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48화 (148/204)

제 148화 : 절대 두 팔은 떨어트리지 마라

두호의 이력을 듣자 그들이 환한 미소를 짓는다.

몇몇은 두호의 얼굴을 이미 아는 듯 그를 보며 반갑게 손을 흔든다.

“이번 XFC 할로윈 파이트나잇의 경기를 위하여 찾아주셨으니.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한다 알았나!”

선수들은 미소를 지으며 크게 소리친다.

“반갑습니다!!!”

엄청난 박력의 인사.

두호 일행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같이 고개를 숙였다.

데이비드가 두호에게 한마디 하라는 듯 손짓한다.

두호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선다.

“반갑습니다. 한국에서 온 백두호라고 합니다.”

선수들은 휘파람을 불며 박수를 쳤고 모두 뜨겁게 반겨주었다.

“저명하신 데이비드 코치님과의 협업. 그리고 이곳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끝없이 해오신 여러분들과의 훈련이 너무나 기대됩니다.”

그리고 두호는 선수 한명 한명과 눈을 마주쳤다.

순수한 선의와 열정.

그 눈을 본 것만으로도 가슴 한 켠이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깊게 고개를 숙이자 선수들은 다시 한 번 박수를 쳐주었다.

데이비드 역시 두호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곧바로 선수들의 면면을 확인하며 누군가를 호명했다.

“페드로!”

“네 여기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손을 번쩍 든다.

앳되어 보이는 백인 청년.

두호와도 얼마 차이 없어 보이는 나이인 듯 했지만 그의 몸은 이미 프로 파이터가 어울리는 체격의 소유자였다.

굵은 몸통과 단단한 하체가 특히 대단해 보였다.

그가 당당한 걸음걸이로 걸어나와 뒷짐을 진 채 데이비드와 두호를 바라본다.

“이 친구가 미스터 탁께서 부탁한 스파링 파트너입니다.”

탁현이 걸어와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탁현입니다.”

“페드로 브얀입니다.”

두호가 궁금한 듯 탁현을 바라보자 탁현이 정식으로 그를 소개했다.

“XFC 웰터급에서 활동하는 페드로 브얀입니다. 유럽 대륙 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딴 엘리트 레슬러 출신이지요.”

두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페드로에게 악수를 청했다.

MMA선수 가운데 이만한 커리어를 가진 레슬링 선수는 몇 없다.

파이트매니아 소속 선수들끼리만 훈련해도 모두가 이해할 테지만 두호를 위해 아낌없이 내놓은 것이다.

“백두호입니다. 부족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영광입니다. 코리안 몬스터.”

두 사람은 싱긋 웃었고 어딘가 통하는 게 있는 듯 긍정적인 기운이 교환되었다.

데이비드가 박수를 치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훈련은 30분 뒤에 다시 시작한다. 페드로와 두호씨는 스파링 하기전 스트레칭 철저히 하시고 케이지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이내 그가 씨익 미소 지으며 두호를 바라본다.

“루스리스갱을 루스리스 소녀로 만들어버릴 준비 됐습니까 몬스터?”

두호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데이비드는 밝은 표정으로 선수를 해산시켰고 두호 역시 스파링을 위해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

맹혁과 상철이 전망 좋은 카페에 앉아있었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위치한 카페.

원목나무 오두막과 야자수로 장식된 풍경속에서 마시는 커피는 일품이다.

계획도 차질 없이 진행되는지 두 사람의 얼굴은 날씨만큼이나 밝았다.

“엄청 시구만.”

주문한 커피 맛을 보는 상철이 인상을 확 찌푸린다.

필리핀처럼 습하고 더운 나라일수록 커피의 산미가 많아지는 특색이 있다.

맹혁이 살짝 미소 지으며 자신 역시 커피를 한 입 마셨다.

그러나 상철과 다르게 그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저는 산미 없는 커피맛이 기억도 안납니다.”

상철이 맹혁을 향해 넌지시 묻는다.

“자네가 올해 나이가 몇이지?”

“마흔하나입니다.”

