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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44화 (144/204)

144화 : 절대 두 팔은 떨어트리지 마라

맹혁이 잡지를 탁 하니 닫는다.

그러더니 슬쩍 미소를 지으며 로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쪽 다리를 꼬며 등을 완전히 기댄 맹혁.

들고 있던 잡지를 책상 위에 툭 던져놓고는 짐짓 모르는 척을 한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로만이 커피를 한 입 마시고는 휴지를 조그맣게 말아 입을 찍듯 닦는다.

맹혁은 그를 보며 신기하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행동이 행색이랑은 전혀 다르시네요.”

“윈스턴의 물건을 도둑질했고. 그리고 그 물건을 팔기까지 했으니 죽음이 제일 싼 값일세. 그러나...”

로만이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맹혁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원래대로 돌려놓기만 하면 목숨은 살려주지. 쥐새끼 짓도 계속할 수 있게 해줄 것이고.”

오퍼상을 낮춰 부를 때 쥐새끼로 부른다.

정보를 팔아 뒷골목으로 나르기 때문.

오퍼상에게는 가장 모욕적인 말이다.

맹혁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는다.

“쥐 새끼라...”

잠시 창문 밖을 바라보던 맹혁이 슬며시 미소 짓는다.

“그래도 자기 밥 해먹는 쥐가 낫죠. 자기 물건도 못 지키는 멍청한 똥개보다야.”

로만의 이마가 꿈틀한다.

뒤이어 그가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그러더니 책상 위에 무언가를 턱 하니 올려놓았다.

작은 손도끼 하나와 권총.

“어이 쥐새끼. 방금 선 넘었어.”

맹혁이 미소를 지으며 의자를 바짝 땡겨 앉았다.

“물건을 살려면 돈을 꺼내야지. 자꾸 명함만 주면 어쩌자는 겁니까.”

맹혁은 던져놓은 잡지를 펼쳐 종이 귀퉁이를 주욱 찢는다.

로만을 힐끔 보며 주머니에서 펜을 하나 꺼내 숫자 두 개를 적는다.

이윽고 종이를 밀어 로만에게 건넨다.

종이에 써진 숫자를 확인하며 실소를 하는 로만.

“10억? 이제야 분수를 알았나보군.”

한국 돈으로 10억이면 자신의 선에서도 지급해 줄 수 있었다.

무기를 곱게 돌려줄테니 수수료 정도만 달라는 뜻으로 파악한 로만이 여유를 되찾는다.

하지만 맹혁이 고개를 젓는다.

“수요가 확실한데 공급이 정말 적어. 그런걸 보고 우린 노다지라고 하죠.”

무표정한 얼굴로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맹혁을 보며 로만이 눈을 좁힌다.

맹혁이 잡지와 펜을 집어들고는 자신의 품안에 집어넣는다.

“10억 불.”

로만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10억불.

한국돈으로 1조 3000억.

윈스턴이 판매하던 무기값에 10배 정도.

“어디서도 무기를 구할 수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라도 살 사람들은 널렸어.”

맹혁은 마치 로만을 약올리듯 과장된 몸짓을 보였다.

그 모습에 화를 참지 못하고 권총을 겨누는 로만.

그러나 맹혁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물론 블랙러프 말고 무기를 사려는 사람에겐 원가보다도 싸게 판다.”

로만이 헛웃음을 지으며 권총을 장전하여 다시 겨누었다.

“안되겠다. 어디 하나 끊어야 주제를 알겠어.”

오히려 맹혁이 슬쩍 고갯짓을 한다.

“당신이나 정신 차려. 여기선 내 목보다 당신 목 노리는 사람이 훨씬 많아.”

맹혁이 말을 듣고는 로만이 표정이 굳는다.

무엇인가 계산이 선 듯 천천히 총구를 내리는 로만.

이윽고 가게 밖으로 시끄러운 오토바이 배기음이 들려온다.

창밖을 잠시 바라보던 로만의 표정이 순식간에 분노로 가득 찼다.

“이 개....”

황급히 권총을 겨눠 맹혁을 노리지만 맹혁은 순식간에 몸을 던져 기둥 뒤로 숨어 들어간다.

휙.

