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41화 (141/204)

제 141화 : 절대 두 팔은 떨어트리지 마라

이미 교전 시간은 5분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초기 계획과는 달리 래진과 헨리의 분전으로 인하여 아직까지도 제압을 하지 못했다.

만약 처음 자신들을 발견했을 때 래진이 본부에 연락을 했다면 슬슬 지원이 도착할 시간.

그의 불길한 예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이내 다른 들개 한 명이 소리를 지른다.

“로버트! 저기 봐!”

로버트가 인상을 구긴 채로 살짝 고개를 들어 래진의 너머를 바라본다.

멀리서 달려오는 3대의 지프차.

“젠장!”

분노로 인하여 로버트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난다.

냉정해야한다.

분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전면전으로 넘어가기엔 위치와 장소가 좋지 못하다.

자신들을 가로질러 뒤편으로 이동한다면 앞뒤로 포위당하는 상황.

“철수.”

로버트의 말을 들은 들개 한 명이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전원 철수! 전원 철수.”

로버트의 명령에 들개들은 교전을 멈추고 재빠르게 차에 탑승한다.

이윽고 바퀴에서 연기가 날 정도로 급발진을 밟아 순식간에 달아난다.

래진의 옆으로 차가 다가왔고 운전석의 창문이 열린다.

영철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어.”

영철이 눈을 좁혀 멀리 달아나는 들개들을 바라본다.

“쫓을까요?”

“됐다. 지금 가면 우리도 피해를 각오해야 해.”

래진이 탄에 맞아 엉망으로 변한 자신의 차를 발로 툭 찬다.

“이놈 이거 잘 버티네.”

“전술 차량을 미리 옮겨놔서 다행인 것 같습니다.”

일반 차량이라면 벌써 폭발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옐로우 맘바가 이용하는 전술 차량은 기본적으로 방탄 설계가 되어있다.

영철이 운전석 문을 열고 차에서 뛰어내리듯 하차한다.

턱!

문을 닫은 뒤 그가 차량 주위로 흩어진 탄피들 중 하나를 주워든다.

“벌써부터 행동을 개시했네요.”

래진 역시 영철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그들이 서둘러 움직일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과감할 줄은 몰랐다.

보통 인질구출작전은 차분하게 숨통을 조여가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그들은 인질의 안전 상태와 적합한 작전 실행지역을 찾기 위한 사전조사 없이 래진을 겨냥하고 들어왔다.

“아무래도 맞바꿔치기를 시도하려는 모양이네요.”

“그렇게 생각해주길 바라는 것일 수도 있고”

맞바꿔치기.

서로에게 중요 인물을 납치해 인질을 맞교환하는 방식.

그렇다면 그들이 인질보다 래진을 노리는 이유가 명확하다.

보스를 납치한다면 다른 부하들은 마치 밧줄로 엮든 줄줄 따라올 테니까.

“내가 죽으면 다음 보스는 상철이다.”

영철이 래진의 말을 듣고는 피식 웃으며 주위에 떨어진 탄피를 줍는다.

“다 내려와서 주워.”

영철이 명령하자 옐로우 맘바가 모두 차에서 내려 탄피를 줍는다.

미국에서 총기 사용이야 흔한 일이니 그렇다 치지만 탄피는 증거가 되기에 모두 치우는 것이다.

영철이 허리를 두드리며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 마십시오. 상철 형님 들으면 노발대발 하시겠네.”

래진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를 툭 치고 차에 탑승한다.

차에 탑승하자 다시 탄피를 줍는 영철.

“앞으로 보스 옆은 4인 1조로 지켜 알았어?”

“예.”

떨어진 탄피를 모두 주운 찰리팀을 보며 영철이 고개를 돌린다.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위웅위웅.

“복귀하자.”

영철의 말에 각자의 차로 흩어진 찰리팀.

빠른 속도로 현장을 빠져나간다.

***

심판이 다시 케이지로 올라오고 철민 역시 밝은 표정으로 올라왔다.

철민은 주위를 둘러보던 중 두호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어라. 요것봐라.’

두호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하지만 운동선수들은 그 표정의 진짜 의미를 알고 있었다.

투쟁심.

고작 스무 살이라고 들었다.

국가대표를 상대하며 원하는 플레이가 나오지 않았음에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다.

‘그래. 저 정도는 되야 챔피언이라고 하겠지.’

