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 가시밭길 끝엔 영광이 있다.
이곳은 이라크 분쟁지역도 아프리카도 아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 본토에서 유탄을 터트리다니.
이 정도의 폭발음이라면 근처 군부대나 경찰들이 쏟아져 올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고 연이어 유탄을 격발한다.
그들이 이번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래진은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며 권총을 재장전한다.
오래되어 녹이 슨 대형 타이어 뒤로 돌아간 래진이 씨익 미소 짓는다.
“나도 한번 놀아볼까.”
래진이 권총의 소음기 부분을 꽉 잡고 비틀어 단숨에 소음기를 분해한다.
그리고는 곧바로 허공을 향해 격발한다.
탕!
이윽고 다른 방향으로 전력 질주하는 래진.
들개들은 총소리가 나는 곳으로 유탄과 총을 마구 발사하기 시작했다.
타타탕!
펑!
꺼졌다 켜졌다 하는 불빛과 흩날리는 먼지로 인해 시야 확보가 어렵자 마구잡이로 격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윽고 전혀 다른 방향에서 다시 총소리가 들려온다.
탕!
이번엔 한 사내가 목에 맞은 듯 픽하고 쓰러진다.
들개들은 다시 총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총을 쏴댄다.
아수라장으로 변한 공터.
더군다나 각자 바라보고 있는 위치가 다르기에 오인사격을 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며 총기를 쏘는 방향이 점점 갈리자 같은 편끼리 총을 쏘며 싸우게 된 상황.
“잠깐! 모두 스탑!”
로버트가 다급하게 송신기에 외치지만 이미 흥분한 사내들에게 들릴 리가 없었다.
총알이 날라오는데 어떻게 대응사격을 안하겠는가.
그들은 오히려 방해된다는 듯 귀에 착용한 수신기를 벗어버린다.
로버트가 상황을 지켜보며 입술을 질끈 깨문다.
‘젠장. 보기 좋게 한 방 먹었군.’
어림짐작으로 유탄을 쏜 것은 자신의 발목을 잡는 자충수였다.
더군다나 켜졌다 꺼졌다 하는 조명과 먼지로 인해 피아식별은 더욱 어려워 졌으니 작은 자극에도 흥분할 상태이다.
잠시 후 래진이 나타난 곳은 C 섹터의 사내들 뒤였다.
벼락같이 들개의 등을 향해 달려드는 래진.
다른 곳을 바라보던 들개의 입을 틀어막고 등에 총을 갖다 대 여러발 격발한다.
아무리 방탄조끼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의 거리에서 쏘는 총알은 방탄조끼가 의미를 잃는다.
사내는 입이 틀어막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뒤를 돌아 래진을 확인한 다른 들개가 곧바로 총을 겨눈다.
래진은 순식간에 옆으로 몸을 던지며 사내의 위치를 확인한다.
들개는 몸을 날리는 래진을 향해 총을 격발하지만 모두 빗나갔다.
탕탕!
이윽고 이번엔 래진이 들개를 향해 총을 격발한다.
탕탕!
첫 한 발은 빗나갔지만 다음 한 발은 사내의 이마에 정확히 명중했다.
사내가 뒤로 무너졌고 털썩 소리와 함께 일어나지 못했다.
래진이 권총을 재장전하기 위에 탄알집을 분리하자 누군가 표범처럼 풀숲에서 튀어나온다.
로버트였다.
곧바로 래진을 향해 권총을 격발하는 로버트.
탕탕!
래진은 당황하지 않고 주위에 놓인 목자재들을 향해 몸을 던져 총알을 피해낸다.
이윽고 빈 탄알집의 소리가 들려온다.
틱!
틱!
“젠장.”
로버트가 황급히 재장전을 하기 위해 여분의 탄창을 꺼내는 순간 래진이 나이프를 손에 쥔 채 튀어나온다.
할 수 없이 들고 있던 총을 땅으로 버린다.
래진의 칼이 하늘 높게 들어졌고 이내 로버트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로버트는 방어에 성공했으나 이를 악문다.
팔뚝에 세로로 박힌 칼.
고통스러운 표정의 로버트였지만 그 역시 래진의 한쪽 팔을 붙잡는 데는 성공한다.
하지만 통증으로 인해 한쪽 무릎이 자연스럽게 꿇려진다.
래진이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본다.
