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7화 : 절대 두 팔은 떨어트리지 마라
3년 전. 모술.
탕!
확인사살을 하던 브라보의 팀원인 머레이가 도혁에게 소리친다.
“캡틴 작업 다 끝났습니다!”
도혁이 담배 하나를 꺼내 물며 고개를 끄덕인다.
“고생했다. 전부 모이라고 해.”
“네. 브라보 집합!”
머레이가 소리치자 브라보 팀원들이 멀리서 하나둘씩 모인다.
도혁은 담배의 불을 붙였다.
연기를 길게 내뿜으니 옆에서 채호가 다가온다.
“캡틴. 이것 좀 보시죠.”
“뭔데.”
채호가 내민 종이를 받아본 두호의 눈이 좁혀진다.
채호는 슬쩍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도혁에게 귓속말을 했다.
“계약서가 있습니다. 원래 무기밀매하는 놈들은 계약서를 따로 작성하지 않잖습니까.”
무기 밀매에서 계약은 대체로 구두로 이루어진다.
계약의 증거를 서면으로 남기면 그 자체로도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보통은 윗선에서 암암리의 미팅을 끝내고 무기와 현금을 순식간에 교환하는 방법을 택한다.
도혁이 계약서의 내용을 천천히 확인하는 동안 브라보 팀원 모두가 모였다.
“브라보 전원 모였습니다.”
서류를 채호에게 넘기며 도혁은 고개를 젓는다.
“판단은 보스가 할거야. 일단은 여기 마무리 짓고 다시 얘기하자.”
채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알겠습니다.”
채호 역시 팀원들이 서 있는 자리로 이동했고 무기 호송차 트렁크에 도혁이 걸터앉았다.
“고생했다. 다친 사람 없지?”
“저 여기 긁혔는데요?”
머레이가 과장스러운 몸짓으로 팔을 부여잡자 팀원들이 모두 크게 웃는다.
“캡틴. 근데 저런 것도 산재처리 됩니까?”
“너 뺨이 베였는데 왜 팔을 붙잡고 있냐.”
조금 전 치열한 교전을 한 사람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표정들이었다.
장난을 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그들을 보며 도혁이 옅은 미소를 짓는다.
“그쯤하고. 부상자.”
팀원들은 크게 소리쳤다.
“없습니다!”
“그래. 지금부터 임무 완료 보고하고 곧바로 복귀 지점으로 이동한다. 대열 중앙은 무기호송차. 앞 열은 나와 채호, 머레이와 마이클...”
도혁은 차분하게 호송작전을 설명해주었고 팀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마지막으로 통신 채널은 F로 한다. 이견 있나?”
“없습니다!”
“각자 위치로.”
“위치로!”
각자 자신이 배정받은 차량의 위치로 흩어지는 브라보 팀.
덜컥.
맨 앞에 위치한 지프차량의 운전석과 조수석 문이 동시에 열린다.
머레이와 도혁이 탐승하자 곧바로 뒷자리에는 채호와 마이클이 탑승했다.
마이클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채호의 어깨를 툭 친다.
“이번 임무. 액수에 비해 일이 너무 쉬운데?”
채호가 가슴팍에 주머니에서 플라스틱통에 담긴 초콜렛을 꺼낸다.
초콜렛 통을 탈탈 털어 마이클에게 한 줌 건네는 채호가 미소 짓는다.
“이런 날도 있어야지. 맥주나 한 잔 하고 싶다.”
받은 초콜렛을 입으로 몽땅 털어넣던 마이클.
그가 무엇인가 생각난듯 눈이 커진다.
“그러게. 맞다!”
이윽고 운전석의 앉은 머레이의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빡!
하지만 뒤통수를 맞은 머레이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자신의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마이클은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로 얼굴을 들이민다.
“너 어떻게 됐어 임마!”
실눈을 뜨며 핸드폰을 바라보던 머레이가 환희에 가득 찬 표정으로 소리를 지른다.
“딸이래요 딸!”
그 말에 채호와 마이클이 동시에 환호성을 지른다.
“예에! 드디어 딸이네!”
“이야 축하한다!”
두 사람은 머레이의 등과 머리를 두들기며 기뻐했다.
사실 임무 당일은 머레이 아내의 출산예정일이었다.
아들만 둘인 머레이가 이번 아기는 딸이었음 좋겠다 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마침 그의 바람대로 딸이라고 연락을 받자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임무가 생겨 출산하는 부인의 옆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미안함과 걱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 것을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채호가 무전기를 쥐고 신나는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는 글러브 삼. 글러브 여섯 가족에 어여쁜 딸이 내려와 새 가족이 되었다. 이상.”