이윽고 밖에서 멈춰섰던 오토바이 탑승자 두 명이 가게를 향해 총을 난사한다.

타타당!

탕탕!

로만이 몸을 재빠르게 낮춰 바닥에 엎드린다.

점장은 기겁을 하며 곧바로 뒷문으로 뛰쳐나갔고 가게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맹혁이 싱긋 미소짓더니 이내 점장이 빠져나간 뒷문으로 도망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만의 눈이 시뻘개졌다.

“저 쥐새끼 같은 놈이...”

하지만 쏟아지는 탄들로 인하여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완전히 멎어든 총소리.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며 오토바이 운전수 두 명이 들어온다.

권총을 든 채 어지럽혀진 가게 안을 조심히 살핀다.

“잘 봐.”

“너 왼쪽. 나 오른쪽.”

사내들이 집기들을 조심스럽게 넘어 이동하는 그 순간.

바닥에 웅크리고 있던 로만이 벼락같이 한 사내를 덮친다.

떨어진 포크로 사내의 목을 난자하는 로만.

“으악!”

사내가 목을 부여잡고 바닥으로 쓰러진다.

다른 방향을 뒤지던 사내가 황급히 총을 겨눈다.

하지만 로만은 이미 총을 꺼내 든 후였고 그보다 한 발 앞서 격발했다.

그러나 사내 역시 쓰러지면서 로만을 향해 총을 쏘았고 허벅지에 한 발을 관통당한 로만.

기둥에 몸을 기대 자신의 상의를 찢어 곧바로 지혈했다.

이윽고 멀리서 다가오는 지프차 배기음.

“제길.”

로만이 황급히 가게 밖으로 뛰쳐나가 사내들이 쓰던 오토바이에 탑승한다.

이윽고 곧바로 시동을 걸어 현장을 벗어나는 로만.

로만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굳은 표정으로 도망쳤다.

“이 개새끼들. 다 찢어죽여주마.”

***

LA공항 비즈니스 라운지에 서 있는 세 사람.

두호와 탁현은 라운지에서 받은 견과류를 나눠먹고 있었고 예수는 팔짱을 낀 채 입국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짜증이 가득했다.

이윽고 입국장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웃으며 걸어나온다.

준모였다.

“왔습니다!”

예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니 어떻게 말을 그렇게 못 알아 듣습니까.”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꼼꼼하게 입국심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두호와 예수의 비자는 각각 O-1 비자와 O-2 비자.

국가의 뛰어난 예술인과 운동선수에게 발급되는 비자가 O-1.

그를 수행하는 매니저들에게 보통 주어지는 비자는 O-2이다.

그리고 탁현과 준모는 미국의 관광비자로 들어온 것이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이미그레이션(immigration 출입국 관리소)을 통과했지만 준모는 생전 처음 겪는 입국심사로 시간을 많이 허비한 것이다.

“아이 그럴수도 있죠.”

준모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웃음으로 무마하려 했다.

예수가 답답하다는 듯 하자 두호가 다가와 상황을 중재시킨다.

“예수님 저는 괜찮으니까 조금 진정하시죠.”

소란스러운 세 사람과 떨어진 탁현은 어딘가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여기입니다.”

탁현의 목소리에 세 사람은 모두 시선을 돌렸다.

멀리서 다가오는 한 사내.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에 두호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탁현이 두호가 기억을 못하는 듯 하자 싱긋 웃으며 귓속말을 해주었다.

“싱가폴에서 말씀드린 데이비드입니다. 골드스피릿 체육관 수석코치이자, XFC 자문위원이요.”

두호가 이제야 기억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데이비드가 다가와 탁현과 반갑게 인사했다.

“이렇게 자주 보게 되니 좋군요. 미스터 탁.”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데이비드.”

이윽고 간단하게 예수와 준모에게 인사를 한 데이비드가 두호를 바라보았다.

감회가 새로운 듯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두호에게 악수를 건네는 데이비드.

“전 느꼈습니다. 당신은 XFC에서 뛰어야 할 사자라고. 제 눈은 꽤 정확한 편이랍니다.”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말씀뿐이 아닙니다. 벌써부터 당신을 잠정 챔피언으로 보는 여론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두호가 싱긋 웃자 그가 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자자. 일단은 바로 XFC 본사로 이동해서 미팅 가지고. 저희 체육관으로 가는 겁니다.”