다시 케이지의 중앙에 모인 두 사람.

심판은 약식으로 룰을 설명하고 곧바로 경기를 선언했다.

두 사람의 손이 악수를 끝낸 그 순간.

두호가 벼락같이 싱글렉 태클을 시도한다.

철민의 왼쪽 무릎 뒤가 잡히며 그립이 꽤 깊게 들어갔다.

그러나 철민은 곧바로 한 바퀴를 핑그르르 돌며 잡힌 다리를 빼내었고 이내 안전하게 수비에 성공했다.

그러나 철민은 속으로 생각했다.

‘방금은 좀 위협적인데.’

빠른 속도와 깊은 태클.

어찌보면 방심하고 있는 이 순간을 노린 것이다.

두호는 우쭐하지 않고 곧바로 자세를 깊숙히 낮춰 단단하게 방비했다.

레슬링팀 감독이 감탄하는 표정을 짓는다.

“아예 안 배웠다고?”

“MMA식 레슬링을 속성으로 배운 게 전부입니다.”

“재능있네.”

올림픽 대표팀 감독의 입에서 재능있다는 말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탁현이 미소 짓는다.

‘재능 정도가 아니지.’

저런 운동신경은 10년의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이니까.

탁현의 표정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중요한 것은 지금 부터지.’

노림수는 실패하면 그걸로 끝이다.

상대의 전략중 위협이 되는 것을 파악하게 되니까.

경량급 레슬러들의 특징은 속도와 반사신경이다.

아주 깊은 그립을 성공시키며 전혀 예상 못한 공격을 한다 하더라도 조금의 틈이면 빠져나간다.

두 사람은 1라운드 때 보다 더욱 신중하다.

자칫 이마를 맞대고 멈춘듯 보이지만 두 눈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서로 눈치를 살피며 손 싸움을 이어가는 두 사람.

철민이 조금씩 손을 두호의 겨드랑이로 끼워넣는다.

어느새 자신의 겨드랑이로 손이 들어갔음을 확인한 두호가 철민의 팔을 붙잡고 바깥쪽 발을 차버린다.

발목 받히기.

잠시 흔들리는 듯 했으나 어느새 중심을 다잡고 하단 태클을 파고드는 철민.

순식간에 오가는 엄청난 공격과 카운터였다.

뒤로 쓰러지듯 넘어지는 두호가 그의 허리를 감싸 안는다.

등이 닿음과 동시에 상대를 뒤로 던지는 두호.

주짓수의 버터플라이 스윕.

철민의 표정에는 당황이 깃든다.

‘한 라운드만에 페이스를 따라온다고?’

철민의 눈이 빛난다.

찰나의 순간 몸을 비틀어 몸이 뜨는 것을 막았다.

이윽고 땅에 등이 아닌 배로 떨어지고 곧바로 두호의 상체를 덮친다.

그 짧은 순간에도 몸이 반응하는 것에 두호는 놀라워했다.

‘얼마나 훈련을 했으면. 뇌보다 먼저 몸이 반응한거네.’

그라운드 상황에서 두호는 집요하게 상대의 팔을 노렸다.

스탠딩이 아닌 서브미션에 희망이 있다고 판단한 듯 끊임없이 파고든다.

이쯤 되니 철민도 정신을 바짝 세워야 한다.

일반인도 아니고 종합격투기 챔피언이다.

더군다나 체급도 자신보다 월등히 높으니 움직임을 멈추어선 안된다.

중심을 방해하기 위하여 두호의 하체를 향해 더욱 파고드는 철민.

그 순간이었다.

집요하게 팔을 노리던 두호가 순간 팔을 놓더니 철민의 목으로 향한다.

겨드랑이로 팔을 넣어 목과 팔 한쪽을 잡아채는 다스 초크.

기습적인 공격에 철민이 당황을 금치 못한다.

‘이런 피니쉬가 있었어?’

종합격투기 선수들이 가진 서브미션 피니쉬는 대체로 비슷하다.

기본동작을 정확히 갈고 닦아 실전에서 사용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

주짓수 선수와 레슬링 선수 출신이 아니라면 특정 종류를 벗어나지 못한다.

‘암바도 키락도 아닌 다스 초크라니.’

비슷한 체급이라면 상대의 손목을 움켜잡고 버티면 된다.

그러나 철민은 곧바로 롤링을 시도했다.

