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7화 : 절대 두 팔은 떨어트리지 마라
두호가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않고 뒤를 돌아보았다.
알도프는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는 사람이랑 닮은 것 같아서. 아닌가?”
누군가 본다면 정말 아는 지인을 만난 듯한 모습이었다.
두호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는다.
이윽고 싱긋 웃으며 알도프에게 말했다.
“저는 그쪽을 티비에서 본 게 전부입니다. 다른 사람이랑 헷갈리시나 보네요.”
알도프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모든 행동에 의도가 엿보인다.
조금씩 두호를 자극하며 간을 보는 것이다.
손을 길게 뻗어 두호의 어깨를 툭 치는 알도프.
마치 직장 상사가 부하에게 말하듯 인자한 미소를 짓는다.
“아님 됐고.”
그가 여유롭게 두호가 나왔던 레이첼의 방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 순간 두호가 그의 등에 대고 나지막히 한마디를 뱉었다.
“내가 신경쓰이나 본데.”
두호의 말 한마디에 알도프의 걸음이 탁 멈췄다.
그의 발언에 예수의 표정 역시 덩달아 기겁을 한 눈치였다.
아는 듯 모르는 듯 알 수가 없는 대화를 하지만 분위기는 숫제 원수를 보는 듯 하다.
“두호씨...”
혹시나 불상사가 생길까 만류하려는 그녀의 말에도 두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혹시나. 그 혹시나 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 대체로 비슷해.”
여전히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두호의 말을 듣고만 있는 알도프.
“상대를 떠본다거나. 여유로운 척 상대를 눌러보려 한다던가. 괜히 한번 시비를 걸어본다던가.”
아무 말 없이 일하고 있던 XFC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난다.
“확실한 감이 오질 않으니 어떤 식으로든 확인하려 하는 거야.”
두호의 말을 들으며 경악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걸 보고 겁먹었다고 말하는 거고.”
“참나.”
어이가 없다는 듯 머리를 쓸어 넘기며 헛웃음을 짓는 알도프.
순간 그의 표정이 돌변한다.
절대 스포츠 선수의 투쟁심 따위가 아닌 그저 살심(殺心).
그의 눈이 과거 용병시절의 보여주던 광기와 독기가 그대로 담겨져 나온다.
이윽고 몸을 돌려 두호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
얼굴을 맞대채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
그 순간 XFC의 직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고 일촉즉발의 상황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한다.
두호가 싱긋 웃는다.
“아닌가?”
알도프 역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아시아인 중에 유일하게 비슷한 눈깔로 날 쳐다봤던 한 명이 있었어.”
알도프가 스윽 고개를 내밀어 두호와 더욱 가깝게 섰다.
이제는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의 거리를 둔 두 사람.
“그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
잠시 두호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알도프가 주위를 슬쩍 살피더니 두호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죽었어. 총을 맞으니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 하더라.”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슬쩍 빼는 알도프.
이번엔 두호의 표정이 굳었다.
알도프는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두호에게 말했다.
“네 표정이 궁금하네. 과연 너는 그 사람과 다를까? 아니면...”
두 사람은 이제 숨기지 않고 서로를 죽일 듯 바라본다.
이곳이 XFC가 아니라 전쟁터였다면 당장에 관자놀이에 총알을 박아넣겠다는 듯.
“똑같이 애걸복걸할까.”
두호보다 조금 더 큰 알도프가 그를 싸늘하게 내려다본다.
그러나 아래에서 그를 올려다보는 두호의 표정은 차가웠다.
금세라도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고 싶은 것을 있는 힘을 다해 억누른다.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 소리친다.
“두 분 뭐하십니까?”
레이첼이었다.
자신의 문 앞에서 한쪽 팔을 기댄 체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호. 벌써부터 이렇게 진행이 되고 있어?’
알도프가 두호가 입고 있는 티셔츠의 어깨 부분을 툭툭 털어주었다.
