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0화 : 절대 두 팔은 떨어트리지 마라
두호는 드디어 저 엄청난 피지컬의 이유를 깨달았다.
과거에는 태릉이었다면 지금은 진천으로 옮겨간 대한민국 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
이들은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의 정점이란 뜻이다.
더군다나 가장 끔찍한 훈련량을 자랑한다는 레슬링 선수들.
탁현이 손가락 두 개를 세운다.
“레슬링은 자유형과 그레코로만형으로 나뉘죠. 상,하체 기술을 모두 쓸 수 있는 자유형과 상체 공격만이 허용되는 그레코로만.”
탁현이 두호의 어깨를 감싸고 케이지 안을 가르킨다.
“두호씨. 여기서 퀴즈.”
두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탁현을 바라보았다.
“왜 레슬링이 MMA에서 유리할까요?”
두호는 허를 찔린 듯 눈을 좁혔다.
자신 역시 레슬링이 MMA에서 유리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투기 종목 출신의 선수보다 레슬러 출신이 평균적으로 성적이 좋다.
탁현이 미소를 지으며 두호를 바라본다.
“기술과 자세에 있습니다.”
두호는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적으로 킥복싱에 가까운 자세를 가진 MMA에서 레슬링의 기술은 모든 자세와 타격거리에서 사용 가능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상대와 가깝다면 상체 그래플링의 그레코로만.
상대가 멀다면 공격이 나오는 타이밍에 카운터 태클.
하지만 탁현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왜. 레슬링 하나만 가지고는 이길 수 없는지 아십니까?”
탁현의 모순 같은 질문에 두호는 고민했다.
생각해보니 결국은 그래플링 하나만으로 정점에 우뚝 선 선수들은 없다.
기본적으로 타격 실력과 그에 걸맞는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
탁현이 손을 뻗어 케이지의 철장을 가르킨다.
“저것 때문이죠. 바로 케이지의 철창.”
일반적으로 경기장이 모두 열려있는 올림픽 레슬링과는 다르게 철장이라는 변수가 있다.
상대방에게 힘과 기술이 월등히 밀리는 상태라 할지라도 케이지에 등을 대거나 케이지를 밀어내는 동작으로 부족한 힘과 그래플링 이해도를 메울 수 있다.
“MMA 경기에서 타격가들이 테이크다운 디펜스를 실패하면 필사적으로 케이지로 기어가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케이지의 등을 대면 더이상 밀리지 않기에 끌려나가지 않는 것에만 신경을 쏟으면 방어가 가능하다.
하지만 공격자의 입장에서는 미는 힘이 부족해진다면 곧바로 밖으로 빠져나갈 것이고 그렇다고 밀기만 한다면 자신의 체력만 소진된다.
그렇기에 타격가들은 그래플링의 혼전상황에서 어떻게든 케이지에 등을 기대려 한다.
이것이 MMA에서만 볼 수 있는 케이지 레슬링이다.
“오늘 두호씨가 하셔야 할 일은 레슬링 선수들과의 그래플링 스파링. 룰은 MMA처럼 테이크다운에 탭 아웃으로 진행하지만 두호씨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탁현이 미소를 지으며 한쪽 눈을 찡그린다.
“그래플링 상황에서 어떻게든 스탠딩으로 돌아가보시죠,”
두호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탁현이 국가대표들에게 말했다.
“웜업 하고 30분 뒤 57KG 급부터 올라와.”
“네!”
탁현의 후배이기도 한 선수들은 크게 대답하고 각자 몸을 풀기 위해 흩어졌다.
두호 역시 천천히 몸을 풀며 마음을 다잡는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레슬러들과 그래플링 스파링이라...”
자신 역시 알고 있다.
단일 종목의 국가대표.
그들의 실력은 단순히 운동신경과 재능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천외천이다.
그들은 수천수만의 경쟁자들을 뚫고 올라온 경험과 실력을 가졌으니까.
요행은 없다.
늘 그렇듯 부딪쳐서 배우고 경험을 쌓아 극복하는 것이다.
케이지 안에서 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
-57KG 급 자유형 국가대표 정철민 선수와 두호였다.
두호는 목과 허리를 돌리며 차분히 마음을 다잡았다.
심판을 맡기로 한 선수촌의 코치가 두 사람 사이에 서 있었다.
