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 절대 두 팔은 떨어트리지 마라
알도프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어이없다는 듯 슬며시 웃기까지 했다.
“농담하지마 형.”
“농담 아니야.”
알도프가 말없이 바로크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늘 여유롭던 표정은 장난기조차 없었다.
“후.”
잠시 팔짱을 끼고 생각하는 듯 한다.
갑자기 문을 향해 소리치는 알도프.
“어이. 문 밖에 있는거 아니까 들어와봐.”
바로크가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보자 알도프가 코웃음 친다.
“보면 알아.”
이윽고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한 여자가 들어온다.
바로크의 사무실 바로 앞에 위치한 데스크 여직원이었다.
평소 알도프를 향한 팬심을 숨기지 않는 그녀였다.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잠시 거기 있어.”
알도프는 개의치 않아 하는 표정을 지으며 바로크에게 다가간다.
이윽고 바로크의 정장 상의 안으로 손을 집어넣은 알도프.
“뭐 하는 거야.”
그가 꺼내든 것은 권총이었다.
권총의 탄알집을 분리해 실탄이 들어있음을 확인한 알도프가 씨익 미소 짓는다.
이윽고 들어온 여자를 보며 소리친다.
“가만히 있어. 진짜 다친다.”
여직원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되물었다.
“네? 다친다니....”
-타앙!
여직원의 머리가 휘날리며 그의 바로 옆에 탄환자국이 생겨났다.
그녀는 공포로 인해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그 모습에 바로크가 화가 난 듯 크게 소리친다.
“뭐 하는 거야!”
“움직이지마. 진짜 뒤지니까.”
바로크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그녀를 겨누는 알도프.
“이 거리 보다야 조금 멀었지만 배에다가 한 발.”
그리고 권총을 겨눈 채 여자에게 걸어가는 그였다.
그 모습에 바로크의 이마가 꿈틀한다.
“당장 그만둬라.”
“똑똑히 봐.”
이윽고 여직원에 한 발자국 앞까지 다가간 그가 이마를 겨눴다.
여직원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자신이 무슨 큰 실수를 했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을 글썽이며 목숨을 구걸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한 것도 없어.”
알도프가 히죽 웃으며 바로크를 돌아본다.
“여기서 두 발.”
바로크가 그를 말리기 위해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한 발 늦었다.
-타앙
-타앙
여직원이 털썩 쓰러진다.
혼이 빠져나간 듯 멍해진 표정으로 무릎을 꿇은 여직원.
그녀가 서 있던 바로 옆 벽에 새로운 탄흔이 두 개가 생겼다.
“이 거리에서 모두 총알이 빗겨날 확률. 설령 운이 좋아서 안 맞았다 쳐도 살아날 확률. 그 놈들 지원팀이 오기 전까지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를 버틸 확률. 잘 생각해봐.”
그는 지난 몇 번의 실패로 판단력을 잃어버린 바로크를 바로잡은 것이다.
그녀가 다리의 힘이 풀려 일어나지 못하자 알도프가 한쪽 무릎을 꿇어앉았다.
마치 3년전 모술에서 도혁을 내려다보던 그때처럼.
그가 히죽 미소 지으며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자 여직원이 다시 발작을 일으키려 했다.
“총 아니야.”
그녀를 안심시키며 품에서 꺼내든 것은 지갑이었다.
이윽고 지갑을 열어 수표 3장을 꺼내든 알도프.
만불 짜리 수표였다.
그녀에 상의 주머니에 슬쩍 찔러넣은 알도프가 그녀의 뺨을 어루만진다.
“미안해요. 그걸로 오늘 스트레스 풀고.”
알도프는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문고리를 열고 나가려다 잠시 멈춰서서 바로크를 본다.
“백두호라고? 뒤진 놈 동생이?”
바로크가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
“그 새낀 내가 죽일게. 뱀 새끼들은 형이 잡아.”
씨익 미소를 지은 채 손을 흔들며 문을 열고 나간 알도프.
문 앞에서는 총소리를 듣고 달려온 직원들이 있었다.
알도프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직원들을 안심시킨다.
“형 아주 멀쩡하니까 걱정말고, 안에 좀 치워줘요. 또 봅시다들!”
해맑음에 가까운 미소를 지으며 직원들 사이를 뚫고 나간 그.
