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52화 (152/204)

제 152화 : 가시밭길 끝엔 영광이 있다.

침묵에 빠진 관객들.

그리고 수많은 국가의 해설위원들이 말을 잇지 못했다.

- 믿...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몬스터 단 3방으로 루스리스갱을 다운시켜 버립니다!

해설위원의 한 마디에 관중들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친다.

“미쳤어! 몬스터!”

“진짜 괴물 등장이구나 우하하하!”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오른 라스베이거스의 APEX 경기장.

바닥에 손을 짚은 채 앉아있던 볼크가 당황한 눈빛으로 두호를 올려다본다.

‘뭐지...’

두호는 살짝 미소지어 보이고는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볼크를 바라본다.

이내 일어나라는 듯 손을 휘익 젓는다.

볼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워 자세를 잡는다.

경기 시작 전과는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볼크.

‘태클 페이크까지 예상해서 나도 고개를 숙였지만 그것까지 예상한 투. 훅, 투라.’

볼크가 정신을 다잡기 위해 자신의 글러브로 얼굴을 세차게 비빈다.

‘몬스터. 쉽진 않겠어.’

심판이 경기 속행을 선언하자 방금 전과는 달리 활발하게 스텝과 머리를 움직이는 두 사람.

두호의 속도는 침착하게 반응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가만히 앉아 이 속도를 피하는 것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

끊임없이 움직여야 속도를 맞춰갈 수 있는 것이다.

두호가 앞 발을 내딛으며 원투를 찔러들어간다.

그러나 볼크는 크게 팔을 휘저으며 그 팔을 막아내고는 멀리 물러난다.

하지만 두호는 그의 움직임을 방관할 생각이 없는 듯 순식간에 따라 붙는다.

케이지의 등이 닿은 볼크를 보며 두호의 눈이 빛난다.

이윽고 쏟아지는 펀치 세례.

물론 볼크 역시 단단하게 가드해 정타를 허용하지 않았지만 인상이 찌푸려진다.

볼크가 클린치 상황을 유도하기 위해 팔을 뻗어 두호를 당기려 했지만 두호가 그 팔을 스윽 피해낸다.

다시 한 번 쏟아지는 두호의 공격.

데이비드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탁현에게 말한다.

“종합격투기 학원이 있다면 두호씨가 스트라이커 일타 강사를 하겠네요.”

탁현이 미소 짓는다.

데이비드 역시 알아보고 있는 것이다.

복서에게 중요한 것은 발이다.

종합격투기에서도 스텝의 영향력은 크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이지 않는다.

상대의 발을 공격할 무기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

거리감.

모든 나의 행동과 기술들이 상대의 거리와 자신의 거리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한 방법이다.

사실 두호의 운영은 단순하다.

자신의 거리로 들어오면 피하고 때린다.

하지만 두호의 천부적인 시야와 정상급 발이 만나니 완벽한 승리 공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순간 볼크의 몸이 스르륵 내려간다.

그러자 두호가 재빠르게 뒤로 물러난다.

더 이상 압박할 생각이 없는 듯 케이지의 중앙까지 물러나는 모습을 보인다.

그 모습에 관객들은 의아한 반응이었다.

“뭐지. 왜 더 몰아붙이지 않는 거야?”

“더 했으면 끝날 것 같은데.”

그러나 볼크의 세컨들은 아쉬워하는 눈치였고 데이비드와 탁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큰일 날뻔 했네요.”

“확실히 정상급 그래플러란...”

볼크 역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눈치가 빠르네.’

만약 두호가 자신이 다운된 것으로 착각해 그대로 들어왔다면 곧바로 발목 태클을 할 생각이었다.

발목을 붙잡고 바닥을 구르면 상대 역시 중심이 무너지기에 그래플링이 시작되는 것이다.

두호는 그 점을 알아채고 과감하게 뒤로 물러나는 판단을 한 것이다.

두호가 시간을 바라보며 천천히 숨을 내쉰다.

‘차분하게. 차분하게.’

볼크가 다시 케이지의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나온다.

이윽고 흉흉한 기세로 두호에게 달려든다.

두호가 자세를 낮추고 맞받아칠 준비를 한다.

볼크가 주먹을 뻗는다.

두호에 비한다면 거북이 수준으로 보일만큼 느릿한 훅이었다.

그러나 그의 어깨가 터질 듯이 꿈틀거린다.

두호의 가드 위로 강하게 꽂히는 볼크의 훅.

퍼억!

두호의 상체가 한쪽으로 쏠리며 비틀거리고, 두어 걸음 주춤하며 간신히 버틴다.

