입니다.”

예수가 그녀의 말을 듣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두호를 쳐다본다.

어쩌면 PRIDE-K에서 겪은 일준의 일은 그저 작은 소동에 불과할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저희가 준비한 다음 경기 매칭 선수는 이 선수입니다. 얼마 전 부상을 회복하여 가까운 시간내 경기를 준비할 수 있을 것 같고. 알도프와 연계되지 않은 유일한 선수이거든요.”

최대한 알도프의 그늘을 벗어나서 안전하고 완전한 몸 상태로 경기를 준비할 수 있게 레이첼이 배려한 것이다.

그녀가 다음 상대 선수의 정보가 담긴 서류와 계약서를 건넨다.

두호는 그녀의 설명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귀담아 듣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XFC 직원의 손이 슬그머니 주머니로 들어간다.

이윽고 주머니 속에서 손이 꿈틀거리며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펴본다.

***

캐나다 토론토에서 조금 떨어진 콜링우드의 한 체육관.

한 사내가 황급히 택시를 잡아 탑승한다.

뒤이어 체육관에서 걸어나온 나이 든 노인이 그에게 손을 흔든다.

“고생했네!”

창문 틈으로 고개를 내민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마주 흔들어주었다.

“네. 관장님 들어가세요!”

사내의 이름은 프란시스.

현 XFC 미들급 랭킹 10위에 위치한 선수이자 차분하게 승수를 쌓아가는 유망주이다.

프란시스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뒷자리에 앉아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울리는 전화기를 꺼내들어 영상통화임을 확인하고 밝게 미소를 지은 채 얼굴을 비춘다.

이내 화면엔 뾰로퉁한 표정을 지은 앳된 여자아이 하나가 나왔다.

“응. 아빠 지금 가는데!”

-언제와?

“딸! 아빠 한 시간쯤 걸리니까 엄마랑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알았어! 이따 봐!

딸아이의 미소를 보니 오늘 하루의 피곤이 다 사라지는 것 같다.

어린 나이에 자리조차 잡지 못한 나이에 가지게 된 딸 스칼렛.

하늘이 도운 탓인지 XFC와의 계약으로 제법 그럴듯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고 이제는 자신이 피를 흘리며 싸울 유일한 이유이다.

오늘은 그가 부상에서 회복한 기념으로 가족들끼리 오붓하게 외식을 하기로 했다.

택시 기사 역시 프란시스를 아는 듯 룸미러로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오늘은 왜 이렇게 빨리 체육관을 나서나 했는데, 좋은 일이 있으신가 보군요.”

프란시스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인다.

이곳 사람들은 그가 저녁 늦게까지 훈련의 열중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더군다나 항상 선한 얼굴과 친절한 행동을 보이는 프란시스를 콜링우드에 사는 모두가 좋아한다.

“하하. 오랜만에 외식도 하고 가족끼리 시간 좀 보내려고 합니다.”

“좋죠. 더 크면 말도 안 들으니 지금 많이 놀아야해요.”

택시기사가 한숨을 내쉬며 농담을 하자 프란시스가 큰 소리로 웃는다.

“재밌네요. 딸 아이가 다 클때까지만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으면 욕심이 없겠습니다.”

“에이 겨우요? 프란시스. 우리 콜링우드 사람들은 모두 당신이 챔피언이 되기를 바래요. 철딱서니 없는 우리 아들도 당신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이제야 겨우 책상에 앉기 시작했거든요.”

프란시스는 택시기사의 응원에 진심을 다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사는 곳은 변했지만 여전히 콜링우드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 그에게 이런 이웃주민들의 응원은 늘 힘이 나게 한다.

토론토로 향하는 산길 도로를 달리며 택시기사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프란시스.

그러던 중 뒤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다가온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백미러로 발견한 택시 기사가 혀를 끌끌 찬다.

“쯧쯧. 요즘 친구들은 운전을 너무 위험하게 한다니까.”

오토바이는 2차선 도로에서 역주행까지 해가며 빠르게 택시를 앞질러갔다.

-틱

좋지 못한 도로 상태로 인하여 차에 돌이 튄듯한 소리가 들리자 택시기사의 표정은 더욱 찡그려졌다.

이윽고 멀리 사라져가는 오토바이.

잠시 매니지먼트의 연락을 받고 있던 프란시스가 택시기사를 바라본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닙니다! 운전을 위험하게 하는...”

콰아앙!

프란시스가 타고 있던 택시가 펑하고 터지며 차가 붕뜬 채 뒤집혀진다.

모든 걸 집어삼킬 듯 택시는 화염에 휩싸였다.

뒤집혀진 차는 미동도 없었고 검은 연기만이 하늘로 솟았다.

그 순간 차의 뒷문이 열리며 프란시스가 기어나온다.

머리에 피가 가득 흐르며 시야가 흐린 듯 헛손질을 한다.

그의 오른팔은 팔꿈치 뼈가 살 바깥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

프란시스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필사적으로 앞 좌석의 문으로 다가간다.

깨진 창문 틈으로 기절한 택시 기사 사내를 꺼내려 안간힘을 쓰는 프란시스.

택시기사는 이마에 피를 흘리며 기절했는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필사적으로 택시기사를 껴안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겨우 차에서 떨어진 곳으로 옮겨놓았다.

“스칼렛이 기다리는데...”

이윽고 핸드폰을 꺼내던 프란시스 역시 체력이 다한 듯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멀리 오토바이 한 대가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사내는 전화기를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어. 처리했어. 죽지는 않은 것 같고.”

무슨 말을 듣는지 사내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바로 복귀할게.”

사내는 헬멧을 고쳐쓴 뒤 곧바로 오토바이를 몰아 도망친다.

래진의 핸드폰이 울린다.

복잡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확인하는 영철.

유상철이라고 적힌 핸드폰 화면을 본 그가 씁쓸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는다.

“네. 상철 형님. 저 영철입니다.”

-왜 영철이 너가 전화를 받아. 형님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긴장한 상철은 떨리는 목소리였다.

영철이 한숨을 내쉰다.

“어떻게 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형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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