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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49화 (149/204)

제 149화 : 절대 두 팔은 떨어트리지 마라

그의 손에 잡힌 것은 종이 쇼핑백.

바로크가 피식 웃는다.

“거추장스럽긴.”

엄연히 이곳은 전쟁터다.

이런 허례허식은 전혀 필요가 없다.

곧바로 허리에 매는 탄띠와 방탄조끼를 꺼낸다.

방탄조끼와 탄띠 착용을 마친 바로크가 다시 종이 백 안으로 손을 집어넣으니 권총이 하나 잡혔다.

COLT PPK 380.

일반 콜트 권총보다 단축형으로 제작된 바로크의 애병이다.

그가 빈 권총을 뒤로 당겨 약실을 확인한다.

오랜만에 뛰는 현장.

그러나 그의 표정은 긴장이 아니었다.

흥분.

정장과 넥타이로 인하여 잊고 지내던 피비린내.

그 향기를 다시 맡을 생각을 하니 숨겨놓았던 그의 야수성이 끌어오르는 것이다.

“이 기회에 보여줘야지. 우리랑 엇박자를 타면 어떻게 되는지.”

밴은 텅빈 필리핀의 국도를 빠르게 달렸다.

***

데이비드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옆에 서 있던 탁현을 툭 치며 다가간다.

“분명히 스트라이커 아닙니까?”

“맞죠.”

“그런데 저런 수준 높은 디펜스가...”

탁현은 대답없이 그저 웃으며 케이지 안을 바라보았다.

두호와 마주보고 있는 페드로의 표정 또한 데이비드와 마찬가지였다.

당황한 표정으로 거친 숨을 내쉬는 페드로.

‘뭐지?’

단 한 번도 태클을 성공한 적이 없다.

지금 두호와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매스 스파링(강도가 약한 스파링).

불과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두호에게 강도 높은 스파링은 오히려 컨디션 저하를 불러 일으키기에 협의를 통해 약한 강도로 진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강도가 약할 뿐 수 싸움과 속도는 백 퍼센트에 가깝다.

일반 레슬링처럼 하나의 자세로만 가는 것이 아닌 타격을 섞는 MMA 스파링.

그렇기에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하더라도 경험의 차이에 의해 방비가 더욱 쉽지 않다.

하지만 두호는 달랐다.

첫 태클은 기습적인 원투 이후 두호의 가드를 끌어올리며 들어가는 하단 태클이었다.

실제 경기를 방불케 하는 엄청난 속도.

그러나 두호는 그림같은 스프롤로 페드로의 무게중심을 제압하고 다시 일으켜 세웠다.

두 번째 태클은 인파이팅 상황중 두호의 니킥을 잡아채는 싱글렉 태클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두호는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게 몸을 틀어 다리를 빼냈고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타격가들에게서 보기 힘든 탄탄한 그래플링 베이스.

‘대체 어떤 훈련을 해온거지?’

탁현은 한국에서의 훈련이 성과가 보이는 듯 미소를 지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들의 태클도 무리 없이 방어해내는 노력과 경험치. 하지만...’

탁현이 팔짱을 끼며 두호의 복부를 쳐다보았다.

‘결국은 상대가 무게중심을 흔드는 힘까지 버텨내는 저 말도 안되는 코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

코어.

인체를 지탱하는 핵심 근육.

그 근육의 기능이 뛰어날수록 운동 수행능력은 뛰어나며 몸을 사용함에 있어 자율도가 올라간다.

모든 운동선수들이 코어를 훈련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두호는 특히 다르다.

‘저 정도의 코어힘은 진천에서도 찾기 힘드니까.’

탁현은 저도 모르게 웃음지으며 두호를 바라봤다.

어느새 페드로가 두호를 힘으로 밀어붙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두호가 케이지의 등을 기댄 체 단단하게 방어하여 딱히 해볼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페드로의 눈빛이 조금 진지해진다.

그래플링은 자신의 영역.

여기서 보여주지 못하면 그것 자체로 굴욕이다.

페드로가 어김없이 하단태클을 선택했다.

하지만 여지껏 보여주었던 완성도보다 훨씬 미숙한 동작이었다.

팔이 좌우로 벌어져 두호가 방어하기 쉬운 자세.

두호가 곧바로 그의 겨드랑이로 팔을 집어넣자 페드로가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럭키!’

이윽고 한 팔을 순식간에 빼내 두호의 어깨와 목 사이로 팔을 올려놓는다.