“타격 없고. 오직 그래플링입니다. 종합격투기식 훈련이니 폴(fall 상대의 어깨가 바닥에 2초 이상 닿은 상태. 올림픽 레슬링에선 그대로 경기가 종료된다)은 없습니다. 그 외에 반칙은 MMA룰을 따르겠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악수와 함께 곧바로 경기가 시작 되었다.
“자 셋업!”
심판의 콜에 두 사람은 모두 상체를 낮추고 다리를 벌린다.
타격을 배제한 극단적인 그래플링의 자세.
양팔을 겨드랑이에 단단히 붙인 모습이 마치 공룡 같았다.
그래플링 상황에서 상대에게 신체를 붙잡히는 것은 공격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몸을 최대한 웅크려 상대의 그립을 방해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잔 스텝을 밟으며 서로를 탐색한다.
선공은 철민이었다.
순식간에 허리를 바닥에 붙이듯 중심을 낮춘다.
그리고는 길게 손을 뻗어 두호의 발목을 잡아채려 했다.
두호가 황급히 앞 발을 뒤로 빼낸다.
하지만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공격.
무리하게 자신의 스텝을 옮겼기에 무게중심을 잃고 앞으로 기우뚱한다.
그 순간 철민이 씨익 미소 짓는다.
몸을 순식간에 웅크려 두호의 발밑으로 빨려 들어가듯 진입하는 철민.
두호는 무엇인가를 직감한 듯 인상을 찡그렸다.
이윽고 앞으로 넘어지는 두호의 목을 잡아채 자신의 등 뒤로 넘겨버린다.
쾅!
순식간에 바닥에 내다 꽂힌 두호.
교과서에서나 볼법한 환상적인 메어넘기기였다.
침착하게 가드 포지션으로 들어갔지만 철민이 재빨리 상위포지션으로 올라탔다.
“관절기 써도 되니까 편하게 해!”
탁현의 외침에 철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브미션을 준비한다.
레슬링은 단순히 넘어뜨리고 넘기는 기술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부드럽게 제압하는 주짓수와 달리 상대를 찍어누르는 듯한 관절기가 레슬링 서브미션의 특징이다.
매섭게 두호의 상위포지션에서 양 팔을 공략하는 철민.
두호 역시 상대의 팔을 제어해보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만큼 상대는 그래플링에 정통했다.
체급 차이는 우습게 누를만한 경험치가 쌓여있었다.
두호가 이대로는 안되겠는지 순식간에 몸을 비튼다.
이윽고 다리와 팔을 이용해 상대를 밀며 누운 상태로 뒤로 물러난다.
주짓수의 새우빼기.
그 모습의 탁현이 미소 짓는다.
“역시.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으로 나오는구만.”
두호는 필사적으로 상대를 밀치며 등을 바닥에 기댄채 물러났다.
어느새 멀기만 했던 케이지가 제법 가까워졌다.
이대로만 간다면 케이지를 이용해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는 최고의 엘리트 레슬러.
자신의 무게를 밀어내는 동작을 반복하자 철민이 자신의 상체를 훽하니 일으켜 세웠다.
다리와 손으로 함께 밀어야 뒤로 이동하는 것이 수월하다.
그러나 일으킨 상체로 인하여 두호의 손은 허공을 갈랐고, 다리로만 상대를 미니 오히려 그의 몸이 헛돌았다.
그렇게 철민의 방향으로 몸이 움직여 머리를 내주게 된 두호.
철민이 그의 목과 한쪽 어깨의 팔을 끼워 단단히 붙잡는다.
그리고 팔에는 힘줄이 터질 만큼 강한 힘을 주었다.
90kg가 넘어가는 두호의 체중을 들어 올리며 자신의 뒤로 내던진다.
“으라차차!”
목 감아 돌리기.
그 모습에 탁현이 감탄한 듯 박수까지 쳤다.
“이야. 메달 따겠는데.”
아무리 레슬링에 익숙치 않은 두호지만 챔피언이다.
일반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무게중심의 이해가 높으며 챔피언에 걸맞는 힘까지 갖췄다.
게다가 90kg의 거구로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런데 멋지게 넘어갔다.
두호도 이번에는 충격이 있었는지 넘어지고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필사적으로 가드 포지션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이 흘러 결국 종이 울린다.
- 때앵!
철민이 하위포지션에 깔려있는 두호에게 손을 내민다.
“고생하셨습니다!”
두호가 헛웃음을 지으며 그의 손을 붙잡는다.
“지도 감사합니다. 잘 배웠습니다.”
그가 두호를 일으켜 세워주자 천천히 일어선다.