이윽고 다시 처음 같은 미소를 지으며 한쪽 눈을 찡그린다.
“올라와야 할 계단이 많을 것 같던데. 잘 헤쳐 올라와봐.”
이내 손을 흔들며 레이첼을 향해 걸어가는 그였다.
그러나 돌아선 그의 표정은 싸늘하다 못해 그 어떠한 온기도 없었다.
두호가 레이첼을 향해 걸어가는 알도프를 바라보며 씨익 미소 짓는다.
“가시죠. 예수씨.”
“아...네!”
무엇인가 엄청난 현장을 본 듯 했지만 그 어떤 것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예수 역시 두호가 메디컬 센터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자 그저 말없이 두호의 뒤를 따라 걸었다.
레이첼의 앞을 스쳐 지나가는 알도프.
그녀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알도프에게 한 마디를 한다.
“그래도 신인인데. 너무 겁주는 거 아니에요?”
“당신 눈엔 저 친구가 그냥 신인으로 보이나?”
알도프가 무심하게 한 마디를 뱉고 레이첼의 사무실 안으로 훽 들어가 버린다.
레이첼은 그를 슬쩍 일별하더니 멀리 걸어가는 두호를 눈을 좁혀 바라본다.
‘저 어린친구한테 그런 게 느껴진다고?’
머리가 비상한 것은 자신 역시 알고 있다.
격투기 선수가 업계 최고의 사장을 만났는데 저런 태도를 유지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더군다나 스무 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이.
하지만 알도프가 말한 것은 그런 점이 아니다.
자신 역시 아직 알 수 없지만 두호에게서 다른 무언가를 느낀 것.
레이첼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기초검사를 마친 일행은 초저녁이 되어야 파이트매니아 체육관에 도착했다.
LA 특유의 저녁 노을이 서울과 다른 낭만이 느껴진다.
데이비드가 장난스러운 표현으로 일행들에게 경례를 한다.
“저희 체육관에 첫 외부 손님이십니다.”
탁현이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숙인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컨텐더(CONTENDER. 격투기에선 챔피언 타이틀에 도전하는 선수)와의 협업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죠. 저희가 더욱 감사합니다.”
체육관의 외부는 극히 평범했다.
마치 한국 고등학교에서 흔히 보이는 체육강당과 유사하다.
입구마저도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유리문이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행들.
불쑥 데이비드가 두호를 돌아본다.
“공간이 주는 힘 아세요?”
두호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공간이 주는 힘이요?”
데이비드가 미소를 지으며 가방을 어깨에 들춰 멘다.
“단순히 디자인은 기분을 내게 해주지만 그 안에 있는 가구와 사람들은 진짜 힘이 되어주죠.”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두호.
사실 그는 데이비드가 한 말을 어렴풋이 이해할 뿐 이었다.
“아마 두호씨는 운동선수로서 팀원이 없었을 겁니다.”
두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코리안 몬스터팀이지 사실상 백두호라는 인물 하나로 승부를 보는 원맨팀이다.
“이 스포츠는 팀플레이로 이루어지지 않지만 팀원의 중요성은 너무나도 극명하죠.”
알 듯 말 듯 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데이비드였다.
그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체육관 문 앞에 섰다.
방음처리가 되었는지 문은 두꺼웠고 사람 키의 두 배는 되어보이는 크기였다.
“소개합니다. 파이트매니아입니다.”
쿠구궁!
문이 묵직하게 뒤로 열리며 내부의 풍경이 들어왔다.
퍼엉!
파악!
“거기서 백포지션 놓지 말고! 더 단단하게 잡아!”
“한 세트 더! 힘 빼지 말고 더 몰아칠거야!”
거친 목소리가 서로를 격려하며 훈련의 매진중인 선수들이 보였다.
두호는 처음으로 어떠한 공간에 압도되는 감정을 느꼈다.