“집이나 지키지. 남의 집 털러오는 개가 어디 있나?”
“교란하는 작전은 아주 좋았어. 뱀이 아니라 미꾸라지 같던데?”
로버트가 미소를 지으며 받아치자 래진이 씨익 미소를 짓는다.
“어때 개울물이 흐려진 기분이.”
“예상했던 바다.”
로버트는 팔뚝에 박힌 칼을 힘으로 밀어내며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래진이 그 모습에 흥미로움을 느낀다.
한쪽 팔뚝에 칼이 박혔는데 그것을 힘으로 이겨낸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단순히 힘이 센 것이 아니라 통증을 참는 의지가 뛰어나단 것.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이후 로버트가 래진의 팔을 뿌리치고 자신의 허리춤에 나이프를 꺼내 휘두른다.
래진이 재빠르게 고개를 젖혀 피해내고 곧바로 로버트를 찔러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누구 하나의 목이 달아날 듯 섬뜩한 공방전이 이어진다.
더군다나 깜빡이는 조명으로 인하여 칼이 사라졌다 나타나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게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베테랑.
수도 없이 쌓였던 경험으로 인하여 칼끝이 보이지는 않지만 예측이 되는 것이다.
허공을 긋는 듯 하지만 예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수 싸움을 보여주며 두 사람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칼을 피해내느라 뒤로 한 발자국을 걸어가는 그 순간.
어둠으로 인해 보지 못했던 돌부리에 래진이 뒤로 넘어진다.
‘젠장.’
래진이 뒤로 쓰러지자 기회를 포착한 로버트가 망설이지 않고 그의 몸을 향해 달려든다.
서로 영켜붙은 상황 속 로버트의 칼이 래진의 목 바로 앞에 멈춰있다.
아래에서 칼이 들린 로버트의 팔을 부여잡는 래진.
이를 악물며 어떻게든 칼을 찔러넣으려는 로버트.
두 사람 다 이마에 핏줄이 돋아날 만큼 힘을 쏟고 있었다.
“죽어...이 개새끼야!”
래진 역시 죽기 살기로 칼을 든 팔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 순간 총격전이 잠시 멈춘 듯 공터가 조용해졌다.
그 상황속 로버트의 눈이 번뜩이며 크게 소리친다.
“지금 당장! 쉘터로 들어가서 이재하 잡아!”
들개들은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 로버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서로 시선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쉘터의 입구인 정비소 공장으로 달려간다.
그의 외침에 래진 역시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렇게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이 순간 빈집털이를 명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로버트가 더욱 힘을 주어 칼을 누르며 미소를 짓는다.
“체크 메이트다. 이 새끼야.”
“꼴에 안 돌아가는 머리 좀 썼구만.”
순간 래진이 몸을 한쪽으로 비틀며 공간을 만들었다.
그 바람에 로버트의 칼이 래진의 목이 아닌 땅에 박혔다.
래진이 거침없이 로버트의 몸을 뻥하니 차버리며 벼락같이 일어선다.
지금 쉘터는 텅 빈 상태.
만약 저놈들이 쉘터 안으로 들어간다면 애써 잡아놓은 이재하를 놓치게 된다.
그가 서둘러 쉘터를 향해 달려가려 하자 로버트가 몸을 던져 래진을 밀쳐낸다.
쾅.
로버트에게 밀쳐져 한 바퀴를 굴러서야 일어선 래진.
로버트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어떻게든 자신을 붙잡아놓겠다는 의도.
진퇴양난의 상황속 래진이 거친 숨을 내쉰다.
‘이렇게 시간이 지연되면 안 되는데...’
그 순간 어디선가 총소리가 울린다.
탕!
이윽고 로버트의 동공이 풀리며 서서히 땅으로 쓰러진다.
털썩!
래진이 다급하게 주위를 살피자 멀리서 보이는 차량 3대.
블랙 러프의 투자자들을 만나기 위해 떠났던 찰리팀이 돌아온 것이다.
총을 부하에게 건네고 달려오는 영철이 큰 소리로 외친다.
“괜찮으십니까!?”
래진은 영철에게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급하게 쉘터를 향해 달려갔다.
‘제발. 제발.’
절박한 표정으로 있는 힘껏 쉘터로 달려간 래진.
정비소의 문은 이미 박살이 나있었고 출입문의 차량 역시 치워져 있었다.
