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1화 : 가시밭길 끝엔 영광이 있다.
계체량이 시작되었다.
두호의 훈련을 숱하게 지켜보았던 예수와 준모였지만 오늘은 그들 또한 눈 뜨고 지켜보기 힘들 정도였다.
안쓰러움과 측은함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두호를 바라본다.
탁현 역시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독한 훈련의 연속에서도 이겨내라고 외쳐대던 그가 오늘은 왜인지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넓은 샤워실에 데이비드를 제외한 모두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뜨거운 욕조에 목만 내놓은 채 온 몸을 담근 두호.
그리고 온도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인지 얇은 판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데이비드가 옆에 둔 온도계를 집어 넣는다.
물 온도가 43.3도임을 알려주자 황급히 손을 흔든다.
“빨리! 뜨거운 물 가져와!”
그의 다급한 외침에 페드로가 커피 포트를 서둘러 들고 온다.
이윽고 얇은 판에 나있는 조그만한 구멍으로 뜨거운 물을 쏟아붓는다.
순식간에 뜨거운 물이 들어왔음을 느꼈는지 두호의 인상이 찌푸려진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불편했다.
숱한 고통을 이겨낸 두호이지만 단순한 외상과는 궤를 달리하는 통증이었다.
장기 하나하나부터 힘을 잃어가는 불쾌한 느낌.
그러나 두호는 이 고통스러운 감량작업을 의연하게 버텨내고 있었다.
탁현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데이비드에게 다가간다.
“조금 쉬었다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안됩니다. 미스터 탁.”
단호하게 고개를 저은 데이비드.
운동선수들이 수분 감량을 하기 위해서 선행되는 기초 작업이 있다.
바로 몸에 염분기를 없애는 것.
염분은 체내의 수분을 붙잡고 있어 염분제거가 되지 않는다면 몸의 수분은 빠져나가지 않는다.
염분기가 제거가 되어야만 지금 같은 극단적인 수분감량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게 염분기를 없애도 뇌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 땀을 배출하지 않게 된다.
뜨겁고 습한 환경을 만들어 수분을 강제로 배출하게 하는 것.
그렇기에 몸이 땀을 배출하기 시작한다면 멈추지 말고 달려야 한다.
안쓰러운 눈으로 지켜보던 준모가 욕조 옆 세면대의 비닐봉지를 발견한다.
하얀 가루가 쏟아져 있어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살짝 찍어본다.
“설탕인가?”
그리고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댄다.
혀 끝을 살짝 찍어보자 처음 겪어보는 쓴 맛을 느낀다.
“우웩, 이게 뭐야!?”
차라리 연탄재를 찍어먹어도 이것보단 덜 쓸 것 같다.
침을 뱉어대다 이내 헛구역질까지 시작하는 준모.
“와...이게 뭐에요.”
데이비드가 힐끔 뒤를 쳐다본다.
바닥에 엎드려 고통스러워하는 준모를 보며 씨익 미소 짓는다.
“엡섬 솔트입니다. 마그네슘 미네랄이 포함된 소금으로 몸에 수분을 더욱 잘 빼내줍니다. 그리고 배출된 수분이 다시 몸으로 재흡수 되는 걸 막아주죠. 맨 입으로 먹으면 탈 날 수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준모가 바닥을 기어가며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일찍 말해주지...”
“그러게 누가 식탐 부리래요?”
“식탐이라뇨. 호기심이죠.”
준모의 모습 때문에 심각하던 분위기는 한층 가벼워졌다.
데이비드가 시간을 체크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스태프들에게 외쳤다.
“준비해. 바로 나갈꺼야!”
“네!”
스태프들이 순식간에 욕조 옆 바닥에 무언가를 깔기 시작한다.
두꺼운 매트리스 위에 전기장판을 올린다.
이윽고 그 위에 수 많은 수건들을 두껍게 깔며 은박지를 다시 올린다.
예수가 탁현에게 슬쩍 물어본다.
“은박지네요?”
“네. 열이 빠져나감을 차단하기 위해 깔아놓는 것입니다.”
스태프들은 뒤이어 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패딩과 비견 될만한 두꺼운 땀복.
데이비드가 시계를 보더니 재빠르게 얇은 막을 치운다.
“지금입니다. 두호씨!”
두호가 비틀거리며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운다.
드러난 그의 몸은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했다.
평균 체중 90kg에 육박하던 두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긴 시간 동안 굶은 환자를 보는 듯 했다.
그가 힘겹게 걸어나오자 데이비드와 탁현이 달려들어 그의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 천천히 땀복을 입혔다.
