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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55화 (155/204)

155화 : 가시밭길 끝엔 영광이 있다.

잠시 바로크를 말없이 바라보는 상철.

이윽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다 사러 왔다니.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네요.”

맹혁 역시 힘이 빠지는듯한 표정으로 비웃는다.

그러나 바로크의 표정은 진지했다.

“뭐 본인들 소행이 아니라고는 말씀하겠지만 지금 전 세계에서 우리 물건을 훔칠 사람은 한 군데 밖에 없죠. 하지만 한번 뺏긴 물건의 원래라는 건 없으니까. 사러 왔다는 겁니다.”

상철과 맹혁 입장에서는 힘이 빠질만한 이야기였다.

그럼 지금껏 자신들과 싸운 것은 뭐란 말인가.

“뭐. 그건 알아서 생각하시고.”

맹혁이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등을 완전히 의자에 기댄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바닷가로 옮겨간다.

‘뭐지. 무언가를 놓치는 것 같은데.’

어딘가 개운하지 못하고 찝찝하다.

주도권은 쥐고 있는 것 같지만 왜인지 여유로워지지가 않는 느낌.

상철이 바로크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하지도 않았지만 우리가 했다 치고. 그런데도 안 팔겠다면?”

“요 며칠 집안 사정이 있어 가게문을 닫았습니다.”

상철의 질문에 알 수 없는 말을 해대는 바로크.

그의 시선도 맹혁과 같이 바닷가로 향한다.

푸른색의 동남아 바다는 어느새 사라졌고 흙탕물 같은 물이 거세게 바위를 때린다.

“근데 직원들이 왜 이렇게 다들 열심인지 참. 됐다고 하는데도 일을 하려고 하네요.”

맹혁은 더 이상은 못들어 주겠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바닷가를 보던 바로크가 씨익 미소를 짓는다.

“할 수 없는 거죠. 사장은 직원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이니니까.”

바로크가 수표책을 펼쳐 한 장을 찢는다.

그리고는 숫자 몇 개를 적고는 상철과 맹혁이 보이는 자리로 돌려놓는다.

액수를 본 상철이 눈이 좁혀진다.

1500억.

윈스턴 무기 원가의 절반 정도 되는 금액이다.

맹혁은 이제는 못 참겠다는 듯 자세를 고쳐 앉는다.

“흥정을 할 거면 뭐가 있어야 하지 않나?”

모르는 용병단체에 가져다 팔아도 3000억은 받을 양이다.

더군다나 이 무기가 포그스컬스에게 돌아갔을 때를 생각하면 더 높은 금액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옆에 앉은 상철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맹혁을 제지했다.

“이 금액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저지를 듯한 표정이군”

바로크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상철을 바라본다.

“확실히 베테랑이네요.”

바로크가 담배 하나를 꺼내 문다.

실내는 금연이라는 표지판이 버젓이 붙어 있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쪽 옐로우맘바와 전쟁을 한다면 우리도 엄청난 피해를 각오해야겠죠.”

포그스컬스의 위상이 아무리 뛰어나다지만 여전히 업계 최고는 옐로우맘바다.

바로크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연기를 내뱉는다.

“후. 근데 그건 3년 전이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가 이길 것 같단 말이죠.”

그의 도발성 짙은 발언에 알파팀 대원들의 표정이 꿈틀거린다.

이내 그들의 시선이 천천히 바로크를 향해 옮겨갔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줄행랑을 쳤을 살기이지만 바로크는 여유롭게 그들과 눈을 마주친다.

“날 죽여도. 내 동생이 있으니 포그스컬스는 유지 됩니다. 괜히 힘들 빼지 마시고.”

감당하지도 못할 짓은 하지도 말라는 의미다.

담배를 카페 바닥에 툭 던진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뀐다.

방금전까진 그저 장사꾼이었다면 지금은 한 무리를 이끄는 보스의 위엄이 보였다.

“알파는 필리핀에. 찰리는 미국에서 땀 빼고 있고. 델타는 모니터나 쳐다보는 놈들이니 논외. 제일 거슬리는 게 브라보인데 그놈들은 다 뒤졌지 아마?”

여지껏 평온을 유지하던 상철의 이마가 꿈틀한다.