상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옐로우 맘바의 여러 사람들중 이제 자신이 기억하는 사람이 몇 남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로 받아들이면 될테지만 왠지 모르게 섭섭하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아직까지 현장에서 활동하는 자신의 삶까지 돌아보게 된 것이다.

“근데. 결혼은 안하나?”

그 말을 들은 맹혁이 큰 목소리로 웃었다.

상철도 자신이 한 말이 재밌었는지 소리내어 웃었다.

고개를 흔들면서 미소를 지은 맹혁이 휴지로 입을 닦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소리를 너무 오랜만에 들어서.”

“왜. 더 늦기 전에 해야지.”

“결혼정보회사에서 의뢰하면 저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까요? 무기 밀매범? 아니면 전쟁정보상?”

어깨를 으쓱하며 시선을 돌리는 맹혁.

어딜가서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직업임을 자신 역시 잘 알고 있다.

“돈 잘 벌면 장땡이지. 남편 노릇 별거 없다.”

상철이 가볍게 농담을 던지며 맹혁의 표정을 살핀다.

웃고는 있지만 어딘가 씁슬해 보였다.

상철이 그런 맹혁의 맘을 아는지 한숨을 내쉬며 필리핀의 바다를 바라본다.

용병이 결혼을 꿈꾸는 것은 배부른 소리다.

자신을 포함해 운 좋은 몇 명이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지 대체로 혼자다.

워낙 용병 일이 험하기도 하지만 은퇴한다 해도 평범한 직장 가지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경력, 학력, 출신.

그 어느 것도 평범한 사회인으로 섞이기엔 부적합하다.

결국은 용병일과 유사한 일을 하게 되고 언제 죽어도 이상할지 모르는 위험한 일이 전부이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채호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자신들 역시 저 파도처럼 어딘가로 흘러갈 뿐이다.

고독을 즐기는 중 맹혁의 부하 하나가 다급한 표정으로 가게로 들어온다.

맹혁이 고개를 돌려 손을 흔든다.

“어. 무슨 일이야.”

“큰일 났습니다.”

“뭔데 그래.”

부하가 가까이 다가가 조용하게 무언가를 말한다.

그러자 맹혁의 표정 역시 삽시간에 굳었다.

상철은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게 아니면 예상밖의 일이 벌어지거나.

그런 상철을 힐끔 바라본 맹혁이 부하의 어깨를 툭 치며 고갯짓했다.

“알았어. 곧 들어갈게. 모두 모이라고 해라.”

부하가 두 사람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떠난다.

“선배님. 예상치 못한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뭔데?”

“바로크 코와르키가 지금 필리핀으로 왔답니다.”

“뭐!?”

“마닐라 공항에 도착한 것을 저희 직원중 하나가 발견했습니다.”

상철의 표정 역시 차갑게 가라앉는다.

아프리카해를 지배하는 해적.

돈이 되는 일은 뭐든지 한다 이 말은 용병들의 기본적인 장사 철학이다.

하지만 이들은 다르다.

어떤 일이든 돈이 되게 한다.

의뢰인을 짜내는 것은 물론 국가간의 범죄도 서슴치 않는다.

지금이야 공식적인 사업으로 위장하려 잠잠하지만 그 뒤에서는 무기밀매를 주도하고 있지 않았는가.

민간선 나포는 기본이고 군수산업체의 무기 이송선을 공격하는 일도 허다하다.

그들을 이끄는 포그스컬스의 대장 바로크.

래진과 다른 의미로 이 바닥에서 전설인 사내이다.

“큰일이군.”

듣기론 폭력성밖에 가지지 못한 포그스컬스를 옐로우 맘바와 견줄 정도로 성장시킨 주역이라고 한다.

그런 그가 직접 필리핀에 왔다면 알파팀도 긴장을 해야한다.

지금까지는 해머필드를 이용하여 대신 포그스컬스를 압박하고 있었지만 지금부터 이곳의 흐름은 바뀔 것이다.

맹혁이 조심스럽게 상철에게 물어본다.

“지원 요청은 어려울까요?”

어찌보면 알파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말이다.

하지만 자존심과는 별개로 다른 팀이 지원을 요청한다면 위험한 요소를 최대한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철이 말없이 필리핀의 바다를 바라본다.

