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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39화 (139/204)

139화 : 절대 두 팔은 떨어트리지 마라

마닐라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

맹혁이 운전을 하고 조수석에는 두호가 앉아있었다.

팔짱을 낀 채 뒷자리에 앉아있는 상철이 두호에게 묻는다.

“그런데 쁘레오는 어떻게 된거지?”

“네. 제가 아는 사람한테 거취를 부탁해놨습니다.”

두호가 싱긋 웃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맹혁도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두호는 아직 군대도 안갔다고 했는데 그가 저격총을 어떻게 다룰것이며 왜 필요했을까.

그런 반응에 두호는 속으로 웃음 지었다.

설령 정말 피치 못할 사정에 자신의 정체를 공개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은 안된다.

그들에게 도혁의 존재는 유무만으로도 싸움의 구도가 바뀔 것이기에 최대한 숨겨야 한다.

철저히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계획 안에서 싸움이 진행되어야 무고한 사람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상철도 더이상 묻지 않았다.

윈스턴 대표의 행방을 모르는 것이 찝찝하지만 어찌됐건 초기에 목표는 달성했다.

옐로우 맘바는 두호에게 큰 빚을 지게 된 셈이다.

불리한 싸움구도를 이렇게라도 활로를 뚫었으니.

“본의 아니게 이런 더러운 일에 끼어들게 한 것 같아 미안하네. 양지에 있어야 하는 사람인데.”

“누구든 이럴 겁니다.”

개의치 않는다는 말투에 상철이 피식 웃었다.

친동생은 아니라 들었는데 참 느낌이 비슷하다.

자신이 겪은 도혁 역시 이런 인사치레를 싫어했다.

누군가 자신에게 감사를 표하는 상황을 오히려 부끄러워 했다.

“우리가 잘 마무리 해서. 자네에게 피해가는 일 없게 하겠네.”

“감사합니다.”

그 말을 들은 맹혁이 피식 웃는다.

“오히려 감사는 제가 하죠. 떼돈 벌게 생겼는데.”

옐로우 맘바는 무기 거래에 전혀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이목이 집중될 일을 피해야 하기에 이번 무기 판매 수익은 모두 맹혁이 가져간다.

차라리 신원도 확실치 않은 누군가에게 맡길 바에야 맹혁이 맡아주는 것이 오히려 낫다.

“하하. 그래 사업을 하는 사람 지갑이 든든해야지.”

자신의 품 안에 손을 넣은 상철이 몸을 앞으로 기댄다.

이내 조수석에 앉은 두호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두호는 고개를 돌려 상철이 내민 것을 확인하니 옅은 미소를 띤다.

명함.

노란색 배경에 이름과 전화번호만이 적혀 있는 단촐하기 그지 없는 명함.

하지만 두호는 그 명함의 의미를 알기에 미소를 지은 것이다.

옐로우 맘바에서 캡틴이 명함을 건넨다는 일은 개인적인 의뢰를 해결해주겠다는 뜻.

개인적인 의뢰에는 사람들에게 알려져서는 안되는 비밀분쟁의 해결을 포함한다.

두호가 미소를 지으며 상철이 내민 손을 슬쩍 밀었다.

그러자 상철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두호의 손 위로 명함을 살짝 올려놓는다.

“감사합니다.”

“그쪽 형님이랑 친했어. 나이 차이 얼마 안나는 동생이기도 했고.”

두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갓 캡틴이 되었을 때 나이가 위인 사람은 몇 사람 없었다.

죽거나 은퇴하거나.

더군다나 여지껏 현장일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은 상철과 자신밖에 없었기에 묘한 동질감도 가지고 있었다.

래진보다는 조용하고 자신보다는 유쾌한 성격인 상철.

그 점이 자신보다 더욱 리더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느덧 차는 마닐라 국제공항 앞에 도착했다.

“조심하고 언젠가 기회 되면 또 보지.”

“그럼 수고 좀 해주십시오.”

상철은 차 안에 남았고 맹혁이 운전석에서 걸어나와 그의 짐을 트렁크에서 꺼내주었다.

