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2화 : 절대 두 팔은 떨어트리지 마라
재하는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래진은 품 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물며 묻는다.
“하나 피우시겠습니까?”
그 와중에 재하가 흡연자라는 사실을 기억한 것이다.
담배곽에서 한 개비만 툭 튀어나오게 꺼내 곽째로 건넨다.
재하가 복잡한 표정으로 담배 하나를 집어든다.
이윽고 담배를 물자 불을 붙여주는 래진.
“블랙러프를 지탱하고 있는 3가지 기둥이 있죠. 하나는 윈스턴의 무기 밀매. 두 번째는 반 옐로우 맘바의 투자자들. 그리고 블랙러프의 머릿수.”
래진은 연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시겠지만 얼마전에 저희가 윈스턴의 무기들을 탈취했습니다. 그럼 그의 돈줄은 하나로 줄어들겠죠.”
블랙러프가 돈을 버는 구조는 단순하다.
윈스턴의 무기사업.
블랙러프의 용병의뢰.
그리고 개인적인 비즈니스 차원에서 받는 투자금.
하지만 지금 옐로우 맘바로 인하여 주요 전력이 대부분 가용이 불가하다.
그 말인즉 정말 돈 되는 의뢰를 해결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말이었다.
더군다나 윈스턴의 무기까지 탈취 당해 이제 돈줄은 투자금이 전부인 상황.
그런 와중에 손해를 메꾸려면 결국 투자자들을 닦달해야 한다.
재하가 복잡한 표정으로 담배를 입에 문다.
“돈을 뱉을 때까지 뱉다보면 언젠간 곳간이 거덜나겠죠. 결국 필요가 없어진 당신들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들은 우리와 달리 선이라는 게 없습니다.”
블랙러프에게 상생이란 없다.
자신들에게 방해가 되거나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면 가차 없이 내치는 게 그들의 방식이다.
그 순간 재하에게 궁극적으로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럼 굳이 저를 데리고 있는 이유가 뭡니까. 당신들에겐 도움도 되지 않을텐데.”
그 말을 들은 래진이 씨익 미소 짓는다.
“당신과 같이 블랙러프에 투자한 모든 투자자들의 명단을 알려주십시오.”
“예?”
영철이 종이와 펜을 가져와 그에게 건네준다.
“자신의 투자자들을 지키지도 못하는 용병단체에 지킬 신의가 있습니까? 그 신의를 지킨다 하더라도 결국은 카르텔의 돈줄이라는 불명예만 얻을텐데요.”
재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래진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들이 원하는건 갱, 마피아, 테러단체와 극단주의자들입니다. 그들에게 영향력을 넓혀 거대한 카르텔을 구축하려 하죠. 그렇게 된다면 결국 전쟁을 조율하는 사람들은 블랙러프가 됩니다.”
전쟁을 조율한다는 말은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종전시킬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된다면 분쟁지역 국가는 블랙러프와 가까워지려 할 것이고 강대국들조차 블랙러프를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재하가 복잡한 표정으로 담배를 비벼끈다.
“후우.”
“도와주십시오. 대신 비밀 유지는 꼭 해드리겠습니다.”
재하는 눈을 감아 자신의 과거를 돌아본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산으로 동아시아를 돌아다니며 사업을 벌렸다.
하지만 사업이라는 게 묘한 구석이 있다.
계획에 돈을 투자해 결과를 만드는 것.
그리고 언제나 그 결과를 만드는 과정 중에는 문제라는 게 생긴다.
생겨난 문제는 돈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것들이 대다수이기에 결국은 용병단체들에게 힘을 빌려 암암리에 일을 처리하게 된다.
협력과 상생인 줄 알았지만 자신은 그저 돈 대주는 호구란다.
그리고 필요가 없어진다면 자신을 죽일거라는 래진의 말이 그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재하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펜의 뚜껑을 열고는 종이의 이름을 하나씩 적어내려간다.
“한 가지만 약속해주십시오.”
“뭡니까.”
재하가 몇 개의 이름을 적는 중 래진을 무표정하게 바라본다.
“말이 새어나가서 저한테 피해가 없게 뒤처리 깔끔하게 부탁드립니다.”
“네. 걱정마십시오.”
래진의 뒤로 옐로우 맘바 찰리팀이 도열한다.
그들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고 몇몇은 이 상황이 즐거운 듯 웃음짓고 있었다.
래진이 쓰윽 뒤를 보더니 재하를 보며 미소 짓는다.