탁현과 데이비드는 경악한 표정이었다.

두호 역시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뭔 이런 힘이...’

가드 위로 자세를 낮추고 받아낸 주먹에 하마터면 바닥으로 넘어질뻔 했다.

속도는 느리지만 엄청난 힘이 담겨져 있는 펀치.

주먹을 적중시킨 볼크가 씨익 미소 지어진다.

“이제 내 시간이야.”

아직 중심을 회복하지 못한 두호를 향한 태클.

생전 처음 보는 속도였다.

마치 경량급 레슬러를 보는 듯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혀 두호의 하체를 잡아챈다.

두호가 급하게 스프롤을 준비하지만 이미 깊게 들어와버린 볼크였다.

이윽고 양 다리를 잡아채 깍지까지 낀 볼크.

“으아아아아!”

엄청난 기합과 두호를 번쩍 들어버린다.

두호가 그의 어깨에 빨래처럼 널렸고 볼크가 뒷 걸음질을 친다.

케이지의 중앙까지 걸어간 볼크가 뒤로 넘어지듯 강한 슬램을 꽂아 넣는다.

콰앙!

-엄청난 완성도의 하체 태클과 슬램입니다! 순식간에 핀치에 몰리는 몬스터.

탁현의 표정 역시 찌푸려졌다,

‘월드 클래스는 이런 것이구나.’

일반인들이 보기엔 단순히 잘 들어간 더블랙 태클이었지만 탁현의 눈에는 소름이 돋을 정도의 완성도였다.

정확히 자신의 중심을 두호의 사각으로 이동.

그리고 두호의 무릎 뒤를 잡아 퇴로를 차단하며 무게를 수직으로 들었다.

물리적으로 모든 물건은 수직으로 들어올릴 때 가장 힘이 잘 받는다.

급급하게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대의 무게 중심을 파악하는 재능.

더군다나 두호를 완벽한 핀치에 몰기 위해 케이지의 중앙으로 이동한 것이다.

탁현이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문다.

‘두호씨...’

두호가 하위 포지션에서 탈출을 꾀한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탈출을 하려면 가드를 내리고 땅을 짚어야 한다.

두호가 땅을 짚을 때마다 칼 같은 타이밍에 찔러 들어오는 파운딩.

새우 빼기는 고사하고 움직일 틈을 주지 않는다.

그 순간.

두호의 목을 끌어안고 품으로 파고드는 볼크.

머리를 밀고 들어오는 전광석화같은 움직임에 두호가 대응하려는 그 순간, 일이 터졌다.

갑자기 두호의 눈 위에서 피가 터져 나온 것이다.

데이비드와 탁현이 심판을 보며 소리친다.

“어이 심판! 버팅(머리로 부딪치는 반칙)이잖아!”

“안 말리고 뭐해?”

워낙 많은 관중들로 인해 소리가 파묻혔지만 가까이 있던 코치진들은 들을 수 있었다.

두호를 끌어안는 과정 중 들려온 작은 파열음.

그러나 심판은 보지못한 듯 경기를 계속 진행시켰다.

그도 그럴것이 이것은 볼크의 노림수였다.

버팅과 동시에 상대를 끌어안아 자신의 이마에 피를 묻힌다.

그러면 심판의 눈에는 누가 누구를 버팅하였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워진다.

과연 XFC에서만 20전이 넘는 전적을 보유한 베테랑 파이터.

반칙이지만 과연 누가 알아볼 것인가.

두호가 개의치 않고 방어적인 행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시야가 흐려지고 눈이 따가워지니 두호의 입장에서는 움직임이 둔해질 수밖에 없다.

볼크는 그의 상태를 확인하자 씨익 미소 짓는다.

곧바로 점프를 하듯 뒤로 눕는다.

잠시 압박이 덜해지자 두호가 번개같이 일어서려 한다.

그러나 이 또한 볼크의 계획이었다.

순식간에 두호의 왼다리를 잡아챈 볼크.

하체 관절기 니바(Knee bar. 무릎 관절을 꺾는 기술. 상대편의 다리를 팔과 양다리로 고정하고, 허리 힘을 이용하여 지렛대 원리로 상대편의 무릎을 꺾는다)였다.

두호가 고통스러운 듯 벗어나보려 하지만 만만치가 않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점은 만약 기술이 온전하게 들어갔다면 벌써 탭이 나왔을 것이다.

어떠한 의도가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기술적인 실수인지는 알 수가 없다.

두호는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한쪽 다리를 들어 볼크를 연신 찍어댄다.