맹혁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다음에는 이런 일 말고 놀러오시죠. 지역도 마닐라 말고 보라카이 같은 곳에서 보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

선글라스를 쓰며 공항으로 들어가는 두호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제 다시 내 싸움을 계속해야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선배.’

마닐라 국제공항의 8번 게이트가 닫히며 두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

필리핀 푸에르토프린세사.

늦은 밤 밀항선에 오르는 한 사내가 있었다.

검은 비닐봉투에 담긴 돈을 건네자 선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윽고 인원수를 세려는 듯 손을 까딱하자 사내가 뒤에 가렸던 여자 한 명과 아이 두 명을 보여주었다.

사내가 들어가라는 듯 고갯짓을 하자 사내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배에 탑승했다.

선장실 아래로 내려가니 선원들이 쓰는 간이 침실이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고서야 모자를 벗는 사내.

사내의 정체는 쁘레오였다.

여자와 아이 두 명은 자신의 부인과 딸들이었다.

쁘레오의 부인은 아이들의 얼굴을 티슈로 닦으며 침대에 눕혔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돈이 든 가방을 툭툭 건드린다.

전날 도혁과의 대화가 떠오른다.

도혁이 굳은 표정으로 쁘레오에게 말했다.

“이번 거래에서 발생되는 수익은 모두 가져가십시오. 대신 다시는 필리핀 땅을 밟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목숨이나 살려주면 다행이라고 여겼지만 이게 웬 횡재란 말인가.

그러나 그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총 쥔 놈들이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그는 침착하게 도혁에게 되물었다.

“왜인가?”

“싫다면 여기서 죽으시는 방법도 있습니다.”

도혁이 싸늘한 표정으로 얘기하자 쁘레오가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이윽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는 도혁.

그가 의자를 슬쩍 치우며 얘기했다.

“어찌됐건. 모술에서 직접 개입한 것도 아니니 그쪽에게 블랙러프에 대한 정보를 산 값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게...”

단순히 배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인터폴에 잡히는 게 낫다.

목숨 부지하고 처자식을 살릴 수라도 있으니까.

하지만 블랙러프에게 쫓기는 것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도혁이 품 안에서 수첩 하나를 꺼낸다.

수첩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하더니 종이를 쭉 찢어 쁘레오에게 건넨다.

“캐나다 안전구역입니다. 근처에 옐로우 맘바 센터도 있으니 안전은 보장될 겁니다. 새 출발 하기에 그 액수도 넘칠 것이고.”

도혁이 몸을 돌린다.

“이 모든 것도 내일 일을 잘해야 사는 겁니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던 도혁이 잠시 멈춰서서 쁘레오를 돌아본다.

“나에 대해서 입 잘못 열었다가는...”

도혁은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세상의 그 어떤 위협보다도 큰 공포를 보여주었다.

“차라리 블랙러프에 잡히는게 다행일 겁니다.”

“으윽.”

하마터면 구역질이 나올뻔 했다.

쁘레오가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도혁은 그 모습을 보며 씨익 미소짓고는 그대로 오두막을 빠져나갔다.

배가 출발한 듯 크게 흔들렸다.

돈이 든 가방을 만지며 허탈한 미소를 짓는다.

평생을 나고 자란 필리핀을 이런 식으로 떠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먹고 살기 위해 이곳저곳 붙었고, 결국은 붙지 말아야 할 곳에 붙은 자신의 마지막.

약간은 허망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블랙러프의 개가 되어서 평생을 숨거나 쫓겨다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더군다나 자신이 살 방법까지 제시해준 사람이 나타났으니 확실히 은퇴를 해야 할 시점이다.

언제 또 볼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만난다면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암.”

딸이 크게 하품하자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진다.

쁘레오가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눈물을 슬쩍 닦아준다.

“한숨 자.”

***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춘 후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질 때까지...

두호가 선글라스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입국장 게이트로 나왔다.

괜히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면 번거로울까 싶어 걸음을 서둘렀다.

그가 입국장 게이트를 벗어나 택시정류소로 이동하던 중 두 사람이 슬쩍 두호 옆에 따라붙는다.

“티나요. 두호씨.”