그리고는 곧장 매트리스에 눕혀 은박지를 덮고 그 위에 이불을 덮는다.
두호가 거친 숨을 내쉬며 눈을 감고 있는다.
탁현이 손목의 시계를 바라본다.
‘앞으로 5시간. 두호씨가 과연 버텨줄 수 있을까...’
경기를 준비하는 모든 시간들이 고통스러워서 오히려 경기가 쉽다고 한다.
지금껏 달려온 마무리 작업의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
***
- XFC 계체량 페이스오프를 방문해주신 팬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메인 게임 선수들의 계체량을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
수 많은 플래쉬가 터지고 관중들의 천둥 같은 함성소리가 울려 퍼진다.
경기날도 아닌 계체량 관전에 입장한 관객수는 5만 명.
역시 격투기 산업의 중심답게 어마어마한 흥행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스테이지 위엔 경기 진행을 담당하는 XFC의 메인 MC 앤드류가 있었다.
그 옆에는 레이첼과 함께 고위 관계자들이 줄지어 서있는다.
오프닝 공연을 마친 유명 팝가수의 얼굴도 보였다.
이윽고 조명이 바뀌며 강렬한 붉은 조명이 켜진다.
그리고 라운드걸 들이 패션쇼의 워킹을 하듯 스테이지로 입장하기 시작한다.
앤드류가 거친 목소리로 크게 외친다.
- 메인 1 경기 선수를 소개합니다. 전 PRIDE-K 초대 우승자이자 킹 챔피언쉽 미들급 챔피언.
코리안 몬스터. 백두호 선수입니다!
선수 출입구로 하얀 조명이 비춰지며 두호의 모습이 들어왔다.
하얀 셔츠와 파란 청 반바지를 입은 채 걸어들어오는 두호와 탁현.
그 뒤로 파이트 매니아 선수들과 데이비드가 보인다.
두호가 천천히 계단을 올라오자 관객들은 백두호의 별명을 연호하며 그의 입장을 환영했다.
“몬스터! 몬스터!”
“저 깡패 새끼 밟아줄거라 믿는다 백두호!”
관객들은 그동안 잠잠하던 미들급의 큰 바람이 불어오기를 바랬다.
그 마음을 담아 엄청난 응원과 함께 핸드폰 플래쉬가 켜진다.
신인 선수에게 플래쉬를 비치는 이유는 별처럼 밝게 빛나라는 그들만의 응원 방식이었다.
계단을 올라온 두호가 레이첼과 악수를 나눈다.
레이첼은 그를 보며 흠칫했다.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지만 그의 눈빛은 사뭇 달랐다.
숨겨지지 않는 날카로움.
보는 것만으로 숨이 턱 막히는 눈빛이었다.
악수를 나눈 그가 계체량을 위해 옷을 벗는다.
윗옷을 벗어던지자 그 모습을 먼저 보게 된 라운드걸들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진다.
이윽고 몸을 돌리자 관중들은 감탄하며 소리를 지른다.
군살 하나 없는 조각상 같은 몸.
근육과 살가죽을 제외하고는 불필요한 모든 것이 제거 되어있다.
그리고 몸에 보이는 수 많은 상처들.
마치 야생에서 살아남은 최강의 포식자를 본 듯 모든 것을 압도하는 듯 했다.
그가 체중계에 올라가 숫자를 잠시 바라본다.
이윽고 옅은 미소를 띄우며 손가락 하나를 올린다.
잠시 침묵에 빠진 관객들.
- 코리안 몬스터 백두호. 174파운드로 계체량 통과하였습니다.
와아아!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체중계 밑으로 내려온 두호.
뒤이어 곧바로 조명이 바뀌며 한 사내가 걸어나온다.
루스리스 갱.
데미안 볼크였다.
그의 뒤에 따라들어오는 세컨들은 파이트 매니아 선수들과 사뭇 달랐다.
운동 선수라기 보다는 길거리 왈패가 어울릴 모습들.
심지어 한 사내는 술 병을 손에 쥔 채 걸어들어왔다.
케이지 위로 올라오자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인기는 사뭇 대단했다.
그의 캐릭터성과 실력만큼은 인정한다는 듯 두호에게 밀리지 않는 팬층을 보유하고 있었다.
“어이 루스리스 갱! 아시안 꼬맹이 적당히 혼내줘라!”
“동양인한테 지면 진짜 굴욕이다. 알지?”
그는 두호와 다르게 곧바로 옷을 벗으며 체중계로 향한다.