두호의 상체를 힘껏 누르고 하체는 반대 방향을 당긴다.

어깨걸어치기의 응용동작이었다.

완벽한 기술에 두호의 중심이 결국 무너지며 바닥으로 향한다.

하지만 두호의 몸이 팽이 돌듯 돌아버린다.

마치 바람에 날아가는 꽃가루처럼 가벼워 아무런 저항이 없다.

너무나 빠르게 넘어지는 그를 보며 페드로가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설마...’

두호의 어깨가 땅에 닿는다.

그러나 그의 양팔과 다리는 페드로의 다리로 향한다.

마치 거대한 구렁이가 사냥감을 덮치듯 순식간에 다리를 휘감는다.

곧 주짓수의 엑스가드의 모습으로 변했고 두호의 몸이 한 바퀴를 더 돌아간다.

페드로의 한쪽 다리가 두호를 향해 빨려들어가며 그 역시 넘어지기 시작한다.

이윽고 두호는 움직이는 힘의 방향으로 온전히 몸을 맡긴다.

마치 거친 파도를 여유롭게 타는 서퍼처럼.

페드로가 넘어지며 발생한 힘을 있는 힘껏 밀어내는 두호.

순식간에 페드로가 넘어지고 두호가 일어서 있는 그림이 연출되었다.

그 모습에 데이비드는 넋이 나간 듯 입이 벌어졌고 체육관은 광란의 현장으로 변한다.

“미쳤다! 코리안 몬스터!”

“코리안 그레이시(브라질리안 주짓수의 창시자)!”

탁현 역시 그 모습에 감탄을 숨기지 못했다.

두호가 스탠딩으로 돌아간 모습을 보며 페드로가 의지를 상실한 듯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돼...”

두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일어나라는 듯 손짓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라운드가 끝나는 종소리가 울린다.

-빼애앵!

경기가 끝나자 두호가 손을 내리고 넘어져있는 페드로에게 다가간다.

“고생하셨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손을 내밀자 페드로가 헛웃음을 짓는다.

많이 배웠다니.

이런 움직임을 보여주는 사람이 하는 말은 기만일 뿐이다.

페드로가 두호를 말없이 올려다본다.

맑은 눈으로 땀을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두호.

그 모습에 조금이지만 남아있던 굴욕감과 패배감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두호의 눈빛에서 보이는 순수한 존중.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신은 프로의 자격이 없다.

페드로가 미소를 지으며 두호가 내민 손을 잡는다.

“최고의 움직임이었습니다. 저야말로 많이 배웠습니다.”

두호가 힘을 주어 그를 일으켜 세웠고 두 사람은 가볍게 포옹했다.

케이지 밖에서 그들의 훈련을 지켜보던 선수들이 박수를 치며 휘파람을 분다.

“최고다! 코리안 몬스터!”

“어이 페드로! 가서 푸쉬업이나 더 해야겠는걸?”

동료들의 농담에 페드로가 미소를 지으며 케이지를 나온다.

자칫 기분 나쁠 만한 농담이었지만 페드로의 표정은 오히려 즐거워 보였다.

그들의 관계가 얼마나 돈독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데이비드가 마치 이탈리안처럼 양 손을 입 앞에 모아 흔든다.

“와우. 정말 괴물 그 자체의 모습이었습니다.”

두호가 그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짓는다.

예수와 준모가 그에게 다가가 수건과 물을 건네준다.

데이비드가 이번 경기의 소감을 말하는 동안 탁현이 어디론가 걸어간다.

페드로에게 다가간 탁현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본인 훈련만으로도 바쁘실텐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군다나 기 살려주신다고 이렇게 배려해주시다뇨.”

페드로가 질색하며 손사레를 친다.

“배려라뇨. 충분히 제가 질 만한 실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리고...”

페드로가 고개를 살짝 뒤로 돌려 데이비드의 조언을 듣고 있는 두호를 바라본다.

“목표가 눈에 보인다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죠.”

패드로의 의연한 모습에 탁현은 감탄했다.

‘진짜. 이곳엔 진짜들만이 모여있구나.’

상대를 인정함과 동시에 목표로 삼는 투쟁심.

아마 이곳 파이트매니아의 진정한 저력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탁현 역시 두호를 바라본다.

‘이런 감정을 만들어낸 저 사람도 대단하고.’

데이비드가 두호를 보며 싱긋 미소 짓는다.

“내일 하루는 푹 쉬시고. 목요일부터 감량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러자 예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데이비드를 바라본다.