“그걸 제일 잘하는 게 우리입니다.”
***
- PRIDE-K, 킹챔피언쉽 미들급 챔피언 백두호 XFC 계약 성사.
- 초대형 신인의 등장에 느슨했던 XFC 미들급 판도 변화주나.
- 첫 매치가 랭커전. 백두호에게 풍기는 돈 냄새를 맡은 것일까.
예수가 체육관으로 배달된 신문을 보며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러더니 케이지 안에서 훈련중인 두호를 힐끔 쳐다본다.
“음.”
신문지를 툭 덮으며 팔짱을 끼는 예수.
입고 있는 목폴라 안으로 턱을 쏙 집어넣는다.
“실물이 훨씬 나은데. 촬영기자님들을 바꿔야 하나.”
준모가 슬쩍 그녀의 귀 옆에서 튀어나온다.
“뭐가요?”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준모에 예수가 비명을 지른다.
“꺄악! 깜짝이야!”
준모는 그런 반응에 아랑곳 않고 예수가 읽던 신문을 펼쳐본다.
이내 두호의 사진과 기사들을 보며 감탄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거 말씀이시구나. 이 얼굴은 연예면 탑에서나 보는 얼굴이죠.”
“제발 인기척 좀 내고 다니시죠.”
“흥. 왜 이렇게 약한 척이십니까.”
예수가 준모의 미지근한 반응에 이마가 꿈틀한다.
그러나 좋은 생각이 났는지 그녀가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다.
“이번주 금요일에 운영팀이랑 같이 회식하기로 했는데 어디서 먹을라나?”
예전 레스토랑에서 두호에게 들었던 내용이다.
준모가 대회 진행중 필린 운영팀중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 감이 사실인 듯 준모가 갑자기 예수의 옆 의자를 빼내어 앉는다.
“예수님.”
예수가 관심 없는척 고개를 돌린다.
“우리 서로 협력관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쪽이랑 무슨 협력을 해요 제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는 예수.
그러자 준모가 씨익 미소 지으며 턱을 쓰다듬는다.
“제가 뭐 자랑할 건 아니지만. 예전 뒷골목 생활하면서 얻은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눈치죠.”
“그 눈치로 일이나 잘하시면...”
“암만 봐도 예수님은 저희 형님을...”
“악!”
예수가 황급히 그의 입을 막았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레슬링 선수들이 돌아본다.
그녀가 급하게 머리를 쓸어넘기며 웃음으로 무마했다.
준모에게 살기 가득한 목소리로 조용히 속삭이는 예수.
“입 조심해요. 무슨 소리에요 그게.”
“그러니까 협력하자 이겁니다?”
“네에?”
그 순간 체육관의 문이 열리며 채호가 들어선다.
그를 확인한 예수와 준모는 책상 아래로 고개를 숙인다.
잠시 시선을 마주친 둘이 주먹을 부딪힌다.
서로 비밀을 지킬 것을 당부하는 암암리의 약속.
이윽고 힘차게 일어나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채호를 향해 인사했다.
“어서오세요. 대표님.”
“반갑습니다. 대표님,”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채호가 슬쩍 미소 지었다.
“두 사람 많이 친해졌네요?”
서로를 바라보며 삐질 땀을 흘리자 채호가 크게 웃었다.
“보기 좋네요. 두호씨는 어디에 있습니까?”
훈련에 열중인 두호를 보며 채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동안 말없이 그의 훈련을 지켜보던 채호가 속으로 생각했다.
‘많이 올라왔군.’
탁현 역시 나날이 발전하는 두호를 보며 뿌듯해하고 있었다.
어느새 그와 상대하는 체급의 선수는 86KG급.
미들급의 가까운 몸무게와 그래플링 공방에서 제법 안정적인 운영을 보이고 있었다.
경량급 선수들의 속도와 달리 중량급의 특징은 힘이다.
방어를 하는 상대 선수를 통째로 들어올려 버리는 괴력.
간간히 태클을 허용하는 두호였지만 케이지까지 무리없이 상대를 끌고 와 스탠딩으로 돌아간다.
단 몇 주 사이에 그의 실력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 때앵.
라운드가 끝나는 종이 울리자 케이지 안 두 사람이 떨어진다.
이제는 라운드가 끝나도 체력이 어느정도 남는 듯 두호는 땀만 조금 흘릴 뿐이었다.
채호가 손을 모아 크게 소리친다.