탁현이 좋다는 듯 밝게 미소 지었다.

“골드스피릿이라. 저도 처음 가보는데요?”

“어허! 미스터 탁!”

데이비드가 손가락을 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골드스피릿이 아닙니다. 제가 이번에 독립해서 새로 만든 체육관이 있습니다. 파이트매니아 라고 불러주시죠.”

골드스피릿의 수석코치로 유명한 그였기에 이 소식은 탁현마저도 처음 듣는 듯 했다.

“시설은 두말할 필요 없죠. 저희가 이번 두호씨 경기 최대한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MMA 선수들은 본토에서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 노력한다.

자신들이 모르는 것은 배우고 상대가 모르는 것은 가르쳐주고.

이렇게 끝없는 노력과 협력으로 그들이 MMA 시장을 이끌어가는 선구자가 되는 것이다.

두호 역시 스포츠에서 비즈니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가시죠! 제 차로 안내하겠습니다.”

두호와 일행들은 밝은 표정으로 데이비드를 따라 LA 공항을 나섰다.

-쾅!

-콰쾅!

엄청난 파열음을 내며 샌드백을 때리는 볼크.

묵묵히 땀을 흘리는 그를 멀리서 누군가가 불렀다.

“어이. 루스리스갱!”

볼크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본다.

그러더니 히죽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인사한다.

“어이. 챔피언. 여긴 어쩐 일이야.”

볼크를 부른 사내는 다름 아닌 알도프 코와르키였다.

클래식한 슈트를 입은 그의 모습은 격투기 선수보다는 사업가라는 말이 어울려 보였다.

“진짜 죽일 생각이야? 살살하지 그래.”

때리던 샌드백을 멈춰 세우고 볼크가 이로 샌드백 버클을 뜯어 벗어던진다.

알도프에게 다가간 그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이게 얼마만이지?”

“한 2년 됐지 그래.”

두 사람은 2년 전 XFC에서 한 번 붙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미들급 랭킹 4위였던 볼크와 디펜딩 챔피언으로 군림하던 알도프.

물론 경기는 무난한 알도프의 KO승리였다.

그 이후 알도프는 계속해 승승장구해나갔다.

하지만 볼크는 그 경기를 기점으로 에이징 커브(Aging Curve. 일정 나이가 되면 운동능력이 저하되며 기량 하락으로 이어지는 현상)로 인하여 랭킹이 계속 떨어졌다.

그 경기 이후 2년 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

“뭐라도 한 잔 줘봐. 맨입으로 말 할려니까 입이 마르네.”

“돈도 많은 놈이 사서 먹지. 여기 마실 것 좀 내줘요!”

볼크가 그를 체육관 귀퉁이의 한 책상으로 안내했다.

마주 앉은 두 사람.

이윽고 체육관 코치 한 명이 음료수 한 잔을 놓아 알도프의 앞자리에 두었다.

알도프가 슬쩍 체육관을 돌아본다.

격투기의 선구주자인 미국 본토의 아직도 이런 체육관이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정비가 안되어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

곳곳에 칠이 벗겨진 페인트 벽.

샌드백은 헤져서 처음엔 무슨 색이었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알도프가 인상을 구기며 볼크를 바라본다.

“너 정도면 번듯한 체육관 하나 굴려야 하는 것 아니냐.”

“빚이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볼크는 씁슬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XFC에서 전적만 20전.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수십억을 넘게 벌었을 테지만 그는 아직도 가난과 싸우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사업 실패로 볼크에게 수십억의 빚을 남긴 채 자살을 해버렸고, 그 역시 에이전트 사기로 인하여 번 돈에 절반을 날리기까지 했다.

“아쉽구만. 아쉬워.”

볼크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장난스럽게 노려보았다.

“놀리러 온거야?”

“그건 아니고.”

직원이 건네준 음료수를 한입에 털어넣은 알도프,

그가 다리를 꼬우며 볼크를 바라보았다.

“볼크.”

“왜.”

자신이 들고 온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만약 인생을 바꿀 기회가 온다면 잡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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