하지만 볼크는 그런 반격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몸을 틀어 차라리 등을 내주고 두호의 왼다리만을 공략했다.

볼크의 팔이 꿈틀한다.

그러자 탁현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 친다.

“심판! 저 새끼 무릎 뒤로 팔 끼워넣잖아!”

그래플링에서 가장 위험한 사고는 관절 뒤로 팔이나 다리가 들어가는 것이다.

단순히 꺾는 것이 아닌 과거 일준이 보여줬던 사고처럼 팔다리가 완전히 완파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두호가 옆으로 한 바퀴를 구른다.

상대의 몸이 옆으로 눕혀져 있으니 반대 방향으로 빠져나가려는 것이다.

땀과 피로 인해 미끄러워진 피부 때문에 볼크가 두호의 발을 놓쳤다.

‘제길.’

두호가 황급히 다리를 풀고 일어선다.

하지만 다리의 부상이 생겼는지 일어나는 속도는 마음과 다르게 더디기만 했다.

어찌저찌 일어나기는 성공했지만 볼크가 곧바로 따라 일어나 두호의 상체와 한쪽 손목을 잡아챘다.

종합격투기 스탠딩 상황에서 상대의 한쪽 팔을 붙잡는다는 것은 그래플링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필사의 의지였다.

두호가 한쪽 손을 때내려 자세를 낮추고 볼크의 손목을 잡는다.

그러나 볼크는 두호의 손목과 자신의 손목을 시계 방향으로 크게 돌린다.

순식간에 무게중심이 무너지며 다시 바닥으로 끌려들어간 두호.

레슬링 기술중에서도 최상급이라 불리는 러시안 타이슨햅이었다.

다시 볼크가 파운딩을 치기위해 달려들었지만 종이 울렸다.

- 때앵

심판이 달려들어 두 사람을 떼어놓았고 두호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듯 걸음은 더뎠고 힘겹게 코너로 돌아간 두호.

두호가 의자에 앉아 거친 숨을 내쉰다.

데이비드와 탁현이 케이지 안으로 들어와 상처가 난 부분을 거즈로 닦아낸다.

탁현은 두호의 다리를 매만지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두호씨. 다리는 괜찮으...”

탁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피를 흘리며 시뻘게진 눈.

몸은 땀과 피로 인하여 엉망이 되었고 체력적으로 벌써 지쳤는지 숨이 거칠다.

그러나 지금 두호가 보여주는 눈.

눈은 온전히 살아있었다.

탁현이 두호에게 물병을 건넨다.

두호가 탁현을 지긋이 바라본다.

“이번 경기. 저 한 번만 믿어주십니까?”

“네?”

탁현이 당황한 눈빛으로 두호를 바라본다.

데이비드 역시 아무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라운드와 라운드 사이 쉬는 시간엔 코치들의 시간이다.

그들의 경기 중 분석하고 보완해야 할 점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탁현의 눈빛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이윽고 반대쪽 코너의 볼크 진영을 바라본다.

여유로운 미소로 코치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볼크.

“자신 있습니까?”

심판이 세컨진의 아웃을 명하자 하나둘씩 케이지를 빠져나간다.

두호 역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무것도 못 보여줬습니다.”

탁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두호의 어깨를 툭 친다.

“다녀오십시오.”

두호가 고개를 케이지의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이내 모든 코치진들이 빠져나가고 다시 케이지 안에는 심판과 선수만이 마주 보았다.

볼크가 눈이 좁혀진다.

절뚝거리는 다리.

거칠게 내쉬는 숨.

버팅으로 인해 찢어진 눈가.

‘끝이다.’

그러나 두호는 자세를 잡지 않고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볼크가 조금씩 거리를 좁히고 사정거리 안에 도착한다.

“흐아아아아!”

다시 한번 엄청난 속도의 태클.

그러나 두호의 팔이 태클을 위해 내려가는 볼크의 머리를 그대로 부여잡는다.

‘어?’

두개골을 부술만큼 강력한 니킥.

쾅!

이윽고 바닥으로 천천히 엎어지는 볼크의 눈이 풀려있었다.

그리고 쓰러지는 그의 얼굴로 향하는 투.

콰앙!

장내는 정적에 빠져들었고 두호가 쓰러진 볼크에게 파운딩을 치기 위해 팔을 든다.

그러나 심판이 한 발 앞서 볼크를 감싸 안았고 경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수신호를 보낸다.

-경.... 경기 끝! 2 라운드 시작 12초만에 백두호 선수의 TKO 승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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