어느새 직원들에게서 멀어져 복도를 꺾어들어 간 그의 표정이 돌변한다.
싸늘하며 세상 모든 것의 어두움을 바라보는듯한 그 눈빛.
“전쟁의 신은 죽었고 그 핏줄이 나를 노린다...?”
이윽고 엘리베이터 앞에선 그가 버튼을 누른다.
곧 문이 열리고 곧바로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알도프.
1층 버튼을 누른 그가 씨익 미소 짓는다.
“재밌네.”
이윽고 문이 닫히며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였다.
바로크의 집무실로 직원이 여럿 들어왔다.
경호원들과 비서팀.
방 안의 탄흔과 여직원의 상태를 보고 들어온 사람들이 흠칫 놀란다.
이윽고 비서팀이 서둘러 다가가 그녀를 일으켜 세운다.
“괜찮아?”
“이게 뭔일이야...”
충격받아 얼이 빠진듯한 얼굴을 보며 안쓰러워한다.
경호원은 그녀를 지나쳐 곧바로 바로크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혹시나 다른 위험이 있나 주위를 살펴보는 그들.
바로크가 이마를 주무르며 괜찮다는 손짓을 한다.
“어.”
여직원을 일으킨 비서팀이 곧바로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바로크가 그녀를 불러세웠다.
“아 잠시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여직원이 떨리는 다리를 겨우 부여잡고 그에게 다가간다.
서랍에서 수표책을 꺼낸 바로크.
이어 10만불이라는 액수를 수표에 적어 주욱 찢는다.
“미안합니다. 오늘 일은 밖으로 발설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단 하나도.”
“네.”
손을 내밀어 수표를 받은 그녀가 뒤를 돌아 조심스럽게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경호팀과 집무실 안에 남게 된 바로크가 담배 하나를 꺼내 문다.
“보이는 걸 정확하게 봐야지. 굳이 그 너머를 볼 필요가 있나.”
불을 붙이고 연기를 내뿜는 그.
“윈스턴 무기 찾아오는 놈들 제외하고 전부 다 미국으로 보내.”
경호원이 놀란 듯 되묻는다.
그 말은 곧 현재 진행중인 모든 임무를 포기한단 뜻이었다.
“그리고 이슬람들도 미국으로 보내고.”
경호원은 입을 크게 벌리며 그저 바로크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슬람.
여기서 바로크가 말하는 이슬람이란 한 가지를 의미한다.
테러리스트.
테러를 빙자해 옐로우 맘바를 제거하겠다는 뜻이었다.
***
인천공항에서 준모의 차가 멈춰선다.
준모가 고개를 돌려 뒷자석에 앉은 두호를 바라보았다.
“저는 차 맡기고 바로 비즈니스 라운지로 이동하겠습니다.”
어느새 인천공항의 지리를 제법 잘 알고 있는 준모를 보며 대견스러워하는 두호.
그의 옆자리에 앉은 예수가 태블릿 PC를 보며 말했다.
“질문 리스트를 보아하니 큰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언제나 예외라는게 있으니까요. 특이 질문에는 두호씨가 괜찮다 생각하시는 것만 골라 답변하시면 됩니다.”
탁현이 예수의 말을 거들었다.
“다만 승자 예측은 하시면 안됩니다. 페이스오프때야 흥행에 도움이 되지만 국내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거든요.”
두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수가 싱긋 웃는다.
“그럼 가시죠.”
“백두호 파이팅!”
준모가 박수를 치며 기합을 넣었고 두호가 미소를 지으며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두호가 문을 열자마자 수십 명의 기자들이 두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차에서 내렸지만 얼마 걷지도 못하고 멈춰섰다.
이윽고 예수와 탁현이 그의 옆에 바짝 붙어 공항 인터뷰를 준비했다.
저번 테러 사건 이후로 공항 근처 경계가 강화된 듯 보안팀과 사복 경찰들이 여럿 보였다.
그들은 매섭게 주위를 살피며 혹시 저번 같은 거수자가 있지 않을까 눈에 불을 켜고 확인했다.
두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이윽고 쏟아지는 질문들.
“데미안 볼크 선수와의 일전, 자신 있으십니까?”
“한국인 최초 메이저 대회 챔피언이라는 기록을 달성하셨는데 어떠십니까?”