잠시 후 브라보팀이 사용하는 채널 F는 순식간에 시장통이 되었다.
그리고 뒤편에 차들이 경적을 시끄럽게 울려댔고 무전기에서는 휘파람 부는 소리가 가득했다.
-여기는 글러브 둘. 아기가 제발 제수씨 닮았길 빈다.
-여기는 글러브 열하나. 집들이는 언제 하냐고 물어봐달라.
이윽고 옐로우 맘바의 본부에서도 무전이 송신되었다.
-여기는 화이트. 글러브 여섯에 가족으로 배정받은 어여쁜 숙녀를 환영하며, 글러브 여섯이 내야 할 대학 등록금이 더욱 늘어났음을 축하한다.
본부의 무전에 채호와 마이클은 박장대소를 했고 도혁 역시 피식 웃었다.
무전기와 차량 경적 소리로 전해지는 축하에 머레이는 얼굴을 붙잡는다.
두호가 옅은 미소를 띄우며 머레이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마음 고생 많았지? 축하한다.”
이윽고 머레이는 글썽거리며 고개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캡틴.”
사실 도혁은 그를 이번 임무에서 열외시키려 했었다.
하지만 그의 권유에도 머레이는 동료들과의 의리를 지키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가장 기쁜 순간을 누가 외면하고 싶을까.
머레이는 잠시 핸들을 부여잡고 눈물을 쏟았고 도혁은 그의 뒤통수를 매만지며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마이클이 짓궂게 무전기를 잡았다.
“여기는 글러브 아홉. 글러브 여섯이 핸들을 부여잡고 질질 짠다. 평생 놀려먹도록. 이상.”
머레이가 눈물을 흘리며 몸을 돌린다.
이윽고 마이클의 멱살을 잡으며 실랑이를 한다.
“진짜 죽는다. 너.”
“낄낄. 그러니까 누가 질질 짜래?”
도혁이 마이클과 머레이를 진정시키며 싱긋 미소 짓는다.
“그만하지. 이제 출발하자.”
머레이가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이윽고 무전기를 쥐고 말한다.
“여기는 글러브 여섯. 브라보 식구들 전원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힘찬 목소리와 함께 차는 출발했다.
하지만 그날 브라보 팀원 중 정상적으로 복귀 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
뜨거운 햇빛과 습한 공기.
선선했던 전날과는 사뭇 달랐다.
카바나투안(Cabanatuan City)의 항구.
필리핀 북부로 무역품이 넘어오는 유일한 곳이지만 텅비었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항구에는 그 흔한 공무원이나 유통회사 직원들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배를 관리하는 선원 몇 명이 배 앞에 모여 서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먼지 바람이 일며 검은차 3대가 항구로 도착했다.
배 앞에서 멈춰선 차량.
곧이어 사내들이 우르르 내린다.
이윽고 가운데의 차 뒷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차에서 내린다.
쁘레오였다.
그가 선글라스를 쓰며 하늘을 살짝 올려다본다.
어제와 똑같은 날씨지만 우기를 앞둔 필리핀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순식간에 비가 오기도 하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뜨기도 한다.
‘인생이란 그런거겠지.’
잠시 머릿속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쁘레오였다.
한숨을 내쉰 그가 주위에 경호원들에게 말한다.
“그들은 어디 있습니까.”
“배 안에 계십니다.”
아주 짧은 대화이지만 그들의 사이가 그리 친하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지금 쁘레오의 주위에 있는 경호원들은 모두 포그스컬스에서 파견된 인물들이었다.
어제의 사건으로 인해 쁘레오에 대한 경호를 강화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경호가 아닌 감시임을 쁘레오 역시 알고 있다.
쁘레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정박한 배를 올려다보았다.
무거운 표정으로 배에 설치된 간이 계단을 오르는 쁘레오.
일행은 넓은 갑판을 가로질러 선박 위 선장실로 향했다.
굽이 굽이진 선박의 내부 복도는 마치 미로와 같았다.
이윽고 3층에 도착한 그들은 선장실이라 써진 방문을 열었다.
커다란 대 회의실과 같은 공간이 나왔다.
긴 탁자에 비니를 눌러쓴 백인 남성 한 명이 쁘레오에게 손을 흔든다.
“오셨소?”
쁘레오는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숙인다.