“코리안 몬스터팀 잠시 모이겠습니다.”
그를 발견한 탁현과 채수가 다가왔다.
뒤따라 다른 스태프들과 탕비실에서 나온 주민도 도착했다.
마지막에 수건을 목에 두른 채 걸어오는 두호였다.
채호가 서류를 흔들며 두호에게 건넨다.
“이번 매치업 관련한 계약서와 자료들입니다. 뭐 특별한 건 없지만 그래도 확인해보시죠.”
두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다음주 미국행은 탁코치, 준모씨, 예수님 그리고 두호씨. 이렇게 네 분이서 갈 것입니다. LA로 가서 일주일 시차 적응 뒤 곧바로 감량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한 직원이 나서서 이름이 불린 사람들에게 서류를 나눠주었다.
“경기 장소는 라스베이거스인데. 뭐 시간 되신다면 구경하셔도 좋구요. 그런데...”
채호가 미소를 지으며 탁현을 바라본다.
일을 최우선으로 삼는 탁현이 과연 그것을 따라주겠냐는 의미였다.
탁현이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안 됩니다. 웜업과 시차적응만으로도 빠듯한 시간일 테니까요.”
준모가 실망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두호가 어깨를 툭 치며 미소 짓는다.
“네. 현지 가서 상황 보고 결정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두호씨는 잠시 저 좀 볼까요?”
채호가 두호에게 고갯짓하자 두호가 따라 나선다.
대회의실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
채호가 슬쩍 주위를 살핀다.
“혁이랑 무슨 일 있었습니까?”
두호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채호가 머리를 긁적인다.
“그 친구가 고맙다고 연락을 하더군요. 지금 일이 더욱 잘 풀리고 있다고.”
“아.”
두호는 채호에게 필리핀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얘기해주었다.
그 얘기를 모두 들은 채호가 큰 소리로 웃는다.
맹혁이라는 사람을 잘 아는 그로서도 맹혁의 이런 반응은 신기할 따름이었다.
채호가 조금씩 웃음을 거두고 두호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싸움 향방은 어떻게 될꺼라 보십니까.”
“계획대로라면 미국인데. 사실은 조금 더 지켜봐야지.
채호가 의아한 표정으로 두호를 바라본다.
두호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원래 미친놈은 예상하는 게 아니야. 받아들이는 거지.”
***
바로크 코와르키가 컴퓨터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짓는다.
문제의 시작점은 어디인가.
어디서부터 꼬였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 실마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 바로크가 보고 있는 기사 속의 한 사람.
백두호.
이 자의 등장 이후로 무엇인가 조금씩 엉키고 있다.
‘이 솜털같은 놈이 설마...’
그러나 바로크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무리 김도혁이 동생이라지만 너무 어리잖아.’
지나친 비약이다.
갓 스무 살이 된 아이 한 명 때문에 자신들의 상황이 이렇게 뒤집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차분하게 사건을 돌아보는 바로크.
그 순간 사무실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온다.
“나 왔어.”
“어.”
들어온 사람은 알도프 코와르키였다.
알도프의 손은 번쩍번쩍했다.
챔피언 방어전을 한 번 성공할 때마다 하나씩 맞춤 제작하는 반지.
어느새 6차 방어전을 성공한 그의 손엔 반지가 6개로 늘어나 있었다.
오늘 알도프 코와르키를 부른 것은 바로크였다.
바로크가 자신의 맞은편을 가르킨다.
“앉아봐.”
“빨리 말해. 나 조금 이따가 파티 있어.”
알도프의 말을 들은 바로크가 헛웃음을 짓는다.
어쩐지 그의 옷이 너무 휘황찬란하다 생각했다.
명품으로 도배된 옷과 신발 그리고 잔뜩 힘준 머리까지.
그 모습에 고개를 저으며 바로크가 말했다.
“너 3년 전 모술 기억나지.”
“당연하지. 그때 내가 현장 책임자였잖아.”
“그때 얘기 자세하게 다시 해봐.”
알도프는 왜 그러냐는 듯 바로크를 쳐다보다 자세를 고쳤다.
이어 3년이 지나도 세세하게 기억하는 그때의 상황을 풀어놓는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바로크가 한숨을 내쉰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혹시...”
지난 시간 동안 벌어졌던 일.
윈스턴과 이재하.
바르고프의 사망.
한국지부 폐쇄.
이 모든 일을 해낼 사람.
“김도혁이 살아있는 것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