“아직까지 두호 선수의 XFC 진출은 시기상조라는 여론이 있습니다.”
순식간에 수십 개의 질문이 쏟아지자 탁현이 크게 소리친다.
“한 분씩 질문해주시죠. 저희 선수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입니다.”
한 기자가 벼락같이 손을 쳐든다.
예수가 질문을 하라는 듯 그를 가르킨다.
“이번 경기가 XFC 데뷔전이자 랭킹 입성전입니다. 몸 상태는 어떠십니까.”
두호는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팀 코리안 몬스터의 헌신적인 지원하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지난 정강이 부상은 모두 완치 되었구요.”
기자들의 질문은 이어졌다.
“저번 공항 테러로 인한 백두호 선수의 멘탈을 걱정하시는 팬 분들이 많습니다. 한 말씀 해주시죠.”
질문을 들은 두호가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예수와 탁현을 바라본다.
이내 싱긋 웃으며 질문을 던진 기자를 바라보았다.
“지금 저와 함께하는 준모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이번 XFC 진출은 없던 이야기였겠죠.”
두호의 말에 탁현과 예수가 작게 미소 지었다.
“그 친구가 만들어준 기회. 놓치지 않겠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자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두호는 계속해서 여러 질문을 받았다.
불모지인 한국 격투기.
그 진흙탕 같은 곳에서 살아남은 한 사내.
두호를 싫어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단 한 가지의 이유이다.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
신체조건이 안되어 매번 고배를 마셨던 한국 투기종목에 다시 희망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가 늘 보여주던 도전과 극복처럼.
두호가 기자들을 돌아보며 싱긋 웃는다.
“다녀오겠습니다. 그간 건강하십시오.”
그러자 기자들 뒤에서 한 사내가 소리친다.
“코리안 몬스터 파이팅!”
목에 핏발을 세우며 소리 지르는 사내는 바로 준모였다.
그의 외침에 기자들이 미소를 지으며 같이 응원해준다.
“코리안 몬스터 파이팅!”
“몸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들의 박수와 응원 소리를 들으며 두호가 공항 유리문을 통과했다.
라운지로 걸어가던 중 열린 문이 이제야 닫혔는지 응원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슬며시 예수가 그의 옆에 붙는다.
“이제 너무 잘하는데요? 완전 아이돌이네.”
“잘했습니까?”
두호가 넌지시 묻자 예수가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내보인다.
탁현이 두호의 어깨를 주무른다.
“자 이제. 가장 뜨겁고 화려한 도시. 라스베이거스로 가봅시다!”
그들은 힘차게 라운지로 걸음을 옮겼다.
***
마닐라의 한 작은 카페.
우기로 접어든 필리핀의 날씨.
작게 열린 창가로 비가 한 방울씩 튀지만 그리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맹혁은 커피를 마시며 남성 잡지를 읽고 있었다.
“확실히 투버튼보다 쓰리버튼이 더 클래식하단 말이지...”
맞춤 정장 디자이너의 인터뷰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였다.
짤랑.
카페의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걸어들어온다.
새빨간 코에 수염이 꼬불하게 자란 사내.
한쪽 다리를 살짝 저는 모습까지 영락없는 노숙자의 모습이었다.
곧바로 카운터로 향하는 사내.
계산기 옆에 2달러를 올려놓은 그가 잔뜩 쉰 목소리로 점장에게 말한다.
“원두는 산미 없는 걸로. 차갑게.”
모습에 맞지 않는 주문을 한 그가 곧바로 맹혁이 앉아있는 창가 자리로 다가갔다.
“잡지 보시오?”
맹혁은 다가온 그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저 잡지를 계속 읽으며 안경을 고쳐쓴다.
“네. 정장이 참 멋있네요.”
사내는 의자를 빼고 앉아 쓰고 있던 중절모를 벗는다.
“정장은 뭐하시게.”
“필리핀에서 입기엔 뭐하고. 외국이나 나가면 입으려 했죠.”
“참...”
사내는 잡지를 보고 있는 맹혁을 그저 내비두었다.
이윽고 주문했던 음료가 책상 위에 놓이자 그제서야 사내가 자신을 소개했다.
“로만.”
“맹혁입니다.”
웃으며 인사한 로만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한다.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찢어죽일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우리 물건을 훔치고도 배짱이 좋구만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