입고 있던 민소매를 벗어던지고 쓰던 비니 역시 휙 던져 버렸다.
곧바로 체중계 위로 올라간 그가 양 팔을 굽혀 마치 보디빌더의 자세를 취한다.
- 데이만 볼크. 174파운드로 계체량을 통과했습니다.
“으아아아!”
엄청난 포효를 선보이며 내려오는 볼크.
앤드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두 사람.
냉정하게 상대를 바라보는 두호와 달리 볼크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이 꿈틀한다.
앤드류가 두 사람을 살짝 팔로 밀어내며 신체접촉을 막았다.
이윽고 인터뷰를 진행하려 하자 볼크가 훽하니 앤드류의 마이크를 낚아챈다.
“내일 보자. 애송아. 엄마 부르지 말고.”
이윽고 곧바로 손가락 욕을 날리며 뒤를 돌아서는 볼크.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스테이지를 빠져나간다.
사람들은 볼크의 반응에 재밌어죽겠다는 듯 소리친다.
“하하하! 볼크가 재미를 아네. 입 털어서 뭐하냐!”
“그래 죽이지만 말라고 루스리스갱!”
앤드류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내 두호에게 말한다.
이미 현장의 반응은 볼크의 발언으로 그에게 기울었다.
이 분위기를 뒤집을 줄 알아야 진정한 격투기 스타다.
두호에게 마이크를 건네자 두호가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는 레이첼을 바라본다.
“미스 레이첼. 다음 경기 미팅은 다음주에 하시죠.”
이윽고 씨익 미소를 지으며 돌아 걸어가는 두호.
데이비드와 탁현은 함박웃음을 지었고 파이트 매니아 선수들 역시 큰 소리로 웃었다.
관객들은 광기에 휩싸인다.
자신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 볼크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의미.
“깡패 새끼 꼭꼭 씹어먹고 성장해라 몬스터!”
“보여줘 몬스터!”
앤드류는 미소를 지었고 레이첼은 밝은 미소를 지었다.
흥행은 성공할 것이다.
“다음 2 경기 계체량을....”
결전의 날.
- 대한민국 시청자 여러분 XFC로 만나게 되어 대단히 반갑습니다. 한국인 최초! 아시아인 최초! XFC 미들급의 대권을 향해 달려가는 백두호 선수입니다.
케이지 안에서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
심판은 불꽃 튀기는 두 사람의 사이에서 차분하게 룰을 설명하고 있었다.
루스리스갱과 코리안 몬스터.
두 사람의 몸은 전날과 달리 평소의 몸 상태로 돌아왔다.
하룻 동안의 회복 기간으로 평소의 체중을 완전히 복구하였고 컨디션 역시 최고인 두 사람이었다.
- 풀 컨디션으로 맞붙는 두 사람의 경기. 저 역시 수 많은 경기를 중계해왔지만 이렇게 역사의 시작점을 알리는 현장에 있으니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격앙된 목소리로 중계를 하는 캐스터.
그도 그럴것이 얼마만에 XFC에서 중계하는 한국인 선수인가.
암흑기라 불러도 좋을 만큼 그간 한국인 선수들의 기록은 좋지 못했다.
그만큼 세계무대의 벽은 높고도 견고했다.
하지만 오늘 백두호가 다시 황금기를 보여주기 바라는 마음에 캐스터 역시 흥분한 것이다.
심판이 룰 설명을 마치고 각자의 코너로 돌아가기를 명했다.
관중들의 함성은 머리를 어지럽혀 놓을 만큼 시끄러웠지만 케이지 안의 긴장감을 깨지는 못했다.
심판이 손을 내린다.
“파이트!”
서로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두 사람.
글러브 터치를 한 두 선수는 차분하게 서로를 탐색했다.
움찔거리는 발과 끈임없이 움직이는 앞 손은 금방이라도 상대의 머리를 땅으로 떨어트릴 듯 위협적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지는 중 두호가 선공을 취한다.
묻지마 태클.
최정상급 그래플러에게 이런 막무가내 태클을 하다니.
사람들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
볼크가 두호를 비웃으며 가볍게 방어할 준비를 했다.
그 순간이었다.
두호의 몸이 마치 스프링처럼 솟아오르며 주먹을 뻗는다.
텅빈 볼크의 안면에 그림같이 꽂히는 투 훅 투.
퍽!
큰 충격에 바닥으로 쓰러지는 볼크.
바닥에 쓰러진 볼크가 당황한 눈빛으로 두호를 올려다본다.
두호가 어깨를 으쓱한다.
“끝은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