비밀 입구 또한 화력으로 부셨는지 산산조각이 나있다.
그가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서는 그 순간.
펑!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화염에 휩싸인다.
이윽고 순식간에 쏟아지는 화염과 맞바람으로 인해 벽에 부딪친 래진이 털썩 쓰러져 정신을 잃는다.
***
예전 맹혁과 같이 왔을 때는 평온함을 느꼈던 카페였지만, 지금 두 사람의 표정은 그때와 사뭇 다르다.
맹혁은 긴장감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고 상철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창 밖을 바라보았다.
날씨마저 강한 비바람이 몰아친다.
평온하던 필리핀의 파도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만큼 거대해졌다.
그들이 앉은 소파자리 뒤쪽엔 옐로우 맘바 알파팀이 앉아 있었다.
복장은 제각기였지만 그들의 허리춤은 옷으로 가려지지 않는 두툼함이 엿보였다.
그 순간.
-짤랑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위험해 보이는 사내들이 들어온다.
머레이를 필두로 입장하는 포그스컬스의 OG멤버들이었다.
그들 역시 편안한 옷차림이었지만 허리춤의 두툼함은 옐로우 맘바와 다를 것이 없었다.
사내들이 들어오자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사내.
바로크 코와르키였다.
지금 당장 총격전이 벌어져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분위기에 유일하게 바로크 만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맹혁과 상철에게 거침없이 다가간다.
“반갑습니다. 바로크 코와르키 입니다.”
누가 본다면 정말 평범한 비즈니스를 하러 온 사람처럼 편안한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손을 내민다.
그 모습에 맹혁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상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똑같이 미소를 지으며 내민 손을 잡았다.
“유상철입니다.”
이윽고 힐끔 맹혁을 바라보며 그의 소개까지 대신하였다.
“이 친구가 맹혁입니다.”
“아휴. 반갑습니다. 옐로우 맘바 베테랑 캡틴과 동남아 제일의 오퍼상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보겠습니까.”
넉살 좋은 말과 함께 자리에 앉은 바로크.
뒤따라온 포그 스컬스 멤버들도 그의 뒷책상에 모여 앉았다.
포그 스컬스와 옐로우 맘바의 살벌한 시선들이 허공에서 얽힌다.
상철은 유심히 바로크를 지켜보았다.
‘역시 우두머리다 이건가?’
협의고 뭐고 지금 당장 총에 맞아 죽는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옐로우 맘바의 큰 걸림돌이자 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讐)인 포그스컬스의 대장이 무방비하게 나올 자리가 아닌 것이다.
맹혁이 불쾌한 표정으로 툭 한마디를 뱉는다.
“하고 싶은 말이 뭐요.”
그의 반응에 인상을 찌푸릴만도 했지만 시종일관 여유로웠다.
“바로 본론? 이야 역시 거상(巨商)이라 그런지 화통하십니다.”
오히려 덕담을 건네는 그가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그 순간 옐로우 맘바들이 번개같이 일어나 허리춤에 권총을 꺼내 그를 겨눈다.
척!
포그 스컬스 역시 총을 뽑아들며 용수철처럼 일어나 상철과 맹혁을 겨눈다.
샤샥!
순식간에 두 집단이 서로의 대장을 향해 총을 겨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눈에 엿보였다.
바로크가 짐짓 놀란 척을 하며 품속에 넣은 손을 도로 뺀다.
“세상에. 제가 이런 실례를 범했네요. 우리가 아직 말도 없이 품속에 손 넣을 사이는 아닌데 말이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손을 빼낸 그가 아무것도 없단 듯 앞 뒤로 뒤집는다.
상철이 천천히 부하들을 돌아본다.
“총 거둬.”
상철의 명령에 총구를 내리긴 하지만 경계를 풀지 않는 눈치이다.
바로크가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싸늘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다.
“너희도. 비즈니스 하는데 총이 웬 말이야.”
그들 역시 총을 거뒀다.
바로크가 미소를 지으며 상철에게 물어본다.
“품에 손 좀 넣어도 되겠죠?”
상철이 그러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윽고 손을 품 안에 집어넣은 그가 종이책 하나를 꺼내든다.
과거 알도프로 인해 곤욕을 치룬 여직원을 위해 꺼내든 수표책.
그가 수표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다리를 꼰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다 사려고 합니다.”
그 말에 맹혁과 상철의 눈이 좁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