“그러게요. 우리 형님도 참. 인물이 좋아서 그런가.”

준모와 예수의 농담에 두호가 피식 웃는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뭐 특산물 같은거 안 사오셨습니까?”

예수가 한심하다는 듯 준모를 흘겨본다.

“특산물이 뭐에요. 기념품이겠죠.”

“아니. 망고 이런 것 있잖아요. 왜 이렇게 공격적이실까.”

준모의 발언에 예수가 발끈한 듯 잔소리를 퍼붓는다.

두호가 싱긋 웃으며 예수를 진정시켰다.

“바빠서. 기념품을 못 샀네. 몸은 좀 어때?”

준모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양 팔을 들어 보디빌더의 자세를 취한다.

“병원밥이 맛은 없는데 건강엔 좋더군요.”

두호가 준모의 어깨를 두드린다.

“고생 많았어. 고맙다.”

“에? 형님 왜 이러십니까. 낯뜨겁게.”

준모가 눈을 좁히며 징그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 반응 자체도 재밌는 듯 두호가 밝게 미소지었다.

준모가 두호의 캐리어를 뺏다시피 가져간다.

“차 가져올게요. 형님 여기 계세요.”

유리문이 열리고 공항 밖으로 나온 세 사람.

준모가 두호의 캐리어를 들고는 서둘러 공영주차장으로 달려간다.

예수가 싱긋 미소지으며 뒷짐을 진다.

“피부가 타긴 했어요! 필리핀 날씨 좋았나봐?”

“날씨 좋았죠.”

“다행이네요. 일단은 집으로 바로 가시는 거죠?”

“체육관으로 가시죠.”

예수가 두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여독(旅毒)이라는게 있다.

물론 두호의 체력과 나이라면 없을 법도 하지만 하루 정도는 푹 쉬어주는 게 좋기 마련이다.

두호가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선글라스를 꼈음에도 쨍하게 떨어지는 햇빛과 여름때보다 더 높아진 하늘이 보인다.

“조금 어지러웠습니다.”

예수는 두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우뚱 했다.

“선택과 집중. 이번 필리핀행도 선택과 집중을 잘하기 위해 다녀온 것이죠.”

이제야 예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포드탱과의 일전.

사실 준비했던 대로라면 그런 위기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경기 외에도 신경 써야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는 의미였다.

“정말 해야할 일을 하겠습니다.”

“잘할 수 있도록 도울게요.”

두호는 그녀를 보며 싱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예수가 어깨를 으쓱한다.

“별말씀을.”

그 순간 멀리서 준모의 차가 다가왔다.

준모가 운전석 창문을 열어 크게 소리친다.

“가시죠 형님!”

“그래.”

두호와 예수가 밝은 표정으로 준모에게 걸어갔다.

체육관에 도착한 세 사람.

그러나 준모의 표정은 어이가 없는 듯 싶었다.

“솔직히 말해요. 탁 코치님.”

탁현이 왜 그러냐는 듯 준모를 바라본다.

“우리 형님. 싫어하죠.”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오히려 탁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준모는 팔짱을 끼며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고서야...이런 훈련을 제안한다구요?”

준모의 말을 이제야 이해한 탁현이 큰 소리로 웃는다.

“준모씨 만큼 저도 두호씨를 돕고 싶다는 것만 알아줘요.”

멀리 탈의실에서 두호가 환복을 마치고 탈의실에서 나왔다.

탁현이 두호에게 손을 흔들었다.

“킹 챔피언쉽 미들급 챔피언 백두호 선수. 인사들 해.”

“반갑습니다!”

체육관이 떠나갈듯한 목소리.

두호가 상의를 정리하며 다가오다 우렁찬 인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11명의 사내가 일렬로 서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세는 보통이 아니었다.

통나무 같은 다리.

성인 남성 손이 세 개는 붙어야 감싸쥘 것 같은 목.

그리고 그들의 귀는 일반적인 굴곡이 전혀 없었다.

엄청난 훈련으로 만들어진 만두 귀.

탁현이 씨익 미소지으며 두호에게 소개했다.

“현 대한민국 레슬링 자유형 국가대표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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