PRIDE-K 시험장에서 느낀 뜨거움이 경쟁이었다면 여기는 또 달랐다.
순수한 열정.
협동이 주는 웅장한 장관.
높은 층고와 창고처럼 물건이 쌓인 외국 대형마트처럼 넓은 공간에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훈련이 진행되었다.
공업용 에어컨이 6대가 넘게 비치되어 있지만 그들이 흘리는 땀과 뜨거운 숨으로 인해 찬 바람은 의미를 잃었다.
데이비드가 앞장서 걸으며 두호에게 소개한다.
“골드 스피릿은 어느덧 최고의 선수들이 모두 모이는 곳으로 성장했지만 잃은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데이비드를 올려본다.
“뭔가요?”
“매니아.”
“매니아요?”
예상과는 다른 대답의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탁현 역시 골드스프릿의 속 사정을 모르니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훈련중인 사내들에게 시선이 고정된 두호만이 그가 말하는 바를 이해했다.
한 사내가 강력한 펀치를 맞고 바닥에 쓰러진다.
다리가 풀려 일어나지 못할 만큼 강한 공격이었지만 바닥으로 쓰러진 그가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그만! 다운이야.”
“할 수 있습니다!”
“이 녀석이...”
“할 수 있다니까요!”
다시 일어서 헤드기어를 고쳐 쓴 그가 풀린 다리로 힘겹게 파트너에게 다가가 자세를 잡는다.
그들을 보며 두호가 씁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내부 경쟁이 심해졌고. 그 경쟁에서 밀린 이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거군.’
골드 스피릿은 명실상부 세계 최정상의 MMA 훈련소이다.
한때 8체급이 존재하는 XFC에서 4체급의 챔피언을 배출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명가중의 명가.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만의 확고한 성을 구축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성이 쌓이고 그 안에서 높은 귀족들이 살게 된다면 평민들은 밀려나게 되어있다.
그들보다 빛나진 않지만 더욱 단단한 재능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
챔피언들만 신경쓰는 골드 스피릿 코치진들에게서 밀려나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데이비드가 씁슬한 미소를 짓는다.
“매니아의 진짜 의미는 무언가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가 훈련장에서 뒹굴고 땀을 흘리는 수십의 사람들을 가르킨다.
그 중에선 심심치 않게 여성 파이터가 여럿 보인다.
“자신의 현실. 가난. 불공정한 경쟁과 파벌 싸움.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오직 자신의 꿈을 향해 달리는 이 사람들.”
데이비드가 그들을 보며 쓴웃음을 거둔다.
그리고 이내 따듯하며 뿌듯한 표정으로 바뀐다.
“이들이 진짜 매니아들이기에 난 이 체육관의 이름을 파이트매니아로 지은 겁니다.”
예수는 데이비드의 그런 모습을 보며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데이비드 정도의 커리어라면 당장 아무 나라의 어느 투기종목을 간다 할지라도 감독직을 맡을수 있다.
하지만 그는 모두가 탐낼 잘 닦인 비단길을 포기한 것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처럼 꿈을 위해 비포장도로에서 달리는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두호는 그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황성태.
양성학.
데이비드.
그들은 모두 진짜 스승이자 인생의 선배였다.
데이비드가 짐을 내려놓고 훈련 타이머가 놓인 책상에 비치된 종을 흔든다.
짤랑짤랑!
그러자 훈련의 열중이던 선수들은 그제서야 데이비드와 두호의 일행들을 확인했다.
“모두 집합!”
데이비드가 큰 목소리로 외치자 사내들이 훈련을 멈추고 모두 그에게 몰려든다.
그들이 모여 서 있자 몸에 난 열기로 주위에 약한 아지랑이가 보이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여기 계신 이분은. 전 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 복서이자 PRIDE-K 초대 챔피언. 현 킹 챔피언쉽에 미들급 챔피언이신 백두호 선수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