“반갑습니다.”
이윽고 그의 뒤쪽을 슬쩍 바라보는 쁘레오.
비니를 쓴 사내 뒤로 무장을 한 사내들이 8명이 서 있었다.
곧 맞은편의 쁘레오가 앉자 쁘레오의 뒤로 도열하는 경호원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비니를 쓴 남성이었다.
“반갑소. 메이슨이라고 부르시오.”
“네. 쁘레오입니다.”
두 사람은 살짝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하였다.
이윽고 쁘레오가 앉아 자신의 가방에서 서류 하나를 꺼낸다.
품에서 만년필 하나를 뽑아 서류와 함께 메이슨에게 건내었다.
서류를 받아 확인하는 메이슨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 정도 물량을 아무런 감시 없이 받을 수 있다니. 블랙러프에 가입한 건 참 잘한 일이었소.”
그가 서류에 사인을 한다.
해머필드의 존 메이슨.
블랙러프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현 소말리아의 반군을 지원하는 PMC인 해머필드.
그들은 블랙러프에 가입함으로써 무기 공급에 대한 부담을 크게 줄였다.
“적외선 유도방식 대전차 미사일 20000발. 그리고 윈저 63 10000정과 탄약까지. 오케이.”
이윽고 미소를 지으며 사인한 서류를 본인의 가방에 넣더니 다른 가방을 책상에 올린다.
“확인해 보시오.”
메이슨이 건넨 가방을 열어보는 쁘레오.
채권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무기명 채권으로 준비했소. 바로크 대표한테는 고맙다는 말 전해주시오.”
가방을 잠근 쁘레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땀으로 흥건한 쁘레오의 이마가 메이슨의 눈에 들어왔다,
“어디 아프시오? 거기서 한 장 빼서 몸보신이라도 하시지 왜.”
메이슨의 농담에 그의 뒤에 해머필드 사내들이 작게 미소 짓는다.
쓴웃음을 지으며 품 안에 손을 집어넣는 쁘레오.
이윽고 그의 손에서 쥐어져 나온 것을 본 메이슨이 당황한다.
“뭐해 이 새끼들아!”
그의 손에서 쥐어져 나온 수류탄같이 생긴 덩어리.
이윽고 그가 안전핀을 빼 땅에 떨어트린다.
쁘레오가 얼굴에 무언가를 뒤집어쓰며 밖으로 뛰쳐나간다.
메이슨이 거친 목소리로 소리친다.
“전부 피해!”
모두 당황한 표정으로 숨을 곳을 찾아 다급하게 몸을 던진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수류탄이 아닌 듯 연기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치이이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서서히 일어나는 메이슨.
하지만 이윽고 그의 인상이 더욱 구겨지며 재차 소리를 질렀다.
“여기서 빠져 나가!”
개량형 CS탄(최루탄).
일반적인 CS탄과 달리 연막의 효과까지 일으키는 윈스턴의 신무기였다.
한 사내가 문을 거칠게 당겨보지만 밖에서 잠긴 듯 문은 열리지 않았다.
“창문 깨!”
메이슨의 명령에 사내들은 품 안에 든 권총으로 창문을 겨냥한다.
탕탕!
곧 두꺼운 유리가 깨지고 연기가 밖으로 조금씩 빠져나간다.
이윽고 사내들은 서둘러 몸을 밖으로 던진다.
쨍그랑!
하나둘 밖으로 빠져나오는데 성공했지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천둥이 치듯 들리는 소리.
쿠웅.
이윽고 바람을 찢는 소리와 함께 한 사내의 어깨가 관통한다.
어깨 위가 터져나가며 붕 뜨듯 날아가는 한 사내.
바닥에 철푸덕 쓰러져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메이슨이 당황한 표정으로 황급히 몸을 숨긴다.
‘저격?’
고개를 돌려 주위 환경을 살펴본다.
자신들 보다 더욱 높은 곳에서 쏴야하는데 근처에는 이 배의 선장실보다 높은 곳이 없다.
사내가 저격당한 위치와 저격 가능한 위치를 예상하며 주위를 살펴보는 그의 표정이 굳는다.
근처에 높은 빌딩과 저격을 할만한 포인트는 거리가 800M가 넘어간다.
‘800M 밖에서 흔들리는 배 위에 목표물을 맞췄다고?’
전쟁사에 남을 법한 솜씨였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800M 밖 한 등대에서 도혁이 씨익 미소 짓는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잘 안맞네.”