“야! 여기!”
동료들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철민.
수건 한 장이 철창 너머로 날라온다.
철민이 그 수건을 받아 이마를 닦으며 케이지에 기대어 휴식을 취한다.
탁현이 케이지 안으로 들어와 미소를 지으며 두호에게 향한다.
그 역시 두호에게 수건을 건네며 철민을 슬쩍 바라본다.
“두호씨. 어떠셨어요?”
“음...”
두호가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눈을 좁힌다.
“케이지에 가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쉽지가 않네요.”
탁현이 두호를 바라보며 빙긋 미소 짓는다.
“당연히 그래플링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지니 어쩔 수 없습니다. 다만 mma에서는 타격이 있으니 이 정도의 일방적인 그림은 안 나올테죠. 하지만.”
탁현의 뒷말이 궁금한 듯 두호가 그를 바라본다.
“타격에는 페인팅을 잘 섞으시면서 왜 그래플링에서는 페인팅을 쓸거란 생각을 못 하시죠?”
두호는 그 말의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감정을 느꼈다.
오히려 타격에서 상대의 수를 읽는 것보다 그래플링에서 상대의 수를 읽는 것이 더욱 쉽다.
상대의 무게중심의 대한 정보를 몸으로 전달까지 받는다.
근육은 힘이 들어가면 더욱 무거워지고 모양에서도 티가 난다.
탁현이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가짓수를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활용하는 게 더욱 중요하죠.”
이내 철민을 보며 손을 흔든다.
“10분 휴식하고 다시 진행하자!”
철민이 밝게 미소 짓는다.
“네!”
두호는 케이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케이지의 등을 대고 자리에 앉아 눈을 감는다.
무언가에 몰두한 듯 몸이 움찔움찔 거린다.
***
작은 대교에서 차 네 대가 어지럽게 서 있었다.
그리고 총성이 마치 콩 볶는 소리처럼 끊임없이 들려왔다.
“헨리! 여기 탄알집 하나 던져줘!”
차 뒷바퀴에 몸을 숨긴 채 교전을 하던 헨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내 자신의 방탄 조끼에서 5.56mm 탄알집 하나를 차 앞바퀴 쪽에 앉아있는 래진에게 던졌다.
래진이 헨리가 던진 탄알집을 받아 재장전하며 매섭게 반대편을 노려본다.
‘위험했어.’
교전이 벌어지는 곳은 미국 서부 스탁튼.
주민 두 명당 한 명이 총을 가졌다고 발표할 만큼 치안이 안 좋은 곳이다.
갱들 사이에서는 어렵지 않게 경기관총까지 보일 만큼 총기사용이 빈번하다.
더군다나 이곳은 캄보디아에서 넘어온 이주민들로 구성된 갱과 미국 본토 토박이 갱 ‘크립스’의 분쟁지역이기도 하다.
래진과 헨리가 잠시 외곽으로 나섰다가 스탁튼으로 돌아가던 중 이동하던 들개들에게 기습을 당한 것이다.
래진이 슬쩍 바퀴 사이로 상대를 확인한다.
‘예상보다 빠른걸.’
그리고 씨익 미소 짓는다.
‘그만큼 조급하다. 이거겠지.’
블랙러프의 투자자는 물론이고 필리핀에서 윈스턴의 무기들까지 뺏겼다.
전황 자체는 불리한 상황이지만 엄연히 따지자면 높은 패는 옐로우 맘바가 쥐고 있는 상황.
하나의 카드라도 줄이고자 들개들은 기습적으로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래진에게 접근한 것이다.
‘하지만 위기인 것도 사실이지.’
래진이 재빠르게 바닥으로 엎드린다.
이윽고 차량의 아래로 몸을 살짝 집어넣어 반대편을 겨냥한다.
들개들 역시 차를 엄폐물로 삼아 교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차 밑으로 보이는 발목을 래진이 조준한다.
스코프도 없고 편하게 집중을 할 만한 환경도 아니었지만 래진의 눈이 빛난다.
“후우.”
탕!
이윽고 한 사내가 바닥으로 쓰러지자 래진이 재차 그를 향해 격발한다.
탕!
갈비뼈 부분에 총을 맞아 축 늘어진 사내를 들개 한 명이 끌어 당긴다.
한 백인 사내가 손목에 시계를 확인한다.
그는 이번 미국행에서 들개들의 리더로 선임된 로버트.
신경질적으로 침을 땅에 뱉는다.
퉤-
“얼른 처리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