옐로우 맘바의 가장 아픈 손가락을 건드리니 그조차 참지 못한 것이다.

바로크는 그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상대의 기분을 쥐락펴락하는 솜씨가 수준급이다.

“뽑았다고는 하지만 전대(前代)의 브라보에 비하면 완전히 병아리 수준이고.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도 움직이지 않는 거잖아요. 그렇죠?”

매섭게 바로크를 노려보는 상철.

그러나 그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옐로우 맘바중 가장 전투력이 강한 곳은 찰리.

작전이 가장 많이 투입되는 주 전력은 알파다.

하지만 옐로우 맘바에게 가장 큰 수익을 안겨주는 팀은 브라보였다.

그들이 하는 일은 업계에서도 전설로 남을만큼 목숨을 걸고 해야하는 일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브라보 역시 뛰어나지만 전대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바로크가 가라앉은 눈으로 고한다.

“만약 협상이 결렬된다면 우린 어떻게든 당신들을 무너뜨릴 겁니다.”

어떻게든.

누가 말하느냐의 따라 행동과 의미가 결정된다.

상대는 아프리카해에서 가장 잔혹하다는 포그스컬스의 대장이다.

그의 입에서 어떻게든이라는 말이 나온다면 의미가 달라진다.

가족들을 인질로 잡아 협박할 수도, 전쟁범죄로 치부되는 생화학 무기를 터트릴 수도 있다.

상철은 잠시이지만 도혁의 동생인 두호의 얼굴이 스친다.

“아? 우리 직원들이랑 얼마 전 미국 가신 그쪽 대표랑 실랑이가 있었다던데 확인해보시죠. 괜찮으시려나.”

상철은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을 내비췄다.

바로크가 아직 이서를 하지 않은 수표를 툭툭 치며 미소 짓는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 바로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싸늘한 표정으로 돌아선다.

“가지.”

머레이와 포그스컬스 멤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가게를 벗어난 그들을 보며 맹혁은 눈을 좁혔다.

“누가 누구 보고 뱀이라는지.”

진짜 독을 품은 뱀이란 저런 것이다.

계획적이고 이성적인척 하지만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사람.

상철이 한숨을 내쉬며 팀원들에게 손을 뻗는다.

“형님한테 전화해봐.”

래진이 걱정된 듯 그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하다.

한 팀원이 전화를 연결하여 핸드폰을 건넨다.

상철은 초조한 듯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연결을 기다린다.

***

준모가 두호의 이마를 보며 자신이 다 아프다는 듯 인상을 추하게 찡그린다.

“으...으아...!”

예수가 정신 사납다는 듯 그를 째려본다.

“조용히 좀 해요. 누가 보면 그쪽이 다친 줄 알겠는데!”

“상처를 보는 제 눈이 다 아플 지경인데 형님 진짜 괜찮은 거 맞으십니까?”

두호가 괜찮다는 듯 싱긋 미소 짓는다.

하지만 그의 붕대가 벗겨지며 상처가 드러나자 예수와 준모의 표정은 다시 착잡해졌다.

눈썹 위로 길게 찢어진 상처.

볼크의 버팅으로 인해 찢어진 상처를 꿰매었지만 쉽게 아물지 않았다.

예수가 상처를 깨끗하게 닦아내고 연고를 상처 위에 바른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새 붕대를 꺼내 이마에 감는다.

“무리하시지 마시고. 며칠 더 미국에 있다가 가시죠.”

“아닙니다. 별거 아니에요.”

이마에 붕대를 모두 감은 예수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천천히 살펴보는 두호의 상태.

엄지손가락 부상과 왼쪽 정강이부터 무릎까지 깁스를 차고 있는 두호였다.

손 부상은 둘째치고 정강이쪽의 부상이 심각하다.

만약 볼크가 라운드 초반부터 정강이와 무릎을 공략했다면 정말 위험할뻔했다.

XFC의 메디컬 팀에서 말하길 시간이 지체되었다면 십자인대가 모두 파열됐을 거라는 가슴 떨릴 진단.

완치에는 문제가 없지만 오늘의 경기로 인하여 십자인대가 굉장히 약해졌으니 극도로 조심하라는 말을 닥터에게 들었다.

두호는 씁슬한 듯 자신의 다리를 쳐다보았다.