“일단은 우리끼리 하지. 필요에 따라 래진 형님과 의논을 해보겠네.”

“네 알겠습니다.”

그들의 상황과 달리 파도는 여전히 잔잔하고 조용했다.

언제나 폭풍이 오기전 바다는 얌전한 척 뱃사람을 속인다.

모두를 삼켜버릴 큰 파도가 오고서야 뱃사람은 그제서야 바다의 위험함을 깨닫게 된다.

“필리핀에 피바람이 불겠구만.”

상철이 커피를 한입에 비운다.

마닐라 공항의 입국장으로 들어서는 바로크.

어쩌면 무모할 만큼 당당한 입국이다.

바로크 정도의 거물이 등장한다면 그 나라의 뒷골목에 순식간에 소문이 퍼진다.

그렇게 된다면 적대세력은 눈에 불을 키고 달려들 것.

하지만 그는 당당한 얼굴로 마닐라 공항을 나선다.

사자가 하이에나 몇 마리 들러붙는다고 긴장을 할까.

“가만보면 동남아가 아프리카보다 더 더운것 같다니까.”

모르는 사람이 보면 관광객으로 보일 만큼 평범한 옷차림의 바로크였다.

청바지에 흰 티셔츠.

하얀 운동화 차림에 머리는 단정하게 올려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그가 필리핀 마닐라 관광 책자를 살펴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음. 필리핀에서 왔으니 룬삐앙이라도 하나 먹어야 하는데...”

그의 시선이 유리문 너머 공항 밖으로 향한다.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는 바로크.

“뭐 이렇게 바글바글 모여있어.”

공항 앞에는 포그스컬스의 용병 수십 명이 서 있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사내들에게 한 마디 쏘아붙인다.

“왜 아주 광고를 하지.”

한 사내가 그의 캐리어를 집어들며 살짝 고개 숙인다.

필리핀에 온 사내들은 포그스컬스의 OG(original gangster. 원년 멤버. 선배나 원로를 존경하는 의미로 부르는 속어).

그들을 이끄는 머레이가 그늘진 얼굴로 그의 옆에 선다.

“죄송합니다.”

자신들을 믿어 이곳으로 보낸 것이지만 해머필드의 방해로 인하여 무기 회수에 난항을 겪고 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자신들의 사장인 바로크가 직접 왔으니 걱정스러운 것이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현재 상황은.”

최신화된 정보를 머레이에게 직접 전해 들으며 말없이 걸음을 옮기는 바로크.

공항 바로 앞 도로에 주차된 3대의 밴이 멀리서 보였다.

복잡한 공항 앞을 막고 있어 누군가 한마디 쏘아붙일 수도 있지만 그 누구도 그들에게 불만을 제기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품 사이로 살짝 보이는 총구.

그것을 보고 나니 마닐라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불만을 속으로 삭힐 수밖에 없었다.

가운데 정차된 밴의 문이 열리며 바로크가 탑승하려 한다.

“어디로 모실까요.”

잠시 멈춰선 바로크가 눈을 좁히며 머레이를 바라본다.

“바로 해머필드쪽으로 가서 정리한다. 그 다음엔...”

잠시 마닐라 하늘을 올려다보는 바로크.

필리핀의 우기는 변덕이 심하다.

시간 단위로 바뀌는 것이 바로 필리핀의 우기.

인간의 마음과 이곳 날씨는 꽤 많은 것이 닮았다.

그가 신중하게 고민하는 듯 행동이 멈췄다.

이내 천천히 머레이를 바라보던 바로크가 나지막히 말한다.

“오퍼상한테 전해. 뒷배 선장 얼굴 좀 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이윽고 바로크가 차에 완전히 탑승하자 카니발의 문이 닫힌다.

밖에 서있던 사내들도 모두 각자의 차로 달려갔고 이내 차가 출발했다.

앞자리 조수석에 탑승한 사내가 바로크를 향해 몸을 돌린다.

“장비는 뒷자리에 준비해놨습니다.”

바로크가 곧장 뒤로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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