차라리 한 바퀴 굴러서 두호의 몸무게에 눌리는 상황은 막겠다는 의도였다.

그 순간.

두호가 그를 휙하고 뒤로 던져버린다.

넘어오는 무게중심을 이용하여 철민을 밀어버린 두호는 곧바로 스탠딩 상태로 돌아왔다.

철민은 당황한 듯 헛웃음을 지었고 탁현은 슬쩍 미소 지었다.

“게임 끝.”

철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호에게 다가간다.

“머리도 좋고. 몸도 잘 따라주는 게 역시 챔피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요.”

“겨우 벗어나기만 한걸요.”

두호가 슬쩍 고개를 숙이자 철민이 크게 웃는다.

“겸손하시긴. 고생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철민이 아쉬운 표정으로 케이지를 내려가지만 두호는 알고 있다.

진짜 강자만이 가질 수 있는 저 여유.

자존심에 상처가 될 수도 있으나 전혀 개의치 않는 철민이었다.

탁현이 두호를 보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 이런 훈련을 통해 얻은 생각과 느낌 그리고 기분까지 모든 걸 기억하셔야 합니다.”

두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탁현이 슬쩍 고개를 돌린다.

“다음! 63kg 올라와.”

두호는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기합을 지른다.

“가시죠!”

***

스탁튼의 한 대형 정비소로 들어가는 옐로우 맘바.

자동차 정비소 내부는 다를 것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시설이 오래된 듯 곰팡이 냄새가 은연중 풍겨왔다.

팀원 한 명이 래진을 지나쳐 앞으로 멀리 달려간다.

이윽고 미리 주차되어있던 차 아래 정비리프팅을 바라보며 기둥에 붙어있던 초록색 버튼을 누른다.

쿠쿵.

기계 자체도 오래된 듯 굉장한 소음이 발생했다.

사람의 눈높이까지 올라간 자동차.

그러나 그 밑에는 두꺼운 철문이 하나 있었다.

부하 두 명이 지렛대를 들고 달라붙어 힘을 쓰니 그제서야 문이 조금씩 열린다.

이내 완전히 열린 문 아래로는 계단이 보였다.

래진과 영철이 내려가자 이내 팀원들이 하나둘 내려가기 시작했고 마지막 두 사람이 거의 매달리듯이 철문을 닫는다.

안은 외부의 오래된 시설과는 전혀 달랐다.

최신식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미래공학적인 디자인.

이곳은 그들이 미국 서부에 마련한 비상셸터이다.

사방이 뚫려 상대의 접근을 확인하는 것이 용이하고 유사시 지하 하수구 라인을 통해 대피도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근처엔 미처 정리되지 못한 공사현장이 많기에 각개전투와 게릴라전을 주 전투방식으로 삼는 옐로우 맘바에겐 천혜의 요새가 된다.

내부 공기 순환시스템으로 24시간 공기가 정화되고 전기가 끊기더라도 지열과 태양열을 이용하여 전력 수급이 가능하다.

래진이 비닐봉투 하나를 흔들며 긴 복도를 걸었다.

이윽고 두 사람이 문 앞에 도착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렸다.

방 안에서 대기중이던 부하 두 명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고생 많았다.”

“다치신 데는 없으십니까.”

래진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고개를 돌렸다.

간이침대에 누워 안색이 창백한 이재하.

래진이 곧바로 그에게 다가가 비닐봉투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그가 꺼내든 것은 주사기.

주사기의 뚜껑을 벗겨낸 뒤 곧바로 그의 아랫배에 찔러넣는다.

그러자 재하가 눈을 찡그리며 고통스러워 한다.

“으윽.”

하지만 재하가 뒤이어 꺼낸 말은 의외였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지병이 있는지 먼저 물어봤어야 했는데.”

주사기의 정체는 인슐린이었다.

평소 당뇨병으로 관리가 필요하던 그가 몇 주 사이 전혀 관리를 받지 못하자 합병증 초기 증상이 온 것이다.

래진이 오히려 미안한 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 재하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혹시 저는 언제쯤 풀려날 수 있습니까?”

래진이 부하가 가져온 의자에 앉으며 씨익 미소 짓는다.

“이렇게 눈치가 없으신데 어떻게 그런 돈을 버셨을까.”

발끈하려는 재하의 말을 래진이 끊는다.

“지금 우리가 당신 살려주고 있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