이겼지만 잃은 것이 너무 많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시기에 이런 부상은 낭패다.

‘잠시 멈춰가라는 뜻인가.’

두호는 마음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괜히 안절부절 못 하는 것 역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탁현과 데이비드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이윽고 수 많은 직원들과 함께 레이첼이 들어온다.

그녀의 등장에 파이트매니아 선수들이 술렁거린다.

언감생심 한번 얼굴이라도 봤으면 좋겠는 그녀가 그들의 눈앞에 서있자 선수들이 잔뜩 기합이 들어간다.

그들에게 레이첼은 단순히 대표가 아닌 출세 동아줄을 내려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아는지 레이첼이 가볍게 그들을 훑어본다.

“두호씨가 이길만 했네요. 이런 선수들과 함께라면 없던 실력도 상승하겠어요.”

선수들은 그녀의 칭찬에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데이비드를 훑어본다.

“선수 명단 리스트업 해서 저희 쪽으로 보내주세요. 저희가 검토 후 괜찮은 선수들을 픽업하겠습니다.”

데이비드가 살짝 고개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두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레이첼이 손을 젓는다.

“앉아계세요. 저 혹시 의자 하나만 주실래요?”

준모가 자리에서 일어나 선뜻 자신의 의자를 내어준다.

레이첼이 미소를 지으며 준모를 바라본다.

“이 멋진 신사분은 누구실까요?”

“매니저 양준모입니다!”

마치 군인이 상관에게 관등성명을 대듯 힘차다.

미인들 앞에서는 맥을 못 추는 준모다.

과거 무를 만났을 때처럼 시선이 하늘에 고정된 채 내려오지 않는다.

그녀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두호를 바라본다.

“벌써 매니저가 두 분이나? 역시 아시아의 영웅은 다르네요.”

준모가 내어준 의자에 앉아 두호를 바라보는 레이첼.

대충 보기엔 부상이 심각하지만 메디컬팀의 진단을 듣고는 안심한 그녀였다.

만약 두호가 부상으로 완전히 아웃이 된다면 자신들 입장에서는 정말 답이 없어지는 상황이다.

대항마인 두호가 사라지고 혼자 남은 알도프가 어떤 패악질을 할지 뻔하다.

“몸은 좀 어떠세요?”

“뭐. 조금 쉬면 낫는답니다.”

레이첼이 고개를 끄덕이며 봉투 하나를 꺼내 두호에게 내민다.

두호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봉투를 받았다.

레이첼이 고갯짓으로 봉투를 가르킨다.

“이게 뭔지. 아세요?”

“뭡니까?”

두호가 봉투를 열어본다.

안에는 달러가 가득했다.

어림잡아 10만불 정도 되보인다.

고개를 끄덕이며 봉투를 닫고는 다시 레이첼에게 돌려주려한다.

그 모습에 레이첼이 미소를 짓는다.

“당신 겁니다. 받아두세요.”

락커룸 보너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은 엘리트 스포츠로써 국제연맹이 존재한다.

하지만 XFC 같은 프로 격투기 단체는 정확히 말하자면 쇼 엔터테인먼트 회사.

경기를 잘해준 파이터에게 사장이 내미는 보너스 같은 개념이다.

순식간에 한화로 1억 훌쩍 넘는 금액의 주인이 된 사람치고는 표정이 덤덤하다.

이윽고 두호는 봉투를 데이비드에게 내민다.

데이비드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자 두호가 싱긋 웃는다.

“고생하셨습니다. 파이트매니아 식구들을 위해서 써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데이비드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선수들 역시 감격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

레이첼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두호를 바라본다.

‘돈도 욕심이 없다?’

명예를 원한다면 어째서 속물로 보이는 머니파이트 계약을 원한 것인가.

도대체 속을 알 수 없는 두호의 반응.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다음 경기 일정을 잡기 위해 온 겁니다.”

레이첼 정도의 위치에 오른 사람이 대리인도 아닌 직접 일을 해결하러 왔다는 것은 업계에서 드문 일이다.

두호를 얼마나 고평가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

돈 벌 생각에 싱글벙글해야하는 그녀의 얼굴이지만 왠일인지 차분하게 가라앉아있었다.

“지금부터 정말로 중요합니다. 두호씨 커리어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인생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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