“당장 금요일이 계체량인데 괜찮을까요?”

이번 경기의 계약 체중은 79KG 이다.

하지만 지금 두호의 몸무게는 88KG.

하루 사이에 9KG의 감량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그러자 데이비드는 손가락을 저으며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은 흘렀고 기술은 끝없이 발전하죠. 저희가 다년간의 터득한 노하우로 차질 없이 진행할수 있습니다. 9KG 쯤이야 문제 없습니다!”

두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잘 부탁드립니다.”

멀리 체육관 전광판에 나오는 시간을 바라보는 두호였다.

‘그럼 내일. 잠시 얼굴 좀 보고 와야겠군.’

***

-탕탕!

총소리가 들려오고 한 사내가 나무 바닥을 기어가며 힘겨운 신음을 내뱉는다.

‘젠장.’

해머필드의 메이슨이었다.

도혁에게서 겨우 도망쳐 복수를 위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지만 실패했다.

그의 상징과도 같은 비니는 이미 벗겨졌고 얼굴은 피를 뒤집어썼다.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린 채 살기 위해 바닥을 기어가는 그.

허벅지에 총을 맞았는지 붉은 피가 땅으로 흘러내려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콰직=--

그 순간 한 사내가 하얀 운동화로 그의 허벅지를 짓밟는다.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허벅지로 팔을 뻗는 메이슨.

그러나 매몰게도 사내는 더 세게 짓이긴다.

점점 숨이 거칠어지며 입에서 거품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메이슨.

곧 쇼크로 죽을 것 같은 그의 표정을 보며 사내가 선심 쓰듯 퍽 차낸다.

벌렁 드러누운 메이슨이 자신의 허벅지를 끌어안고 겨우 숨을 내뱉는다.

허벅지를 밟은 사내가 메이슨을 향해 허리를 숙인다.

그의 정체는 바로크.

필리핀에 도착한지 단 3시간만에 해머필드를 정리해낸 것이다.

바로크가 들고 있던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긁적인다.

“아파? 그러게 누가 우리 뒤통수를 치래.”

메이슨이 독기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바로크를 노려본다.

바로크가 한쪽 무릎을 세운 채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는다.

메이슨이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친다.

“네놈들이 먼저 뒤통수를 쳐놓고 이제와서 발뺌을 하다니!”

바로크가 그의 얼굴을 보며 집중하라는 듯 손가락을 튕긴다.

“어이 수염. 머리가 나쁘면 말이라도 잘 들어야지. 둘 다 못하니까 이런 꼴이 되는 거잖아.”

바로크가 뒤를 향해 손을 뻗자 머레이가 품 속에서 사진 몇 장을 건넨다.

사진은 곧장 메이슨의 얼굴에 던져진다.

퍽!

그의 얼굴에 맞고 떨어진 사진들이 바닥에 흩어진다.

메이슨이 바닥에 떨어진 사진을 유심히 바라본다.

맹혁과 상철이 찍힌 사진이었다.

“네놈들이랑 우리랑 싸우면. 제일 이득을 보는 새끼들이 누구겠어.”

망치를 맞은 듯 메이슨의 표정이 허망해진다.

부하들의 죽음과 무기 거래의 실패로 인해 이성을 잃었다.

봐야할 것을 보지 못했다.

제일 먼저 이해관계를 살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내 자존심 때문에 부하들이 다 죽은 거구나.’

바로크가 그의 표정을 읽은 듯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다.

모든 것을 잃고 망연자실한 메이슨의 표정을 보며 냉소적인 미소를 짓는다.

“이 정도로 멍청하다니. 우리랑 같이 일하지 않은 게 다행일지도.”

그리고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탕

축 늘어지는 메이슨.

그리고는 머레이를 향해 손을 뻗는다.

머레이는 준비됐다는 듯 곧바로 손수건을 꺼낸다.

손수건으로 곧바로 총기를 닦는 바로크.

그의 오래된 습관중 하나이다.

머레이는 감탄하는듯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펴본다.

해머필드의 시체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자신들이 일주일을 넘게 매달려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바로크가 단 세 시간만에 정리한 것이다.

거물의 존재란 이런 것이다.

어떠한 문제든 해결해내는 행동력과 머리.

바로크가 총기를 다 닦아내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메이슨이 봤던 사진을 집어들었다.

맹혁과 상철을 번갈아보며 미소를 짓는 바로크.

“뱀이 먼저일까. 쥐가 먼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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